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명예로운 죽음?
- Level UP!
- 아포칼립스 재벌 [L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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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쏠쏠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나는 기대감에 손을 슥슥 비볐다.
무슨 소문이냐?
어디 한 번 들어는 주마.
- 얼마 전 모 대부업체가 금고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금고 열쇠?”
내 손은 어느새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손끝에 와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찾았다.
요놈!
그걸 끄집어낸 나는 꼼꼼히 열쇠를 살폈다.
금고 열쇠 자체는 딱히 달라지거나 한 게 없었다.
하지만...
[햇빛 캐피탈 금고 열쇠]
-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다.
■■■■■ 처리되었던 글씨들이 전부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만.”
햇빛 캐피탈?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였더라...
“아.”
기억났다.
이 동네 놈들이었지!
가끔 주변 공장주들 모이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돈’과 관련된 것.
자연스레 대출이나 은행 쪽 이야기도 나오는데 햇빛 캐피탈 역시 몇 번 등장한 적이 있었다.
별로 좋은 쪽은 아니었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논란이 많긴 했다.
말도 안 되는 고리로 빌려주곤 공장을 뚝딱 해먹는다거나.
그럴듯한 제안으로 살살 유혹한 다음 뒤통수를 친다거나.
괴담이 끝없이 나오는 수준.
흐음.
그런 햇빛 캐피탈의 금고 열쇠라는 거지?
“당연히 가서 먹어줘야지.”
나는 서둘러 사무실로 달려갔다.
지도가...여기 있구만!
나는 지도에서 햇빛 캐피탈이 있는 동네를 찾았다.
지도에 정확히 표시되지는 않지만, 그 유명한 대부업체가 어디쯤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 공장이 여기 있고.
햇빛 캐피탈이 있는 삼일동이...저기군.
대충 거리를 가늠해 봤다.
한 4-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
별로 멀지도 않네!
벌써부터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돈이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명수야! 명수 어디 갔냐!”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나랑 어디 좀 가자.”
갑작스러운 지시에 어디를 갈지 궁금해 할 법도 하지만, 명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짜식.
말은 잘 들어서 좋네.
“넵.”
***
“사장님 저기 간판이 보입니다.”
“오, 그래?”
햇빛 캐피탈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큰길가에 자리 잡은 7층짜리 상가.
그리고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떡하니 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 햇빛 캐피탈.
- 대출 문의 031-202-XXXX.
명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다고 하셔서 서둘러 오긴 했는데...”
“어허. 또 쓸데없는 걱정한다.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이 정도도 못 버틸 것 같아?”
“하지만...”
나도 녀석이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지야 아직 신체적으로 왕성할 시기지만, 나는 아니라는 거지.
실제로 녀석은 왕성한 수준이 아니라 점점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말이야.
너만 체력이 좋아진 건 아니거든?
실망봉의 추가 효과에는 체력 +5도 존재했다.
이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지난번 내구 +5를 통해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일로 확인했고.
날 평범한 중년 아저씨로 보면 안 된다는 거다.
이 녀석아!
“내가 벌써 노인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다. 이놈아. 벌써부터 날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뒤.”
순간 명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재빨리 뒤쪽을 향해 창을 찔러 넣는 녀석.
푹!
머리가 꿰뚫린 꽃 좀비가 바닥에 널브러진다.
짜식.
살아있네.
나는 날카로워진 명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주변에 뭐 없으니까 후딱 처리하자.”
“아, 네.”
전기가 끊긴 탓에 엘리베이터는 먹통.
때문에 햇빛 캐피탈이 있는 7층까지는 계단으로 걸어가야 했다.
건물 안에는 좀비들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명수는 힘들이지 않고 그것들을 정리했다.
이야.
‘수련’ 딱지가 붙은 창기사가 이 정도면...
정식이나 숙련이 붙으면 얼마나 강해지는 거야?
내가 보기에 현시점에서 명수보다 잘 싸우는 녀석은 매우 드물 것 같은데.
든든하다.
든든해!
이놈만 곁에 있으면 어디 가서도 목소리 높일 수 있겠어.
7층에 도착한 명수가 재빨리 양옆을 확인했다.
복도 자체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따로 위협적인 놈들은 없었다.
“깨끗합니다.”
“오냐.”
햇빛 캐피탈...704호?
아, 저기 있다.
- 704호.
- 햇빛 캐피탈.
