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이제 알겠어!
보자.
등짝을 보자!
영혼술사를 직접 잡기로 결정한 나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영혼술사 위치 알아내는 마법은 없냐?”
“탐색 마법을 써보겠습니다.”
마침 우리에겐 적당히 실력 있는 마법사가 있는 상태.
아레인 부족과 내 회사는 우호적인 협력관계였기에 마법사 역시 흔쾌히 나섰다.
“써칭.”
녀석의 몸을 둘러싼 빛의 고리.
뭐라 중얼거릴 때마다 고리가 살짝 출렁거렸다.
마법사가 눈을 번쩍 떴다.
“찾았습니다.”
빛의 고리가 쭈욱 늘어나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북서쪽 5.8km 방향에서 감지되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 주변이 온통 영혼임을 감안하면 영혼술사로 보입니다.”
“오케이! 딱 걸렸어!”
내가 고개를 돌렸다.
“니들을 믿는다.”
“반드시 그자를 잡아 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명수와 칼이 서둘러 상황실을 벗어났다.
곁에 있던 광운이도 살짝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애써 표정 관리를 하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짜식.
넌 다음번에 활약할 기회를 주마.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
“국방청장과 칼이 막 수송기에 탑승했습니다.”
“두 사람 몸에 장착한 카메라와 연결했습니다. 화면 불러오겠습니다!”
상황실 화면에 명수와 칼 시점으로 촬영되는 영상들이 각각 떠올랐다.
막 두 녀석을 태운 수송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는 중.
별다른 흔들림도 없이 금방 속도를 올린 수송기가 본사와 쭉쭉 멀어지기 시작한다.
“목표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30초 후 도착합니다!”
순식간에 본사와 경계선을 지나쳐 간 수송기는 어느새 고스트 무리 위까지 도달한 상태.
-문 열어!
명수의 지시와 함께 수송기의 문이 벌컥 열렸다.
거센 바람이 안으로 휘몰아쳤지만, 명수나 칼이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착까지 5! 4! 3! 2! 1!
-지금입니다!
동승한 군인의 외침에 명수와 칼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낙사했을 높이.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회장님,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얼렁 잡아 오라고 해!”
본사를 향해 바삐 움직이던 고스트들의 시선이 일제히 둘에게 쏠렸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던 고스트들이 입을 열었다.
-꽤나 맛있어 보이는 영혼이로구나.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목소리가 서로 겹쳐 웅웅 울려 퍼졌다.
하지만 명수와 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
-지금 당장 항복하면 회장님께 선처를 요청해 주지.
고스트들은 아무런 대답 없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절이로군.
-그럴 거 같더라고.
츠츠츳!
명수의 창과 칼의 도끼가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색에 집어삼켜졌다.
둘이 감추고 있던 기세가 일대를 장악하며 고스트들이 내뿜고 있던 음울한 기운을 거칠게 쫓아낸다.
다가오던 고스트들이 이를 보고는 움찔거린다.
-마, 마스터? 그것도 둘이나?
-도망치려 해도 늦었다. 이미 너 찾았으니까.
명수와 칼이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아스팔트 바닥이 거칠게 갈라지며 두 사람이 비스듬히 솟구쳐 오른다.
고스트들이 재빨리 둘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그런 느릿한 동작으로는 옷깃 하나 잡을 수도 없었다.
고스트 무리를 뚫고 수십 미터를 날아간 명수와 칼.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바닥이 뒤집어졌다.
쿠르르르!
칼이 재빨리 도끼를 휘둘렀다.
푸른 섬광이 번뜩이고 둘을 덮치던 땅이 반으로 갈라져 비스듬히 쓰러진다.
그 사이를 지나친 명수가 웬 고스트 앞에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 있는 괴물의 영혼.
변형창이 고스트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쉬익!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스트의 미간이 찌푸려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젠장.
영혼에서 분리된 난쟁이 괴물이 재빨리 뒤로 몸을 던졌다.
고스트를 소멸시킨 창이 아슬아슬하게 영혼술사를 스쳐 지나간다.
서걱-
영혼술사가 바닥에 엎어진 채 손을 휘저었다.
-그아아아아!
영혼술사 바로 지척에 있던 고스트들이 착즙기로 갈려진 것마냥 소멸한다.
“저게··· 연료로 쓰인다는 겁니다.”
“으.”
솔직히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쉽게 잡혀 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갈려나간 영혼들은 검은 기운이 되어 영혼술사에게 반쯤 깃들다시피 했다.
명수와 칼이 번갈아 무기를 휘둘렀지만, 영혼술사는 이를 막아냈고.
쾅!
콰앙!
