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41화
끼익!
굽이진 도로를 거슬러 올라온 선발대는 계획한 대로 대관령휴게소에 멈췄다.
하지만 생존자 캠프가 있다던 이곳에는 그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닫혀 있어야 할 문은 을씨년스럽게 끼익, 끼익 흔들리며 우리를 반겼다.
파스슥.
생존자들이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벽난로 재를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떠난 건 한 일주일?
곳곳에 남은 생활 흔적으로 보아 구성원은 한 15~20명으로 추정이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귀한 식량과 물자도 챙기지 못한 채 도망쳤을까.
나는 손에 묻은 재를 털며 음산한 기운이 풍기는 대관령휴게소 내부를 둘러봤다.
“동장님, 주변 확보 끝났습니다.”
“물자 내리시고 바리케이드랑 철조망 설치하세요. 당분간 여기서 지낼 겁니다.”
언제 어디서 감염체가 올지 상황이니 건물을 거점화 시켜둘 필요가 있다.
이에 동의한 가은 씨는 바삐 움직이는 선발대 인원을 따라 물자를 하역했다.
그사이 나는 휴게소 옥상으로 올라가 무전을 시도 중인 김태식을 향해 다가갔다.
“강릉항과는 연결됐습니까?”
“신호 강도가 조금 약하긴 합니다만, 뭐, 출력만 올려주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무전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비교적 고지대라 신호가 닿는 모양이다.
나는 능숙하게 무전기를 만지는 김태식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구조 신호는요?”
“응답이 없네요. 아마 거기서 빠져나왔거나 이미 당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주인을 잃은 구조 신호가 전파상을 맴도는 일이야 요즘 세상에선 흔한 일이다.
저기 경기도 일대만 가도 주파수를 변경하는 족족 비명을 들리는 건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휴게소에 남아있는 흔적과 구조 신호가 말한 시기가 미묘하게 겹치더군요.”
“캠퍼가 그쪽으로 이동했단 소립니까?”
“거리가 1.2km도 되지 않습니다. 도보로 이동했으면 도망칠 곳은 뻔하죠.”
그럴싸한 추측이다. 김태식은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녹이며 잠시 고민했다.
“왜 굳이 휴게소를 떠났을까요?”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조금 알아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감염체 때문이라면 놈들의 이동 경로를 한 번 파악해봐야 하니까요.”
감염체가 어디로 유입되는지를 쫓으면 군락 위치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태식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인원은······.”
무작정 남대천 상류로 향하는 것보단 남은 흔적을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나와 김태식은 정찰 시간을 정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파스스스스스 - - - -.
“?”
그런데 그 순간 어둠이 짙게 깔린 산속에서 알 수 없는 흔들림이 느껴졌다.
거의 동시에 대화를 멈춘 우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방금 뭐였습니까?”
파스스 흔들리는 산속 떨림이 시시각각 휴게소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찌릿한 감각이 피부를 핥고 간다. 나는 땡땡땡 울리는 경종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본능처럼 총을 쥔 다음 밖에서 작업 중인 대원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외쳤다.
“놈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빨리!”
철컥!
재빨리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어둠 속 일렁임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투다다다다다 - - - - !!
끼이이익! 끼이익! 끽!
끼기기기긱!
감염체 무리다.
수백 마리 감염체 더미가 산에서 뛰어 내려와 휴게소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조명탄!”
“예!”
다행히 정신을 차린 김태식이 가방에서 조명탄 총을 꺼내 허공으로 발사했다.
삐유유유유유 - - 펑!
그러자 밝은 빛이 터지며 우르르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빨리! 빨리!
뛰어, 이 새끼들아!
이에 기겁한 대원들은 허겁지겁 무기를 챙겨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하필 바리케이드가 완성되기 전 쳐들어오다니, 시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기관총! 기관총부터 거치해!”
순식간에 탄알집 하나를 비운 나는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대원들을 다그쳤다.
쨍그랑!
그러자 허겁지겁 계단을 타고 올라온 기관총 사수들이 창문을 깨고 총을 거치했다.
