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악덕 사장-22화 (22/241)

22. 의사 양반

사방에서 달려드는 좀비들.

그 수가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젠장.”

사내의 손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통을 향했다.

‘얼마 안 남았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아낄 수도 없었다.

퇴치제를 아끼자고 좀비한테서 무방비로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조금 있으면 도착이니까.’

그가 이를 악물었다.

키아악!

캬악!

좀비들은 어느새 근처까지 도달한 상태.

사내가 다급히 통을 집었다.

치이익-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달려들던 좀비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끼, 끼이익!

언제 그랬냐는 듯 도망치기 시작하는 놈들.

이쪽으로 달려오던 놈들과 부딪쳐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

와르르.

방금까지 좀비들로 막혀있던 길이 뻥 뚫렸다.

서로 엉켜서 팔다리만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

반색한 사내가 재빨리 좀비들을 지나쳤다.

“역시!”

그가 괜히 쉘터 입주권을 산 게 아니었다.

좀비 퇴치제의 뛰어난 성능 덕분에, 자연스레 쉘터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 것.

‘누군 사기라고 했지만...이런 걸 만드는 곳이 사기를 칠 리 없잖아.’

칙. 칙.

그새 비워졌는지 침묵하는 퇴치제.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우뚝 솟구친 쉘터가 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으니까!

더군다나 방금 반격으로 좀비들과의 거리도 많이 벌려둔 상태.

놈들이 빠르긴 해도 이 정도 거리라면 한동안 더 버틸 수 있었다.

그를 쫓아오던 좀비들이 돌연 멈춰 섰다.

키아아아!

화가 났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

몸을 떨어대며 신경질을 부리지만, 정작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딛지는 못했다.

마치 투명한 막이라도 있는 것 같이.

정신없이 도망치던 사내도 그제야 멈춰 설 수 있었다.

“후우! 후! 후우...”

한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온몸이 아팠다.

폐는 터질 것 같았고, 다리는 후들거렸고.

시야도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일 정도였다.

‘하아.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결국 피로함을 이기지 못한 그가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한 번 긴장이 풀리니 더는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좀비들도 없으니...잠깐 쉬었다 가자.”

안타깝게도 사내의 휴식은 1분을 채 가지 못했다.

머리맡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안녕하신가?”

“뭐, 뭐야!”

화들짝 놀라 눈을 뜬 사내는 어느새 자신을 둘러싼 낯선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것도 잠시.

약탈자가 재빨리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퍽!

난리치던 사내가 조용해졌다.

확인 차 사내의 맥박을 확인한 약탈자가 오케이 사인을 해보였다.

“기절했습니다.”

“좋아. 빨리 물건 뒤져보자고! 쓸만한 건 다 빼내!”

“네!”

약탈자들이 사내의 온몸을 뒤졌다.

“대장! 이 작자 의사인가 봅니다!”

“의사?”

“안쪽에 무슨 약 같은 것도 있고 진료 도구 같은 것도 있습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아무튼 의사 자격증도 있고요.”

“일단 오케이. 좀 더 찾아봐.”

“네!”

대장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곳에 좀비들이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영업장소를 바꾼 지도 벌써 며칠 째.

그간 최대한 만만하고 놈들만 약탈해왔다.

덕분에 안전하긴 했지만, 그만큼 수확도 적었다.

최대한 피해를 덜 입기 위해 그들보다 머릿수가 적은 놈들만 털어 왔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꽤 수익이 짭짤했다.

어제 털었던 놈은 빈털터리였지만, 오늘 이놈은 구하기 힘든 약 따위를 잔뜩 가지고 있었기 때문.

‘약은 비싸게 팔아도 되고. 직접 써도 되니까.’

메고 있던 배낭은 물론, 안쪽에 숨겨진 주머니까지 꼼꼼하게 뒤지기를 한참.

“어?”

