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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5화 (15/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15화>

빠각!

입을 쩍 벌리며 날아오는 감염체 대가리를 개머리판으로 힘껏 후려 터트렸다.

그 사이 탄띠에서 산탄총 탄알을 손가락 가득 집어 하나하나 열심히 삽입한다.

달칵, 달칵, 달칵.

손이 꼬이고 빈틈이 생길 여력은 없다.

0.1초 찰나도 계획 속에 있어야 하며 기계처럼 생각하고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퍽!

철컥, 팡!

또 한 번 달려드는 감염체 오금을 후려 찬 뒤 찢어진 아가리에 납탄을 먹여준다.

총구에서 화염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어두운 해변 위 감염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놈은 1초 뒤 이놈은 지금 당장.

달아오르다 못해 과열된 신경은 시간을 늘어트리고 내 몸을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죽으려고 싸우는 놈 같구나.’

‘다른 사람이라고 다릅니까?’

철컥, 팡!

틱틱틱.

한 놈을 재빨리 저지하고 총구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순간 방아쇠가 멈췄다.

재빨리 걸린 탄을 빼려 했지만, 사각지대를 노리고 달려오는 감염체가 더욱 빠르다.

끼이이이이익 - - -!!

놈이 나를 덮쳤다.

몸은 그만 중심을 잃었고 어느덧 무릎까지 올라온 바닷물 안으로 빠지고 말았다.

첨벙!

까득, 까득. 까득.

딱딱딱!

오로지 몸을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들이미는 감염체 아가리를 필사적으로 밀어낸다.

입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뱉어낸 나는 허벅지 옆 나이프를 잽싸게 뽑았다.

푸슉!

버둥거리는 놈의 오른쪽 눈을 힘껏 찌른 뒤 손잡이를 끼기긱 옆으로 비틀었다.

꼬르륵!

그러자 손잡이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며 버둥거리던 놈은 곧 움직임을 멈춘다.

지체할 틈이 없다.

시체를 밀어낸 나는 즉각 토마호크를 뽑아, 수면 위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끼이이이이익 - - -!!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두 놈이 동시에 달려들어 아가리를 내민다.

‘여긴 다들 살려고 싸우는 거야.’

‘안 그러냐, 범석아?’

묵직한 토마호크가 손 위에서 회전한다.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킨 나는 한 놈을 피하고 그 반동을 이용해 대가리를 찍었다.

그리고 물 위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또 다른 놈을 집요하게 따라가 힘껏 내려찍었다.

끼아아아아악!

“입 닥쳐, 시발.”

콰직!

나는 몰아치는 파도와 튀어 오르는 뇌수 위에서 마지막 기억을 갈무리했다.

바다로 달려드는 모든 놈을 처리하고 나니 어느덧 숨을 턱 끝까지 차 있다.

온통 검은색투성이라 이곳이 어딘지, 부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가뜩이나 차가운 겨울 바다로 서서히 체온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끼이이이이익 - - -!

끼에에엑!

설상가상 저 멀리 총성을 듣고 반응한 감염체 무리가 추가로 달려오고 있었다.

강릉항까지 헤엄쳐서 가는 게 확률이 더 높을까, 아니면 여기서 이기는 게 더 나을까.

남은 체력과 두 가지 경우를 잠시 고민해 본 나는 결국 권총을 뽑아 장전했다.

아이,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체만 데리고 오는 거였는데 조금 후회된다.

책은 이 멍청함을 뭐라고 기록할까.

사각사각. 그는 아주 존나게 고독한 죽음과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할아버지 유산이고 희망 요새고 나발이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나버렸답니다.

나는 정면으로 총구를 겨눴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 - - - -!!!

그 순간 어둡고 고요하던 바다 위로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조명을 환하게 키운 선박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치라이트가 놈들을 밝힌다.

동시에 선루에서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거치된 총구가 총알을 쏟아냈다.

투두두두두! 투두두두!

여타 총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묵직한 총성과 공기를 짖는 호쾌한 파공음!

M2A1 브라우닝 중기관총.