곳곳에 피칠이 된 문은 반쯤 열린 채.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잠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개판이네. 이거.”
“...그러게요.”
사방에 피가 잔뜩 칠해진 복도와 달리, 이곳 햇빛 캐피탈 내부는 꽤 말끔한 편이었다.
문제는 그 말끔한 장소를 점령한 또 다른 손님이 있다는 것.
“완전 꽃밭이네. 꽃밭이야.”
그 괴물 꽃들이 사무실에 잔뜩 자리하고 있었다.
시야를 빼곡하게 채운 보라색 꽃들.
나와 명수를 감지했는지 갑자기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러오기 시작한다.
수십 송이의 꽃이 동시에 향기를 뿜어내다보니 머리가 혼미해질 정도.
어으.
니들은 정도라는 게 없냐?
“사방이 꽃이라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이놈들도 정말 귀찮게 하는구만.”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배낭을 열었다.
막 생산된 따끈따끈한 좀비 퇴치제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창을 등에 멘 명수가 양 손에 퇴치제를 든다.
치이익!
퇴치제를 맞은 꽃들이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특유의 방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아끼지 말고 팍팍 뿌려!”
“네!”
동족들이 공격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걸까.
퇴치제의 영향권 바깥에 있던 꽃들도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리리릭!
치리익!
사방에서 날아오는 줄기들.
명수의 몸놀림이 한층 더 빨라졌다.
등에 메고 있던 창은 어느새 손에 들려 있었고.
촤악!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니, 내가 저놈처럼 막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고 할 수는 없잖아?
뭐 굳이 피할 필요도 없는데.
줄기들은 내 몸을 뚫지 못했다.
얼핏 보면 박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살짝 건드리면 떨어져 나갔고.
난 그냥 퇴치제만 뿌려주면 됐다.
그런데 이거 말이야.
굳이 이렇게 일일이 뿌려줘야 하나?
내가 아무리 이놈들 공격으로는 꿈쩍하지 않는다고 해도 굳이 코앞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데...
멀리서 퇴치제만 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나중에 만들어 봐야겠다.”
“네?”
“아냐! 하던 거 계속해!”
발악하던 꽃들은 금방 잠잠해졌다.
“명수야! 잘 찾아봐라! 어디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네!”
잘 다져진 꽃들을 헤쳐 다니기를 잠깐.
난 그리 어렵지 않게 금고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대표 사무실에 있었군!
“흐흐흐.”
금고는 꽤 덩치가 컸다.
뭔가 많이 들어 있을 듯한 느낌.
나는 금고 열쇠를 조심스레 꽂아 넣었다.
철컥!
기분 좋은 소음과 함께 잠겨있던 자물쇠가 열린다.
“열려라 참깨!”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금고 안쪽을 확인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실망봉을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시, 심 봤다!!!!!!!
금고 안에는 빳빳한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게 전부 얼마야?
***
지난번 김 부장 사건으로 싸늘한 분위기였던 명일 제약이었지만, 오늘은 활기찬 기운으로 가득했다.
종말 이후 생존자들을 모아 연구해오던 신약이 드디어 완성된 것.
“완성, 확실한 거겠죠?”
“물론.”
갑작스러운 좀비들의 등장으로 명일 제약의 많은 직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사람은 있기 마련.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력을 지닌 이가 바로 눈앞의 황 박사였다.
종말 이후에는 ‘신약 연구’ 스킬을 습득한,
명일 제약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준 1등 공신.
“황 박사님도 아시겠지만...그 어떤 문제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명일 제약의 이름이 걸린 신약입니다. 비록 세상은 이렇게 됐지만, 지금이야말로 명일 제약이 더욱 발전할 시기고요.”
황 박사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내 감히 자신하지. 그리디 산업인가 뭔가 하는 놈들의 퇴치제 따위는 곧 잊혀 사라질 거야. 우리 신약을 먹으면 좀비들을 비롯한 괴물들은 그 사람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니까.”
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회장을 모시는 몸이기에 황 박사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명일 제약 창립 맴버 중 하나.
회장과도 사적으로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괜히 비서가 몸을 낮춰 그를 대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비서가 말을 높이는 대상 자체가 명일 제약 내에선 극히 드물기도 했고.
“양산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 문제도 순조롭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그 ‘복사’ 능력자입니까?”