기절한 의사의 몸을 더듬던 약탈자가 뭔가를 꺼내든다.

그걸 살펴본 약탈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장?”

“왜?”

“...큰 거 하나 찾은 것 같은데요?”

팔짱끼고 지켜보던 대장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약탈자가 자신이 찾은 그것을 대장에게 건넸다.

기다란 종이 쪼가리였다.

얼마나 많이 접혔는지 꾸깃꾸깃해진 상태.

그걸 받아든 대장의 눈도 커졌다.

- 쉘터 <안전지대> 입주권.

- 그리디 산업.

“허!”

대박이잖아?

대장의 반응을 보고 슬쩍 다가온 약탈자들도 입주권을 발견하곤 입이 벌어졌다.

“대, 대박!”

“와...”

“이거 비싸게 팔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이거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 있어요!”

“마, 맞아요. 이거 팔면 당분간 먹을 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모두 조용!”

대장이 고민에 빠졌다.

녀석들 말대로 입주권은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원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지만, 이걸 구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 상황.

되팔 가치는 충분한 물건이었다.

‘원래 판매 가격이 10만원이었지? 한 10배 정도 붙일까? 아니면 더? 그래도 살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대장이 멈칫했다.

‘잠깐.’

굳이 되팔 필요가 있나?

‘이걸 이용해서 쉘터와 좀비 퇴치제 공장 자체를 꿀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대략의 계획이 완성됐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성공하면 이 짓거리도 때려 칠 수 있어.’

‘언제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약탈만 하러 다닐 수는 없지.’

고개를 든 대장이 약탈자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모여 봐라.”

약탈자들이 그에게 모였다.

“쉘터, 우리가 먹자.”

“네?”

“아니, 어떻게요?”

그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한테 입주권이 있잖아? 한 명을 정찰 목적으로 들여보내는 거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몰래 잠입할 수 있는지. 우리를 방해할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거다.”

“그리고 유사시엔 안쪽에서 호응도 하고. 우리 쪽 사람이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잖아?”

약탈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그럼 누구를 보내시려고요?”

“안에서 정찰도 하고, 호응도 해주려면 똑똑한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대장의 시선이 누군가를 향했다.

“땡칠. 너 예전에 사기로 이름 좀 날렸다고 했지?”

땡칠이라고 불린 약탈자가 씨익 웃어보였다.

“네.”

“어때, 할 수 있겠어?”

땡칠이 보란 듯이 몸을 풀어보였다.

“오랜만에 실력 한 번 발휘해 보죠. 뭐.”

“좋았어.”

대장이 괜히 땡칠이에게 일을 시킨 게 아니었다.

사기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내부 침투자로 땡칠 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땡칠이는 지금부터 의사가 되는 거다. 내과 의사 김정훈. 알겠지?”

약탈자들이 풀어 헤쳤던 의사의 배낭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빼놓은 약을 넣고, 다른 잡다한 물건들도 다시 넣어준다.

그 사이 땡칠은 목소리와 얼굴 표정을 가다듬었다.

“험험! 아아!”

“준비됐나?”

“네.”

자신만만하게 웃는 땡칠은 방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경박한 웃음과 몸짓은 사라지고, 어느새 살짝은 진지한 듯한 얼굴을 한 채.

“내가 몇 시간 뒤에 연락하지. 받을 수 있으면 바로 받도록.”

대장은 그와 동시에 스킬을 발동시켰다.

흐린 빛이 잠시 번뜩였다.

- 연결 [Lv.1]

- ‘땡칠’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럼 곧 다시 뵙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입주 예정자로 위장한 땡칠이 저 앞에 보이는 쉘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쉘터와 좀비 퇴치제 공장은 내거다!’

***

“잘 봐둬! 나중에 딴 소리하기만 해봐. 아주!”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새로 뽑은 야간 근무자들에게 설비 사용법을 가르쳤다.