한 번 막을 때마다 검은 기운이 뭉텅뭉텅 깎여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방어를 해내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공격 한 번도 못 막아낼 놈이.
-이 새끼가.
-짜증 나게 하네?
번갈아가며 한 마디씩 한 명수와 칼이 동시에 달려든다.
화들짝 놀라 팔을 휘두르는 영혼술사.
둘은 영혼술사가 휘두르는 팔을 피해 거리를 좁혔다.
영혼술사는 어디까지나 ‘힘’을 손에 넣은 상태.
때문에 마스터가 마음먹고 쓰는 ‘기교’와 ‘기술’에 대항할 방도가 없었다.
어느새 영혼술사의 코앞에 도착한 명수와 칼이 무기를 휘둘렀다.
영혼술사 역시 나름대로 피하고 막으려 했지만, 한 대 맞을 걸 두 번 맞는 게 전부였다.
뻑!
빠악!
-꿰엑.
동시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
짧은 비명을 지른 영혼술사가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고스트가 아직 있는데?
-그럼 더 때려야지.
-그, 그만!
그 이후로는 둔탁한 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한참이나 구타당하던 영혼술사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놈이 정신을 잃기 무섭게 몸에 휘감겨 있던 회색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회장님! 고스트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무리 지어 다가오던 고스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어떤 놈은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고.
어떤 녀석들은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춘다.
수천에 달했던 유령이 자취를 감추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나도 안 남고 다 사라진 거 맞지?”
“맞습니다. 회장님.”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내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후, 명수와 칼보고 얼렁 돌아오라고 해라.”
“네!”
***
밤탱이, 아니. 영혼술사가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쿵!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재빨리 달라붙어 녀석의 몸에 구속구를 칭칭 휘감았다.
쇠사슬은 물론이요.
아레인 부족을 통해 수입한 특제 구속 장비들까지 전부.
아니.
저거 사두기만 하고 쓰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위험한 자입니다.”
“···저 모습만 봤을 땐 불쌍한 찐따처럼 보이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부어오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명수도 그건 알고 있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크흠! 아무튼 저놈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조금 번거롭더라도 준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주군.”
···그래.
그렇다고 치자.
10분에 걸쳐 구속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던 군인들이 내게 다가왔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회장님.”
“오냐.”
목을 꺾은 내가 허리 뒤춤에 꽂아두었던 실망봉을 뽑아 들었다.
내 명하노니.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아라.
아바다 케다브···
아, 이건 살인주문이었지.
감옥 안으로 들어간 내가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니면 차리고 있는 건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입에선 뭐라고 웅얼거리고 있었다.
“야, 깨어있냐?”
“으어어···.”
“광운아.”
“네, 회장님.”
“차가운 물 좀 두 바가지 정도 떠와 봐라. 정신 못 차린다 얘.”
물을 떠온 광운이가 나 대신 영혼술사에게 물을 끼얹는다.
푸확!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드는 놈.
이제 깨셨네.
우리 포로님.
나는 녀석에게 실망봉을 들이댔다.
쿡. 쿠욱.
그간의 경험에 따라 수십 번쯤 찔러댄 내가 입을 열었다.
“자, 그래서. 이름은?”
“···말해줄 것 같으냐.”
음.
역시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거지?
나는 실망하지 않고 찌르기를 계속했다.
뭐 어쩌겠어.
약빨이 약하다는데 효과를 볼 때까지 해야지.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엿이나 먹어라. 대머리 인간.”
“···이 새끼가.”
순간 버럭 하려던 내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하마터면 격장지계에 넘어갈 뻔했네.
끄응.
아직도 안 먹다니.
제법인데.
찌르기를 반복한 내가 재차 놈에게 물었다.
“이름 아직도 비밀이냐?”
“···아, 아니다. 내 이름은 소뮤아.”
“인생 최고의 흑역사는?”
“···어제 실수로 속옷에 똥을 지렸다.”
“아오 더러운 새끼.”
난 질색하면서도 바깥을 향해 손짓했다.
“드디어 심문 준비가 끝났다! 심문 담당들 들어오라고 해!”
“네, 회장님!”
바깥에서 대기하던 녀석들이 들어오고, 내가 막 녀석에게서 멀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피식 웃은 영혼술사가 입을 열었다.
-영혼감옥.
쿵!
내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
영혼술사, 소뮤아가 껄껄 웃었다.
“크하하하하!”
‘먹혔다! 먹혔다고!’
솔직히 처음에 마스터 두 놈에게 잡혔을 땐 식겁했다.
마스터라는 놈들에 대해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생각하던 것 이상의 미친놈들이었으니까.
영혼을 연료로 쓰기까지 했지만, 인간을 초월했다는 마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연스레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갔다.
