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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3화 (13/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13화>

하필 문이 개방될 시간이라 거래가 끝난 캐러밴 차량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다.

나처럼 감염체 웨이브를 발견한 차량은 부랴부랴 핸들을 꺾어 달려왔지만,

이제 막 요새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해안도로로 나가려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로 부근을 한 바퀴 돌며 열심히 클락션을 울려주었다.

빠아아아앙! 빠아앙!

“차 빼요! 빨리!”

클락션은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울리지 않는 게 멸망한 세상 속 상식이다.

이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저 멀리서 오는 대규모 웨이브를 발견해내고야 만다.

웨에에에에에에에엥 - - -!!

소란이 불길처럼 번져나간다.

감염체 공격을 감지한 요새 외벽에서 대피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빨, 빨리 도망쳐!”

밖으로 나가려던 차들은 서둘러 핸들을 꺾었고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워낙 나가려는 차가 많았던 탓에 다시 요새로 돌아오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지만,

그래도 자경단원들의 노력으로 복잡하던 도로는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퐁! 삐이이이이이 - - -쾅!!!!

감염체가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외벽에선 박격포가 발사되었다.

규모가 큰 강릉항답게 요새 방어를 위한 본격적인 장거리 요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조금만 더 있으면 요새 문이 완전히 닫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철컥!

나는 뒷좌석에서 카빈을 꺼내 침착하게 탄이 삽입된 탄알집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조수석에 놓은 뒤 다시 차량을 출발시켰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는 사람들이 급히 도망친 도로를 가로질러 요새 문이 닫히기 직전 복귀하려 했다.

“으아아앙, 엄마!”

“예나야!”

그런데 하필 저 멀리서 봇짐을 맨 한 모녀가 힘겹게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문 개방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갔다가 뒤늦게 뛰어서 복귀하는 인원이었다.

달리기하다 철퍼덕 넘어지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힘겹게 안아 올리는 엄마.

안타깝게도 바로 뒤에는 두세 마리 감염체가 미친 듯이 따라오고 있었다.

“시발, 진짜!”

그 광경을 백미러로 지켜보고 있던 나는 결국 욕설과 함께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도로를 뛰어오는 모녀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며 카빈총을 들어 올렸다.

끼이이익, 덜컹!

“빨리 타요!”

스키드 자국을 남기며 급정지했다.

나는 달려오는 모녀를 향해 타라고 외친 뒤 창문 밖으로 카빈총을 조준했다.

파캉! 파캉!

권총과는 확연하게 다른 반동과 위력이 달려오는 감염체 서너 마리를 쓸어 담는다.

그 사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녀는 허겁지겁 보조석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탔, 탔어요!”

덜컥, 끼이이익!

둘 다 탔다는 말에 보조석에 카빈총을 집어 던진 나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감염체 웨이브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차를 탄 지금도 두두두 진동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요새 도착까지 200m를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 정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빠아아아앙!

제발 열어라. 나는 필사적으로 클락션을 울리며 아직 사람이 남아있다는 걸 알렸다.

하지만 외벽 위 자경단원들은 방어를 위해 뛰어다닐 뿐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발, 이래서 착한 일은 하는 게 아니야.

나는 조금 전 핸들을 돌렸던 자신을 탓하며 유일한 출구인 바다를 노려보았다.

“- - - - - -!!”

그런데 그 순간 한 익숙한 자경단원이 다급히 이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닫히기 직전이던 문에 제동이 걸리며 차가 딱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제발 힘내라 고물 택시야.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나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아 기어코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끼이이익, 덜컹!

그렇게 마지막으로 요새 문이 닫혔다.

“하아······.”

기운이 빠진 나는 식은땀이 흥건한 손을 핸들에서 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뒷좌석에선 마찬가지로 심장을 졸이던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고,

아이는 자기가 죽을뻔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가락만을 꼼지락거렸다.

그 순수한 눈망울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모녀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드르르륵! 드르륵!

타다다다다다! 타탕! 탕!

마침 외벽 위에선 요새로 쳐들어온 감염체 웨이브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박격포와 온갖 총기, 거기에 화염병까지 날아드는 치열하기 그지없는 전투 현장.

나는 놈들보다 요새가 가진 총알이 더 많기를 빌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 * *

보통 요새는 습격 사이렌이 울리면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한곳에 모은다.

하지만 이번 웨이브는 워낙 갑작스러웠던지라 제대로 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비규환이 된 상가를 살피며 몰려오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 이게 무슨 난리야.

원래라면 오늘 희망 요새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상황이 꼬여도 너무 꼬여버렸다.

“사장님!”

그 순간 상가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강혜지가 흥분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까 역주행하실 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들 웬 미친놈이 저러나 싶어서 구경했죠! 근데 그게 사장님 차더라고요!”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뒤늦게 눈치를 챙긴 강혜지가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아이~ 그만큼 멋지셨다는 거예요. 모녀를 구하기 위해 도로를 가로지르는······!”

“시끄럽고, 위에선 뭐랍니까?”

“뭐, 다들 당황해서 정신이 없나 봐요. 지금 외국 선박들 빠져나가는 거 보이시죠?”

확실히 강릉항 부두에는 벌써 떠날 채비를 끝낸 외국 선박들이 출항하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안 좋아요?”

“탄약이나 인력은 충분한데 보셨다시피 웨이브 규모가 장난 아니잖아요. 짧아도 2~3일은 여기 고립되어 있을 판이에요.”

