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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36화 (36/180)

36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36화

삐이이이이이 - - - 펑!

수십 개 조명탄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언덕 위에서 주둔지를 공격하고 있던 KLF 부대는 얼떨결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지? 이런 건 명령에 없었는데?

부대장 대신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상급 간부는 주섬주섬 무전기를 꺼내려 했다.

콰아아아아앙 - - - -!!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박격포 탄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간부는 폭음과 함께 산화해버렸고 남은 것은 사방으로 터져나간 살점뿐이다.

찰나의 정적이 흐른다.

바로 앞에서 상관의 죽음을 목격한 KLF 단원이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질렀다.

“적이다!”

콰아아앙!

기다렸다는 듯 KLF 부대가 배치된 언덕 위로 박격포 탄들이 쏟아진다.

쾅! 삐이이이이 - - -쾅!

한 대가 아니다.

적어도 중대급 화력을 구사하는 적들이 후방에서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오직 주둔지 공격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KLF 부대는 화력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적 위치! 적 위치를 찾아!”

“보, 보이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어둡고 흐린 밤, 포구 화염이 적은 박격포라 그 위치를 찾기 힘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가중되고 연락이 끊기는 분대가 점차 많아진다.

KLF는 결국 각 지휘 간부를 따라 사방으로 중구난방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었어.’

박범석을 생포하라 뒤늦게 합류한 부대장은 쑥대밭이 된 부대를 보며 이를 갈았다.

어디서부터가 함정이었나. 오영창? 설마 그 프락치가 뒤통수를 친 건가?

아니,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만약 여기서 공격 부대를 잃게 되면 KLF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만다.

“한 지점으로 모여! 여기서 흩어지면 괴멸이야! 최대한 한 지점으로 분산 집결해!”

언덕만 벗어나면 된다. 잘 훈련된 부대인 만큼 반격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부대장은 폭격이 진행되는 전장 한가운데서 이탈하는 인원을 통제하려 했고,

점조직처럼 흩어져 있던 KLF 부대 통제권은 점차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빠져나가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전열을 재정비 후 부대를 공격한 적에게 반격을 가하고 싶다.

하지만 주둔지를 공격하는데 이미 많은 탄약을 소모했고 피해 또한 막중하다.

강중식 대령은 몰라도 자신만큼 KLF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대장은 어쩔 수 없이 후퇴 명령을 내리며 나머지 인원만이라도 수습하려 했다.

삐이이이이이 - - - 펑!

번쩍!

하지만 안타깝게도 함정을 판 상대는 자신들을 쉽게 놔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도로 차량 출현!”

“적입니다!”

조명탄이 또 한 번 터진다.

저 멀리 어둠을 가르는 차량 서치라이트와 함께 무장 트럭이 일렬로 달려온다.

그들은 능숙하게 퇴로를 차단하더니 곧 거치된 기관총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제기랄······.”

부대장은 권총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고작 민간인 생존자다.

고작 요새 뒤에 숨어 사는 쓰레기들 따위에게 패배와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

치욕, 자괴감, 양양에서 쫓겨 내려왔던 지난날의 과거가 그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물든 그 감정들은 곧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당장 반격 안 하고 뭐 하나! 포위망을 뚫어! 기껏해야 촌구석 민병대들이다!”

부대장은 주춤거리는 KLF 단원들은 억지로 앞으로 밀며 고함을 질렀다.

“총알이 부족하면 자폭이라도 해! KLF는 여기서 패배하지 않는다!”

퇴로는 없다. 배수진을 쳐라.

지휘관의 독려 아닌 독려에 KLF는 마지막 여력을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과감하게 던진 패가 판을 흔들었다.

* * *

이번 작전은 도박성이 조금 짙었다.

KLF가 확실히 공격해올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시간 또한 정확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작전을 전해 들은 강릉항 김춘식 회장과 김가은 씨는 둘 다 동의를 표했다.

그들이야말로 전황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수가 필요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은밀하게.’

전선을 유지하는 척, 강릉항 요새에서 박격포와 무장 차량을 전부 투입했다.

마찬가지로 폴리텍대는 노련한 전투 인원만을 추려 호위팀과 합류시켰다.

요새 동맹의 모든 전력이 집중된 지금.

적의 머리 위로 퍼붓는 고폭탄 폭격을 시작으로 두 세력 간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삐이이이이이 - - - 펑!

두 번째 조명탄이다. 나는 곧바로 위장막을 치운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한 시간째 노려보고 있던 정면 언덕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 - -!!”

