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이틀? 4일이라니까!
“회장님께 경례!”
척!
도열해 있던 경비대원들이 팔을 들어 올렸다.
짜식들.
뭘 굳이 이렇게까지.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녀석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무기 야외 훈련장.
내가 주변을 슥 살폈다.
오늘 시연을 위한 세팅은 끝난 상태.
나와 눈이 마주친 진우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장이라도 시연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뭣들 하고 있어.
얼렁 시작해야지!
“오늘 시연해 보일 건, 어디까지나 개발 중인 물건이라는 것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우가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철컥. 철컥. 철컥.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벽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시연을 도와줄 경찰대 박준성 경장입니다.”
성큼성큼 걸어 나온 시연자가 내 앞에 와 섰다.
몸에 강화 외골격을 걸친 채.
그리디 로보틱스에서 만드는 그리디 스켈레톤 Mk.1과는 살짝 다른 디자인이었다.
그리디 스켈레톤 Mk.1이 살짝 썰렁한 느낌이 강하다면, 이번 시제품은 ‘위압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프레임도 시판용 모델보다 더욱 두꺼웠고, 본래에는 없던 장치들도 추가된 상태.
“이번에 모델은 기존 시판용 모델보다 더욱 튼튼한 소재를 이용했습니다. 이 덕분에 더욱 강한 힘과 압력을 버티고, 사용자의 신체 능력을 더욱 큰 폭으로 끌어올릴 수 있죠.”
진우가 시연자에게 눈짓했다.
시연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에 놓여 있던 벽돌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파칵!
단방에 박살 나 흩어지는 벽돌 부스러기.
오우야.
제법인데?
판매되고 있는 모델로는 절대 불가능한 퍼포먼스였다.
“물론 힘만 센 건 아닙니다.”
또 다른 경찰대원이 등장해 시연자와 나란히 섰다.
진우가 들어 올렸던 손을 휙 내렸다.
“출발!”
타타탁.
동시에 달려 나가는 대원들.
처음에는 동일선상에 있었지만 시제품을 착용한 대원이 금방 앞으로 치고 나간다.
순식간에 벌어진 격차.
다른 대원이 뭔가를 시도해 보기도 전, 시연자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경비대원들만큼은 아니지만, 기존 경찰대원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뛸 수도 있고요.”
테스트 환경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저 멀리 시제품 하나가 표적으로 세워지고, 시연자가 마나 소총을 겨눈다.
투투툭! 투투툭!
억눌린 총성과 함께 정확히 시제품을 두드리는 총탄.
시제품에서 작은 불꽃이 연달아 튀어 올랐다.
“외부 충격에 버티는 능력도 상당합니다. 어지간한 괴물한테 얻어맞는다고 해도 프레임이 단방에 찌그러지거나 하지는 않죠. 물론 보시다시피 총탄도 일정 수준 방어할 수 있죠. 그리고···.”
진우가 시연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퉁. 투웅.
“가슴과 복부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원거리 투사체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외골격에 기본 장착되는 방탄복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차피 외골격이 무게를 부담하기에 기존 착용하던 것보단 훨씬 두꺼운 방탄판을 달 수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다리와 팔, 머리 등에도 방탄판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뛰어다니는 속도는 좀 줄겠지만요.”
“그래도 꽤 빠른 편일 텐데?”
“하하, 역시 회장님은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다음 순서는 시제품을 착용한 대원과 시판 모델을 착용한 대원의 전투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리디 스켈레톤 Mk.1을 착용한 대원과 시제품을 착용한 시연자가 마주 보고 섰다.
둘 다 손에는 나무 손도끼를 든 채.
저거 뭐야.
손도끼에 발라져 있는 게··· 물감?
“시작.”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대원.
승패는 의외로 금방 가려졌다.
시제품을 입은 대원이 금세 동료의 몸 곳곳에 물감을 묻혔던 것.
반면 시판 모델을 착용한 녀석은 시연자를 거의 건드리지조차 못했다.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공격 한 번을 날렸을 뿐.
