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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0화 (10/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10화>

보통 영화나 만화에 등장하는 악인은 참 군더더기 없이 나쁜 점만을 가졌다.

그래야만 죽여도 되는 정당성이 생기고 작품 밖으로 퇴장해도 아쉬움이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 속 악인은 타 인간 다를 바 없이 복합적이고 상대적이다.

불운한 과거 있거나, 누구에게는 악인이 아니라는 둥 그런 진부한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샌가부터 기준을 세웠다.

어차피 모든 게 애매모호한 세상이라면 오래 살아남는 쪽이 정하기로 말이다.

부우우우우웅 - - -!!

끼이이익!

아파트 상가가 보이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고 자동차 핸들을 180도로 꺾었다.

완벽한 주차를 선보인 나는 그대로 권총을 뽑아 가게 안쪽으로 총구를 겨눴다.

“히, 히익!”

평소 가게를 지키던 직원은 새된 비명과 함께 황급히 셔터를 닫으려 했다.

나는 섣불리 총을 쏘는 대신 몸을 날려 셔터 아래쪽으로 슬라이딩했다.

치이이익.

종이 한 장 차이로 통과한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놈은 바지춤에 꽂아 넣은 무기를 허둥지둥 꺼내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바닥에 쓰러진 자세 그대로 권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마를 관통당한 놈은 머리를 뒤로 팍 꺾는 것을 마지막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깨진 유리 조각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침 매대 뒷문으로 사무실이 보인다.

“막, 막아! 뭐해, 막으라고!”

설마 상가로 쳐들어올 줄은 몰랐던 이만석은 허겁지겁 반대편 지하실로 도망친다.

참 귀찮게 하는 늙은이네.

승부가 이미 났으면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할 텐데.

새벽 내내 뛰어다니느라 기분이 몹시 나빠진 나는 친히 모셔가기로 결심했다.

“- - - - - -?”

하지만 그 순간 이만석이 도망쳤던 사무실에서 한 외국인 남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던 놈의 손에는 나와 똑같은 권총이 있었다.

탕! 타앙! 탕! 탕!

막으라는 게 얘였구나.

나는 총구를 보자마자 문 옆으로 엄폐해 총알을 피했다.

“외국인 용병, 뭐 그런 거야?”

사방으로 나무 조각이 튀기고 알싸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찰칵.

탄알집을 뽑고 실린더를 젖혀 남은 총알이 3발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반짝이는 총열을 향해 응사했다.

탕! 탕!

쨍그랑!

한 발은 복도 조명을 쏴 깨트리고 또 한 발은 외국인 용병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놈은 자신이 같은 머저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재빨리 고개를 젖힌다.

지금이다.

탁!

나는 놈이 고개를 젖히자마자 조명이 깨져 어두워진 복도를 빠르게 질주했다.

깜짝 놀란 놈은 방아쇠를 당겼고 나 또한 정면으로 총을 발사하며 어둠을 헤쳤다.

탕! 탕!

한 발씩 쏜 총알이 교차한다.

볼 바로 옆이 화끈해진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익숙한 긴장감.

다리에 힘을 준 뒤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퍽!

안면으로 플라잉니킥이 작렬한다.

놈은 황급히 얼굴을 막으려다 그만 권총을 놓쳤고 곧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스릉!

찰나의 질척인 정적이 흐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이프를 뽑아 든 양측은 곧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푸슉!

깡! 끼기긱!

나이프를 휘두르고, 나이프를 피한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다음 공격을 노리고 아찔한 본능은 반격을 구사한다.

허공에서 맞부딪혀 갈리는 날, 한 번의 실수로 언제 급소가 뚫릴지 모른다.

‘배운 놈이다.’

어디서 고용한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수년은 넘게 구른 실력이다.

나는 이미 목 아래까지 흐른 핏물을 닦으며 발 한쪽을 조심스럽게 뒤로 뺐다.

“- - - - - - -.”

이렇게 계속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아직 부상 후유증이 남아있는 내가 불리하다.

사생결단을 할 게 아니라면 아까부터 보이는 놈의 정직한 패턴을 이용해야 한다.

불과 1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

서로가 내뱉는 거친 숨이 피부로 느껴질 때쯤,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복도로 뛰었다.

탁!

“·········!!”

그러자 놈은 내가 이대로 도망친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를 뚝뚝 흘리며 도망친 적이 이성을 날아가게 했다.

놈은 다급히 나를 뒤 따라왔다.

꾸욱.

하지만 이것마저도 작은 속임수.

