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어쨌든!
치이익-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나는 손으로 눈을 살짝 가린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스한 온기가 나를 휘감아왔다.
어우 햇빛이 왜 이리 강하냐.
벌써 여름 같네.
이제 반팔 입어도 되겠다.
“이쪽입니다. 회장님.”
“오냐.”
나는 안내를 받아 관제센터에 도착했다.
마지막 점검에 들어가 있던 직원들이 나를 보고는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아, 안녕하십니까.”
“뭘 그리 겁을 먹어? 내가 너 잡아먹냐?”
“아닙니다!”
“장난이야. 이놈들아.”
거참.
이젠 장난도 함부로 못 치겠네.
“회장님.”
“오 박사!”
성큼성큼 걸어간 내가 오 박사의 어깨를 쾅쾅 두드렸다.
지난번 인공위성 개발을 지시한 다음, 항공우주 분야 전문가들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생존자였다.
실제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진 한국형 우주 발사체 개발 등에도 관여했던 녀석.
세상이 멸망한 이후에는 비교적 외진 동네에서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었다.
내 요청을 받은 협력 세력이 그런 그를 찾아냈고.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버티는 걸 설득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준비는 다 됐냐?”
“마지막 점검만 끝나면 됩니다.”
“급한 거 없으니까 천천히 하라고!”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여기 앉아계시죠. 있다가 발사 프로세스 시작하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려.”
나는 측근들과 앉아 발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시커멓던 화면도 외부 카메라와 연결되어 인공위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것들과는 다소 짧은 형태.
기존 인공위성 절반 길이로 3개가 한꺼번에 발사를 앞두고 있었다.
“회장님!”
“진우도 왔구나.”
진우 옆에는 오 박사를 비롯해 이번 인공위성 개발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이 함께한 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들과 손을 마주 잡았다.
“다들 수고했어. 짧은 시간 안에 개발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좀 힘들긴 했죠.”
“이 시키야, 그럴 땐 빈말로나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도 하고 그러는 거야.”
“하하하!”
가벼운 농담도 잠시.
녀석들도 미리 준비되어 있던 자리에 하나둘 앉았다.
- 관제센터, 여기 현장 점검팀입니다.
오 박사가 들고 있던 무전기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점검팀, 여기 오 박사.”
- 점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런 이상 없습니다.
“확인했다.”
오 박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발사 카운트다운은 회장님께서 직접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응? 카운트다운을 나보고 하라고?”
“네.”
음.
괜찮겠는데?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까짓것 해보지 뭐!”
“그러실 줄 알고 준비해 뒀습니다.”
관제센터 직원들이 작은 카트 하나를 밀고 들어왔다.
카트 위에는 무선 마이크와 작은 기계장치 같은 것이 놓인 채.
기계장치 정중앙에는 큼지막한 버튼도 달려 있었다.
“설마 이게 발사 버튼이냐?”
“네, 카운트다운 하신 뒤 바로 누르시면 됩니다.”
난 우선 마이크부터 들었다.
어디 보자.
전원이...켜져 있군.
“흠흠!”
각자의 자리에 있던 관제센터 직원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된다.
그렇게 보니 부끄럽구만.
허허.
“발사 카운트다운 시작한다.”
“...”
난 천천히 숫자를 세어 나갔다.
10.
9.
8.
7.
6.
5.
4.
3.
2.
1.
“발사.”
나는 내 앞에 있는 빨간 버튼을 힘껏 눌렀다.
쿠쿠쿠-!
화면 속에 있던 3기의 인공위성이 일제히 불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솟구쳐 오르는 인공위성들.
나를 비롯한 모두는 숨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순식간에 저 높은 곳에 도달한 인공위성들이 달고 있던 보조 로켓들을 분리한다.
“분리 성공.”
“메인 로켓 상태 양호!”
끝없이 날아 오르던 인공위성들은 금방 시커먼 점이 되었다.
“대기권 진입.”
“메인 로켓 분리.”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보조 로켓과 달리, 메인 로켓은 날아 올랐던 궤적 거꾸로 돌아왔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가 싶더니 지상에 가까워졌을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착륙했다.
저거 보니 미국 스페이스X 생각이 나는 구만.
“메인 로켓 회수!”
“저걸 어떻게 구현했대? 기술적인 난이도가 상당할 텐데.”
“마법을 몇 가지 섞었다고 들었습니다.”
크.
역시 과학 기술의 공백을 메꿔주는 마법.
싸랑해요!
“위성 목표 고도 도달.”
“위치 조정.”
“태양광 날개 개방.”
하늘을 비추던 화면이 바뀌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 화면이 표시되었다.
지구 외곽에 도달한 인공위성 3기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나는 한반도 위로.
나머지 2기는 제각기 다른 곳으로.
한반도 상공을 맴돌던 인공위성이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1호기 위치 고정 완료!”
숨죽이고 있던 관제센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성공입니다!”
“만세!”
“씨발 해냈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나도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2호기와 3호기가 아직 제 위치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어디 손상이 되었다거나 이런 건 없었다.
아마 몇 시간만 기다리면 별 문제 없이 목표 지점에 도착할 터.
후.
위성이 생각보다 잘 터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3기 모두 멀쩡하구만?
“회장님, 한 마디 해주시죠.”
“응?”
“격려라도 해주시면 직원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자기들끼리 환호하며 축하하던 녀석들이 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음...”
할 말을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하고 싶긴 한데. 막상 떠오르는 게 없네? 허허.”
