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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43화 (43/180)

43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43화

분명 펜션으로 진입할 때만 해도 주변에는 그 어떠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온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감염체 무리가 찾아왔다.

꼭 뒤를 밟힌 것 같은 미묘한 기분.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를 넘어 점점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 숨어있어.”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은 3층 침대 밑으로 들어가게 한 뒤 문을 잠갔다.

끼릭 끼릭

그리고 글록 권총을 꺼내 혹시 몰라 챙겨왔었던 소음기를 장착한다.

소총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떨어지면서 분실했는지 가지고 있는 건 이게 다다.

나는 마지막으로 권총을 점검하고 다시 2층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콰직!

마침 1층 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감염체 무리가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놈들은 마치 3층에 사냥감이 있다는 걸 안다는 듯 비틀비틀 계단으로 접근했다.

“- - - - - - -.”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침착하게 계단 옆으로 상반신을 내민 나는 가장 가까운 감염체를 조준했다.

따악!

따악!

따악!

한 발당, 한 마리씩. 짧은 거리인 만큼 손쉽게 머리를 쏴 죽였다.

동시에 소음기 격발 소리를 들은 나머지 감염체들 또한 계단으로 몰려왔다.

끼이이익! 끽!

딱! 따악! 딱!

원체 넉넉한 글록 장탄 수에 무려 확장된 탄알집을 끼워 넣은 권총이다.

나는 달려오는 표적을 맞히듯 담담한 얼굴로 감염체를 무리를 쏴 죽였다.

스릉!

콰직, 콰직!

그리고 로비가 정리될 무렵 토마호크를 뽑고 깔끔히 확실 사살까지 끝냈다.

아무리 위협적인 감염체라도 큰 무리를 이루지 못하면 단순한 표적일 뿐.

나는 놈들의 머릿수만큼 떨어진 탄피를 확인하며 천천히 탄알집을 바꿔 끼웠다.

휙!

“- - - - - -?”

그런데 그 순간 슥 하고 움직이는 작은 소음과 함께 예민한 감각이 반응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눈 밟는 소리가 들렸던 문 바깥을 주시했다.

사사사사삭!

그곳에는 눈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형체가 뛰어가고 있었다.

비이상적으로 큰 키와 얇은 팔다리. 인간도 아니고 일반적인 감염체도 아니다.

탁!

나는 빠르게 문을 뛰쳐나와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려는 알비노 놈을 정조준했다.

이미 사정권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한 놈이 우거진 나무를 올라타려는 순간이었다.

따악!

방아쇠를 당겼다.

끼이이익!

한줄기 총성과 함께 등판이 관통당한 놈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고통을 느낀다?

감염체가 알지 못하는 감각인 것을.

나는 흰 눈 위를 버둥거리는 알비노 감염체를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따악! 딱! 딱!

의외로 내구성은 강하지 않은지 한참을 버둥거리던 놈은 움직임을 멈춘다.

나는 총구를 앞으로 내민 자세 그대로 다가가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달칵!

체구는 2m, 팔다리는 나뭇가지처럼 얇고 신체 구조가 비이상적이다.

순간 머리에 딱 떠오른 것은 보고서를 통해 접해본 감염체 군락의 특성이었다.

‘변이종’

표본이 적으니 사례도 적다.

나조차 직접 보는 건 처음인 만큼 아직 변이종에 관한 연구는 진행 중이다.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도 이런 변이종과 관련이 된 것이 아닐까.

감이 좋지 않다는 걸 느낀 나는 일단 놈의 샘플을 채취해 가방에 챙겼다.

큰일이 아니길 빌어보지만,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자.”

“감, 감사합니다.”

장시간 굶었던 소년은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그릇에 코를 박고 퍼먹는다.

가지고 있는 전투식량을 다 때려놓고 묽게 끊인 건데, 어떻게 입에 맞는 모양.

나는 내 몫으로 만든 음식까지 전부 소년의 그릇에 양보한 뒤 의자에 앉았다.

“- - - - - -.”

예상한 대로 펜션에는 CB 무전기가 존재해 주변으로 구조 신호를 송출하고 있었다.

나는 즉각 출력을 올려 대관령 부근 어딘가에 있을 일행들과 통신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고저 차이 탓에 송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구조 신호 내용을 다시 녹음했으니 언젠가는 송출이 닿지 않을까.

여기서 연락을 기다릴지 아니면 이쪽에서 먼저 찾아 나설지가 고민이 되었다.