저것도 경찰대원의 운이 좋아서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 기회조차 없었을 터였다.
“그리디 스켈레톤 Mk.1을 착용한 사람은 시제품을 착용한 우리 대원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나쁘지 않구만.”
바깥 녀석들이 내 의도와는 달리 전투용으로 쓴다는 것을 듣고 급히 개발을 맡겼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와 버렸어.
“전용 배터리를 장착시켜야 한다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건 걱정하지 마!”
그거야 사이즈 맞춰서 제작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뭐.
“다른 문제나 그런 건 없고?”
“그게···.”
“뭐 있으면 괜히 숨기지 말고 털어놔 봐!”
잠시 주저하던 진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물건은 경찰대원들은 쓸 수 있지만, 경비대원들에게는 오히려 움직임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응?”
아니.
경비대도 쓸 수 있어야지!
명수가 서둘러 나섰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경비대원들은 모두 제가 배운 방법으로 수련을 합니다. 이 수련 방식이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대상자의 신체 능력을 높게 끌어올리죠.”
“근데?”
“훈련을 거쳐 대원들이 도달하는 단계가 ‘오러 유저’인데··· 문제는 이 정도만 되어도 강화 외골격이 오히려 움직임을 방해하는 족쇄가 된다는 겁니다.”
진우도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경비대원을 섭외해서 시제품을 입혀봤는데··· 너무나 급작스러운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프레임이 뒤틀어지더라고요. 그 부분을 해결하려면 프레임을 다른 소재로 교체하고 인공 근육도 만들어야 하는데···.”
진우의 설명은 꽤나 길고 복잡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기술 부족.
현재로선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미간을 찌푸린 내가 팔짱을 끼었다.
“흐음.”
그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 진우야?”
“죄송합니다. 저도 긍정적인 답을 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불가능합니다.”
쩝.
어쩔 수 없지.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고.
“혹시 시제품을 입힌 경찰대원과 맨몸 경비대원끼리 시뮬레이션 돌려봤냐?”
눈을 끔뻑이던 진우와 명수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해봤습니다.”
“한번 해보자.”
명수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녀석을 따라온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뜬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부하들 얼굴을 보던 명수가 한 명을 골랐다.
“김철원 앞으로.”
“앞으로!”
당당하게 나선 건 꽤나 덩치가 있는 경비대원이었다.
“지지 말도록.”
“네!”
경비대원의 덩치 때문일까.
경찰대에서 차출된 시연자가 살짝 움찔거렸다.
저놈 봐라.
왜 싸우지도 않았는데 쫄고 난리야?
나는 시연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줬다.
“겁먹지 말고 싸워봐.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가 있겠어?”
“네, 회장님.”
살짝 긴장하고 있던 시연자의 몸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역시 내 응원이 직빵이지!
하하핫!
“자, 두 사람 모두 여기로 오세요.”
경비대원과 시연자가 서로를 보고 마주 섰다.
장비는 방금과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색깔의 물감이 발라진 나무 손도끼.
“시작!”
이빨을 드러낸 경비대원이 시연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매서운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손도끼.
이를 간발의 차이로 빗겨낸 시연자가 대원의 빈틈을 노린다.
나무 손도끼가 몸에 닿으려는 찰나.
경비대원의 몸이 살짝 틀어지며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나는 그 모의전투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경비대원이 압도적으로 이길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시연자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물론 밀리는 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는 잘 버틴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싸우기를 한참.
경비대원은 자신의 나무 손도끼를 시연자의 목에 가져다 대는 데 성공했다.
“···제가 졌습니다.”
“둘 다 잘했어! 박수!”
짝짝짝.
“성능을 확실히 볼 수 있는 순간이었어.”
맨몸으로만 싸우면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수준.
하지만 시제품을 착용한 경찰대원은 경비대원으로부터 버티는 데 성공했다.
이게 뭔 소리냐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제품을 착용한 경찰대가 경비대 급의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지.