어두운 복도에서 몸을 돌린 나는 손으로 바닥을 훑어 깨진 조명 조각을 주웠다.

휙!

그리고 뒤따라오는 놈한테 뿌린 뒤 날이 나간 나이프를 대신해 토마호크를 뽑았다.

“- - - - - -!!”

이 생소한 외국어를 번역하자면 ‘이 시발 새끼가 비겁하게!’ 정도가 되겠지.

근데 어떡하겠는가.

그런 비겁한 새끼들을 제치면서 살아남은 게 바로 나인걸.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놈의 안면으로 흉악스럽게 생긴 토마호크가 날아간다.

쩌억!

도끼날이 이마를 꿰뚫는다.

생체 기능이 정지한 외국인 용병은 그렇게 허물어지듯 쓰러져 고개를 숙였다.

“퉤.”

피가 섞인 침을 뱉은 나는 쓰러진 외국인 용병에게 다가가 품을 뒤졌다.

시발, 방검복까지 입혀놨네? 여차하면 내가 뒤질뻔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찔하다.

철컥.

놈이 가지고 있던 총알 여유분과 떨어진 총을 챙긴 뒤 토마호크를 뽑았다.

그리고 지하실 어딘가에서 벌벌 떨고 있을 이만석을 위해 뚜벅뚜벅 복도를 걸었다.

끼이이익.

달칵, 달칵.

이 좁아터진 상가에서 어떻게 옹기종기 모여 산다고 했더니 지하실이 있었구나.

나는 이만석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방문으로 다가가 공손히 노크했다.

똑똑.

탕! 탕! 탕! 타앙! 탕!

그러자 문 안쪽에선 기다렸다는 듯 총알이 쏟아졌다.

두려움에 이성을 잃은 걸까.

애꿎은 총알은 빈 허공만을 맞힐 뿐이었다.

탕! 철컥, 철컥.

마지막 총알이다.

복도 옆으로 피해 있던 나는 곧바로 문을 발로 차 열었다.

쾅!

방안에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이만석이 허둥지둥 총알을 장전하려고 했다.

그 꼴이 참 한심하다 못해 역겨워 곧바로 총을 든 손을 노려 총알 쐈다.

탕!

“히, 히아아악! 손이! 손이이!”

이만석은 통째로 날아가 버린 오른쪽 손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방금 쏘신 것만 가져다 팔아도 얼맙니까? 왜 이렇게 총알을 낭비하시나 모르겠네.”

우리는 총알 몇 발이 없어서 빌빌거리는데 이 새끼는 아주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빈부격차에 심술이 난 나는 빌빌거리는 이만석의 뺨을 후리며 강제로 앉혔다.

“살, 살려줘! 원하는 건 다 줄게!”

“제가 원하는 게 뭔데요?”

놈은 오른손이 통째로 없어진 마당에 살 기회를 만들고자 필사적으로 외친다.

“금고가 하나 있어! 금괴랑 보석! 유, 유산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되는 거야! 자네 서울로! 서울로 가고 싶지 않나? 응?”

나는 바닥을 뒹구는 탄피 하나를 주워 이만석의 이마를 향해 핑 튕겼다.

“참 신기하네요. 저기 위에 사람들은 총알 하나, 알약 하나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여기 밑에 새끼들은 돈이나 모으고 있고.”

“다 나눠주려고 했어! 내가 요새만 손에 넣으면 전부 다 나눠주려고 했었다고!”

“뭐, 잘못이라고는 안 할게요. 이 좆같은 세상에서 좆같은 짓 한다고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이만석 씨.”

점점 시간이 좀 아까워지기 시작한 나는 장전된 권총을 꺼내 이마를 겨누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걸까.

이만석은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자, 자네 할아버지였으면 살려줬을 거야.”

철컥.

“글쎄요. 제가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서 별로 와닿지 않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탕!

희망 요새를 도탄에 빠트렸던 배후는 그렇게 총성 한 번으로 허무히 끝이 났다.

문득 몰려오는 피로감을 느낀 나는 피가 흐르는 볼을 슥 닦고 방을 빠져나왔다.

* * *

“동장! 동장 왔는감!”

피를 닦고 상가 밖으로 나오니 아파트 공원에는 이미 수많은 주민이 몰려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한 상식 아저씨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어디 다친겨? 총 맞았구먼!”

“살짝 스쳤어요. 아, 그리고 이만석은 죽었으니까, 나중에 사람 보내서 치워주세요.”

