16. 무보수 노동? 으웩
“안 팔리면 어쩌지?”
내 우려는 순 기우였다.
좀비 퇴치제와 같이 순식간에 매진된 입주권.
그래도 우리가 호갱님들의 신뢰를 좀 얻기는 했구만?
기쁨도 잠시.
나는 서둘러 움직여야 함을 깨달았다.
‘입주자들이 몰려올 거다.’
판매한 입주권만 80개였다.
단순히 한 명씩 잡아도 80명.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오게 되면 그 숫자는 급격히 불어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하나씩 빠지는 것 같던데...
벌써부터 탈모로 고통 받을 수는 없잖아?
“날 도와줄 놈들이 필요해.”
하지만 원래 있던 직원 놈들을 쓸 수는 없었다.
저 녀석들은 효자 상품 좀비 퇴치제에만 집중해도 모자를 판이었으니까.
즉, 이제는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나에겐 해결 방법이 있지!
“사장님? 말씀하신 대로 모두 모았습니다.”
“그래.”
나는 직원들 가족을 모두 쉘터 앞에 있는 작은 공터로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셋...다들 모였네.
그들 앞으로 간 나는 헛기침을 했다.
“커험!”
자기들끼리 인사를 하던 가족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시간이 늦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새로운 노..아니, 직원이 필요하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 놈들이 손을 번쩍 치켜든다.
아니, 이것들아.
니들이 할 일이었으면 내가 따로 말했지!
아주 살짝 고맙긴 한데...
눈치 좀 챙겨. 응?
내 눈빛을 본 직원들이 엉거주춤 손을 내린다.
“다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 쉘터의 입주권을 판매했다. 그리고 내 예상으로는 내일부터 사람들이 슬슬 몰려들기 시작할 거야.”
“이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걸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말을 끝낸 내가 모인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런데 왜 다들 이리 조용해?
내가 말을 잘못 했나?
그때 누군가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게 누구였더라...
아, 김 여사였구먼.
“김 여사,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러니까 사장님은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겠다...그 말씀이시지?”
“바로 그거지!”
“그럼 월급도 주시나?”
“뭐? 아니,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왜 하는 거야?”
거 참.
누굴 쓰레기로 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김 여사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다.
자기 혼자 뭔가를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
“하긴 나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장님 덕을 많이 봤으니까...당연히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하, 사장님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서야죠!”
“물론 도와드려야죠.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가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모두 사장님 덕분인데.”
아니, 잠깐만.
이 사람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다들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당연히 월급은 지급 된다! 설마 내가 무보수로 당신들을 굴릴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적인 말실수가 나왔지만, 나는 꽤 다급했다.
무보수 노동이라니.
내가 그딴 걸 시킬 리 없잖아!
나부터가 벌써 무보수 노동의 폐해를 겪어본 사람이었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야만적인 행위!
내가 제일 극혐하는 짓거리를 한다고 오해 받을 수는 없었다.
절대! NEVER!
“명목상 월급은 250! 사대보험 제외하면 230 쯤...아, 사대보험은 없어졌지? 그래, 실수령 월급 250! 참고로 이건 초봉이니 그렇게 알고!”
“네?”
나는 이놈들이 딴 소리 못하게 말을 이어갔다.
난 절대 ‘임금체불’ ‘악덕 고용주’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붙이고 다닐 생각이 없거든?
예전에 은행 빚을 지고 있을 때도 절대 이놈들 월급만큼은 밀리거나 빼먹은 적도 없었다.
차라리 내가 덜 먹고 덜 쓰고 말지!
직원 놈들이 의욕을 잃는 순간, 내 사업이 악순환에 빠진다는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거기에 주거비용 지원비 30까지! 모두 합치면 280 정도 받게 될 거다.”
“아, 아니. 사장님. 그렇게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맞습니다. 사장님 힘든 거 다 알고 있어요. 저희 앞에서는 조금 약해지셔도 괜찮습니다.”
“분명 이 건물 짓는데 돈 많이 들어가셨을 텐데...”
하이고 이것들아...
너희들 설득하는 게 더 힘들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참나.
이젠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무튼! 내 예상으로는 한 대여섯 정도가 필요해. 그 중 두 명은 경비원 역할을 해야 하니 가급적이면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이었으면 좋겠는데.”
절대 남녀-여남 차별을 하는 게 아니었다.
경비원의 업무 특성 때문이다.
“나머지 인원은 성별과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물론 일이 가능해야 할 정도의 체력과 건강은 있어야겠지만.”
“관심 있는 사람은 빨리 손 들어. 고민 따위는 하지 말고!”
잠시 주저하던 가족 중 일부가 손을 들었다.
하나...둘...셋...
됐다.
얼추 되겠어.
“좋아. 이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 보도록. 지원자들만 남고!”
고개를 끄덕이며 거처로 돌아가는 가족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니들은 왜 안 가냐?”
“혹시 저희한테도 시킬 일이 있으신가 싶어서...”
“시킬 일 없으니까 빨랑 들어가라! 내일 일하려면 푹 쉬어둬야지!”
“아, 알겠습니다.”
쯧.
하여튼 쓸데없이 우직하다니까.
뭐 저런 게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직원 놈들이 쉘터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 남아있는 지원자들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내일부터 부려 먹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가르쳐야 했다.
“모두 따라와!”
***
명수가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다소 황량하게까지 느껴지는 이곳.
예전 같았으면 공장들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기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좀비는...없는 거 같네.’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안전함을 확인한 명수가 고개를 돌렸다.