그래도 물자가 많은 강릉항답게 웨이브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졸지에 2~3일 동안 갇혀 있게 캐러밴들, 즉 거기에 포함된 나였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오늘따라 미래를 알려주었던 그놈의 책과 만년필이 이토록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신세 한탄만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절규에 가까운 고성이 들려왔다.

“아직 밖에 있어! 분명 살아있다고!”

상가 앞에는 휠체어를 탄 한 익숙한 노파가 번영회 직원의 허리를 붙들고 있었다.

“할머님, 좀 진정하세요!”

“진정하긴 뭘 진정해 이놈들아! 우리 아들이 못 들어왔는데 문을 닫으면 어떡해!”

“지금 문 열면 다 같이 죽자는 소리입니까! 저희라고 도와드리기 싫어서 그러냐고요!”

직원 허리를 붙들며 통곡하는 노파는 다름이 아닌 카빈을 팔았던 총포상 할머니였다.

아들이라는 소리에 상황을 금세 파악한 강혜지는 놀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떡해. 강수 씨가 못 들어왔나 봐요.”

“바깥일 하세요?”

“네. 작은 캐러밴을 운영하시거든요······.”

선두에서 빠르게 출발한 차량 몇 대가 있긴 했는데 그중 아들이 있었나 보네.

나는 착잡해진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주저앉아 통곡하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강수야······! 아이고, 아이고 내 새끼!”

안타깝긴 하지만, 직원 말이 틀린 게 없다.

살아있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문을 열 수는 없었으니까.

표정이 좋지 않은 직원도, 평소 알고 지내던 주변 상가 사람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할머니는 결코 호락호락 한 이가 아니었다.

“······그려, 너희들은 못 해준다 이거지.”

할머니는 손과 팔 힘만으로 휠체어에 스스로 올라타더니 이내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들어! 어차피 나는 우리 강수 없으면 더 이상 살 생각도 없어! 지금 가진 재산들 깡그리 바다에 던져버릴 거라 이 말이야!”

그녀의 흉흉한 눈빛이 대중을 훑는다.

“근데 이왕 버리는 거 누가 가져가면 좋지 않겠어? 다 뜯기고 난 시체라도 좋아! 우리 강수 데려만 오면 전부 다 가져가!”

순간 상가 앞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이 강릉항에서 장사만 수년간 한 알부자 총포상 할머니의 재산이 보상금이라니.

그중 반절만 받아도 안전한 강릉항 요새에서 장사하면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웨이브인데······.”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웅성거리는 사람 중 선뜻 나서서 하겠다는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감염체, 거기다 대규모 웨이브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돈도 좋지만, 목숨을 걸 만큼은 아니다.

총포상 할머니는 점차 멀어지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 결국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 어? 사장님!”

물론 전부가 멀어진 건 아니다.

나는 이미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진열대 위에 중기관총도 줍니까?”

“으, 으응?”

“M2A1 브라우닝 중기관총. 줍니까?”

넋을 놓았던 총포상 할머니는 이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뭐해? 다 가져가! 젊은 양반이 원한다고 하는 거 다 구해줄 테니까!”

“사장님 진짜 미치셨어요!?”

미쳤냐고?

아니, 내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정상이고 심지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봤는데, 여기서 이 기회를 놓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나는 엉엉 우시는 총포상 할머니와 기어코 계약 도장을 찍고 약속을 받아냈다.

* * *

박강수와 마지막으로 무전을 했던 곳이 바로 저기 남쪽 남항진해변이라 한다.

남항진해변이라고 하면 강릉항과 도보로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데,

다행히 해안 도로로 향했던 박강수 씨는 남항진해변 앞에서 변을 당한 모양이다.

한동안 지도를 살펴본 나는 기어코 총포상까지 따라온 강혜지를 향해 물었다.

“혹시 부표 같은 거 못 구합니까?”

“널린 게 부표죠. 아, 혹시······.”

“네. 바다를 통해서 가려고요.”

강릉항 요새 근방과 도로들은 이미 웨이브를 타고 몰려든 감염체로 득실거린다.

하지만 이곳은 바다와 이어진 강릉항.

감염체들이 바다로 넘어온다는 사례는 들은 바가 없으니 이보다 안전한 길은 없었다.

죽었다면 시체라도 가져오고,

살았다면 함께 돌아오면 되는 일.

확실한 진입 루트가 있는 작전은 무척 드문데, 이걸 왜 안 할까?

나는 유난히 몸을 사리는 강릉 생존자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양반, 정말 이거면 돼?”

마침 부탁한 물건을 가지러 간 총포상 할머니가 내게 묵직한 배낭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보는 것만으로 듬직한 산탄총과 함께 권총 소음기가 들어 있었다.

“차고 넘치죠.”

총포상 만세!

매번 무기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든든한 공급처가 옆에 있다.

나는 정말 그득하게 담아준 탄약을 챙기며 오랜만에 산탄총을 장전했다.

달칵, 달칵, 달칵, 철컥!

역시 말이 필요 없는 명품이다.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마지막 장비를 챙기며 총포상 할머니와 인사했다.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정말······. 정말 고마워, 젊은 양반.”

“뭘요.”

제가 더 고맙죠.

나는 여전히 그 자태를 지키고 있는 M2A1 중기관총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돌아가는 길은 저 녀석과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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