하나, 둘, 셋. 찰나의 시간을 번 기관총들은 곧 탄환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투두두두두두 - - -!
드르륵! 드르르륵!
달려오던 감염체 무리는 집중된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숫제 갈려 나간다.
마찬가지로 1층에선 각자가 들고 있는 개인화기가 불을 뿜어 놈들을 저지했다.
달칵, 치이이익!
휙!
진입을 허락해선 안 된다.
나는 사수들이 표적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연신 조명탄을 던지며 시야를 확보했다.
끼이이익! 끼기기긱!
끼아아아아악!
하지만 감염체들은 점점 줄어들기는커녕 그 숫자를 불려가며 한계선을 뚫었다.
수백 마리, 아니 수천 마리다.
이 좁은 산맥과 차도에 물경 수천 마리 감염체가 휴게소로 몰려오고 있었다.
“다 때려 부어! 박격포는 뭐하나!”
“올, 올라가고 있습니다!”
“빨리, 빨리!”
60mm 박격포를 진 대원 두 명이 허겁지겁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나는 그들을 대신해 포판을 들고 옥상까지 뛰어가듯 달려가 내려놓았다.
그 순간 다급한 무전이 울렸다.
치익.
[동장님! 놈들이 옆으로 우회합니다!]
감염체가 화력을 피해 우회한다고? 순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보고였다.
하지만 재빨리 시선을 돌린 그곳에는 정말 감염체가 건물 옆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끼기기기! 끼이익!
건물 뒤편으로 몰려온 놈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거나 벽을 타고 올라왔다.
옥상을 노린다고?
콰직!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탄알집을 꺼내 장전을 끝냈다.
투다다다다다!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긴다.
옥상으로 올라오려던 감염체들은 하나 같이 머리가 터져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 뒤로는 수십 마리가 넘는 놈들이 건물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고폭탄! 고폭탄 장저어어언!”
졸지에 목이 물어뜯길 뻔한 박격포 사수 하나가 다급히 고폭탄을 집어넣는다.
퐁!
삐이이이이이 - - - 쾅!
포구를 빠져나간 고폭탄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감염체 무리 한가운데 꽂힌다.
곧 큰 폭발이 일어나며 근처에 있던 모든 감염체가 다짐육이 되어 폭사했다.
“남은 거 다 쏟아부어!”
박격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나는 우르르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총구를 돌려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드륵! 드르륵!
찰칵,
탕! 타앙! 탕!
머리, 머리, 또 머리. 튀어 오르는 표적을 명중시키듯 모두 미간을 꿰뚫는다.
머리가 아닌 근육이 기억하는 것. 실전 감각이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끼기기긱!
콰직!
사각지대를 노리고 달려오는 감염체 하나를 후려 깐 뒤 머리통을 짓밟았다.
후웅, 퍽!
빈 탄알집이 두둥실 떠오른다.
철컥, 달칵!
동시에 마지막 탄알집을 끼워 넣은 나는 다음 표적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 - - - - -.”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이 보이지 않던 감염체들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후욱 내뱉으며 들려오는 무전 소리를 듣게 되었다.
[상황 종료! 놈들이 물러난다!]
주유소 앞은 떨어진 고폭탄 흔적과 산처럼 쌓인 감염체 시체로 가득했다.
숫자가 반절로 줄어든 놈들은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어슬렁어슬렁 자기 동굴로 돌아가는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 * *
지난밤 전투로 강릉항에서 가지고 온 탄약과 폭발물을 절반 넘게 소모했다.
습격이 워낙 갑작스러웠던 탓에 화망이 제대로 조성되지 못한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물자 손실보다 뼈 아픈 건 바로 쉽게 충원할 수 없는 인적 손실이었다.
‘사상자 발생.’
1층 입구를 막던 강릉항 대원 둘이 감염체 놈들한테 물어 뜯겨 사망했다.
바로 도망쳤으면 살 수 있었던 것을 문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감염된 시체는 화장하는 것이 원칙.
