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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4화 (14/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14화>

“정말 이런 부표로 돼요? 차라리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른 선박이라도 타고 가세요.”

바다 위 부표를 끈으로 묶어 부유물을 만들고 있는데 강혜지가 계속 말을 건다.

나는 아까부터 쫑알쫑알 들려오는 잔소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저기요.”

“네?”

“상가 일 안 바쁘세요?”

선을 긋는다고 생각한 걸까, 순간 쪼그려 앉아있던 강혜지가 시무룩해진다.

“남 일 같지 않으니까 그렇죠. 이걸 구하러 가겠다는 사장님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별게 다 신기하시네.”

첨벙!

귓등으로 흘린 나는 줄과 그물로 튼튼하게 엮은 부유물을 바다 위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그 위에 능숙하게 올라탄 뒤 나무로 만든 노를 꺼내 바닷물을 저어봤다.

‘괜찮네.’

파도가 조금 있긴 해도 해안선을 따라가면 해변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세를 편하게 잡은 나는 열심히 노를 저어 앞으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장님!”

그러자 부두에서 이를 지켜보던 강혜지가 양팔을 힘차게 흔들며 배웅했다.

“제가 택시 잘 지키고 있을게요! 그러니까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아셨죠!”

그래, 무사히 돌아와야지 약속한 보상금도 받고 희망 요새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나는 강혜지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어준 뒤 주황빛으로 물든 바다로 나아갔다.

타앙! 탕!

끼이이이익! 끼긱!

저 멀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요새 외벽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서 있었다.

쉴 틈 없이 몰아치던 감염체들도 압도적인 화력 앞에 잠시 주춤거린 것이다.

하지만 저 모습은 때를 기다리는 기민한 움직임일 뿐이지 물러가려는 기색이 아니다.

아마 해가 지고 세상이 어둑해지면 그 흉측한 비명과 함께 또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나는 최대한 모습이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첨벙, 첨벙.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음 해변이 보일 때쯤 짧은 겨울 해는 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남항진해변과 그 부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까악, 까악.

일찍이 인적이 끊긴 해변에는 드넓은 모래사장과 버려진 건물들만이 보였다.

하지만 박강수가 다리를 건넜다면 분명 해변 앞 127번 길을 타고 갔을 것이다.

‘해가 진다.’

석양이 퇴장하고 하늘이 어둑해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강릉항 요새 쪽에서 다시 한번 울부짖음과 총성이 들려왔다.

드르르륵! 드륵!

끼아아아아아악 - - -!

감염체 웨이브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파도가 철썩이는 해변으로 부지런히 나아갔다.

철썩, 철썩.

도착하자마자 부유물을 끌고 올린 다음 떠내려가지 않도록 숨겨놓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가방에서 산탄총과 권총을 꺼내 순식간에 무장을 끝냈다.

철컥!

예상대로 이 근방 감염체들 대부분은 웨이브를 따라 강릉항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덕분에 고요하기 그지없는 해변을 가로질러 바로 앞 127번 길로 향했다.

“- - - - - - -.”

길 곳곳에는 버려진 지 오래된 폐차들과 이미 사람들이 떠난 주택이 즐비했다.

권총을 앞으로 겨눈 나는 세세한 곳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수색 반경을 넓혔다.

킁킁.

그런데 그 순간 비릿하면서 역겨운 피 냄새가 예민한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곧바로 냄새를 따라 달려갔고 그곳에서 뒤집힌 차와 감염체를 발견했다.

까드드득, 까득.

찌지직! 까득.

한 마리다.

감염체는 뒤집힌 차량 운전석에서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뜯고 있었다.

이것이 박강수 차라는 걸 확신한 나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놈에게 겨눴다.

따악 -!

끼기긱, 끽!

한참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감염체는 그대로 머리가 꿰뚫려 바닥에 쓰러진다.

콰직!

나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향해 다가가 가뿐히 머리를 터트렸다.

그리고 식사 자리였던 운전석을 바라보니 이미 끔찍한 현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달칵.

다행히 얼굴은 안 먹었구나.

감염체가 뱉어낸 토사물과 내장을 옆으로 치운 나는 손전등으로 신분을 확인했다.

‘아니네.’

