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23화 (23/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23화>

‘한 발.’

탕!

‘두 발.’

탕!

모든 걸 방아쇠에 집중한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떠한 외부적인 요인도 느껴지지 않는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감염체가 쓰러졌고 오른쪽 어깨는 찌릿한 반동이 올라온다.

탕!

“동장님!”

그 순간 집중이 깨졌다.

본능적으로 창문 유리를 잡으니 차가 위태롭게 우회전하며 스키드를 남겼다.

끼이이이익!

쾅! 쨍그랑!

차량을 향해 달려들던 감염체 두 놈이 그대로 범퍼에 치여 곤죽이 된다.

몸이 옆으로 쏠린다.

이를 악문 이경태는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꺾어 중심을 잡았다.

기우뚱.

덜컹!

하마터면 사방에서 달려드는 감염체 사이에 갇혀 차량이 뒤집힐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반대편을 확인했다.

‘됐다.’

우리가 택시로 시선을 끄는 사이 대학 본부 건물에선 본격적인 대탈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계획했는지 건물을 빠져나오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반대편으로 돌아요!”

지금이 적기라는 걸 인지한 나는 뒷좌석 가방에서 붉은 조명탄을 꺼냈다.

찰칵, 치이이익!

그러자 이경태를 기다렸다는 듯 경로를 꺾어 감염체 사이를 가로질렀다.

흐릿한 눈보라 속에서 흔들리는 붉은 조명탄, 놈들이 아주 발광할만하지.

지금쯤 요새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감염체는 우리를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끼이이이익 끽!

타앙! 탕!

산발적으로 뛰어오는 놈들은 내가 처리하고 이경태는 곡예 운전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쓰러질 듯 말 듯 약 2분가량 호흡을 맞추자 어느덧 총알도 다 떨어졌다.

“반 바퀴 더 돌까요!?”

“이제 빠져나갑시다!”

슬슬 시간을 끄는 것도 한계다.

이제 놈들을 밖으로 유인하는 일만 남았다.

뒷좌석에 카빈총을 집어 던진 나는 들고 있던 붉은 조명탄을 하늘 높이 던졌다.

무기고까지 잘 도착했기를.

우리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덜컹! 끼이이익!

포위망을 도망친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샛길로 빠지며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양옆이 건물과 비탈길로 가로막힌 탓에 감염체들은 더 이상 추격해오지 못했다.

하아, 이게 진짜 되는구나.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끼아아아아악 - - -!!

쨍그랑! 콰직!

그 순간 기어코 먹잇감을 포기하지 않은 감염체 무리가 건물 유리창을 뚫었다.

1층은 물론, 2층과 옥상에서 팔을 앞으로 뻗은 감염체가 후두둑 샛길로 떨어진다.

다리가 부러지고 서로의 몸을 밟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검은 파도.

위에서 떨어지는 감염체를 발견한 이경태는 다급히 옆으로 운전대를 꺾었다.

끼이이익!

하지만 올 때부터 위태롭던 차량은 타이어 한쪽이 빠져나가며 기우뚱 기울고 만다.

쾅!

몸이 붕 뜬다.

옆으로 튕겨 나간 차량은 그대로 전복되며 비탈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쾅, 쾅!

한 바퀴, 두 바퀴, 필사적으로 손잡이와 흔들리는 이경태를 붙잡고 버텼다.

동시에 머리와 어깨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삐이이이 이명이 찾아왔다.

쿵!

차가 가까스로 멈췄다.

나는 붉게 물든 시야와 이명으로 혼란스러운 와중 운전석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이경태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텅!

문을 발로 차 연 다음 전복된 차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미동이 없는 이경태를 끌어냈다.

끼이아아악!

끼기긱! 끽!

포기 좀 해라, 이 지겨운 새끼들아!

그 와중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감염체가 비탈길 아래로 우르르 쏟아진다.

나는 이경태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거칠고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허억, 허억!

숨이 거칠고 이명이 끝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앞을 걷고 있는 건지 쓰러져서 버둥거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뚜렷한 생존 본능만큼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강제로 움직이게 한다.

“동, 동장님······.”

때마침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던 이경태가 의식을 되찾았다.

