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51화
처음 보는 외국인이다.
그런데 오직 소수만이 알고 있는 치료제의 존재를 찾고 있는 것도 모자라,
굳이 현지인까지 포섭해가며 내 이름과 사는 곳, 그리고 행방을 알아내려고 한다.
코끝을 자극하는 구린내.
현장에서 사사건건 부딪쳤던 한 익숙한 조직의 냄새가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서울 요새 미친 새끼들. 미국 물건 함부로 건드릴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졸지에 그 똥을 치우게 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소수 요원만을 강릉으로 파견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여기서 붙잡아서 정보가 밖으로 전달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
최 중령, 청구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것도 다 계산할 거니까.
탁!
“끄읍!”
바로 앞을 지나가는 한 일본인 선원의 입을 틀어막고 가뿐하게 기절시킨다.
그리고 무장을 해제시킨 뒤 물건을 옮기는 나머지 선원도 한 명씩 기습했다.
“컥!”
“끅!”
밀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멀리 떨어진 항구라도 경계가 너무 허술하다.
나는 일본인 선원 다섯을 가볍게 처리한 뒤 선착장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 거래를 마무리한 밀수범들과 백인 남성은 자리를 뜨기 직전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나는 대놓고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깜짝 놀란 요시다가 먼저 권총을 뽑아 들며 야쿠자식 고함을 내질렀다.
“누구냐!”
다레다! 밀수가 중죄임을 아는 요시다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지만 선제공격을 이미 예상하였던 나는 가볍게 엄폐물 뒤로 숨어 피했다.
“안, 안돼!”
박 대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 찰나 내 얼굴을 알아봤고, 동시에 총을 먼저 쏜 행위에 경악한 탓이다.
자경 대원을 공격하는 것도 중죄에 해당하는데, 요새 동맹을 이끄는 지도자를 쏴?
박 대리는 앞으로 벌어질 참극을 예상했는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자비를 구했다.
탕! 탕!
나는 엄폐물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어 침착하게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끄아아악!”
방탄복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이 깔끔하게 관통당한다.
요시다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마치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탁! 철컥!
탕! 탕탕탕!
그 순간 백인 남성이 예사롭지 않은 속도로 권총을 뽑아, 엄폐물로 총을 발사한다.
피잉!
총알이 머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동안 만났던 떨거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확도에 나는 반쯤 정체를 확신했다.
하지만 이쪽은 엄폐가 있고, 놈은 텅텅 빈 선착장 한가운데 노출된 상황.
“- - - - - -!!”
백인 남성은 재빨리 뒤로 돌아 유일한 탈출구인 선박을 향해 잽싸게 달려갔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놈의 등을 정조준한 뒤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탕!
“큭!”
등판에 총알 두 발이 꽂힌다.
하지만 놈 또한 방탄복을 입고 있었는지 기어코 선박 안으로 몸을 숨겼다.
요즘 아주 개나 소나 방탄복을 입고 있구나. 아예 다리를 쏴버리든가 해야지.
“제, 제발!”
“닥쳐 새끼야.”
퍽!
나는 항복한 박 대리를 걷어차 기절시키고 도망친 백인 남성을 추격했다.
터벅, 터벅, 터벅.
선박 안으로 들어선다.
저 멀리 홋카이도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만큼 선박 크기는 상당히 컸다.
나는 협소한 복도 정면으로 총구를 비추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이 좁아지면 유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아쉽게도 퇴로만 막힐 뿐이다.
타앙!
핑!
어두운 복도 끝 방에서 총구가 반짝인다.
너무나 정직한 공격 포인트에 나는 문 뒤로 엄폐해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총염이 반짝였던 방향으로 총구만 내밀어 남은 잔탄을 전부 발사했다.
탕! 탕탕! 탕! 탕탕!
팍!
가슴팍에 한 발 맞았다.
변칙적인 움직임에 당황한 백인 남성은 숨을 헉 들이켜며 중심이 무너트린다.
타앙!
쨍그랑!
끝이다. 퀵로드를 빠르게 끝낸 나는 복도 옆 전등을 쏴서 깨트리고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복도를 뛰쳐나와 도망치려는 백인 남성의 등판을 걷어찼다.