동업자가 두 명 정도 더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이 운이 더 나빴던 모양이다.

손전등으로 조수석까지 살펴본 나는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기어서 빠져나오고.’

‘현명하게 총은 안 쐈군.’

‘다리뼈가 부러졌어.’

‘계속 본능을 따라서.’

흔적이 로직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당시 상황을 퍼즐처럼 맞춰본 나는 박강수의 행적으로 그대로 따라갔다.

‘남항진 펜션’

4층짜리 펜션 건물 앞으로 흔적이 멈췄다.

나는 손전등을 끈 뒤 묘한 한기가 느껴지는 펜션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터벅, 터벅, 터벅.

이 양반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피가 3층까지 계속 이어지는 걸 보니 잘못하면 시체랑 상봉할지도 모르겠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온 나는 박강수가 들어간 게 분명한 301호 앞에 섰다.

똑똑.

신사적으로 노크했는데 대답이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잡이를 부수고 들어가기 위해 토마호크를 꺼내 들었다.

덜컹! 후웅!

“- - - - - - -!!”

그 순간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며 누군가 묵직한 둔기를 휘둘러왔다.

깡!

에라이, 시발!

본능적으로 토마호크를 들어서 막아낸 나는 상대를 냅다 발로 찼다.

컥!

쿠탕탕!

제법 괜찮았던 기습과는 반대로 배가 발로 차인 상대는 너무나 허무하게 넘어졌다.

나는 곧바로 손전등을 앞으로 비춰 기습해온 상대 얼굴부터 재빨리 확인했다.

“박강수?”

“끄으윽······. 누, 누구십니까?”

“누군지도 모르는데 시발 둔기부터 휘두릅니까? 친절하게 노크도 했잖아요.”

하마터면 대가리가 깨질뻔했다.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는 나는 바닥에 떨어진 둔기를 치우며 통보했다.

“당신 할머니가 보낸 사람입니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면 잘 따라오세요.”

할머니가 보냈다는 말에 수척하던 박강수의 얼굴이 순간 감격으로 물들었다.

나는 이제 좀 얌전해진 그를 향해 손을 내밀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잠시만요!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저랑 결혼할 여자인데 지금 조금 다쳐서······.”

철컥!

지금 보니 침대에 누군가 누워있다.

다쳤다는 말에 재빨리 권총을 뽑아 든 나는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침대를 겨눴다.

그러자 기겁한 박강수는 황급히 내 앞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약혼자를 변호했다.

“안 물렸습니다! 그냥 다친 거예요!”

“다들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감염체한테 습격을 당했는데 단순한 부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했다가 요새가 멸망하는 꼴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비켜요.”

“선생님,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정말 저하나 돕겠다고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그대로 박강수 멱살을 잡고 오금을 걷어차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침대가 아닌 그의 머리통에 직접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저 착한 일 하려고 온 사람 아니에요. 지금 당장 시체만 가져가도 상관없거든요.”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서 시체만 데려가는 수가 있다.

나는 박강수가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기를 빌며 살벌한 협박을 가했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내 다리를 꽉 부여잡았다.

“저,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제발 저 사람만이라도 데려가 주세요. 예? 선생님······. 제가 이러고 가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나는 박강수와 눈을 마주쳤다.

눈물과 절망으로 일그러진 그의 눈동자는 어디선가 많이 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 참 많이도 보면서 살았지.

인간이 살고 싶다는 본능을 거스르고 제 좆대로 하려 하는 그 확고함을 말이다.

자식을 숨기고 대신 죽은 부모들 눈이 이랬고, 나 대신 뒤진 중대장이 이랬다.

개 시발.

나는 박강수를 걷어차 떨쳐낸 뒤 침대 위 누워있는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펄럭!

그리고 이불을 걷어 감염체한테 물리거나 할퀸 자국이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다리뼈, 복부.’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이 박강수가 아니라 이 뒷좌석에 타 있던 약혼녀였구나.

내가 조용히 손짓하자 박강수가 허겁지겁 따라와 붕대 속 상처를 보여주었다.

“튀, 튀어나온 파편에 쓸린 겁니다.”

감염체가 했다고는 하기에는 확실히 상처가 깨끗하고 뚜렷한 감염 증세가 없다.