“저 아저씨.”

한참 상념에 빠져 있는데 벌써 그릇을 비운 소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구,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해오던 무리에서 버려지고 장기간 혼자 낙오되어 있던 어린 생존자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정신을 놓지 않은 건 정말 칭찬할 만하다.

사탕이 남아있던가? 나는 속주머니에 넣어둔 딸기 맛 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아저씨 친구들이 곧 구하러 와줄 거야. 그때까지 낙오되지 말고 잘 따라와 줘야 해.”

“저, 저도 같이 가도 되는 건가요?”

“강릉에 너랑 사정이 비슷한 아이들이 많아. 보살펴 줄 곳을 소개해줄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작은 체구에 눈까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다.

그동안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뻔한 상황 소년은 코를 훌쩍이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대신 아저씨 좀 도와줄래?”

“네!

“어려운 건 아니고, 혹시 같이 지내던 어른들하고 대관령 휴게소에서 살았었니?”

“네, 맞아요.”

“거기서 왜 도망쳤는지, 전부 말해줘.”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날의 생생한 소리만큼은 기억하고 있는 소년이다.

아이는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처, 처음은 장작을 주우러 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실종되면서 시작됐어요.”

대관령은 당최 사람이 적은 곳이라 감염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그런 대관령에 보름 전부터 생존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찾겠다고 나서시는 가족분들도 돌아오지 않고, 밤에 순찰하던 어른들도 홀연히 사라지고, 그렇게 영문을 몰라 하고 있는데 한 분이 무언가를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뭔가를 보셨다고?”

“네. 하얀 귀신이요. 하얀 귀신이 사람을 산채로 끌고 가는 걸 보셨대요.”

하얀 귀신. 귀신 따위가 있을 리 없고 아마 실종의 원인인 게 뻔하다.

“다들 휴게소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해서 일단 따라 나왔어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감염체들이 습격해오는 바람에······.”

무언가 홀린 기분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하얀 귀신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잡아가는 것도 모자라,

감염체들이 자신들이 이동하는 족족 따라와 습격을 해왔으니까.

그동안 겪은 이상 현상과 알아낸 정보가 한 가지 가설을 완성하게 했다.

‘대관령 군락과 변이종.’

‘눈’ 역할을 하는 변이종이 있고, 이를 집단 제어할 수 있는 ‘뇌’가 존재한다.

물론 이를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그 가설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누르며 처음으로 책이 그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치익, 칙! 치이이익!

[동장님? 박범석 동장님이십니까?]

그 순간 CB 무전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책상 앞으로 다가가 김태식이 보내온 무전에 응답했다.

“태식 씨, 접니다.”

[박 동장님! 역, 역시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요! 동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사내새끼가 이런 일로 울긴? 나는 평소 그답지 않은 반응에 피식 웃었다.

“됐고, 상황이나 말씀해주십시오.”

[잠시만요, 다들 바꿔 달라고 하셔서. 일단 현재 위치는 대관령 시내 초입에 있는 캠핑 체험장이라는 곳입니다. 여기서 바리케이드를 건설하고 반나절째 농성 중이에요.]

“감염체 무리는요?”

[정말 1시간당 한 번꼴로 공격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놈들이 조금······.]

“저번처럼 간을 보죠?”

[네, 휴게소 때처럼요.]

이 새끼들 목적이 뭔가 했더니 다름 아닌 우리가 가진 탄약의 소모였다.

그 영악함과 지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동시에 파훼할 수 있는 약점들이 보였다.

“전투가 시작되면 실력 좋은 대원 하나 뽑아서 지정 사수로 박아두십시오. 그리고 전장 주변을 잘 살펴보게 하세요.”

[전장 바깥말입니까?]

“네. 특히 설산 쪽을 잘 보셔야 합니다. 거기서 만약 흰 피부에 기다란 체구를 가진 알비노 감염체를 보시면 바로 쏴버리세요.”

[그게 무슨······.]

“이건 만나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새벽 일찍 그쪽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좌표 불러드리겠습니다.]

나는 지도를 꺼내 현재 선발대가 있는 위치와 중간 합류 지점을 마킹했다.

차도를 찾기 위해 산을 가로질러 가야 하니까 넉넉하게 잡아서 대략 1시간.

출발 전 연락 하겠다고 약속한 뒤 얼마 남지 않은 전력을 위해 무전을 껐다.