퍽, 쾅!
놈이 철제문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다.
나는 재빨리 손을 걷어차 총을 떨어트리게 하고 머리로 총구를 겨누어주었다.
철컥!
이마가 찢어진 백인 남성이 다급히 외친다.
“잠, 잠깐! 항복한다!”
먼저 총을 쏜 새끼가 할 말은 아닌데. 나는 뻔뻔스럽게 양손을 드는 놈에게 물었다.
“어디 소속이야? 실력 보니까 SAC 아닌 것 같고, 그냥 작전국 산하 요원인가?”
“뭐? 그걸 어떻게······.”
뻔하지. 타국에서 이런 일을 벌일 집단이 미국 중앙 정보국 말고 누가 있나.
그나마 SAC(특수활동부)가 아니라 다행이지 정말 큰일 한 번 치를뻔했다.
“혹, 혹시 당신이 Mr. 박?”
“그런데.”
“Mr. 박! 저희가 이러고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정보국은 단순히 현지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저를 파견한 거지 사실······!”
퍽!
주절주절 말이 많다.
나는 백인 남성을 기절시키는 것을 끝으로 내부 청소 작업을 마무리했다.
* * *
“확인된 것만 29건이에요. 소총 탄약, 방탄복, 정말 알뜰하게도 해 먹었네요.”
“왜 그랬답니까?”
“요즘 홋카이도 요새랑 러시아 쪽이 사이가 좋지 않거든요. 강릉항에서도 수입이 막히니까, 결국 밀수에 손을 댔나 봐요.”
강릉항을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무려 29번이나 전략 물자를 밀수하려 한 걸까.
요시다 선장은 처형, 나머지 선원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형이 예정 중이다.
“그럼 박 대리는요?”
“원래라면 해임으로 끝날 건수인데, 직원들 반발이 워낙 심해서요. 아마 지하 감옥에서 15년은 썩다가 나올걸요. 헤헤.”
“평이 그리 좋지는 않았나 보네요.”
“아주 개새끼에요! 평소 갑질은 기본에 성희롱까지 밥 먹듯이 했다니까요? 그동안 선주였던 아버지 덕분에 버티고 있었던 거지, 이번에 진짜 제대로 벌 받은 거죠.”
주민회의 때부터 싹수가 노랗더라니 번영회 내부에 이런 사정이 숨겨져 있었구나.
“뭐, 덕분에 이것도 얻었잖아요?”
나는 혜지 씨가 건네준 문서를 흔들었다.
그 문서에는 요시다 호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인수 절차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이게 얼마짜린데.”
큰 문제로 발전할뻔한 사건을 초기에 진압해주었다는 공으로 요시다 호를 받았다.
통 큰 김춘식 회장님답게 대여나 판매가 아닌 내 개인 소유로 양도해주신 것이다.
좀 낡긴 했어도 엄연히 동해와 홋카이도 그리고 러시아까지 갈 수 있는 화물선.
초창기 낡은 택시를 타고 다녔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 나는 발전이다.
나는 지장이 찍혀 있는 문서를 품속 깊숙이 집어넣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 맞다. 사장님.”
“예?”
“그, 외국인 말이에요. 다들 어떻게 할 건지 사장님께 물어보라고 하셔서요.”
“억류는 해뒀습니까?”
“일단 가둬두기는 했는데······아시잖아요? CIA가 무슨 축구팀 이름도 아니고.”
하긴 서울과 멀찍이 떨어진 요새에서 CIA 요원을 만나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 그 후폭풍을 걱정하느라 아마 기초적인 조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가본다고 전해주세요.”
나는 걱정하는 혜지 씨 등을 팡 하고 쳐준 뒤 놈이 억류된 상가 건물로 걸어갔다.
상식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 양주는 아마 내일이나 돼야 도착할 것 같다.
* * *
“앗! 오, 오셨습니까, 동장님!”
“고생하십니다. 잠깐 따라오실래요?”
“예, 예?”
나는 사무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대원에게 인사한 뒤 같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백인 남성, 아니 제임스가 양쪽 팔이 수갑에 묶인 채 앉아있었다.
