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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악덕 사장-45화 (45/241)

45. 절대 구리다는 소리는 못할 걸?

화르륵!

시뻘건 불길이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어어어!”

놀란 내가 다급히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로 나를 빗겨간 화염이 또 다른 벽에 들러붙는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나를 압박해왔다.

“쿨럭!”

열기 때문인지 유독가스 때문인지 숨 쉬는 것도 어려웠다.

흐릿해지는 눈앞.

지금 이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내가 이를 악물었다.

짜악!

눈이 절로 번쩍 떠졌다.

손바닥으로 후려친 뺨에서 전달되는 얼얼한 통증.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사방이 시뻘건 불길과 연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탈출로를 찾을 수는 있었으니까.

바닥에서 일어난 나는 출구로 달렸다.

쿠쿠쿠!

천장에선 연신 뭐가 떨어져 내리고, 옆에선 화염이 갑작스레 터져 나왔다.

그대로 휘말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나는 운 좋게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걸어 나오는 나를 사람들이 황급히 부축했다.

“Are you alright?”

“I..I’m…”

말할 힘도 없었다.

겨우 고개만 끄덕여준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빠져나오긴 했지만 정신이 멍했다.

마치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질 정도.

툭!

어깨를 쳐오는 손길.

“잘 빠져 나왔네?”

고개를 돌린 나는 안도했다.

“형! 형은 괜찮아?”

다행히 형은 옷이 조금 그을렸을 뿐.

특별히 화상을 입거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나야 뭐. 넌 좀 어떠냐.”

“나, 나도 괜찮아.”

“911에 전화했다. 곧 올 거야.”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형과 내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들.

“혀, 형! 직원들은?”

“직원들? 벤은 나하고 함께 같이 빠져 나왔지.”

“벤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알리샤하고 존슨도 있잖아.”

“못 봤는데?”

“뭐?”

화들짝 놀란 나는 주변을 살폈다.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초췌한 안색의 벤은 보였지만, 알리샤와 존슨의 얼굴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두 사람이 아직 안에 있다는 이야기.

내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알리샤! 존슨!”

멀어졌던 열기가 훅 가까워졌다.

불길이 더 거세진 것도 있지만, 내가 가게 쪽에 가까워진 것도 있었다.

모여 있던 구경꾼 중 몇이 소리친다.

“이봐요! 물러나요! Get back!”

“위험해!”

나는 그들을 무시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알리샤! 존슨! 내 목소리 들리면 이쪽으로 나와요! 이쪽으로! This way!”

다가온 형이 내 팔을 붙잡았다.

턱.

“야, 괜한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더 가까이 가면 위험해.”

“하지만 두 사람이 아직 안에 있잖아.”

“그럼 뭐? 안에 들어가기라도 하게?”

“이거 좀 놔봐.”

내가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존슨! 알리샤!”

“보스!”

내가 눈을 부릅떴다.

화염 사이에서 얼핏 보이는 시커먼 실루엣.

나와 형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존슨이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는 모습.

“존슨! 이쪽이에요! 여기!”

내 목소리를 들은 존슨이 콜록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요! 여기! 이쪽으로 나와요!”

“보, 보스!”

얼굴이 밝아진 존슨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 다행이...”

쾅!

순간 기절했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불꽃이 가게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조, 존슨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어디에도 존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가게를 보는 내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시발.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하필이면 슬슬 흑자 전환할 때 이 지랄이 나냐.”

멍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존슨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개업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직원.

더욱이 존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알리샤도 있었다.

아직까지 빠져 나오지 못한 걸 보면...

하지만 형은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뭔 소리야.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데?”

“아니, 그래도!”

“아 씨발, 야. 불길 옆 가게로도 번진다. 저거 우리가 물어줘야 할 텐데...”

“형!”

나로선 어안이 벙벙했다.

형이 직원들과 사이가 나빴다면 어찌어찌 이해는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형과 직원들의 사이는 무척 좋은 편이었다.

나와 직원들 관계 이상으로.

당연히 오너와 직원의 그것을 뛰어넘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애앵!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요란한 불빛을 토해내는 소방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형이 슬쩍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는 죄다 백인과 흑인들 뿐.

아시안 계열로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목소리를 낮춘 형이 한국어로 말했다.

