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악덕 사장-171화 (171/241)

171. 많이들 해드셨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측근을 향해 머천트 상단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뭐? 일꾼들이 도망을 가?”

“···아침에 상단 직원들과 경비들이 출근했을 땐, 이미 모든 일꾼들이 사라진 뒤였다고 합니다.”

“그, 그게 말이 돼? 엉!”

“···죄송합니다.”

머천트 상단주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막 일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도 돈을 벌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뭐?

일꾼들이 도망가?

그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아니, 그놈들이 어떻게 도망을 가? 그리고! 야간에 근무한 놈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측근은 뭐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야간에도 경비들이 배치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머릿수도 주간에 비해 훨씬 적었고, 근무 태도 역시 그럭저럭 하는 시늉을 하는 주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태만.

그 사실 자체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못 본 척 넘겼다.

어차피 이 일본이라는 땅의 생존자들은 좀비병에 걸렸고, 머천트 상단에서 제공하는 증상 억제제 없이는 좀비가 되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

그러니 죽고 싶지 않다면 함부로 공장지대를 떠날 수 없어야 했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운영되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상단 직원이 나타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야간 경비 책임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머천트 상단주가 고개를 홱 돌렸다.

눈이 마주친 경비 책임자가 황급히 바닥에 넙죽 엎드린다.

“죄, 죄송합니다! 모,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당연히 니놈의 불찰이지!”

분노를 참지 못한 머천트 상단주가 경비 책임자를 발로 걷어찼다.

“윽!”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아니. 수천 명이 공장에서 도망쳤어! 근데 니놈들은 아무것도 몰라? 도대체 근무를 얼마나 개판으로 선 거야!”

“죄송합니다. 상단주님!”

길길이 날뛰던 머천트 상단주가 순간 멈칫했다.

“잠깐.”

“네?”

측근을 손짓으로 부른 상단주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다른 곳. 다른 곳 상황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측근은 품속에 지니고 있던 통신 기기를 이용해 다른 지역에 조성된 공장지대에 연락했다.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큰 곳이긴 하지만, 유일한 공장은 아니었다.

일본에 조성된 것만 해도 무려 10군데.

통신기를 든 채 각 공장의 상태를 확인하던 측근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졌다.

“···뭐, 뭐라고?”

“뭐래!”

측근이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이런 보고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다른 공장들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리던 일꾼들 대부분이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으아아아악!”

반쯤 실성한 모습을 보이는 주인을 보며 측근도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그와 상단주 역시 일본인 생존자들에게 증상 억제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도 자기 목숨 귀한 건 알 텐데.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새로 생긴 건가?’

상념을 이어가던 측근이 고개를 들었다.

공장과 일꾼 숙소 조사를 맡겼던 직원이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알아낸 거라도 있나?”

“네, 이걸 찾았습니다.”

“흠?”

“일꾼들이 머무르던 숙소, 그리고 공장 곳곳에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직원이 건넨 건 작은 상자와 그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종잇조각이었다.

상자와 종이 쪼가리에는 일본어가 적혀 있었고.

측근이 그곳에 적힌 일본어를 살폈다.

글씨가 조금 휘갈겨 써져 있었지만, 무슨 뜻인지 아는 데는 충분했다.

-좀비병 치료제.

“뭐라고 적혀 있어!”

어느새 다가온 상단주의 물음.

측근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좀비병··· 치료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치, 치료제?”

“네, 이런 게 숙소뿐만 아니라 공장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병이 치료제가 있었나?”

“제가 알기로는··· 없었습니다.”

“근데 치료제가 나왔다고? 하! 그럼 이걸 만든 놈들은? 혹시 거기에 적혀 있나?”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상자 안에 있는 사용설명서를 읽은 측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디··· 산업.”

“그리디 산업? 설마 인간들이 만든 그 상단?”

상단주와 측근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인간들이 운영하는 거대 상단에 대한 소문은 이미 업계에 널리 퍼진 상태.

꽤나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유명했다.