“가자.”
“응.”
그를 따라 움직이는 아내.
명수는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고마워.”
“뭘?”
“이해해줘서.”
당초 아내는 쉘터 <안전지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런 곳이 정말 있겠느냐.
사기는 아니겠느냐.
하지만 그녀는 결국 명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래 살던 곳이 예전 같았으면 몰라도, 지금 같은 시기에 살만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
“됐어. 하여튼 뭐 잘못되기라도 해봐. 당신 탓 할 거니까.”
“하하.”
농담으로 긴장을 더는 것도 잠시.
명수는 집에서 챙겨온 지도를 확인했다.
‘이대로만 직진하면 되네.’
그렇게 걷기를 한참.
두 사람은 쉘터 <안전지대>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저건가 본데?”
“...일단 사기는 아닌게 확실해졌네.”
공장 사이에 우뚝 솟은 10층짜리 건물.
다소 투박한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에는 <안전지대>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다른 것들도 있었다.
명수처럼 쉘터를 향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다른 생존자들.
생존자들은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그렇게 좀 더 걷자 가까워지는 쉘터 건물.
“여기다.”
투박한, 하지만 꽤 높은 담장에는 누군가 손으로 휘갈겨 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 화살표 방향으로 이동.
조금 더 걷자 활짝 열린 문이 보였다.
“쉘터 입주하러 오신 분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살짝 얍샵하게 생긴 사내가 문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좀비가 무섭지도 않나?’
라고 생각했던 명수는 피식 웃었다.
문 뒤쪽으로는 굴뚝이 달린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 그리디 산업.
그리고 진한 퇴치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고.
사방에 가득하던 좀비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좀비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이긴 하네.’
명수와 아내가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있던 사내가 잠시 둘을 저지했다.
“경매장에서 구매하셨던 입주권 확인하겠습니다.”
“여, 여기 있습니다.”
“확인 되셨지 말입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접수대가 있을 겁니다.”
명수가 안에 들어가자마자 본 건 기다란 줄.
행렬의 끝에는 웬 사람들이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직원이 두 사람을 힐끔 올려다봤다.
두 사람의 접수를 맡은 사람은 김 과장의 부인.
“입주권 우선 확인할게요.”
“여기 있습니다.”
“어디 보자...사장님 필체가 맞네요. 이건 저 주시고, 두 분이세요?”
“네, 두 명입니다.”
“그럼 이 서류 한 장씩 작성해 주세요.”
예전과 달리 깔끔하게 인쇄된 양식은 아니었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쓴 간이 양식.
이름과 나이, 동반자의 정보와 예전 직업 등을 적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 따위가 적혀 있었다.
‘입주권에 적혀있던 거랑 똑같네.’
“한 분당 월세 20만원을 내셔야 하는 거 아시죠? 또한 범죄행위를 하셔도 안 됩니다. 만약 규정을 위반하시면 즉시 강제 퇴거조치 되시고, 월세도 환불해 드리지 않아요.”
“네 확인했습니다.”
“혹시 스킬 가지고 있으세요?”
명수가 잠시 멈칫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킬 덕분에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그냥 넘어가려던 김 과장 아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스킬이 있으시면 나중에 저희 사장님한테 고용되실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김 과장 아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희 사장님은 직원들을 꽤 잘 챙겨주시거든요. 월급 포함해서요.”
“그, 그래요?”
명수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세상이 망했음에도 돈은 여전히 중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스킬 사는데 내가 가진 돈을 전부 써버렸으니...’
아내가 아직 좀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가만히 있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냥 까먹는 거니까.
“그래서, 가지고 계신 스킬이 있으세요?”
“저는...”
“뭔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어?”
“깜짝이야!”
명수와 김 과장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온 사장님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었다.
***
크크크.
뭘 그리 놀라?
“그래서, 스킬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자신을 이명수라고 소개한 남자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기, 기술 습득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꽤나 직관적인 스킬 이름이네.
“기술 습득? 무슨 기술을 배우는 건데?”
“지금 레벨 1인 상태에서는...노련한 탈영병의 기술을 습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노련한 탈영병이라...
혹시 전투 능력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명수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는 길에 약탈자 두 명을 만났는데...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좀 신기했습니다. 원래 몸 쓰는 쪽은 제 분야가 아니라 생각했거든요.”
“호오. 그래?”
마음에 드는데.
그렇지 않아도 경비원의 숫자는 좀 더 늘릴 생각이었다.
어제 두 사람만 뽑은 건 어디까지나 적합해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였고.
약탈자 두 명을 제압할 정도라면...
경비원으로 뽑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좀비들을 상대로 하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은 사람을 상대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사람한테는 퇴치제가 안 먹히니까.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뽑고 보자!
나는 명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넌 지금부로 내 직원이야.”
얼떨떨한 표정도 잠깐.
명수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가, 감사합니다!”
이로써 쓸만한 노예 한 놈 추가!
흐뭇하게 웃고 있는 내 눈 앞으로 레벨업 메시지가 뜬 것도 바로 그 때였다.
- Level UP!
- 아포칼립스 재벌 [Lv.4]
- 레벨업을 기념하여 무작위 혜택이 제공됩니다...
오호라.
겹경사가 터졌네!
- 귀중한 조언을 제공합니다.
귀중한 조언이라.
기대 되는데?
내심 기대하고 있던 나는 다음 문장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 공장 업그레이드에서 ‘생산량 증대’ 대신 ‘환경 개선’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요? 좀비로부터 더욱 안전해질 것입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