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7화 (7/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7화>

털털털털털.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는 경운기보다 조금 더 나은 속도로 도로를 달렸다.

원체 부품 수명들이 다한 녀석이라 이렇게 달려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우리는 흙이 질척거리는 진창과 빗물 고인 도로를 힘겹게 지나 요새에 도착했다.

“밤새 공격이 있었나 봅니다.”

콘크리트 외벽에는 밤사이 활동이 활발해진 감염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우리가 놈들 근거지를 찾아 떠난 사이 산발적인 공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친 사람이 없으면 좋으련만. 없다시피 한 방어 무기를 생각하면 조금 불안하다.

끼이이이익, 쿵!

“어이!”

그래도 다행히 외벽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이은서가 우리를 보자마자 문을 개방했다.

양손을 힘차게 흔들며 무어라 외치는 것을 보아 딱 봐도 반가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마찬가지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뒤 오토바이 몰아 정문을 통과했다.

“예비 동장!”

우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마침 상식 아저씨가 저 멀리 헐레벌떡 달려온다.

“어디 가십니까? 엽총까지 챙기시고.”

“아니, 새벽까지 소식이 없길래 지금 가봐야 하나 했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정찰하겠다고 나간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나 보다.

나는 다친 곳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과 함께 캠프에서 노획한 짐을 풀었다.

“오늘은 챙겨온 선물이 많네요. 이건 통조림, 이건 옷이랑 신발, 또 이건 쌀.”

“뭐, 뭐가 이렇게 많은겨?”

“아직 두고 온 게 더 많아요. 택시랑 오토바이로 한 2~3번은 왕복해야 할 정도?”

쏟아지는 물자를 넋이 놓은 채 바라보던 상식 아저씨는 이내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약탈자랑 싸운 건 아니지?!”

싸운 것도 모자라 반년 동안 틀어박혀 있던 본거지를 아주 싹 싹 핥아먹었다.

우리가 아무런 말이 없자 상식 아저씨는 내 어깨와 등짝을 팍팍 때리셨다.

“미쳤어! 그냥 보고만 와도 되는 걸 왜 위험하게 싸우고 난리여! 야 너는 임마! 예비 동장이 간다고 하면 말렸어야지!”

“예, 예? 저도 최대한 말렸는데······.”

불똥이 옆으로 튄다.

공범인 이경태는 황급히 손사래 치며 뒤로 도망치려 했다.

“야!! 이경태!!!”

하지만 그 순간 외벽에서 내려온 이은서가 도망치는 동생의 엉덩이를 발로 차버린다.

“너 미쳤어? 거기가 어디라고 같이 기어들어 가! 지 앞가림도 못하는 새끼가!”

“누, 누나까지 왜 그래.”

아무리 기존 상식이 무너진 세상이라도 동생은 동생이고 누나는 누나다.

키가 20cm 넘게 차이 나는 남매는 나무와 매미처럼 한동안 시끄럽게 싸웠다.

“아이고야 이게 다 얼마야. 쌀에 통조림에······. 이만한 양이 더 있다고?”

“물건 상태는 어때요. 괜찮죠?”

“괜찮기는! 이 정도면 훌륭하지! 곧 겨울이라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놨어. 암!”

겨우 이 정도로 좋아하면 안 되는데.

나는 잔뜩 흥분한 아저씨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발전기도 찾았어요.”

“그, 그게 참말이여?”

“네, 진짜로요.”

발전기를 찾았다는 소리에 한껏 들떠있던 아저씨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심지어 눈가까지 촉촉해지는 것으로 보아 정말 간절한 숙원이었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 감동이었나?

도리어 멋쩍어진 나는 짐이나 같이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눈물을 닦은 상식이 아저씨는 극구 만류하며 등을 안으로 떠밀었다.

“예비 동장은 먼저 들어가! 우리가 다 밑으로 다 옮겨줄 테니까, 걱정 하덜 말고!”

“이런 호의는 사양 안 하는 거 아시죠?”

“내가 그래서 예비 동장을 좋아하지.”

능글맞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침 조금 과격하게 움직였던 무릎이 삐거덕거리던 차, 먼저 들어가 쉬어야겠다.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그려, 그려! 들어가!”

나는 그제야 진흙과 핏물이 엉킨 장갑을 벗어 던지고 요새 안으로 걸어갔다.

“- - - - - - -.”

공원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주민들이 힐끔힐끔 이쪽을 살피고 있었다.

하나 같이 관심을 보이면서도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대부분 깡마른 몸과 초췌한 얼굴.

희망 요새의 주민들은 마치 새장 속 새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묶여 있었다.

도대체 뭘까? 이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생존을 담보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인지.

찌릿.

그 순간,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이만석.’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뒷짐을 진 이만석이 상가 2층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을 돌려 조용히 자리를 떴다.

겨우 1초 남짓한 시간 동안 들여다본 눈동자는 분명 칙칙한 빛을 띠고 있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노려본 나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향했다.

* * *

상식이 아저씨가 미리 준비해준 따뜻한 물로 씻고 일단 늘어지게 잠부터 잤다.

그리고 약 3~4시간가량을 숙면한 나는 곧바로 책상으로 앞으로 가 앉았다.

자, 그동안 뭐라 씨부렸나 보자.

마침 책 옆에는 한참 소설을 필사한 황금 만년필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이경태 주민과 협력한 ‘그’는 성공적으로 약탈자 본거지를 토벌했다. 수많은 생존자를 고통받게 했던 놈들은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며 지옥의 비명 속에서 죽어갔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물자와 식량은 상당했다. 거기에 잃어버렸던 태양광 발전기까지 되찾은 ‘그’와 일행들은 희망 요새가 곧 재건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드디어 원하는 문장이 나왔다.