“동생아. 이번에 화재 난 거 알리샤나 존슨 실수로 떠넘길까? 그래야 그나마 배상금이나 그런 걸 덜 낼거 같은데. 그거 핑계로 유족들한테 보상금 줄 것도 절약할 수 있고.”

“형 진짜 왜 그래! 갑자기!”

짝.

내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살짝 아프던 뺨이 더 화끈해졌다.

“정신 안 차리냐? 멍청한 새끼야. 지금 알리샤나 존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이번 일 어떻게든 수습 못하면 길거리에 앉을 판이야. 이민 처음 왔을 때로 돌아간다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만 벌린 채 형을 바라보기만 할 뿐.

“넌 그 시절처럼 살고 싶냐? 싫지? 막말로 뭐 같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번에 진짜 삐끗하면 그 때 꼴 날지도 모른다고.”

“...형 맞아? 어떻게...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람이 죽었어. 그것도 우리랑 몇 년을 같이 한 사람들이.”

나로선 그리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낯설었다.

내가 알던 형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난 기분 좋겠냐? 나도 짜증난 건 마찬가지야. 좀 충격도 받았고.”

그 말과는 달리, 형의 얼굴에는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슬픔 등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냉정함만이 엿보일 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시발. 하필이면 화재가 나서...진짜 재수 없네. 이거 언제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어?”

“헉!”

내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방금까지 있던 불타는 가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

내가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공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컨테이너 숙소.

“에라이.”

망할.

하필이면 이 꿈을...

한동안 안 꾸나 싶었는데.

아으.

온 몸이 다 젖었네.

혀를 찬 나는 일단 옷부터 갈아입었다.

근데 지금 몇 시지?

경매장을 통해 시간을 확인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5:02 AM.

기상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

하지만 난 다시 침대에 눕지 않았다.

이미 잠은 다 깨버렸는데 뭘 다시 누워.

작업복 지퍼를 올린 내가 밖으로 나왔다.

뭐.

이렇게 된 김에 새벽 순시나 해볼까?

야간 근무자 놈들 제대로 하고 있는지 봐야지.

***

“김동팔이 너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불려온 김 부장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놈 시키가.

내 그리 신신당부했건만!

“내가 말했지! 니놈 역할이 중요하다고! 직원 놈들이 지정된 휴식 시간을 안 지키면 어쩌란 거야! 니가 더 빡시게 관리 감독해야 할 거 아냐!”

응?

내가 말이야.

새벽에 돌아보니까 아주 개판이더구만.

분명히 휴식 시간을 배정했는데 어떻게 지키는 놈이 한 놈도 없냐?

이게 나...아니 공장이냐?

뭔 놈의 공장이 사장 말을 씹어!

이젠 하다못해 자유 의지까지 생기셨어?

으휴.

내가 진짜 쪽팔려서 못 살아.

“에잉. 그놈들 다 짤라 버릴까.”

일자리가 없어지면 사장 말이 하늘같다는 걸 깨달을 거 같은데.

화들짝 놀란 김 부장이 손을 휘젓는다.

“사, 사장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차라리 제게 징계를 주시는 게...”

한동안 동팔이를 노려보던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정도로 화냈으면 한동안은 잘 하겠지?

“일 똑바로 해!”

“네!”

“나가!”

고개를 숙여 보인 김 부장이 앗 뜨거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난 그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도와주는 놈들이 없다니까?

한국에서 사업하기 이리 힘들다!

아무튼.

이 문제는 대충 처리했고.

나는 곧장 다른 업무에 착수했다.

어디 보자...

나는 김 부장이 나에게 건넸던 보고서를 쭈욱 살폈다.

보고서라고 해봤자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지시한 내용에 대한 조사만 해온 정도.

예전처럼 컴퓨터로 작업하는 게 아닌, 손으로 직접 쓰는 형태라 거추장스러운 양식도 없었다.

딱 필요한 내용만 있는 방식.

- 경매장을 모니터링한 결과 사람들은 우리 회사의 상품에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량이 약점으로 꼽혔습니다.

나는 대충 펜을 하나 꺼내 원을 그렸다.

이 부분은 차츰 해결되고 있었다.

지금도 수시로 공장 라인을 추가해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상황.

-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괴생명체, 라운드밤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 피해 사례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언급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 사람들은 ‘원거리 공격 무기’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원거리 공격 무기라.