교육은 꽤나 빡세게 진행됐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바로 투입될 녀석들이니.

어쩌겠어. 좀 빡시게 시켜야지.

“알겠어?”

“네!”

내가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좀 남았네?

마침 잘됐다.

“너! 나와서 직접 돌려봐!”

“네, 넵!”

제일 어리버리 해 보이는 놈을 불러 시켰다.

긴장한 얼굴과는 달리, 제법 그럴 듯하게 설비를 조작하는 녀석.

에이.

이럼 시켜본 보람이 없잖아?

눈치도 없는 시끼.

적당히 틀려줘야지!

다른 놈 시켜봐야겠다.

어디 보자.

제일 정신 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너! 그래 거기 너! 빨랑 안 나와!”

후다닥 튀어나온 녀석이 조심스레 생산 설비로 다가간다.

주눅 든 표정을 하면서도 곧장 능숙하게 기계를 만지는...아! 뭐야 이거!

이 놈들 왜 이렇게 능숙해?

어떻게든 녀석들 쪽을 주려고 했던 계획은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끄응...그래 잘 했다. 들어가!”

이렇게 된 이상.

있다 불시 검문으로 가야겠어.

야간에 일 처음 하니까 분명히 지쳐서 풀어질 때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 때 똭! 등장해서 사장의 위엄을 세우는 거야.

“저희 점심시간이 끝나서...”

“알았어. 이놈아.”

나는 야간 근무자들을 다시 숙소로 돌려보냈다.

밤을 샐 녀석들이니 지금 쉬게 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다시 라인으로 복귀하는 기존 직원 녀석들.

일단 급한 일은 처리했으니 나도 점심이나 먹으러 갈...

“사장님!”

나도 밥 좀 먹자!

그리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왜.”

“이번에 새로 오신 입주민이 계신데요. 그 분이 자기가 의사라고...”

“뭐?”

의사?

정말로?

“어, 어디에 있는데?”

“저기...”

직원이 가리킨 건 낯선 남자.

배낭을 맨 채 입주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직원 곁으로 다가갔다.

새로 들어왔다는 의사 양반은 간이 양식에 자기 이름과 정보를 쓰고 있었다.

- 김정훈.

- 내과 의사.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억눌렀다.

흠흠.

표정 관리.

“그래, 의사라고?”

“아, 네.”

의사가 자기 배낭을 보여준다.

배낭에는 각종 약과 도구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혹 몸이 좋지 않은 분들이 있을까봐...제가 챙길 수 있는 만큼 가져와 봤습니다.”

흐흐흐.

이거 아주 바람직한 인재로구만!

기본이 되어 있어!

아, 이럴 게 아니지.

귀한 인재가 오셨는데 주스라도 한 잔 드려야 하는 거 아냐?

“잠깐 이야기 좀 하지? 그렇지 않아도 의사가 필요하던 참이었거든.”

“그럴까요? 저야 좋죠. 보니까 이곳 책임자신 거 같은데 저도 책임자 분께 잘 보이는 게 좋습니다.”

허허.

마침 필요하던 인재가 와서 그런 걸까.

별 것도 아닌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구만.

나는 의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잠깐 앉아있어. 창고에 가서 주스 좀 가져올 테니까.”

“네, 천천히 갔다 오셔도 됩니다.”

“금방 오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창고로 향했다.

역시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더니.

가만히 있어도 의사를 알아서 데려다 주시네?

룰루랄라!

- Level UP!

순간 기쁨을 이기지 못한 나는 바닥을 박차고 힘껏 뛰어 올랐다.

YES!

이게 웬 떡이냐!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리네!

- 아포칼립스 재벌 [Lv.5]

- 레벨업을 기념하여 무작위 혜택이 제공됩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좋은 거 걸리게 해주세요.

제발 좋은 걸로!

그에 화답하듯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가 내 손바닥 위로 떨어진다.

어?

이건 좀...

예상 밖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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