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아포칼립스의 요새 상속자 53화
투다다다다다 - - -!!
헬리콥터 두 대가 강릉항 상공을 활공하며 내가 있는 건물을 서치라이트로 비춘다.
때마침 처음 죽였던 기무사 군인 시체 품에서도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대상 확인, 2층 상가 건물이다.]
[시간 없다! 서둘러 진입해!]
뭐야, 이 새끼들. 처음부터 제임스가 목표가 아니었어? 왜 내가 표적이야?
순간 어이가 없어 주춤거리고 있는데 계단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타앙!
한 박자 늦게 몸을 비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50m 안쪽에서 발사한 총알이 어깨 바로 옆을 스쳐 간다.
나는 곧바로 총구를 돌려 어느새 1층 계단으로 접근 중인 기무사 군인을 저지했다.
따악! 딱!
가슴 한 방, 머리 한 방. 집중력을 쥐어짜 더블탭 한 방으로 한 명을 보냈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그 시체를 방패 삼아 다른 놈이 계단을 올라온다.
탕! 탕탕! 탕!
질긴 새끼들! 재빨리 벽 뒤로 숨어 날아오는 총알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하필 무장이 시원치 않을 때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랑 싸우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단 대치한다.
나는 남은 탄약과 출혈이 점점 심해지는 몸 상태를 확인하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드르르륵! 드륵!
타앙! 탕! 탕탕!
그 순간 상가 밖에서 강릉항 출신 자경 단원으로 추정되는 총성이 들려왔다.
막사에서 침입 경보를 듣자마자 무기를 챙겨 산발적인 교전을 시작한 모양이다.
[젠장! 2시 방향 기관총!]
[민병대 수준이 아닙니다!]
그동안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온 자경단이다.
강릉을 평범한 민간 요새로 보고 있던 기무사 놈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투두두두두두 - - -!
휘릭! 탁, 탁, 탁!
조급해진 헬리콥터가 활공을 멈추고 상가 건물 위에서 제자리 비행한다.
그리고 옥상 아래로 레펠 밧줄을 던져 표적을 잡기 위한 군인들을 하강시켰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쪽이 먼저 당한다.
나는 그 즉시 엄폐물을 뛰쳐나와 1층 계단을 막고 있는 놈을 향해 달려갔다.
“2층 복도에 표적······! 젠장!”
그러자 깜짝 놀란 놈이 황급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나는 이미 5m 안쪽으로 접근했다.
후웅, 탁!
몸이 부웅 날아오른다.
플라잉 니킥을 날려 중심을 무너뜨렸다.
콰직!
순식간에 토마호크를 휘둘러 방탄복이 가려주지 않는 머리통을 쪼개놓았다.
한시가 급하다. 나는 놈이 소유한 권총과 탄약을 뺏어 빠르게 재장전했다.
“사, 사장님!”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요!”
그사이 숨어 있던 혜지 씨와 제임스를 비상계단으로 빠져나가게 하고 밖을 노려봤다.
시선을 끌어줘야 한다.
나는 마지막 심호흡과 함께 정면에 보이는 2층 창문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탁!
몸을 날려 창밖을 뛰쳐나간다.
쨍그랑!
비산하는 유리 조각을 팔로 막는다.
익숙한 부유감에 본능적으로 자세를 취하고 능숙하게 지상 바닥을 굴렀다.
번쩍!
이 상황에서 2층을 뛰어내린다고?
제정신이야?
깜짝 놀란 헬리콥터가 내 쪽으로 모든 서치라이트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번쩍! 주변이 환해진다.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동장님이다!”
“엄호해!”
이미 여러 번 전장을 구르며 내게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자경 단원들이다.
단원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금세 사태를 파악하고 주변을 엄호해주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탕! 타앙!
졸지에 닭 쫓는 개가 되어버린 기무사 군인들은 어쩔 수 없이 총구를 돌린다.
두 집단의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됐다.
티티팅! 팅!
투두두두두두 - - - -!!
총성이 울린다.
총알이 빗발친다.
“이크!”
그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른 나는 야시장 가판대 뒤로 가까스로 몸을 엄폐했다.
“지혈제! 지혈제부터 가져와!”
“엄폐물 세워!”
자경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엄폐물을 끌고 와 주변을 막고 이쪽을 노리는 적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한다.
“총부터.”
나는 한 단원이 내미는 자동 소총을 받고 방탄복과 탄알집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움직이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의무병의 부탁은 이미 귓등으로 흘린 지 오래였다.
“5명만 따라와요!”
침입 사이렌이 울렸으니 밖으로 나갔던 순찰대 인원이 서둘러 복귀하고 있을 터.
나는 이들에게 교전 지역을 맡긴 뒤 소수 인원만으로 챙겨 후방으로 달렸다.