아직 개선할 부분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써먹을 수는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대에서 따로 경찰특공대를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일단 고 녀석들한테 지급을 해주는 게 좋겠어.
“진우야, 일단 경찰대에 배치할 물량부터 만들어 봐. 시간 날 때 연구 개발도 좀 해보고.”
“네, 회장님.”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알지?”
“네,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젠 무전기가 있으니까요.”
“그래, 그래.”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준 나는 곧장 다음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
바쁘다.
바빠!
***
“회장님, 모두 도착했습니다.”
반쯤 잠에 빠져있던 나는 최 비서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마침 타이밍 좋게 들려오는 메시지.
-Thank you for using.
따뜻하게 눈을 지압해주던 마사지 기계가 작동을 멈췄다.
생각보다 괜찮네.
별다른 기대 없이 산 건데 뭔가 힐링하는 느낌이야.
눈을 깜빡여 살짝은 흐려진 시야를 또렷하게 만든 내가 몸을 일으켰다.
“순범아, 너도 저거 한번 해봐라. 생각보다 괜찮더라.”
“네, 저도 나중에 해보겠습니다.”
휴게실을 나온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미리 와있던 간부 녀석들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해온다.
“왔냐? 다들 앉아라. 뭘 일어서고 있냐.”
“네!”
갑자기 소집된 녀석들은 서둘러 자리에 앉으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해한다.
원래 오늘 계획되었던 회의는 따로 없었으니까.
일정에 없던 긴급회의.
이놈들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도 있긴 했다.
대체로 이렇게 모일수록 심각한 문제일 때가 많았으니.
“오늘 니들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13일? 2주 정도 뒤에 크리스마스가 있잖아? 그거 때문에 불렀다.”
“아.”
긴장하고 있던 직원들의 얼굴이 살짝은 밝아졌다.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동팔이는 알겠지만, 내 회사는 예전에도 크리스마스와 이브를 쉬었거든? 이번에도 쉴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 실장과 달리 다른 녀석들은 모두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아니.
표정들이 다들 왜 그래?
이브에도 원래 쉬는 거 아닌가?
어쨌든.
“24일과 25일 합쳐서 4일을 쉬는 만큼 그 전에 최대한 물량 뽑아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알겠습니···.”
대답하던 직원 녀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만요. 회장님. 4일이요? 이틀 아닌가요?”
“맞습니다. 24일하고 25일이면 이틀일 텐데요.”
응?
이놈들이 왜 갑자기 바보가 됐어?
내가 기가 찬 얼굴로 직원 놈들을 바라봤지만, 녀석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모양새.
결국 내가 직접 입을 열어야 했다.
야.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냐?
“바보들아, 잘 들어. 24일과 25일은 이틀이지?”
“그, 그렇죠.”
“그 다음 26일과 27일도 이틀이고.”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2+2는? 4잖아! 4!”
이렇게까지 이야기 해줬음에도 녀석들은 못 알아들은 눈치.
하.
이놈들 지능 실화냐?
가슴이 웅장··· 아니, 폭발할 것 같다···.
“26일과 27일이 왜 들어가지?”
“그 날짜가 무슨 요일이더라? 달력, 달력 꺼내봐.”
업무용 태블릿에 깔려있는 달력을 확인한 녀석들의 입이 벌어진다.
“야 이놈들아! 24일과 25일은 크리스마스와 이브! 그리고 26일과 27일은 토요일과 일요일! 그러니까 합쳐서 4일이잖아! 니들 이래서 회사 업무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어···.”
이것들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끄응.
당분간 간부들 야근은 금지 시켜야겠네.
“아니면 설마 4일 동안 쉬기 싫은 거야? 지루해? 막 회사에 나오고 싶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직원 놈들이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닙니다!”
“절대 좋습니다!”
“4일 동안 일할··· 아니! 쉴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방금 일할 생각에 흥분된다는 시키 어디 갔어?
빨랑 앞으로 안 나와!
“암튼 그리 알고 입은 꾹 다물고 있도록. 전날에 서프라이즈 할 거니까. 알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