황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일 제약은 당연히 생산 설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종말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쓸모없어졌다.
사람이야 생존자를 끌어 모으면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을 돌릴 동력원, 전기는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공장을 돌리는 게 불가능하니까. 그 녀석이라도 써먹어야지. 그나마 그런 스킬을 가진 녀석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안 그랬으면 아예 생산 자체가 불가능했을 텐데.”
“그렇죠...마음 같아선 어디 발전소라도 확보하고 싶긴 합니다. 그럼 원 없이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물량 확보하는 게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
“하하하.”
전기로 돌아가던 세상에 전기가 끊겼다.
그런데 발전소를 손에 넣는다?
아예 세상의 패권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 신약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잠시 기다려보게.”
뒤쪽 창고로 들어간 황 박사는 금방 다시 나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에 포장된 둥그런 알약이 들려 있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회장님께 안부 전해주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비서가 간 곳은 바로 윗층에 있는 대규모 회의실.
그곳에는 연구 인력을 제외한 명일 제약의 잔존 인력들이 한데 모여 열띤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상석에 앉아있는 회장.
“왔나. 신약은?”
“여기 있습니다.”
알약을 본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허허, 때깔이 아주 곱군.”
“런칭은 확정된 겁니까?”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끌 필요가 있나. 빨리 선보여야지. 이 건물을 외부로부터 지키는 데만 만만치 않게 깨지고 있으니.”
명일 제약이 갑작스러운 종말에서도 건재할 수 있는 이유?
간단했다.
회장의 스킬 덕분.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을 이용해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외부로부터 격리할 수 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비서는 슬쩍 탁자 위에 놓인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회의를 통해 결정된 내용이 모두 종이에 적혀 있었다.
- 신약 ‘인비저블’ 초도 물량 : 1000개 이상.
- 판매 가격 : 49,999원.
- 진행 프로모션 : 100개 한정 특가 프로모션(30,000원), 경쟁사 부정적인 상품평 등록, 구매층이 모이는 상품평에서 긍정적 반응 유도...
‘하긴 프로모션은 한계가 있지.’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판촉 행사는 다양하게 하는 게 좋았지만, 지금은 다소 단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쓸 수 있는 채널 자체가 경매장 하나뿐이었으니까.
결정 사항을 읽어 내려가던 비서의 눈이 순간 커졌다.
“어?”
- 경매장 <추천상품> 기능 활용 예정.
“회, 회장님 이거 설마...”
“자네도 봤군? 하하, 영업부장이 한 건 해냈어. 자기 상점에 떴다고 하길래 내가 냉큼 구매하라고 지시했지.”
“이 <추천상품>이라는 게 어느 정도 노출되는 겁니까?”
“특별관 바로 아래 쪽.”
“...생각보다 쉬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간 명일 제약에서 가장 고민해온 문제가 바로 ‘노출’이었다.
신약은 좀비 퇴치제에 비해서도 그리 밀리지 않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그런데 운 좋게도 부족한 노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었다.
“그렇지? 나도 항상 상품 노출이 고민이었는데 운 좋게 해결됐지 뭐야.”
“우리 제품이 좀비 퇴치제보단 조금 비싸지만, 훨씬 획기적입니다. 적당한 노출만 뒷받침되어도 금방 놈들을 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디 산업의 좀비 퇴치제는 좀비나 꽃 등을 마주한 상황에서만 쓸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꺼내는 게 늦거나 뭔가 잘못되면 쓸 틈도 없이 공격 당할 가능성이 존재했고.
하지만 명일 제약에서 만든 ‘인비저블’은 지정된 시간 동안 좀비와 꽃의 인지를 방해했다.
수천 마리의 좀비가 있어도 신약을 복용하면 유유히 지나쳐 갈 수 있을 정도.
회장을 비롯한 명일 제약의 임직원들은 내심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판매를 막 시작할 때까지는.
“판매는 시작됐나?”
“네. 막 상품 등록을 끝냈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런칭을 축하하기 위해 임원 회의실에는 화려한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상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것들.
“허허, 잘 등록됐는지 확인해 볼까?”
“그러시죠!”
회장과 비서, 명일 제약의 임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매장 화면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 사장님이 쏜다!
- [베스트셀러] 좀비 퇴치제 할인 행사.
- 30,000원 9,999원.
“회, 회장님.”
“...시발.”
체면, 체통 지키기 좋아하는 회장도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