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42화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지도를 꺼내 우회할 길이 있는지를 찾았다
근방에는 국도가 없고, 그나마 강릉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은 영동고속도로가 유일.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이 지역부터 벗어나야 했다.
치익.
“대관령 시내로 진입해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겠습니다. 놓치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
[알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감염체 무리가 달려들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는 장전된 총을 꼭 껴안으며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주시했다.
그러자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치익.
[눈보라가 심해집니다. 1호 차 혹시 서치라이트 좀 틀어주실 수 있습니까.]
비상등으로는 턱도 없다. 우리는 즉각 서치라이트를 켜 후방 차량을 인솔했다.
반짝, 반짝!
강릉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눈보라는 세상을 흰색 어둠으로 물들였다.
초조해진 나는 계속 무전을 보내면 나머지 차량이 무사한지를 확인했다.
입안이 바짝 마른다.
1시간처럼 느껴지는 1분이 계속 지나고 어느덧 행렬을 휴게소를 지나쳤다.
타앙- - -!!
“?!”
그런데 그 순간 차량이 따라오고 있을 후방에서 나지막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나는 다급히 무전기를 잡았다.
“무슨 일입니까!”
[저희도 파악 중입니다! 후방! 후방 차량 응답하세요! 방금 5호 차 아니었어?]
5호 차면 맨 뒤에 있는 트럭이다.
분명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상황 파악이 왜 이리 느리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차량을 멈추고 5호 차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투다다다다다!
드르륵, 드르륵!
[5호 차입니다! 후방에 감염체 무리 출현! 우리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 순간 시끄러운 총성과 함께 5호 차를 지휘 중인 대원이 다급히 무전을 보내왔다.
그들은 벌써 교전을 시작했는지 바짝 뒤따라오는 감염체를 저지하고 있었다.
“형, 형님!”
“멈추지 마!”
여기서 우리가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뒤따라오는 모든 차량이 위험해진다.
나는 어쩔 줄 몰라는 경태를 향해 외친 뒤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투다다다! 타앙! 탕!
5호 차뿐만이 아니다. 4호 차, 3호 차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방아쇠를 당겼다.
[놈들입니다!]
[감염체 출혀어어언!]
감염체가 다가온다는 혼선 보고가 무전기를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격은 약과에 불과했다.
“이쪽도 옵니다!”
총구를 밖으로 내밀고 있던 정구 씨가 바로 옆 절벽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끼기기기긱! 끼이익!
그곳에는 검은색 감염체 무리가 우르르 떨어지며 차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앞, 뒤, 옆, 빠져나갈 길은 없다.
지금은 오직 저 검은색 파도를 뚫고 활로를 찾아 달려야 할 차례였다.
“선루프 열어!”
덜컹!
이를 악문 나는 개조한 선루프를 통과해 트럭 짐칸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눈이 가득 쌓인 방수천을 치우고 아끼고 또 아껴두었던 중기관총을 꺼냈다.
‘한 상자.’
규격에 맞는 탄약이 워낙 귀한 탓에 이제 탄약도 한 상자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 상자 탄약은 지금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줄 구원자이자, 구세주였다.
철컹!
투두두두두두두!
소총과 기관총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한 반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차도를 가로막으려던 감염체 무리는 마치 모래알처럼 쓸려나갔다.
두둥실 떠오르는 탄피,
반짝이는 총구 화염.
늘 기대 이상으로 화답해주는 중기관총은 그 성능을 여실히 발휘해주었다.
‘됐다!’
위기의 순간 활로가 뚫린다.
힘차게 속도를 더한 픽업트럭은 바닥에 늘어진 시체를 뚫고 앞으로 질주했다.
[놈,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 추격이 끝나지 않은 5호 차에선 비명이 섞인 무전이 들려왔다.
탄약이 떨어졌나? 후방을 혼자 감당하고 있으니 총알이 남아날 리가 없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속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차 보닛을 두드리며 외쳤다.
“유턴! 유턴해!”
끼기기기긱!
모든 트럭이 한 줄로 나아가고 있는 탓에 후방 차량을 향한 지원이 불가능하다.