‘아직 남아있어.’
내 뒤를 밟아 상가 건물까지 따라왔던 기무사 군인들은 모조리 처리했다.
하지만 후방에는 기무사 소속 강우석 대위와 함께 그 호위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불길한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몸을 다그치며 시가지를 향해 재빨리 달려갔다.
타앙! 탕탕!
탕탕탕! 탕!
총성이 귀를 어지럽힌다.
식당 밖에선 이미 비명과 고성이 섞인 한차례 소규모 교전이 진행 중이었다.
한쪽 진영은 피투성이 송지영 중위와 김태식, 다른 한쪽은 기무사 놈들이다.
그것만으로 피아식별이 끝낸 나는 곧바로 총구를 옮겨 방아쇠를 당겼고,
따라온 자경 단원까지 가세하며 아군을 압박하던 기무사 놈들을 저지했다.
비명과 총성이 난무한다.
순식간에 탄알집 하나를 비운 나는 피투성이가 된 송지영 주위를 향해 달려갔다.
“선배! 기, 기무사가 단독으로······!”
“알고 있으니까, 지혈부터 해.”
송지영 중위가 무고하다는 건 우리 일행들을 지켜준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나는 손수 상처를 지혈해주며 그녀와 김태식을 안전한 엄폐물로 끌고 왔다.
“젊은 동장! 여길세!”
그러자 한쪽에서 다행히 무사히 살아남은 김춘식 회장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그곳에는 이진석 소위가 심각한 중상을 입은 채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어디 맞은 겁니까!”
“복부랑 가슴팍이야! 지혈되겠나?!”
아무리 권총탄이라도 상체를 두 발 맞았으면 생명을 장담하기 힘들다.
나는 의식이 없는 이진석의 출혈 부위를 막으며 황급히 의무병을 불렀다.
“병원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2~3분이면 됩니다!”
“먼저 후방으로 이송시켜요!”
제발 살아만 있어라. 나는 녀석을 들것으로 옮겨 실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두 손은 어느새 피투성이. 하지만 머리까지 뻗친 열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나는 바닥에 쌓인 눈을 퍼 올려 손과 얼굴에 흥건하게 묻은 피를 닦아 내렸다.
[추락합니다! 모두 피해요!]
꼬리 날개에 불이 붙은 헬리콥터 한 대가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이내 추락한다.
집요하게 사격을 가한 자경 단원들이 기어코 한 대를 떨어트린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한 대는 집중 사격을 피해 천천히 요새 밖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강우석은?”
“교전 중간에 갑자기 사라졌어요.”
교전 중 사라졌다는 말에 나는 바닥에 내려둔 자동 소총을 다시 챙겨 들었다.
“선배?”
그리고 붙잡으려는 송지영을 뿌리친 뒤 요새 정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바람이 서늘하다.
아직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나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희망 요새 픽업트럭과 송신을 시도했다.
“자리에 있습니까?”
[형님? 저희 지원 요청받고 지금 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반가운 목소리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온 나는 경태를 향해 물었다.
“중기관총 챙겼지?”
[예? 네 당연하죠. 탄도 넉넉해요.]
“교차로에서 만나자. 갈 곳이 있어.”
* * *
“제길······!”
한쪽 볼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강우석 대위가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를 지른다.
뭐? 박범석만 처리하면 강릉항 요새야 알아서 꼬리를 말고 협조할 거라고?
시발, 어떤 새끼가 알아 온 정보인지는 몰라도 당장 쏴 죽여도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박범석은 소문보다 더 괴물이었고 민병대 수준일 거라 예상한 강릉항 요새는 상부 판단보다 훨씬 견고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자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졸지에 자기 부하, 잘 나가던 경력까지 전부 잃고 만 강우석은 분통을 터트렸다.
“큭!”
분통을 터트릴 때마다 파편이 찢고 지나간 오른쪽 볼이 끔찍한 고통을 불러왔다.
이를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헬리콥터 조종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주 회전 로터가 무척 불안전합니다. 지금이라도 착륙하시는 게······.”
“움직이긴 하잖아! 닥치고 가!”
아무리 소구경 고속 탄이라고 해도 계속 맞다 보면 이상이 생기는 게 기계 장치다.
그걸 증명하듯 주 회전 로터에선 연기가 났고 속도 또한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이미 이성이라는 것이 날아가 버린 강우석은 그런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젠장, 뭐라고 보고해야 하지?
반드시 성공하라고 신신당부했던 상부의 말을 떠올린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기우뚱!
팅!
“?”
그런데 그 순간 느린 속도로 날아가던 헬리콥터가 옆으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까가가가가강!
헬리콥터 본체에 무언가가 날아와 박힌다.