작게 혀를 찬 나는 권총을 집어놓고 바닥에 떨어진 둔기를 다시 돌려주었다.

“업고 따라와요.”

모르겠다. 자기 약혼녀가 감염체로 변하면 업고 있던 박강수가 대신 당하겠지.

그때는 진짜 시체만 챙겨 가자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해변으로 가면 제가 타고 온 부유물이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 조용히 따라오세요.”

“셋이 탈 수 있을까요?”

“저는 매달려서 헤엄치면 됩니다.”

계획에도 없는 2명을 구하게 생겼지만, 적어도 작전 오차 범위 안에 있다.

나는 따라오라고 손짓한 뒤 부유물을 숨겨둔 해안가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다.

사박, 사박, 사박.

완전히 어둠으로 물든 해변은 오직 파도 소리만이 들려오는 암흑천지였다.

나는 최대한 방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사방을 살피며 길을 안내했고,

그래도 다행히 아무런 일 없이 부유물을 숨겨둔 해변 한가운데 도착할 수 있었다.

박강수는 어지간히 긴장했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며 흘러내린 땀을 닦아냈다.

“밀어드릴 테니까, 먼저 타세요.”

“감, 감사합니다.”

의식이 없는 약혼녀를 먼저 부유물 위에 올리고 박강수가 뒤이어 탑승한다.

나는 가방을 함께 올려놓은 뒤 부유물을 힘껏 밀어 천천히 해변으로 나아갔다.

후, 이제 마무리 단계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조금 풀렸다.

“저 그런데.”

“왜요. 고맙다고요?”

“그, 혹시 웨이브는 끝난 겁니까?”

“무슨 개소립니까. 이제 한참······.”

그 순간 깜짝 놀란 나는 한참 공격을 받고 있었던 요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분명 박강수를 만나기 전까지 해도 들렸던 시끄러운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

소름이 끼치는 고요함과 정적.

두 눈을 크게 뜬 나는 뭉쳐있어야 할 감염체 웨이브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꽉 잡아요!”

이걸 왜 지금 눈치챘을까.

나는 흔들리는 부유물을 미친 듯이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겁에 잔뜩 질려 있던 박강수가 다급한 얼굴로 반대편 해변을 가리켰다.

“저, 저기!!”

시발 아니나 다를까, 웨이브에서 떨어져 나온 감염체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끼아아아아악 - - -!!

끼기긱! 끼이이익!

200m 안쪽으로 다가온 숫자만 10마리, 그 뒤에는 더 많은 놈들이 다리를 건넜다.

철썩!

몰아치는 파도 위를 강제로 헤쳐 부유물을 바다로 힘껏 밀어보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심해진 파도는 아무리 밀어도 다시 해변 쪽으로 돌려보냈다.

거리는 100m, 80m, 70m.

나는 어쩔 수 없이 부유물을 발로 민 뒤 등에 메고 있던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옛날 생각나네.”

“선생님?”

“먼저 가세요.”

첨벙, 첨벙! 그대로 장딴지까지 오는 바다를 헤쳐 놈들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고요한 파도 너머로 흉흉한 감염체들의 눈빛을 조준했다.

펑!

앞서 달려오던 놈이 꼬꾸라진다.

철컥.

화약 연기 뒤로 탄피가 튄다.

펑!

이번에는 바로 그 옆에 놈이 쓰러진다.

철컥, 펑! 철컥, 펑! 철컥, 펑!

아예 방아쇠를 꾹 누른 채 경쾌한 리듬으로 펌프를 당기고 밀고 당기고 민다.

쏟아지는 철 구슬들 아래 만만한 사냥감을 쫓아왔던 놈들이 곤죽이 되어 쓰러진다.

키아아아아악!

그 사이를 기어코 뚫고 달려온 감염체 하나가 목을 물어뜯기 위해 날아온다.

콰직!

하지만 가뿐하게 토마호크를 뽑아 휘두른 나는 놈의 머리통을 반으로 나눠 주었다.

“푸우.”

한참 다운되어 있던 심장 박동이 요동치고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폭발한다.

바닷물과 검은 피로 온몸을 적신 나는 나머지 감염체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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