안 파는 게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 저도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희귀병인 디즈에 대해 알고, 치료제를 만드는 건데! 우리도 알지 못하던 치료제를!”

측근은 입을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잘못 말했다간 모시는 분만 더 화나게 할 터.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나았다.

“자네.”

“네, 주인님.”

“다른 공장에 연락해. 그쪽에 있는 경비 병력 죄다 동원해서 도망친 놈들 잡아오라고.”

“하,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어떻게든 일꾼들 최대한 끌어모아서 공장을 다시 가동해야 한다고!”

머천트 상단주에게 있어서 일본은 예전 동남아시아와 비슷했다.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한 생산기지.

노동력에게 지급할 임금이 있긴 하지만, 온갖 핑계를 대 그 돈을 다시 상단으로 회수했다.

당연히 이익은 극대화되기 마련.

그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그는 기존 방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뭐 해! 서두르지 않고!”

“아, 네.”

멀뚱하게 서 있던 야간 경비 책임자도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갔다.

한숨을 쉰 상단주가 머리를 잡아 뜯었다.

‘예전 규모는 아니더라도 공장 몇 개는 다시 정상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도망간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분명히 멀리 가지 못한 놈들이 있을 터.

상단주는 그런 놈들을 최대한 모을 속셈이었다.

“아차.”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별거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 상단주가 서둘러 경매장에 접속했다.

그러고 보니 경매장에 아직 회수하지 못한 증상 억제제 판매대금이 있었다.

머천트 상단의 이름으로 나간 게 아닌, 다른 가명으로 나간 물건.

‘앞으로 돈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 미리 챙겨놔야겠어.’

-경매장 접속 불가.

“응?”

순간 잘못 봤다고 생각한 상단주가 재차 경매장 접속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매장 접속 권한이 박탈되었습니다.

-관리자에게 문의해 주세요.

“이건 또 무슨···.”

머천트 상단주가 눈을 끔뻑였다.

‘뭐야! 왜 안 되는 건데!’

콰아앙!

순간 몸을 웅크렸던 상단주와 측근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사무실 방향 아닙니까?”

“서, 설마?”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무실 방향을 향해 달렸다.

상단주는 열심히 뛰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하지만 사무실 앞에 도착한 그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무실이 박살 나 있었기 때문.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도 모두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제가 이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어서···.”

“그, 그래!”

머천트 상단주가 다급히 잔해를 뒤집었다.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해!’

그는 한참이나 사무실을 뒤졌지만, 그가 찾는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게 없어졌음을 확인한 상단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안 돼···.”

“주인님?”

“그, 금고가 사라졌어. 내가 필사적으로 모은 돈이··· 사라졌다고! 아아아악!”

측근이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사무실에 돈을 모아둔 금고가 있었다는 사실은 비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이야기를 들을 자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시는 분을 잠시 바라보던 측근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왜.”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상단주.

“당장 몸을 피해야 합니다.”

“뭐?”

“우리는 크로스 집단공업과 부품 납품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금고에 부품을 넘겨서 얻은 수익도 같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 상단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번 일로 생산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금고가 멀쩡히 있었다면 배상금을 조금 물고 계약을 수정하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 금고는 통째로 사라졌죠.”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상단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크로스 집단공업은 업계에서도 엄하기로 유명한 곳.

만약 배상금을 내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 어떤 수를 써서든 그에게 보복할 가능성이 컸다.

“겨, 경비들 불러와. 도망치게.”

“안 됩니다.”

“왜!”

“경비라는 놈들도 크로스 집단공업에서 보낸 이들입니다. 그놈들을 데리고 잠적하시게요?”

“아차.”

“어쩌면 벌써 보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즉시 피하셔야 합니다. 상단 수뇌부 몇 명에게만 귀띔하시고 바로 움직이시죠.”

입술을 깨문 상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곳이 있겠나?”

“혹시 몰라서 찾아둔 곳이 있습니다.”

“후··· 가세.”

주변을 슬쩍 둘러본 두 사람이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

후우웅!