그들은 숭고한 희생을 해줬건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화장뿐이었다.
그렇게 참담했던 밤이 지나고 찾아온 다음 날 아침, 나는 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복귀합니다.”
어제 우리가 마주한 감염체 무리는 가히 웨이브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규모였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놈들이 본능에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우회한 것은 물론,
화망이 조성되자마자 마치 지시를 따르기라도 한 듯 공격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작전 시작 첫날부터 받고 만 습격.
이 모든 게 정말로 우연일까?
아니, 불길한 촉을 믿기로 한 나는 복귀하겠다는 무전을 날린 다음 차에 탔다.
감염체 추격, 지역 수색, 지금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대원들의 안전이었다.
부르르릉 - - -!
차량 행렬은 주차장에 즐비한 시체를 지나쳐, 왔던 길을 부지런히 되돌아갔다.
물론 어제보다 좋지 않은 날씨에 제대로 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대원들 분위기가 좋지 않다.
나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는 차량 무전기를 붙잡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동장님.”
그러자 뒷좌석에서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구 씨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전투식량에 들어있는 투박하면서도 달콤한 디저트용 초콜릿이었다.
“······괜찮습니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드셨잖습니까. 몸 생각도 좀 하셔야죠.”
맞는 말이다. 내가 만약 이런 신병을 봤다면 억지로라도 먹여서 열량을 채웠을 거다.
나는 초콜릿을 정확히 네 등분으로 나눠 일행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오도독.
군용 초콜릿 바 특유의 딱딱함과 설탕으로 절여둔 것 같은 단맛이 감돈다.
“맛있다.”
“그러게요.”
초콜릿을 오물거린 가은 씨는 작게 웃고 경태 녀석도 입맛을 다시며 감탄했다.
참 인간이라는 게 웃기지, 겨우 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웃을 수가 있으니.
나는 희미하게 웃는 일행들을 따라 초콜릿 향이 감도는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치익,
[근처 순찰대랑 무전이 닿았습니다. 현재 우리를 엄호하기 위해 접근 중이랍니다.]
“어디서 합류하기로 했습니까?”
[어흘리 근방입니다. 현재 저희 위치에서 7~8km만 더 가면 될 겁니다.]
합류할 지원군이 온다는 말에 무전을 듣고 있던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찬가지로 한시름 놓은 나는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무전을 끊으려 했다.
“- - - - - -!!”
그런데 그 순간 경태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더니 운전대를 옆으로 돌렸다.
끼이이이이익!
픽업트럭은 눈이 쌓인 차도 위를 크게 헛돌며 가드레일에 쿵 하고 부딪혔다.
경태는 도로 정면을 황급히 가리켰다.
“저, 저기!”
분명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길이 엄청난 규모의 눈사태에 막혀있었다.
“후방 차량 멈추라 해!”
경태가 재빨리 비상등을 켜고 가은 씨는 손전등을 들어 뒤쪽으로 열심히 흔들었다.
나는 그사이 길을 통째로 막고 있는 눈더미로 달려가 차도와 주변을 살폈다.
“·········.”
어떻게 우리가 치워볼 규모가 아니다.
적어도 중장비 정도는 끌고 와서 하루는 넘게 파고, 치우고 해야 할 것이다.
“동장님! 도대체 무슨······! 아.”
때마침 이쪽으로 급히 달려온 김태식은 아예 막혀버린 길을 보며 작게 탄식한다.
아마 ‘고립’이 단어 하나가 그의 머릿속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탁!
“정신 차려요.”
하지만 지금은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김태식의 어깨를 힘주어 흔들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대원들 인솔해서 차량부터 돌리게 하세요.”
“아! 예, 예!”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다. 정신을 차린 김태식은 서둘러 트럭으로 돌아갔고,
나 또한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넋 놓고 있던 대원들은 곧 정신을 차리며 바삐 차량에 탑승했다.
행렬은 곧 방향을 돌려 우리가 왔던 휴게소 방면으로 다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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