그것이 출발 신호였다.

내가 뛰쳐나가자 함께 대기하고 있던 모든 요새 동맹군이 뒤를 따라 달려왔다.

만약 여기서 KLF 부대가 우리를 발견한다면 사이좋게 죽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

하지만 나와 그들은 망설임 없이 눈을 해치며 위로, 또 위로 올라가기만 했다.

후욱, 후욱.

그렇게 마지막 발을 딛는다, 거친 숨과 함께 고개를 들자 어느덧 언덕 고지 위였다.

탁!

마침 언덕 아래에는 양측 간 교전을 벌이는 상황이 탁 트인 시야에 들어왔다.

척, 척, 척!

내가 한 손을 들자 어느덧 여기까지 올라온 요새 동맹군들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투다다다다다다 - - -!!

드르륵! 드르르륵!

동시에 일제 사격을 개시한다.

후방이 노출된 KLF 부대는 등판이나 머리가 꿰뚫려 바닥에 쓰러진다.

끄아아아악!

후, 후방에 적이다.

타앙!

어두운 눈보라 사이로 반짝이는 총성과 날아가는 탄피가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나는 규칙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또 조준점을 옮기며 무아지경으로 적을 죽였다.

10개월을 어미의 배 속에서 자라 수십 년을 인간으로서 살아왔을 그들은.

타앙!

고작 조그마한 납탄 하나에 너무나 쉽게 쓰러지고, 또 너무나 쉽게 죽었다.

철컥, 철컥.

또 탄알집이 비었다.

빈 방아쇠를 당기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참고 있던 숨을 훅 내뱉었다.

‘고착.’

총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지고 온 탄약을 모두 쏟아부었다.

끝까지 공격을 저지하려 했던 KLF는 어느덧 와해 직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휘관이다.’

그리고 희끗거리는 조명탄 불빛 사이로 제복을 입은 한 남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휘관이 분명해 보이는 그는 부하들과 엄폐물이 이어진 퇴로로 후퇴하고 있었다.

도망치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총 대신 토마호크를 뽑고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스릉!

“가자!”

“으아아아아아!!”

그러자 나머지 인원들도 이를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본격적인 돌격을 시작했다.

활로를 찾아 후퇴하려는 KLF. 양쪽에서 우르르 쏟아져 달려오는 요새 동맹군.

곧 마지막 조명탄이 흐려지자, 양측은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뒤섞여 육탄전을 벌인다.

“죽여버려!”

“커억, 컥!”

손에 잡히는 건 무기가 된다. 적과 함께 눈밭을 굴러 붉은 피를 흘리게 한다.

KLF에 가족과 친구, 터전을 잃은 요새 동맹군은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고,

마찬가지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놈들 또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전장이 선사하는 격한 고양감.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졌다.

“빨리! 빨리!”

한참 무장 트럭과 교전하던 KLF 기관총 사수들이 다급히 위치를 옮기려고 한다.

후웅!

나는 도움닫기와 동시에 들고 있던 토마호크를 기관총 사수를 향해 던졌다.

콰직!

한 바퀴, 두 바퀴,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간 도끼날이 정확히 머리를 관통한다.

“이, 이이익!”

동료가 죽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사수가 허겁지겁 권총을 뽑으려고 했다

퍽!

하지만 나는 한 발자국 먼저 뛰쳐나가 놈을 쓰러트린 뒤 함께 바닥을 굴렀다.

“끄르륵······!”

장딴지 옆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동시에 버둥거리는 놈의 목을 그어버리고 피와 얼음이 뒤엉킨 토마호크를 회수했다.

뜨거운 피가 꿀렁인다.

반대로 휘날리는 눈보라는 차갑다.

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관이 도망쳤던 퇴로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으아아아아!!”

그런데 그 순간 총상을 입은 한 KLF가 처절한 고함을 지르며 무언가를 들었다

그것은 수류탄. 적과 아군이 뒤섞인 아비규환의 공간에서 수류탄 핀이 뽑았다.

달칵!

저지할 틈도 없었다.

고막을 찢는 커다란 폭발과 함께 주변 아군과 적군 모두를 폭사시켰다.

나는 재빨리 양팔을 교차했다.

콰아아아앙 - - - -!!

폭발에 휘말렸다.

몸이 뒤로 부웅 뜬다.

의식은 마치 수명이 다한 필라멘트처럼 치지직 끊어졌다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한줄기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털썩!