바로 죽이나 싶었는데 갑자기 감옥에 그를 끌고 왔던 것이다.
온갖 물건을 다 동원해 몸을 구속하기까지.
그 시점에서 소뮤아는 알아챘다.
‘이놈들이 당장 날 죽이려는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아직 그에게 남은 기회는 있었다.
비록 신체는 꼼짝도 못 하게 결박되어 있었고, 개중에는 마법적인 처리까지 된 물건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또 아니었다.
다소 느리고 어렵긴 하지만, 해볼 만한 방법이 하나 더 남아 있었던 것.
그래서 소뮤아는 정신 못 차린 척 축 늘어진 상태를 연기했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더 끌 수 있도록.
다행히 놈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가만히 그를 내버려 두었다.
물론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푸확!
갑자기 쏟아진 물 때문에 하마터면 혀를 씹을 뻔했고.
쿡. 쿠욱.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괴상한 지팡이 때문에 집중이 흔들린 적도 있었다.
‘인간 주제에 저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니.’
지팡이가 몸에 닿을수록 인간 우두머리에 대한 적개심이 점점 옅어졌다.
그것도 변화가 바로 느껴질 수준으로.
직접 경험하는 본인 입장에서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위험했다.
단순히 지팡이로 몸을 찔렸을 뿐인데 인간 우두머리가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결국 소뮤아는 시간을 끌기 위해 세뇌된 척을 해야 했다.
없던 흑역사까지 강제로 하나 만들어서까지.
‘끄으응. 똥쟁이라니.’
물론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실패할 수도 있었던 마지막 한 수가 아무 문제 없이 준비되었기 때문.
-영혼감옥.
자신의 영혼 속에 깊이 숨겨두었던 또 다른 영혼들을 불태워 완성한 한 수.
급하게 준비했기에 범위는 협소했고, 완성된 감옥마저도 온통 검은색이 아닌 하얀색이 섞인 모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계획대로 인간 우두머리를 여기로 끌고 왔으니까.
“후후후.”
소뮤아가 인간 우두머리, 회장에게 다가갔다.
회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날 바로 죽였어야 했다. 그럼 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터.”
“······.”
“이제 난 네놈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다. 기대해도 좋아! 흐하하하!”
소뮤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여기서 충분히 즐긴 다음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놈을 인질로 이용해 망할 마스터들의 영혼부터 뽑아내는 거야. 마스터의 영혼이라면 분명 내가 강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 그 다음에는 인근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서 영혼을 뽑아내고!’
어깨를 들썩인 소뮤아가 회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가볍게 시작해볼까?”
어둠 속에서 돋아난 촉수들이 회장을 향해 쏘아졌다.
퍽!
“흐흐, 고통스럽지? 하지만 너무 겁먹지 말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에피타이저니까. 좀만 더 있으면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뭐야.”
소뮤아가 눈을 끔뻑였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회장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분명 지금쯤이면 바닥을 기고 있어야 정상인데.
‘분명 촉수가 박혔을 텐데?’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가 날려 보냈던 수십 개의 촉수들은 허공에 우뚝 멈춰 서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결박이라도 당한 것처럼.
겨우 당혹스러움을 털어낸 소뮤아가 서둘러 손을 휘저었다.
영혼감옥은 그가 지배하는 공간.
여기서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저 회장이라는 놈의 무릎을 강제로 꿇린다거나···.
“어? 왜 안 돼?”
소뮤아가 재차 시도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영혼감옥은 약간의 미미한 진동만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는 상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뭐 하냐?”
“아, 아니.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가 여기로 끌고 왔으면서.”
“아, 아니. 그것도 그런데···.”
발걸음을 옮겨 다가오는 회장.
화들짝 놀란 소뮤아가 손을 들어 회장을 겨눴다.
“가까이 오지 마!”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다른 ‘존재’들이 회장을 덮쳤다.
하지만 ‘존재’들은 회장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소멸했다.
-끼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이, 이게 무슨···.”
이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회장이 그에게 가깝게 올수록 영혼감옥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던 것.
드드드드!
검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여 이루어져 있던 공간이 점점 하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소뮤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하얀색이 섞였던 게··· 급하게 만들어서가 아닌, 저놈 때문이라고?’
“야.”
소뮤아가 흠칫했다.
회장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
영혼감옥 역시 거의 하얗게 물든 채였다.
“이제 알겠어. 왜 지난번 레벨업 보상이 그 모양이었는지.”
“무, 무슨 소리냐.”
회장이 보란 듯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널 존나 패라고 근력 +10을 줬나 보다.”
“자, 잠깐만! 일단 대화로··· 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