공포의 대상이었던 감염체는 달려오는 족족 찢어지고 그 형체가 분쇄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는 나는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선박을 향해 헤엄쳤다.

첨벙!

어푸어푸, 마침 이를 발견한 선미에서도 밧줄이 달린 구명 튜브를 던져주었다.

“사장님!”

누군가 했더니 이번에도 강혜지다.

나는 할 일이 그렇게 없냐고 쏘아대던 과거를 반성하며 튜브를 낚아챘다.

투두두두두! 투두두두!

그 사이 중기관총은 울부짖는 감염체를 다짐육으로 만들며 바다에 염장시킨다.

“푸하!”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강혜지는 젖지 않은 수건을 황급히 건네주었다.

“혹시 오는 길에······.”

“두 분은 다른 배랑 만나서 이미 강릉항으로 돌아갔어요. 어디 물린 곳은 없으시죠?”

나는 황급히 상의를 벗어 그 어디에도 물린 자국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자 한참 감염체를 요격하던 선박이 다시 방향으로 돌려 강릉항으로 향했다.

뿌우우우우우 - -!

체력이 거의 한계까지 달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배는 도대체 뭡니까?”

“아까 낮에 구해주신 아이 엄마 기억하세요? 이 배 선장님이 남편분이세요.”

선루를 고개를 돌리자 한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참 기가 막힌 우연이기도 하지, 도움을 주었던 모녀의 남편이 이 배 선장님이었다니.

문을 열어주었던 자경단원도 그렇고, 저기 설치된 중기관총도 그렇고, 의도치 않았던 선행이 위기의 순간 나를 구한 것이다.

“제가 왜 신기하다고 했는지 이해되시죠? 사장님 같은 분은 참 오랜만에 봐요.”

“오랜만이요?”

“그냥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진 사람들끼리 이렇게 돕고 그랬거든요. 사장님만 보면 그때 향수가 그리워져요.”

강혜지는 자신이 입고 있던 녹색 점퍼를 벗어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덮어주었다.

무리하게 움직인 여파가 전해지는지 따뜻함과 살갗 냄새가 점점 수마를 불러왔다.

“바다 냄새 좋죠?”

그렇게 우리를 태운 선박은 어두운 바다를 밝히며 강릉항을 향해 나아갔다.

* * *

초겨울, 강릉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대규모 웨이브는 이른 헤프닝으로 끝이 났다.

아마 이른 계절 변화가 만든 변수였던 모양인데 감염체들도 혼란스러운 게 보였다.

화르륵!

하루 동안 치열하게 싸운 자경단원들은 열심히 감염체 시체를 치우고 불태웠다.

요새 정문은 다음 날 12시 정각쯤 완전히 개방되었고, 잠시 항구를 떠나있던 외국 선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왔다.

각자 소속 요새로 돌아가는 캐러밴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

콘크리트 벽에 남아있는 그을림 만이 지난밤 치열했던 전투를 알려주고 있었다.

“으, 시발 머리야.”

그리고 배 위에서 정신을 잃었던 나는 9시간가량을 넘게 잠들어 있다가 일어났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눈을 떠보니 안색이 좋아진 박강수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

“물 좀.”

“예, 예!”

싸우면서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으면 아직도 입 안에 모래와 짠 내가 남아있나.

나는 박강수가 가지고 있던 귀한 물을 받아 말라붙은 입안을 헹구고 삼켰다.

“애인 분은 좀 어때요?”

“무사히 수술 끝냈습니다! 한두 달만 더 요양하면 무사히 퇴원할 겁니다.”

그래도 죽을 위기를 겪어가며 구해 왔는데 픽 죽어버렸으면 조금 허무하지 않은가.

나는 표정이 많이 좋아진 박강수의 어깨를 툭툭 쳐준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읏차.”

“아! 벌써 일어나시게요?”

“슬슬 가야죠.”

어디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이런 병실 침대에 누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깨끗하게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박강수와 함께 털레털레 병실을 나섰다.

“앞으로 계획은 있습니까?”

“선박 일이나 조금 해보려 합니다.”