총격전이 벌어져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저씨, 은서와 경태 셋 다 무사했던 모양이다.

나는 상가에서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한 뒤 한참 난리가 난 주민들을 바라봤다.

“상황 설명 안 하셨어요?”

“아, 우리는 당연히 했지. 근데 다들 안 들어가고 저기들 모여서 난리가 났잖아.”

“왜요? 이미 다 끝난 마당에.”

“우리가 이만석이 직원 둘을 잡아놨거든. 그런데 다들 죽여버리겠다고 난리여.”

지금 보니 공원 중앙에는 밧줄에 묶인 직원 두 놈이 처량하게 무릎 꿇고 있었다.

“죽여! 저런 놈들은 죽여야 한다고!”

“흐윽, 흑! 우리 딸 돌려내!”

나는 성난 주민들과 그런 그들을 힘겹게 막고 있는 남매를 향해 다가갔다.

“진정들 하세요! 동장님 곧 오신다잖아요!”

그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나머지 대화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

나는 주민들이 던진 돌멩이가 남매를 향하기 전 권총을 위로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예고 없이 총성이 터지자 다들 본능적으로 자세를 숙이며 귀를 틀어막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파를 헤치며 남매를 향해 걸어갔다.

“이만석 밑에 있던 놈들이죠?”

“네? 아, 네 맞습니다!”

머리채를 쥐고 얼굴을 확인해보니 상가 근처에서 한 번씩 본 기억이 있다.

최대한 빠르게 신분 확인 절차를 끝낸 나는 긴장한 채 서 있는 남매에게 말했다.

“처우는 내일 결정하죠. 일단 묶어두세요.”

그 순간 주민들 사이에서 고성이 터졌다.

“동장님! 살려두시면 안 되는 놈들이에요!”

“지금 당장 죽여야 한다 안카요!”

내일 결정한다는 말을 살린다는 뜻으로 오해했는지 다들 표정이 험악해진다.

“말리지 마! 내가 콱 죽여버릴 거니까!”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거기다 피해자 가족들로 보이는 주민 몇몇은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기분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다들 원래 이렇게 목소리가 크셨습니까?”

“·········!!”

“그동안 찍소리도 못하시길래 소리도 못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화도 잘 내시고 당당히 윽박도 지르시네요.”

나도 알고 있다.

이게 대다수 인간의 보편적 습성이고 모일 때 용감해지는 군중 심리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굳이 이를 꼬집고, 질책하고, 탓하려 했던 건 스스로 느끼기를 바라서였다.

“이제야 용기가 좀 나시나 봅니다. 이왕 이러실 거 더 일찍 생기셨으면 좋았을 텐데.”

“동, 동장님.”

“다들 한심하시네요.”

어쩌면 가혹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적어도 이들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혹시나 소란 일으키면 쏘세요.”

나는 그 어떠한 위로의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남매에게 들고 있던 권총을 넘겼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주민들 사이를 지나 쓸쓸히 104동으로 걸어갔다.

그냥 가볍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겨울이면 돌아오는 발작이 조금 일찍 도진 모양이다.

“동장! 동장, 잠깐만!”

그렇게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경비실을 뛰쳐나온 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웠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혹시 조금 전 일을 나무라려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이거 가져가!”

하지만 상식 아저씨는 도리어 미안하다는 얼굴로 묵직한 보자기를 내밀었다.

“자네 할아버지가 겨울만 되면 군고구마를 찾고 그랬던 게 생각나서 좀 구웠어.”

“아직 따뜻하네요.”

“흐, 방금 꺼낸 거여. 한참 새벽이라 속이 허할텐디 이거라도 챙겨 먹고 푹 쉬어.”

할아버지가 군고구마를 좋아하셨구나.

나는 따뜻하고 묵직한 보자기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상식 아저씨는 쓰고 있던 경비 모자를 벗으며 내 양쪽 손을 꾹 움켜쥐었다.

“다들 못나긴 해도 그렇게 못된 사람들은 아니여. 오늘 분명 느낀 게 있을 테니까, 앞으로 잘하는지 조금만 더 지켜봐 줘.”

“실망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동장이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어. 앞가림도 못하는 우리 때문에 억지로 떠맡아서 그렇지, 나쁜 사람이 아니잖여. 다들 언젠가는 꼭 이해해 줄 거야.”

인간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한다.

상식 아저씨도 어쩌면 무표정한 내 얼굴에서 슬픈 감정을 엿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웃으며 인사했다.

“고구마 잘 먹을게요.”

그러자 아저씨도 아무 말 없이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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