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20화 (20/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20화>

부르르릉, 끼익.

털털 떨리는 택시를 힘겹게 몰아 폴리텍대 요새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초소에서 우리를 확인하기까지 잠시 대기 시간을 가졌다.

‘신기하네.’

강릉항이 전형적인 항구 요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이곳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캠퍼스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저 요새 외벽에 그려져 있는 형형색색 그래피티를 보아라. 창립자들이 대학생이라고 하더니 그 분위기를 이어온 모양이다.

“안 열어주네요?”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요새 외관을 구경하며 추위에 떨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왕래가 잦다고 알려진 요새 치고는 고요하다 못해 너무 적막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이경태가 외벽 쪽으로 양손을 흔들며 고함을 외치려 했다.

“동장님?”

“잠깐 거기 계세요.”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제지하며 보조석에 두었던 카빈총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총을 조심스럽게 견착한다.

묘한 분위기를 읽은 나는 주변에 수상한 점이 없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눈이 쌓여있다.’

보통 사람과 차가 오가는 요새 정문은 수시로 눈을 치워 쌓이지 않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곳 폴리텍대 요새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갔다.

이틀? 혹은 삼일?

침입 흔적이 없음에도 외부와 왕래를 차단했다는 건 역시 내부 사정인가.

순간 KLF가 떠오르긴 했지만, 요새 규모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스읍, 판단하기 애매한데.

나는 혹시 몰라 견착한 총을 내리며 그냥 희망 요새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다.

“저기요!”

그 순간 주변을 살피던 이경태가 대뜸 요새 장벽 위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붉은 X자가 그려진 깃발 하나가 지붕에 걸려 있었다.

‘생존자 구조 신호.’

멸망한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구조 신호다.

동시에 여기 정말 좆되는 일이 있으니 미친놈이 아니면 오지 말라는 뜻도 있다.

그래, 이래 주면 고맙지.

고민하던 나는 그냥 돌아가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 했다.

“동장님.”

그런데 분명 택시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이경태가 어느새 카빈총을 챙겨 다가왔다.

달싹이는 입술, 움찔거리는 근육.

얼굴에는 어째 조급한 기색이 역력하다.

뻔하지, 뭐. 남도 아닌 어릴 적 친구가 여기 있으니 구하러 가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참 강직해서 좋은데 이럴 때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머리가 아프다.

“위험한 건 아세요?”

“······알고 있습니다.”

말해봐야 뭐하겠는가.

그냥 가자고 하면 또 혼자 남는다고 할 게 뻔하다.

시발, 미간을 찡그린 나는 수십 번의 고민 끝에 결국 타협안을 내놓았다.

“잠깐 확인만 하고 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우리 경태 때문에 아주 눈물이 나려고 하네.

요새로 돌아가면 그대로 이은서한테 모든 사실을 일러 사랑받게 해줘야겠다.

나는 다른 입구를 찾겠다고 나선 듬직한 어깨를 따라 털레털레 걸어갔다.

* * *

“잡으세요.”

탁!

이경태는 등산 로프와 갈고리를 이용해 등산로 바로 옆 철창을 가뿐하게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손을 잡고 올라온 나는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200m 앞에는 커다란 건물 두 채와 온갖 폐차들이 잠들어 있는 운동장이 보였다.

물론 그 어디에도 돌아다니는 생존자나 눈을 치운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철컥!

끼릭, 끼릭,

총은 되도록 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줄 모른다.

서로 마주 본채 총을 점검한 우리는 부무장인 권총에 소음기를 돌려 끼웠다.

“갑시다.”

그렇게 출발 준비를 끝낸 우리는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 요새 안으로 진입했다.

사박, 사박, 사박.

일단 확인할 곳은 두 곳, 바로 잠겨 있던 요새 정문과 깃발이 달린 건물이다.

딱 거기서 여기까지만 보고 나면 내부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겠지.

권총 총구를 앞으로 겨눈 나는 자세를 잔뜩 낮추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스으, 스으.

눈보라가 불기 시작하자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게 숨으로 체감이 된다.

준비해온 방한 옷을 코끝까지 올린 나는 관측 위치인 운동장에 도착했다.

‘쯧.’

그런데 하필 눈보라 불어 망원경으로 살필 수 있는 시야가 무척 짧아졌다.