추위가 심해진다.

또 하얀 밤이 지나고 있다.

* * *

새벽 일찍 일어나, 마지막으로 남은 전력을 이용해 출발하겠다는 무전을 남겼다.

그리고 짐을 챙긴 뒤 기운을 차린 소년과 함께 1층 펜션 로비로 내려왔다.

“정말 이걸로 되겠어?”

“네, 충분해요.”

처음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을 등에 업고 걸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럴 필요 없다며 질긴 노끈을 가져와 나와 허리를 연결했고

지팡이를 이용해 장애물과 거리를 재며 용케도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사지 멀쩡한 인간도 병신처럼 살아가는 게 이 빌어먹을 세상인데,

정작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은 그 누구보다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준 뒤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이이잉 - - -!

대관령 높은 고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추위는 시시각각 체온을 뺏어갔다.

마치 곰팡이처럼 들러붙는 눈보라가 시야를 차단하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건 덤이다.

히말라야 같은 설산을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후욱, 후욱.”

핫팩 좀 더 챙길걸. 날씨가 아주 사람 얼려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나는 수시로 소년의 상태를 살펴보며 힘겹게 눈과 바람을 해치고 나아갔다.

사박, 사박, 사박.

그렇게 등산로로 추정되는 산길을 걸어가기를 30분,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반쯤 왔다.’

소년이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준 덕분에 딱 반절 거리를 예상된 시간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제 차도만 찾는다면 합류 지점까지 온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다.

나는 나침반으로 방향을 다시 조정한 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휘이이이잉 - - -!!

그런데 그 순간 눈보라가 갑자기 휘몰아치더니 이내 주변이 하얗게 물들어버렸다.

그동안 보았던 심한 눈보라 수준을 넘어 세상이 아예 하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불현듯 한 단어를 떠올렸다.

‘화이트아웃.’

주변 지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원근감이 사라지고 기본적인 공간 감각을 구분할 수가 없게 된다.

어둠이 짙게 깔린 어둠처럼,

백색이 짙게 깔린 화이트아웃.

나는 당황하는 소년을 바로 앞쪽으로 오게 한 뒤 조심스럽게 자세를 숙였다.

“침착해. 곧 괜찮아질 거야.”

화이트아웃은 어디까지 일시적인 현상이다.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소년과 함께 자리에 웅크리고 앉으며 최대한 체온을 보존하려 했다.

사사사사사삭.

움찔!

그 순간 바람 소리에 익숙해져 있던 내 귓가로 이질적인 소음 하나가 들려왔다.

나만 들은 것이 아닌지 품에 안겨 있던 소년 또한 움찔 몸을 떨었다.

사사사사사사삭.

사사사사삭.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이질적인 소음을 주변 공간을 모두 아우르며 우리를 기준으로 돌고 있었다.

환청? 그럴 리가. 이 익숙한 소음의 정체를 눈치챈 나는 왼쪽 홀더로 손을 집어넣었다.

철컥.

한 마리가 아니겠거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만 이렇게 빨리 추격해올 줄 몰랐다.

알비노 변이종, 내가 죽인 놈 외에 또 같은 개체가 바로 근처까지 접근했다.

사사사사삭.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놈을 이를 잘 안다는 듯, 서서히 아주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치익, 화르륵!

나는 가방에서 재빨리 붉은색 조명탄을 꺼내 불을 점화하고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오른손에는 콜트 파이슨을 꺼내 허공을 겨누었다.

사사사사삭.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총구를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하지만 보이지 않는 표적을 맞힌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쉬이익!

그 순간 신경이 쭈뼛 선다.

다가오는 파공음을 감지한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공격을 피해냈다.

서걱!

변칙적이고 위력적이다. 인간과 총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다.

공격을 실패한 놈은 또 다가왔냐는 듯 거리를 벌려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시발.’

바람 소리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가늠해보겠는데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

나는 점점 줄어드는 조명탄 빛을 보며 어쩔 수 없는 도박을 하려고 했다.

꾸욱.

“- - - - - - -?”

움찔, 움찔.

그 순간 소년이 내 바짓단을 움켜잡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움찔거리며 특정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설마 변이종 발소리를 구분하는 건가?

살아남기 위해 세상 모든 소리를 들어야 했던 소년은 토끼처럼 귀를 움찔거렸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르는 아이를 조용히 불렀다.

“발소리가 들리니?”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 좀 도와줄래?”

이번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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