5호 차를 구해오기 위해선 반대쪽 차선으로 달려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부아아아아앙 - - -!!
[동, 동장님?!]
“계속 가십시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철컥!
탄약은 반 상자, 이 정도면 후방을 틀어막고 5호 차를 구하기 충분하다.
행렬을 빠르게 지나친 픽업트럭은 왔던 길을 향해 맹렬히 질주했다.
끼이이익! 끼기긱!
저 멀리 개떼처럼 몰려드는 감염체 무리와 함께 5호 차가 시야에 들어온다.
기관총 사수는 이미 죽어 있었고 비틀거리는 차량은 전복되기 직전이다.
“엄호해!”
투두두두두두두!
나는 재빨리 중기관총 총구를 돌려 추격을 멈추지 않는 놈들 무리를 걷어냈다.
일행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량에 달라붙은 감염체를 사격해 떨어트렸다.
끼이익!
드디어 중심을 잡은 5호 차는 재빨리 추격을 뿌리치며 우리를 지나쳐 갔다.
운전자와 눈을 마주친다.
서로 고맙다는 무전을 나눌 겨를도 없이 우리 트럭 또한 재빨리 유턴했다.
덜컹!
몸이 기우뚱 흔들린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나는 다시 총구를 뒤로 돌렸다.
끼이이이이이아아악!!
먹잇감을 놓친 감염체의 분노!
놈들은 이미 하나로 뭉친 덩어리가 되어 차도를 꾸역꾸역 타고 올라왔다.
공명하는 울부짖음은 마치 인세로 들이닥치는 지옥의 단면을 엿보는 것 같았다.
투다다다다!
마지막 탄약을 쏟아붓는다. 픽업트럭은 이를 추진체 삼아 추격을 따돌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탄약이 줄어들수록 놈들과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찰칵, 찰칵.
탄약 상자가 비었다. 차도를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던 감염체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후욱, 훅.”
나는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뱉으며 중기관총 손잡이에서 손을 놓으려고 했다.
찌릿!
“안, 안돼에에에!”
그런데 그 순간 가은 씨의 비명과 함께 마비되어 있던 신경이 찌르르 울렸다.
위험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절벽에서 뛰어내린 감염체 무리가 트럭 짐칸을 덮쳐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반응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
프레임을 쪼개듯 흘러가는 급박한 상황의 연속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탁!
목을 노리는 감염체를 붙잡았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중심이 무너지며 내 몸은 허공으로 부웅 떠오른다.
“- - - - - -!!”
가은 씨가 뻗은 손이 멀어진다.
비명도 점차 멀어진다.
나는 트럭 짐칸에서 튕겨 나왔고 이내 가드레일 밖 가파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하얗기만 했던 세상은 먹이 물드는 종이처럼 어둡게 물들어갔다.
* * *
죽음의 접근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누워 편안한 영면에 이르는 반면,
누군가는 다 쓰고 떨어진 탄피처럼 진창에 누워 맥없이 죽어간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접근법 모두 하나의 하수구로 귀결이 되고는 한다.
바로 후회,
아! 시발 거기서 죽는 게 아니었는데, 와 같은 멋대가리 없는 주마등 말이다.
“콜록!”
내 기침 소리에 의식이 깬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당연히 공포와 감각이 사라질 만큼 매서운 추위였다.
보통이라면 비명을 지를 법도 한데 정작 내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살았다.’
이 원수 같은 눈이 완충재 역할을 해줬는지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았다.
나는 입안으로 들어온 흙과 눈을 퉤퉤 뱉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낀 죽었네.’
함께 떨어진 감염체는 어디 돌부리에 머리라도 부딪혔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앞으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까이던 운수가 이럴 때는 참 좋다.
스릉! 콰직!
나는 토마호크를 뽑아 확인 사살을 해준 뒤 나무 아래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으, 시발.”
어째 허벅지가 따끔하다 했더니 날카로운 나뭇가지 하나가 박혀 있다.
깊게 박힌 건 아니기에 일단 이물질을 제거하고 잽싸게 붕대를 감았다.
도대체 얼마나 떨어진 거야?