나에게도 진우가 만들어 준 발사기가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퇴치제를 멀리 날려 보내는 용도.

확실히...

원거리 공격 무기가 필요하긴 하지?

- 그 과정에서 우리 그리디 산업이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몇몇 반응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이거 원거리 공격 무기가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어디서 총 같은 거 못 구하나요?

- 총은 포기하세요. 예전에 지구대 한 번 가봤는데 죄다 사라졌던데.

- 그리디 산업에선 뭐 안 만드나? 거기서 지금 파는 건 다 그거죠? 손도끼 같은 거.

- ㅇㅇ 맞음.

- 맞아요. 그리디 산업이 석궁이나 활 같은 거 좀 만들어주면 좋겠음.

뭐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판매를 원하신다면 그에 화답하는 게 인지상정!

나는 서둘러 무기 공장으로 향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라인 하나 비워봐.”

“네!”

손도끼를 뽑아내던 설비 하나가 멈춰 섰다.

난 라인 맨 앞으로 향했다.

일단...활을 그려볼까?

난 내가 대충 기억하고 있는 활의 모습을 그려냈다.

- 제작이 가능한 무기입니다.

“이건 가능하고.”

하지만 바로 생산에 들어가진 않았다.

활이 생각보다 쓰기 어려운 무기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

예전 고구려나 고려, 조선시대라면 모르겠지만 현대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이들은 드물잖아?

차라리...

석궁이 현대인들에겐 더욱 적합할 것 같은데.

석궁이라.

나는 입력되어 있는 활을 지워버리고, 석궁의 모습을 판에 대고 그렸다.

그냥 석궁도 장전이 좀 어렵지?

힘도 필요하고 도구도 필요하고...

살짝 바꿔서 그려봐야겠다.

별다른 도구를 쓰지 않아도 간편하게 재장전할 수 있도록!

기껏 만들고 욕을 먹을 수는 없잖아?

한참을 끙끙거린 나는 겨우 석궁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삐이익!

- 개조된 석궁.

- 현 생산 설비로 제작이 불가능합니다.

음.

지금 설비로 안 된다면...

공장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가능하려나?

직접 확인해 보는 수 밖에.

나는 밖으로 나와 새로운 무기 공장부터 지었다.

기존 것보단 살짝 작은 규모.

공장 자체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나는 곧장 돈을 지불해 업그레이드 절차에 들어갔다.

- 공장을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

“그래.”

- 1. 생산량 증대

- 2. 기술 발전

- 업그레이드 방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2번을 선택했다.

설마 지난번처럼...입구컷 당하는 건 아니겠지?

- 최소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 공장 설비가 업그레이드 됩니다.

다, 다행이다.

- 한 세대 높은 설비를 투입했습니다.

- 더욱 복잡한 구조의 무기 및 도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 [향상된 무기/도구 생산 기능]

“좋았어!”

나는 서둘러 개조 석궁을 입력시켰다.

화살을 얹고 장치만 살짝 돌려주면 알아서 장전되는 형태.

- 제작 가능한 무기입니다.

오케이.

나는 직접 움직여 개조 석궁과 석궁용 화살을 하나씩 만들었다.

완성된 석궁이 내 손 위에 들렸다.

일반적인 석궁에 뭔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

하지만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무게는 일단 합격!

어린 애만 아니면 여자나 노인도 들 수 있었다.

나는 갓 만든 화살을 석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이 동그란 걸 돌리면...

끼릭!

단단히 고정된 화살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간다.

좋아.

장전도 쉽네.

나는 시범 삼아 석궁으로 조금 떨어진 땅바닥을 겨눴다.

투웅!

시원하게 나간 화살이 바닥에 꽂혔다.

파르르 떨리는 화살대.

제법 위력이 있어 보였다.

정상작동을 확인한 나는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흐흐.

이 정도면 절대 구리다는 소리는 못하겠지?

기다려라 호갱들아!

곧 지갑을 열게 해주마!

저질댄스를 추려던 내가 잠시 멈칫했다.

잠깐만.

이걸 이용해 좀 더 개량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사장님!”

화들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렸다.

동팔이네?

뭐 또 터졌나?

“왜!”

“사장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저희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인데...사장님께 사업 제안을 하러 왔다고...”

사업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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