나는 한 차례 창밖을 바라본 뒤 다시 책을 읽었다.

[박동구 동장이 사망한 이후 희망 요새는 식량난을 겪었다.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고 설상가상 겨울까지 찾아와 전염병까지 돌았다.]

[그때 많은 주민이 사채업자 이만석에게 식량과 연료를 빌려 목숨을 유지했다. 당연히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났지만 살기 위해 식량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이만석의 야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동장과 가장 가까웠던 자경단을 고립시키기 위해 앞으로 그 어떠한 협력도 하지 말 것을 주민들에게 강요했다.]

[요새를 지켜야 한다는 자경단의 의무는 도리어 족쇄가 되었다. 깊어지는 갈등과 점점 나빠지는 상황, 이만석의 악행을 막지 않으면 희망 요새는 절대 재건될 수 없다.]

책은 분기점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이만석을 처리하고, 자경단과 주민들 사이에 깊어진 골을 해결할 수 있을지 말이다.

나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깊게 고민했다.

“어려운 문제를 주고 가셨네요, 할아버지.”

희망 요새가 적당히 썩어있다면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여다본 희망 요새는 뿌리부터 썩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까.

아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분명 도려내야 할 종양은 보이는데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요새가 죽을 것 같았다.

치지직!

“응?”

그런데 그 순간 천장 위에 매달려 있던 낡은 백열전구에서 전원이 들어왔다.

성질도 급하시지, 기다리기 싫었던 아저씨가 기어코 전력을 끌고 온 모양이다.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책상에서 일어난 나는 어느덧 어둑해진 집 밖으로 나왔다.

반짝!

원래 밤이 찾아온 희망 요새는 적막한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력이 돌아온 지금은 느지막한 저녁 일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멸망하기 이전 세상이 딱 이랬었나.

이제는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네.

“- - - - - - -!!”

한참 아파트 야경을 즐기고 있는데 공원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들려온다.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니 한 무리 사람들과 상식 아저씨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어, 어? 왜 또 갑자기 싸워!

깜짝 놀란 나는 곧바로 계단으로 내려가 고성이 오가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야 이 썩을 놈들아! 너거들이 무슨 염치로 동장을 찾아가! 우리가 그렇게 빌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뭐? 애들이 아프니 약을 좀 빌려줘? 그게 지금 말이여!”

“아저씨 참으세요! 또 혈압 올라요!”

인제 보니 싸우는 것이 아닌 아저씨 쪽에서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나무라고 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우리가 얻어온 물품 중에 필요한 약을 구하고자 온 모양이다.

상식 아저씨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초라한 행색의 아줌마.

스스로 면목이 없다는 걸 아는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오진영이 그 불쌍한 놈이 도와달라고 외쳤을 때 내다보는 한 명이 없었어······! 이 야속한 사람들아, 이게 말이 되는겨? 지금 와서, 지금 와서 우리한테 도와 달라는 게?”

한참을 소리만 지르던 상식 아저씨는 제풀에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작은 읊조림은 지난 세월, 홀로 감내해야 했던 설움이 전부 담겨 있었다.

밤이 길다. 주민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경단도 모두가 똑같이 울고 있었다.

“왜 이러고 앉아 있어요.”

“······예비 동장?”

읏차. 나는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상식이 아저씨를 조용히 부축했다.

그리고 한쪽에 모아둔 물자 더미 앞으로 다가가 약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짝!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가볍게 손뼉을 쳐 시선을 모은 나는 약통을 탈탈 흔들었다.

“종합 해열제입니다. 한 알이 보통 질 좋은 총알 한 발, 식량 보름치랑 거래가 되죠.”

인프라가 붕괴한 이 세상에서 약의 가치는 아무리 말해봐야 입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오늘 하루 고생한 이경태를 향해 약통을 건넸다.

“가지십쇼.”

“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본인이 값비싸다고 말한 약품을 그냥 준 이유가 뭘까.

“오늘 이경태 씨는 저와 함께 목숨 걸고 약탈자들을 몰아냈습니다. 이는 총알 한 발, 식량 보름치보다 값진 일이죠. 그 기여에 대한 대가는 지금 지급되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그의 누이인 이은서를 향해 다가가 재생 탄 스무 발을 건네주었다.

“자경단원인 이은서 양은 하루 12시간 넘게 경계를 서며 외벽을 지켰습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밤사이 습격한 감염체가 요새로 침입했겠죠. 마찬가지로 그 대가입니다.”

수군거림이 멈췄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기여 없는 대가는, 의무 없는 권리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여나 그게 지금까지 가능했다 하더라도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공동체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존속이 된다.

나는 이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주민들을 향해 따가운 질책과 마지막 기회를 줬다.

“앞으로 외상은 없습니다. 빌려주는 것 또한 허용하지 않습니다. 식량을 원한다면 공동체를 위해 기여를 약속하시고 약품을 원하신다면 가진 물건으로 거래하세요.”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주민들은 어느새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슬슬 교통정리도 끝이 났으니.

“그럼 지금부터······.”

나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자 물자 꾸러미에서 꺼낸 통조림 한 병을 번쩍 들었다.

“오늘 불침번을 설 인원 열 명 모집하겠습니다. 보상은 인당 통조림 하나입니다.”

그 순간 꾹꾹 쌓아두고 있던 봇물이 터졌다.

주민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몰려왔고 남매는 깜짝 놀라 이를 제지한다.

묘한 웃음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본 나는 다리 힘이 풀린 상식이 아저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약탈자 캠프에서 가져온 시계를 손목에 채워드렸다.

“토마호크 잘 썼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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