“건물로 뛰어요!”

다행히 목소리에 반응할 정신은 있었는지 건물을 향해 비틀비틀 뛰어간다.

철컥!

딱! 딱딱! 딱!

벌써 여기까지 왔다.

권총을 뽑아 비탈길을 내려오는 감염체를 쏴 죽였다.

동시에 이경태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콰직! 두두두두!

1층 문이 부서지며 놈들이 추격해온다.

옥상으로 올라온 우리는 곧바로 철제문을 닫고 온 힘을 다해 진입을 틀어막았다.

끼아아아악!

쾅! 쾅쾅쾅! 쾅!

계단으로 몸을 우겨놓은 감염체 놈들이 철제문을 미친 듯이 두들긴다.

오래된 경첩이 끼기긱 위태로운 소리를 내는 것을 보아 뚫리는 것도 곧일 터.

나는 이젠 정말 최후가 왔다는 것을 인지하며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제가 신호하면 반대편 옥상으로 뛰어요.”

거리가 닿을지, 안 닿을지는 가늠이 안 되지만 이 방법 말고는 없다.

철컥!

나는 권총에 마지막으로 남은 탄알집을 장전하며 토마호크를 뽑아 들었다.

쿵, 쿵, 쿵. 그리고 서서히 비틀어지는 경첩에 맞춰 이경태를 먼저 보내려 했다.

빠아아앙! 빠아앙!

하지만 그 순간 묵직하게 울리는 클락션 소리가 지쳐 쓰러진 나를 일으켰다.

다급히 소리를 쫓아보니 서치라이트가 달린 무장 버스가 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무기고까지 도착했구나!

김가은은 변고를 눈치챘는지 무장한 버스를 끌고 나와 우리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빨리! 조명탄!”

치익, 칙!

이경태는 가방에서 마지막 남은 붉은 조명탄을 꺼내 허공에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러자 무장 버스가 짙은 눈보라를 뚫으며 건물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드르르륵! 드르륵!

쾅! 콰직, 쾅!

온갖 개조란 개조는 모조리 다 한 무장 버스는 감염체를 숫제 갈아냈다.

그 모습이 든든하다가도 반쯤 뜯겨나간 철제문이 시간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린다.

콰직! 쾅!

“뛰어요!”

이경태를 앞으로 밀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뚫리며 감염체가 쏟아져 나왔다.

딱! 딱! 딱딱 딱!

순식간에 탄알집 하나를 비워낸 나는 옥상 난간을 타며 미친 듯이 달렸다.

우르르 몰려온 감염체는 아가리를 벌리고 손을 뻗어오며 아슬하게 거리를 좁혔다.

탁!

앞을 보자 먼저 뛰어간 이경태가 반대편 건물 옥상에 힘겹게 착지했다.

이를 본 나는 마치 곡예를 하듯 난간을 뛰어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닿아라!’

부유감이 느껴진다.

극에 달한 집중과 아드레날린 탓인지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탓일까, 허우적거린 손은 간발의 차로 닿지 않는다.

추락.

오직 그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탁!

하지만 그 순간 난간 너머로 몸을 내민 이경태가 추락하는 손을 붙잡았다.

“끄으윽!”

스쳐 지나가던 주마등이 무색하게 나는 중력을 거스르며 난간 위로 올라왔다.

“허억, 헉!”

방금 그게 마지막 힘이었다.

이경태는 바닥에 쓰러졌고 힘겹게 위로 올라온 나 또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드르르륵! 드륵!

투타타타타!

그 사이 김가은이 이끄는 무장 버스가 도착했는지 호쾌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생존자를 괴롭히던 감염체들은 쏟아지는 납탄에 모조리 쓸려나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친 눈보라 사이로는 오랜만에 보이는 햇빛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진짜 질기다, 질겨.

바닥에 대자로 누운 나와 이경태는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

사실 프락치 남성을 처음 잡았을 때만 해도 이곳을 너무 고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겉으로만 보면 일단 외벽도 높지 않고 방어 시설도 거기서 거기인 요새였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곧 폴리텍대 생존자들이 만든 무기를 보고 싹 바뀌게 되었다.

쾅! 콰앙!