턱!
나는 다짜고짜 제임스를 향해 다가가 얼굴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열게 했다.
“이런 놈들을 억류할 때는 꼭 입안이랑 어금니 쪽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어억, 컥! 억!”
“자, 보이시죠?”
아니나 다를까, 강제로 벌린 입안에는 언제 빼돌렸는지 모를 클립이 하나 들어있었다.
그래도 CIA 요원이니 수갑을 푸는 전문적인 교육 정도는 당연히 받았을 터.
내 친절한 교육에 넋이 나간 자경 단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보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자경 단원이 나갔다. 나는 한쪽에 쌓아둔 의자를 끌고 와 마주 앉았다.
그러자 제임스는 제발 변명할 기회를 달라는 듯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Mr. 박!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전부 오해입니다!”
“오해할만하지. 뒤를 캐고 다니는데.”
“접촉하라는 상부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Mr. 박! 만약 해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였겠습니까?”
나는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아 제임스의 동공 반응, 심장 박동, 표정 변화를 살폈다.
어느 정도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미세함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다고 가정해보자고.”
“예, 예!”
“내가 감염체 치료제를 확보한 것도 알겠고, 서울 요새로 빼돌린 것도 알겠네?”
“맞습니다.”
“그런데 너희 쪽 상부에선 나와 단순 접촉하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서울 요새가 미국 물건을 훔치다가 도난당했고, 내가 그걸 되찾아서 다시 돌려줬다.
미국으로선 나나 저기 서울 요새나 똑같은 도둑놈이고, 처리해야 할 대상이다.
“······꼭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뭐?”
“치료제를 개발한 연구소가 공격받아 모든 자료가 소실됐습니다. 현재 서울 요새가 소유하고 있는 게 마지막 샘플입니다.”
시발 이게 무슨 개소리야. 감염체 전쟁 때도 항모를 굴리던 놈들이 뭐?
내가 믿지 못하는 낌새이자 제임스는 아예 본토 상황까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Mr. 박. 현재 제 조국은 당신이 아는 미연방이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각 주지사가 독립을 선언했고, 본토에 자리 잡은 군락만 해도 수천 개가 넘어가고 있어요.”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단순한 군락이 아니니까요! 개체마다 자아가 있고 감염체를 잉태하는 사례를 들어보셨습니까? 놈들이 포자를 퍼트렸다 하면 땅이고 강이고 전부 오염됩니다!”
그 사례 들어봤다. 다름 아닌 대관령에 자리 잡은 군락이 바로 그런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그런 놈들이 한반도뿐만 아닌 다른 대륙에도 나타날 줄은 몰랐다.
“당시 개발 중이던 치료제는 감염 초기는 물론 오염 포자에도 강한 면역 반응을 보였습니다. Mr. 박! 이건 저희 미연방 문제만이 아니에요! 한국도 머지않았습니다!”
제임스는 한국을 걸고넘어졌다. 남은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안 것이다.
평소라면 콧방귀로 무시했겠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쉽게 넘길 게 아니었다.
‘젠장.’
그냥 요새나 확장하면서 도란도란 강릉 심시티나 한 번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미연방이니, 치료제니 이런 것들이 등장하며 사이즈가 커져 버렸다.
사주팔자가 꼬였나?
이거 다 책 때문은 아니겠지?
머리를 쥐어짜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축 처진 제임스를 향해 물었다.
“당신 말고 누가 또 왔지?”
“강릉으로 파견된 건 저뿐입니다.”
“만약 거짓말이면 치료제고 나발이고 시멘트 발라서 바다에 빠트릴 줄 알아.”
“신, 신께 맹세하겠습니다.”
나는 허튼짓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긴 뒤 방에서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송지영 중위가 남기고 간 위성 전화기를 꺼내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여보세요. 선배?]
“강릉으로 좀 와야겠다.”
[네? 지금요? 저 바쁜데······.]
“바쁘구나. 그럼 내가 갈까?”
[잠, 잠시만요! 금방 갈게요!]
그래그래 그래야지.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으면 후자가 무척 억울하지 않겠니.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꾹질을 마지막으로 위성 전화기를 끊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