“캐러밴은요?”

“가지고 있던 차를 폐차해서요. 차근차근 다시 돈부터 모아서 시작해봐야죠.”

하긴 차가 그 꼴이 났는데, 요새를 오가야 하는 캐러밴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박강수와 함께 병실을 걷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 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일단 굴러가기만 하면 되니까, 트럭이라도 구해서 희망 요새까지 찾아오세요.”

“예?”

“물 가져다 팔면 금방 복구할 겁니다. 캐러밴 일, 앞으로도 계속하셔야죠?”

수요가 한창인 식수를 가져다 팔기만 해도 먹고 살만한 마진은 나올 것이다.

이에 박강수는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는 무슨.

어차피 이동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이쪽이 더 이득이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박강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뒤 상가 건물을 빠져나왔다.

짤랑, 짤랑.

불과 이틀하고 반나절도 안 있었던 것 같은데 체감상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왤까.

이젠 정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차 열쇠를 짤랑이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여기예요!”

택시 앞에는 늘 그렇듯 점퍼를 입은 강혜지와 총포상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에 말한 총과 탄약들은 모두 빠짐없이 실었어. 나머지는 자, 여기 받아.”

짐이 가득 실린 택시를 통통 두드린 할머니는 내게 열쇠 하나를 던져주었다.

“건물 명의는 젊은이 이름으로 바꿔놨으니까, 언제든지 다 가져갈 수 있을 거야.”

“제가 다 가져가면 뭐 먹고 사시게요?”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 없어. 우리 아들이랑 며늘아기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택시 안을 들여다보니 요새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들은 충분히 차고 넘쳐 보인다.

짧게 고민을 끝낸 나는 방금 받은 총포상 열쇠를 다시 할머니에게 건네주었다.

“나머지는 가지고 계세요.”

“으응?”

“손주 태어나면 선물은 주셔야죠.”

노인네가 주는 거 선물이라고 다 가져가 버리면 꿈자리가 흉흉해져서 싫다.

어차피 인원보다 많은 무기를 가져가봤자 지속적인 관리가 더욱 힘들다.

차라리 경험 많고 양심 있는 거래처를 하나 뚫어놓고 싸게 공급받는 편이 낫다.

“······언제든지 와, 젊은이.”

“예. 오래오래 사세요.”

총포상 할머니와 아쉬운 이별을 한 뒤 이제는 익숙한 택시 위에 올라탔다.

부르릉!

격하게 몰아서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시동을 걸 때마다 응답해주니 참 고맙다.

나는 요새 밖으로 나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차량 행렬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또 언제 오세요?”

그러자 터덜터덜 여기까지 따라온 강혜지가 운전석으로 팔꿈치를 올리며 물었다.

“글쎄요. 초겨울 동안은 아마 강수 씨가 오실 것 같으니 봄은 되어야 오겠죠.”

“아쉽네요.”

아쉽다는 말에 힐끗 바라보니 강혜지가 어느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사장님.”

“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

순간 어이가 없었던 나머지 이 어린 핏덩어리를 한 대 쥐어박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워낙 진지해서 매몰차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봐요.”

“네.”

“그쪽이 학생일 때 전 군인이었거든요?”

“나이가 중요하나요. 마음만 맞으면 됐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찢어지고 아물고, 문드러지고 해진 것이 바로 내 마음이다.

서로 아무리 맞춰본다고 한들 가시를 세운 톱니바퀴처럼 삐거덕 소리만을 낼 것이다.

“치.”

이런 진심을 읽었는지 강혜지는 입술을 삐죽이며 창문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젠장, 찝찝하게.

백미러로 뒤를 살피니 고개를 숙인 강혜지가 점점 차량과 멀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녀를 향해 외쳤다.

“언제 한번 놀러 와요!”

그러자 강혜지는 언제 기운이 빠졌냐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며 펄쩍 뛰었다.

뭐라 뭐라 외치기는 하는데 속도가 점점 붙은 탓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 언젠가는 다시 보겠지.

나는 그렇게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준 뒤 바다 내음 가득한 강릉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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