살점을 하나하나 찢는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속이 답답하다. 솟구치는 피를 게워내며 거칠게 기침했다.

살아는 있는 건가? 삐이이 울려대는 이명 탓에 기침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눈과 피, 진창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내리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후욱, 후욱”

고함과 총성이 난무하던 눈밭 위 전장은 어느새 요새 동맹군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점조직처럼 퍼져 저항하는 KLF 잔당들만 처리하면 곧 끝이 날 게 분명한 상황.

하지만 집단끼리 벌이는 싸움이라는 건 결국 대가리를 따야 끝나는 법이다.

가자, 계속.

늘 그래왔듯.

나는 삐거덕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도망친 KLF 지휘관을 추격했다.

탁, 탁, 탁, 탁!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버려진 주유소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빨리 출발하란 말이야!!”

“시, 시동이 안 걸립니다!”

추운 날씨 탓에 차가 멈췄는지 군용 레토나 한 대가 갓길 옆에 주차되어있다.

간부로 보이는 남자가 연신 단원을 재촉해보지만, 시동이 안 걸리는 건 매한가지다.

나는 보유 총알이 몇 발 남지 않은 콜트 파이슨을 뽑아 놈들을 향해 조준했다.

투캉!

콰직!

시동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운전병이 가슴팍이 뚫려 픽 쓰러진다.

이에 깜짝 놀란 호위병들은 황급히 차량 뒤에 숨으며 나를 향해 응사했다.

투두두두두!

여태 만난 KLF 간부들은 하나같이 맹탕이더니 이놈은 조금 나은 편이다.

나는 날아오는 총알을 엄폐해 피한 뒤 주유소 건물 뒤편으로 돌아 각을 바꿨다.

타앙!

퍽!

“끄아아아악!”

삐쭉 나와 있는 허벅지를 쏴주었다.

그러자 정신없이 총을 난사하던 호위병 중 하나가 비명과 함께 자빠진다.

이제 남은 건 고작 두 명.

그나마 남아있던 평정심마저 무너진 놈들은 추격자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챘다.

“놈, 놈이 여기 있습니다! 그놈이 여기까지! 안돼, 안돼······! 아아, 으아아아!”

마지막으로 남은 호위병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쳤다.

“이런 미친 새끼! 당장 돌아와!”

이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간부는 도망치는 호위병을 향해 총구를 돌리려 했다.

타앙!

그 틈을 놓치지 않는 나는 운전석 너머로 드러난 머리를 향해 총으로 쐈다.

퍼석!

관자놀이가 꿰뚫린 간부는 움직임을 멈췄고 이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더 이상 남은 적은 없었다.

피를 뱉어낸 나는 피가 질질 새는 다리를 절뚝이며 군용 레토나를 향해 다가갔다.

철컥.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작은 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총구를 앞으로 겨눈 채 천천히 레토나 뒷문을 열었다.

“············.”

차 안에는 좌석에 등을 기댄 KLF 부대장이 힘겹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디 눈먼 총알이라도 맞은 걸까?

가슴팍이 전체가 피로 물든 것으로 보아 곧 산송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믿을 수······없군. 너는 도, 도대체.”

“아가리 닥쳐, 새끼야.”

나는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린 뒤 놈의 멱살을 잡고 차량으로 끌고 나왔다.

포로? 인위적인 대우? 그딴 거 없다.

상판을 마주하자마자 떠오르는 기억은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기 충분했다.

콰직!

주먹으로 얼굴을 후렸다.

체념하고 있던 부대장은 코가 짓뭉개는 고통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콰직!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놈의 재수 없는 면상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그것은 사법의 형벌도, 신의 천벌도 아닌 죽어간 이들의 처절한 울분이었다.

“끅, 끄윽.”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놈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목젖을 컥컥 움직였다.

참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아니, 원래 고통이라는 게 그래.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버튼과 같거든.

콰직!

이렇게 눌러주면 후회하고,

적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니까.

제발 그만. 제발 그만.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놈은 눈물과 침을 질질 흘렸다.

반짝!

부우우우웅 - - !

마침 저 멀리, 사라진 나를 찾으려는 동맹군 무장 차량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만 퇴장하자고.”

나는 콜트 파이슨의 실린더를 열어 놈을 위해 준비된 탄알 하나를 장전했다.

철컥!

그리고 이마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처절했던 생존 싸움의 마지막을 알렸다.

“이번 화 끝났으니까.”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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