온통 흰색으로 물든 세상과 바람 소리로 가득한 청각. 이러다가 방향감까지 잃겠다.

렌즈를 가리는 눈을 탈탈 털어낸 나는 결국 기억 속 가장 가까운 건물로 향했다.

사박, 사박, 사박.

탁.

앞으로 손을 뻗자 마침 갈색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톡톡.

그런데 갑자기 내 뒤를 잘 따라오던 이경태가 다급히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소리.’

‘소리?’

나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 거친 바람을 뚫고 전해지는 소음에 집중했다.

“- - - - - -.”

들린다. 이경태 말대로 이 건물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음이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큰 요새가 함락될 리 없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정문을 잠가둔 건지는 몰라도 불안한 마음이 한결 가셨다.

우리는 혹시나 오해할 사람들을 위해 권총을 집어넣고 출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려는 순간.

그으으으윽, 끄으으으······.

잔뜩 예민해진 내 귓가로 바람 소리가 뭉개던 소음이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탁!

나는 문으로 다가가는 이경태를 황급히 밀어낸 뒤 하얀 눈밭 위에 납작 엎드렸다.

‘쉿.’

그러자 우리 머리 위 창문으로 웅성거림인 줄 알았던 소리가 스윽 지나간다.

그으윽, 끅, 그그끅.

감염체다.

감염체 하나가 우리 소리를 들었는지 꺽, 꺽 소리를 내며 복도를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곧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는지 왔던 방향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허억, 허억.

코와 입을 막고 있던 이경태가 그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눈을 떨었다.

겁에 질려 있을 시간이 없다.

냉철하게 머리를 굴린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밖으로.’

뭐 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이건 무조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정답이다.

우리는 바닥에 포복한 채 건물을 빠져나와 가로질러 왔었던 운동장으로 기어갔다.

설마하니 내부 감염이 터졌을 줄이야.

도대체 사람들은 뭘 했길래 예비 감염자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요새를 내주었는가.

나는 거의 1년 만에 목격한 대참사에 낭패를 느끼며 열심히 바닥을 기어갔다.

“- - - - - -!”

그런데 이번에는 눈보라 사이로 무언가 희끗희끗한 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살며시 상반신을 들어보니 이미 수많은 감염체가 운동장 가로지르고 있었다.

촤악!

나는 곧바로 뒤따라오던 이경태의 멱살을 끌어 폐차된 트럭 아래로 들어갔다.

치이익, 치이익.

그러자 채 30초도 되지 않아 우리 바로 옆으로 감염체가 발을 끌며 지나간다.

눈보라 때문에 놈들도, 우리도 서로의 존재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제가 유인하겠습니다.’

자신이 고집을 부려 나까지 위험에 빠트렸다고 생각한 걸까,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이경태가 결연한 얼굴로 수신호를 보냈다.

퍽!

하지만 나는 진심이 담긴 펀치로 대가리를 후리는 것으로 뱉을뻔한 욕설을 대신했다.

누구를 병신으로 보나.

들어오는 건 나도 동의한 거고, 이 상황을 안일하게 이끌었던 건 내 잘못이다.

여기서 이경태를 미끼로 쓰고 도망치면 돌아가서 이은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요즘 감이 좀 무뎌진 감이 있지.

나는 눈으로 푹 젖어버린 얼굴을 쓸어내린 뒤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스으으윽, 스으윽.

그리고 바로 건너편 감염체가 지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차 밑에서 빠져나왔다.

‘숙여서 따라와.’

우리가 들어왔던 출입구는 이미 운동장을 빼곡 채운 감염체로 인해 막혔다.

차라리 눈보라가 심한 지금 놈들의 눈을 피해 여기서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그 깃발, 분명 대학 본부 건물이었지.

적어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면 우리도 살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폐차와 폐차 사이를 열심히 기어 어슬렁거리는 감염체를 피해 갔다.

스으으, 스으으.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오면 멈춰서고, 지나가면 다시 움직이는 상황의 반복.

놈들이 뒤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본능이 당장 일어나 도망치라고 외친다.

꽈악!

하지만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움찔거리는 이경태를 붙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된다.

저 멀리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대학 본부와 펄럭이는 깃발이 마침·········.