듣고 있던 직원들이 피식 웃는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차례대로 휴가나 일주일씩 갔다오는 걸로 하자.”
“오?”
“마음 같아서는 전부 한번에 싹 내보내고 싶지만...그럴 수 없는 건 니들도 나도 잘 알잖아? 그래 안 그래?”
“맞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두려던 내가 멈칫했다.
아.
이걸 또 깜빡할 뻔 했네.
“그리고 행정처 통해서 보너스도 나갈 거야. 직급 그런 거 무관하게 인당 1000만원씩이니 참고하고.”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도 잠시.
일제히 환호성을 토해낸다.
“와아아아아아!”
진심으로 기뻐하는 직원들을 보며 나도 기쁘게 웃었다.
참 굴려먹기 편한 녀석들이라니까.
돈만 주면 저리들 좋다고 하니.
“우린 이제 슬슬 가자.”
“네, 회장님.”
“오 박사랑 진우, 너희도 휴가 갔다와. 나중에 불시검문한다.”
“반드시 갔다 오겠습니다.”
방방 뛰는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난 관제센터를 나왔다.
***
- 이번 ‘해피 먼데이’ 행사는 회사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 고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아메리카 지역 경매장을 확인한 내가 낄낄 웃었다.
어떠냐.
형놈아.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소감이?
“흐흐흐.”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회장님.”
“좋고 말고!”
인생에 3대 즐거움이 있다고 하잖아?
먹는 즐거움.
자는 즐거움.
싸는 즐거움.
그리고 형놈 엿먹이는 즐거...
아.
이러면 4대 즐거움인가?
아무튼 좋으면 됐지 뭐!
“이리 잘 될 줄은 몰랐거든.”
“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
처음 ‘해피 먼데이’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만 해도 나는 긴가민가했다.
지금까지 봐온 셀라스 그룹 직원들은 충성심이 꽤 강한 편이었기 때문.
하지만 실제로 접촉을 해보니 생각보다 이간질하기는 쉬웠다.
미국 본토 물량은 셀라스 그룹에서 맡지만, 그 외 지역은 각지의 하청 업체가 담당하는 형태.
그리고 하청 업체는 셀라스 그룹에 대한 충성심(?)이 그리 높지 않았다.
늦은 대금 지불.
대우 및 단가 문제.
은연중에 있는 무시까지.
한국 대기업과 하청 업체간의 사건사고가 미국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상처를 좀 쑤신 것과, 하청 업체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게 끝.
모든 하청 업체를 공략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셀라스 그룹에게는 꽤 귀찮은 일이 생긴 셈이었다.
새로운 업체 컨택하고 발굴하고 준비시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아마 그놈들은 ‘해피 먼데이’가 아닌 ‘글루미 먼데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여기 좀 보세요. 사람들도 난리인데요?”
“그래? 어디 나도 한 번 보자.”
- 뭐야 이 새끼들 ☆☆☆☆★
- 내가 오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갑자기 취소라니!!!!!! ☆☆☆☆★
- 그렇지 않아도 총알 소비가 좀 많아서 오늘 보충하려고 했는데...☆☆☆☆★
- 진짜 장사 그 따위로 하지 마라 Bitches. ☆☆☆☆★
- Mother fucker ☆☆☆☆★
“허허, 반응들이 아주 좋구만!”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기에 좋았다.
“회장님, 준비한 프로모션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준비한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새로운 상품평을 남겼다.
- 방금 보니까 다른 곳에서 할인 행사 하는 거 같던데요? ☆☆☆☆★
평범한 생존자처럼 글을 쓴 나는 사람들이 떡밥을 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 오 정말이네요. 그리디 산업? 이라는 곳에서 지금 할인 행사하고 있네요. ☆☆☆☆★
- 아, 그래요? ☆☆☆☆★
- 세일 뭐뭐 하는 지 아는 분? ☆☆☆☆★
- 제가 방금 보고 왔는데 오늘 셀라스 그룹에서 할인하기로 했던 품목들과 같던데요. ☆☆☆☆★
- OH MY. ☆☆☆☆★
- 휴, 다행이다. 거기에서라도 사러 가야지. ☆☆☆☆★
수평을 유지하던 판매 그래프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려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시점.
“크하하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탭댄스를 추며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댄스타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같이 기뻐해야 할 김 실장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좀 같이 웃어줄래?
“야 이놈아.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셀라스 그룹이요. 직원 새로 뽑는다고 공고 올렸던데요?”
“그으래?”
확인해보니 김 실장 말이 맞았다.
미국 경매장은 물론 그 외 지역 경매장에도 셀라스 그룹의 채용 공고가 올라와 있었던 것.
- 셀라스 그룹에서 생산직 직원을 채용합니다.
“다음번에는 하청 업체 흔들기 못 하겠네요.”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이번 사건으로 하청 업체 굴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을 터.
형놈도 제정신이 박혀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고 하지는 않을 걸.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발빠르게 대응해도 흔들리는 것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직원 채용을 한다고 해서 금방 생산 역량을 갖추는 게 아니란다.
우리 경우도 그래.
기계 조작법이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채용해서 투입할 때까진 시간이 좀 필요하잖아?
형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그리고 저쪽 정직원 늘어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장기적으로는 저쪽 직원들도 잠재 고객이야. 녀석들 지갑이 두둑해 질수록 그만큼 뽑아먹을 게 많다는 거지.”
“...이게 이렇게 되나요?”
아니.
내 말이 뭐 틀린 거 있냐?
경쟁 업체 사람들도 어쨌든 소비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