드르르륵! 드륵!

감염체를 통째로 밀어버리는 무장 버스부터 시작해서 온갖 총기를 카피한 사제총기.

그리고 화염병은 귀엽다고 웃을 화염방사기와 쏴도 쏴도 모자라지 않는 재생 탄까지.

무기고에서 뛰쳐나온 폴리텍대 생존자들은 마치 분풀이하듯 감염체를 갈아버렸다.

이거······도와줄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가 벌인 활약이 무색하게 감염체 토벌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아파.”

“참아, 병신아. 덩치만 커서.”

이경태가 엄살을 떨자 옆에서 빨간약을 바르고 있던 김가은이 머리를 후린다.

물론 먼저 폭력 진료를 당한 나는 버스 한편에 가만히 누워 킥킥 웃고 있었다.

“둘 다 제정신 아니죠? 자칫하면 거기서 죽을뻔했는데 지금 웃음이 나와요?”

지금 생각해보면 잘 굴러가지도 않는 고물 택시로 참 미친 짓을 한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이렇게 웃고 있는 나도, 경태도 그때 무슨 정신으로 뛰어들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런 정신 나간 짓으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그래도 고마워요.”

“뭐라고? 안 들리는데?”

“고마워! 고맙다고! 진짜로······.”

내부 정리가 끝나는 대로 김가은이 희망 아파트 요새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을 이끄는 리더심, 정의로운 성향과 기꺼이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대담함.

자경단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있어 이러한 합류는 가뭄의 단비였다.

통통.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주변 일대를 정리하는 전투가 끝났는지 시끄럽게 울리던 총성이 멎었다.

이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무장 버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요새를 득실거리던 감염체 무리는 어느새 한쪽에 쌓인 시체 더미로 변해있었고,

이 더미를 휘발유를 부어 태우는 매캐한 검은색 연기만이 사방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잔당을 처리하는 데만 2~3일, 정상화는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린다고 했던가.

그나마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 속속히 발견되어 다행이지, 피해가 조금만 더 컸어도 폴리텍대 요새는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선물을 준비하셨다는데요?”

“예?”

주변에는 어느새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비록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큰 신세를 진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자 모인 것이다.

부르르릉!

그리고 마침 사람들이 선물이라고 준비했다는 ‘그것’ 또한 차고를 열고 등장했다.

“택시가 고장 나셨잖아요. 그걸 고쳐드리는 것보다 새로 하나 드리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회의 끝에 한 대 준비했습니다.”

순간 험비를 연상케 하는 ‘포드’ 픽업트럭이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차 보닛을 통통 내려친 한 엔지니어 생존자가 잘 빠진 붉은 도색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체는 용접으로 추가 보강했고 엔진은 기존 거보다 두 배는 더 강하실 거예요. 이젠 탈 거 걱정은 없으실 겁니다.”

설마, 설마! 선물이라고 가지고 온 물건이 잘빠진 픽업트럭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정도 연식이랑 개조 상태면 당장 고물 택시 10대는 더 주고 사 올 터인데.

나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차를 더듬으며 붉은 보닛을 볼에 가져다 대었다.

“어때요?”

“······끝내줍니다.”

내가 감탄을 터트리자 김가은과 생존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KLF에 대해선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봐요. 임시 본부 쪽에선 앞으로도 쭉 희망 요새와 직접적 교류하며 이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일시적인 협력. 뭐 그런 거요?”

“아뇨, 끈끈한 동맹을 원합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무력으로 지원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연합에도 합류하는 그런 완전한 형태의 무장 동맹이요.”

요새 동맹.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 앞에 나는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깨지고 금이 간 인간 불신의 틈을 메운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인간관계였다.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온갖 위기를 겪고, 또 이겨낸 ‘그’는 폴리텍대 요새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렸다. 이는 단순한 이득 관계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다는 이타심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그’의 헌신에서 진심을 읽었고 앞으로 다가올 위험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힘을 합쳐야 할 때가 왔다. 폴리텍대 요새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기로 했으니 이는 외부의 위험에 맞서 싸울 첫 번째 요새 동맹이자 강릉을 바꿀 변화의 바람이었다.]

[다음 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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