잠깐, 보인다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점차 눈보라가 가시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끄륵, 큭, 끄으끅.

끼이이익?

동시에 반경 유효 거리 안에 있던 모든 감염체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컥.

나는 한 치 망설임 없이 홀더 속 권총을 뽑아 바로 앞 놈의 대가리를 날렸다.

딱!

콰직!

“뛰어!”

사방으로 터지는 감염체의 뇌수를 시작으로 우리는 건물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끼이이이에에에엑 - - -!

한 마리가 뒤따라온다.

그 뒤로 두 마리, 세 마리, 이어 수십 마리로 불어난 감염체 덩어리가 폐차 위를 까맣게 물들인다.

그 광경은 단순한 추격이 아닌 골진 홈으로 물이 모이는 관성을 보는 것 같았다.

철컥!

탕! 타앙! 탕탕탕탕!

재빨리 카빈총을 뽑아 들어 앞길을 막아서려는 감염체들 대가리를 날렸다.

깜짝 놀란 이경태가 가담하려고 했지만, 나는 고함을 내지르며 앞을 가리켰다.

“뛰라고, 이 새끼야!”

존댓말을 할 여유조차 없다.

시원하게 욕설을 내지른 뒤 다시 앞으로 총구를 겨눴다.

탕! 탕탕탕! 탕! 탕!

총성이 울리고 화염이 튄다.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감염체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후욱, 후욱.”

하지만 겨우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잔탄을 주저 없이 흩뿌린 나는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두 번째 탄알집을 장전했다.

끼이이아아아악 - - -!!

그 순간 사각지대로 파고든 감염체 하나가 오른쪽 측면을 노리며 달려왔다.

젠장, 손이 꼬였다.

“으아아아아 - - -!!”

퍽!

하지만 어느새 나타난 이경태가 감염체를 향해 태클을 걸며 함께 바닥을 구른다.

놈은 금방이라도 목을 물어뜯을 듯 이빨을 딱딱거리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피하세요!”

피하기는 개뿔.

나는 감염체를 향해 잽싸게 달려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렸다.

“먼저 가서 엄호나 해!”

손을 잡고 일으켜주자 속박에서 풀려난 이경태가 허겁지겁 건물을 향해 뛰어간다.

찰캉!

그 사이 노리쇠를 당겨 장전을 끝낸 나는 어김없이 총을 발사해 추격을 저지했다.

탕! 탕탕탕! 탕!

머리, 머리, 또 머리.

아무리 감염체를 걷어내도 마치 파도처럼 몰려온다.

“이쪽! 이쪽으로!”

“여기예요!!”

대학 본부 건물 창으로 수많은 생존자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아우성치며 3층 창문으로 밧줄을 내려주었다.

탕! 탕! 타앙!

삐이이이이 - - 퍼석!

먼저 건물 앞까지 도착한 이경태가 앉아쏴 자세로 뒤따라오는 감염체를 쓰러트린다.

엄호를 순풍 삼아 달려온 나는 3층에서 내려온 밧줄을 향해 미친 듯이 손짓했다.

“올라가!”

그러자 이경태는 재빨리 총구를 내리며 내려온 밧줄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으아아, 이러다 잡히겠다!

바로 뒤까지 감염체가 따라온 것을 느낀 나는 거의 몸을 날리다시피 밧줄을 잡았다.

끼아아아아악 - -!

끼기긱, 끼이익!

힐끗 뒤를 바라보니 수백 마리 감염체가 서로의 몸을 밟으며 손을 뻗는다.

그 속도가 의외로 얼마나 빠른지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내 발목이 잡힐 것만 같았다.

“지금이에요! 던져요!”

생존자들은 밧줄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창밖으로 불붙인 화염병을 던졌다.

쨍그랑!

화르르륵!

꽉꽉 채운 휘발유 속에 설탕과 고무 조각까지 넣어서 만든 제대로 된 화염병이다.

몰려온 감염체들은 곧 불길에 휩싸이며 피부와 살이 서로 엉겨 붙고 허물어졌다.

“동장님!”

“잡으세요!”

그 광경에 잠깐 감탄하는 사이 창밖으로 이경태와 처음 보는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옳다구나 그 손을 하나씩 낚아챈 나는 굴러 넘어지듯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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