높이를 확인하고 싶지만, 워낙 날씨가 좋지 않아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조명탄을 터트리자니 시선이 끌리고, 그렇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이 지겨운 눈보라와 추위를 피할 장소라도 찾아 체온부터 지켜야겠다.
나는 방한 장갑을 껴도 추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비틀비틀 앞으로 걸어갔다.
기이익, 끽. 끼이익.
“·········.”
하지만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기 직전 내 몸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침착하자.
자연스럽게 몸을 웅크린 뒤 허벅지까지 쌓인 눈 위에 조용히 엎드렸다.
끽, 끼이익, 끽.
꺼어억, 컥.
우거진 겨울 숲 사이로 수많은 감염체 무리가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서로가 멀찍이 떨어진 놈들은 마치 무언가를 찾듯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눈보라가 없었으면 의식을 차리기도 전에 잡혀 인간 스테이크가 될뻔했다.
나는 포복한 자세 그대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뒤 절벽을 따라 열심히 기어갔다.
감염체가 지나가면 멈추고, 사라지면 다시 움직이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
손끝, 발끝 감각이 서서히 무뎌질 때쯤 감염체의 숲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바위틈으로 몸을 숨긴 뒤 무전기를 꺼냈다.
“들립니까?”
치이익.
“박범석입니다.”
치이익.
응답이 없다. 아마 근처에 절벽과 장애물이 많아 송신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근방을 벗어나거나 올라갈 수 있는 도로를 찾을 생각이다.
나는 홀더에서 권총을 꺼내 작동 여부를 확인한 뒤 바위틈에서 빠져나왔다.
치익.
[치직, 칙. - - - 여, 여기는 대관령 - - 생존자 캠 - - 저희는 현재 감염체들로 치이익, 칙! 인해 일주일째 - - -칙!]
뭐야, 이 구조 신호가 여기서 잡혀?
이 무전기는 출력 제한을 걸려 500m 안쪽도 아슬아슬한 단거리 무전기다.
그런데 구조 신호가 잡힌다는 건 이 근처에 근원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도로 확인했던 펜션 촌의 위치.
만약 캠프를 찾아낸다면 그곳에 CB 무전기로 떨어진 일행들과 교신할 수가 있다.
나는 시계에 달린 나침반과 송출 강도를 길잡이 삼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박, 사박, 사박.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저 멀리 희뿌연 건물 형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홀더에서 권총을 뽑은 뒤 적막함만이 감도는 펜션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없다.’
구조 내용과는 달리 주변에는 감염체 무리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김태식의 예상대로 이미 이곳을 떠났거나 놈들에게 당해버린 모양이다.
덜컥, 덜컥.
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창문 또한 못질한 판자로 꼼꼼하게 막아두었다.
하지만 펜션 뒤뜰에서 사다리를 발견한 나는 가뿐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드르륵.
아까 배선을 보니까, 발전기가 아직 돌아가는 모양인데 난로가 어디 있지.
진짜 딱 얼어 죽기 직전이라는 생각에 오들오들 떨며 1층 로비로 내려가려 했다.
철컥.
“- - - - - - -?”
그런데 그 순간 3층 계단에서 소리도 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총구를 겨눴다.
여기까지 오는 기척을 못 읽었다고?
순간 깜짝 놀란 나는 3층 계단 위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움, 움직이지 마세요.”
그곳에는 이제 막 중학생은 됐을 법한 소년이 이쪽으로 엽총을 겨누고 있었다.
문제는 ‘이쪽’이라는 게 내가 아니라 한참 벗어난 계단 아래라는 것이었다.
이 아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년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구조 신호를 듣고 왔어.”
“구조······신호요?”
“그래, 어른들 어디 계시니?”
어른들은 어디 있냐는 말에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은 목소리를 떨며 답했다.
“이, 이틀 전에 밖으로 나갔어요. 곧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식량이 떨어진 나머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을 버리고 떠나버린 모양이다.
나는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까 하다가 그냥 소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끼기긱, 끼이익!
덜컹, 덜컹!
그 순간 펜션 밖에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감염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놈들이 펜션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소년을 황급히 낚아챘다.
“따라와.”
일단 살고 보자.
그래야 다음 화를 쓸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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