소총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 위력에 헬리콥터 본체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적 공격입니다!”
“빨리 고도 올려! 빠져나가라고!”
“동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삐용, 삐용, 삐용!
사방에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주 회전 로터에는 불이 붙었다.
다급히 우회기동을 펼치려던 조종사는 또다시 날아오는 예광탄에 비명을 질렀다.
“안, 안돼······!”
투두두두두두 - - - -!
까가가각강, 콰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발사된 중기관총 탄이 조종사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동시에 조종석 전면부가 통째로 날아갔고 힘들게 버티던 로터 또한 폭발한다.
“아, 아아악!”
헬리콥터는 동력을 잃었다.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불꽃에 비명을 지른 강우석은 헬리콥터와 함께 지상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추락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저기에 누가 탔든 간에 저 화마 속에서 살아 나올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부우우웅, 끽.
한참 헬리콥터를 따라가던 픽업트럭은 그제야 스키드 자국을 남기며 멈춰 선다.
철컹.
박범석은 중기관총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헬기 잔해를 조용히 바라보며 차갑게 눈을 식혔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복잡한 표정. 평소 박범석과는 무척 상반된 분위기다.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 걸까?
백미러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경태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려 했다.
“쉿.”
하지만 옆자리에 탄 김가은은 그런 이경태를 제지하며 가만히 앞만 보게 했다.
그녀가 본 박범석의 얼굴에는 감히 위로할 수 없는 회한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래, 많이 지쳐 보였다.
* * *
쾅!
“기무사령관! 당신 정말 미쳤소!”
화를 참지 못한 김태하 소장은 결국 원형 책상을 내려치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대상인 기무사령관은 당황한 기색은커녕 입꼬리를 이죽거리며 웃는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문제라니! 지금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런 뻔뻔한 말이 나오시오?!”
“나는 기무사가 해야 할 방첩 임무를 했을 뿐입니다. 방위사령관, 그쪽이야말로 지금 하는 일이 월권행위라는 거 모릅니까?”
방첩 임무? 뻔뻔스러워도 그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얼굴이 붉게 물들인 김태하 소장은 상대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외쳤다.
“내가 월권이면 당신은 군법 위반이야! 혐의만 가지고 사람을 죽이려 해!”
미연방과 내통하려는 혐의가 의심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범석 예비역 중위를 향한 체포, 사실상 사살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도 뚜렷한 증거 하나 없이 오직 자백제를 투여해서 얻어낸 정보국 요원들의 접선 시도 하나만을 가지고 말이다.
“동결 장치 카드키를 빼돌렸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국가 보안이 걸린 일에 언제 증거를 모으고 움직이고 있습니까, 예?”
“그걸 지금 말이라고······!”
“기무사 내부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불만 있거든 각하께 직접 보고하십시오.”
기무사령관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처음은 불같이 화를 내던 김태하 소장의 얼굴이 한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떤가.”
“뭐라고요?”
“눈엣가시였지 않나. 사사건건 원리 원칙을 들이미는데, 함부로 목을 칠 수가 없었으니까. 아마 이 순간만을 기다렸겠지. 말도 안 되는 꼬투리 하나 잡아서 평생 군에 헌신 한 전쟁 영웅 한 번 담가보겠다고 말이야.”
“그게 지금 무슨!”
꽈악!
김태하 소장은 뒤로 물러나려는 기무사령관의 멱살을 낚아채 몸쪽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권총이라도 뽑을 듯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앞으로 들이민다.
“버러지 같은 새끼. 내 귀에 범석이 죽었다는 보고 한 번이라도 들려오기만 해봐. 너도 그 자리에서 똑같이 만들어주마.”
“제, 제대로 미쳤군! 이거야말로 국가 반역 행위야! 각하께서 이걸 보시면······!”
“본인이 얼마나 멍청한 인간을 데려다 앉혀놨는지 알겠지. 너희가 성공했으니까 쿠데타였지, 아니었으면 국가 반역이지 않나?”
총칼로 요새와 정권을 찬탈한 이 수뇌부는 날이 가면 갈수록 썩어가고 있다.
이미 국민은 관심 밖이고 오직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서만 군을 움직이는 걸 모자라,
흔들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발악을 하는 걸 보면 너무나 뻔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멱살을 잡고 흔들며 화를 내는 것뿐.
부하들을 위해 억지로 버티고 있던 김태하 소장은 점점 지쳐가는 걸 느꼈다.
덜컹!
그런데 그 순간 다급히 문이 열리며 한 기무사 장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질질 흘렸다.
“사, 사령관님.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각하께서?”
한참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기무사 장교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부하의 입에서 들려온 보고에 기무사령관은 얼굴을 일그러트렸
다.
“작전이······실패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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