하늘 높이 떠 있던 비행체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얼핏 보면 미군에서 쓰던 틸트로터기 V-22와 유사한 형상.

뭐 작동 방식은 V-22랑 비슷하긴 했다.

좀 더 개량되었을 뿐이지!

개편을 완료한 연구소에서 만든 첫 번째 장비였다.

헬기처럼 수직이착륙도 하고, 비행기처럼 고속비행도 할 수 있는!

추진은 당연히 전기 배터리로 돌아가며, 사방에 가득한 마나를 연소시켜 속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했다.

이론적으론 무제한 연소가 가능하지만, 안전성 때문에 기능을 제한한 상태.

아직 시제품이긴 하지만, 안정성 측면에선 문제없다고 해서 이번 작전에 투입했다.

텅!

살포시 내려앉은 수송기.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비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녀석들의 손에는 큼지막한 금고 하나가 들린 채.

흐흐흐.

내 그럴 줄 알았지.

상단이라고 하길래 분명 돈을 숨겨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전을 맡았던 한 부대장이 고개를 숙여 보인다.

“회장님, 전 대원 무사 귀환했습니다.”

“수고했어! 저게 머천트 상단에서 가져온 거냐?”

“네.”

대원들이 가져온 금고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이야.

내 생각보다 더 크잖아?

도대체 얼마나 꽁쳐 놨길래.

나는 금고를 유심히 살폈다.

직사각형 형태의 금고는 딱 봐도 견고해 보였다.

문짝에도 뭔가가 붙어 있는데, 정확히 무슨 기능을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고.

지구에서 쓰는 방식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혹시나 해서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역시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응.

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명수에게 손짓했다.

“명수야, 잘라버려.”

고개를 끄덕인 명수가 변형창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서걱!

쿵!

뭔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금고문이 뚝 떨어져 나갔다.

“쉽네.”

문을 열 방법이 없으면 문을 잘라버리면 돼요.

차암 쉽죠?

명수가 잘려나간 문을 슬쩍 발로 밀어 치웠다.

어디 보자.

얼마나 해 드셨으려나?

큼지막한 금고 안에는 의외로 내용물이 별로 없었다.

작은 USB 비스무리하게 생긴 물건 2개와, 다른 언어로 작성된 서류 일부.

난 알아볼 수 없는 서류는 패스하고, USB부터 손으로 잡아봤다.

그리고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메시지가 눈앞으로 떠오른다.

처음에는 특수문자처럼 이리저리 깨져 있었지만, 금방 한국어로 재조립된다.

자동 번역 기능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자산 보관 매체.

-보안 기능이 비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현재 보관되어 있는 금액은 285,368,079입니다.

-화폐 단위는 지구 엔화입니다.

엔화로 저 정도면 대충···.

30억?

짜식.

좀 더 쟁여두지 그랬어.

경매장에 보관되어 있던 증상 억제제 수익이 약 35억, 그리고 판매 수수료가 10억가량이었다.

요것들을 다 합치면 토탈···.

75억이네?

뭐 대륙보다는 살짝 적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구만.

엣헴!

나는 재빨리 또 다른 USB, 아니. 자산 보관 장치로 눈을 돌렸다.

그럼 요것도 돈이겠지?

난 재빨리 그 장치를 휙 잡아챘다.

-현재 보관되어 있는 금액은 825,368,079입니다.

-화폐 단위는 크레딧입니다.

어라.

이건 크레딧이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깐.

나는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애써 억눌러야 했다.

지난번에 드니스에게서 받은 크레딧도 1대1로 환전됐었지.

이것도 원화로 들어오면···.

82억?

75 + 82

= 157.

진짜 많이들 해쳐 드셨네.

많이들 해드셨어!

나는 결국 터져 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으하하하하!”

시작이 좋구만.

아주 좋아!

나는 껄껄 웃으면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생존 패키지 무료 배포.

-일본 지역 한정.

기분이다!

여기에 구형 외골격까지 하나 더 얹어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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