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58화
스릉!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것보다 숨겨둔 날붙이를 꺼내 드는 것이 더 빠르다.
놈들은 술에 취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날붙이를 뽑아 들었다.
휘익!
탁!
어디를 찌르면 죽는 줄 안다.
순식간에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칼날을 반대쪽 손으로 잡고 끌어당긴다.
그리고 졸지에 중심이 무너진 놈의 얼굴 정중앙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쩌억!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피가 터진다.
동시에 나머지 놈들도 새된 고함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발, 덮쳐!
술집처럼 좁은 공간에서 날붙이를 상대하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다.
하지만 이 짓도 여러 번 하다 보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감이 온다.
콰직! 우두둑!
쾅!
찌르고 들어오는 팔을 붙잡고 뼈마디를 꺾어 확실하게 부러뜨려 준다.
쾅!
사각지대를 노리는 놈한테는 바로 테이블을 걷어차 사타구니 호두를 박살낸다.
콰드득!
당황하는 놈을 향해 테이블을 박차고 날아 얼굴을 무릎으로 찍어버린다.
모든 움직임이 유기적이다.
나는 마치 1시간 전부터 싸움을 계획한 사람처럼 상대를 하나둘 요리해줬다.
퍽, 퍽, 콰직!
원, 투, 훅! 그간 쌓인 짜증이 모두 날아가는 통쾌한 일격이 환호성을 유도했다.
살롱 쇼다운! 긴장감은 어느덧 유리잔처럼 깨져버리고 흥분이 사방을 조여왔다.
우르르르, 쾅!
하지만 카르텔 소굴답게 놈들도 아무 생각 없이 민간인을 건든 것은 아니었다.
“형님! 저쪽입니다!”
같은 조직원이 맞고 있다는 소식에 2층에서 다른 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숫자만 해도 열이 넘고 하나 같이 살벌한 날붙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 새끼들 기본 디폴트가 살인이야? 한참 신나게 날뛰고 있던 나는 시선을 느꼈다.
“- - - - - - -.”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근처까지 달려온 경태와 가은 씨와 눈이 마주친다.
딱 봐도 ‘무언가’ 허락을 기다리는 얼굴이길래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해봐.’
그러자 가은 씨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가 욕설과 함께 깔끔한 드롭킥을 날린다.
마찬가지로 여태 참고 있던 경태도 모자를 집어 던지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쾅, 콰직!
문 상사와 필적하는 타고난 체구에 겨우내 웨이트만 열심히 조졌던 이경태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놈 중 하나를 통째로 낚아채 바닥에 그대로 꽂아버렸다.
“나도 이젠 몰라요!”
거기에 송지영 중위까지 참전하자 술집 내부는 순식간에 개판이 나버린다.
휘두르는 주먹, 터지는 피, 깨진 맥주병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비명이 울려 퍼진다.
쪽수가 훨씬 딸림에도 불구하고 나와 일행들은 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술집 바닥에는 어느새 한 대씩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조직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시발, 애들 불러!”
하지만 이런 피 터지는 개싸움도 결국 결판이 나야 그 끝이 아름다운 법이지,
이렇게 계속 지원을 불러오면 누구 하나 선을 넘는 사람이 나온다.
과열을 넘어 일이 터지기 직전인 분위기에 결국 누군가 총을 뽑아 발사했다.
펑!
싸움이 잠시 멈춘다. 깜짝 놀란 양측은 총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찬장 위 산탄총을 가져온 여주인이 총구를 허공에 겨누고 있었다.
“이쯤 해! 가게 다 부실 셈이야?”
당연히 반발은 우리를 한 사람도 눕히지 못한 놈들 쪽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이봐, 아줌마! 우리 애들 쓰러진 거 안 보여? 지금 아는 사람이라고 편드는 거야?”
“서울에서 온 사람 건드려서 좋은 거 없잖아. 일 키우지 말고 이쯤 하자고.”
송지영이 서울 요새 소속 군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여주인은 일찍이 경고했다.
그건 우리를 향한 호의보다는 사태가 커질 것을 염려한 걱정처럼 보였다.
“조까네, 시발! 서울 놈들이 여길 왜 와?”
“요즘은 개나 소나 군인이라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놈들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주변을 포위해왔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고 약도 한 사발씩 먹어줬겠다, 진짜 뵈는 게 없는 것이다.
쯧, 진짜 권총이라도 뽑아야 하나? 나는 피가 묻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놈들은 슬금슬금 다가온다.
양측 간격이 서서히 좁혀온다.
일촉즉발.
나와 일행들은 결국 권총 홀더 위로 손을 올려두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다.
덜컹!
쾅!
그런데 그 순간 살롱 문이 쾅 하고 열리며 맨 뒤에 있던 조직원 하나가 넘어진다.
졸지에 꼴사나운 꼴을 보인 말단 조직원은 얼굴을 붉히며 문 쪽을 뒤돌아봤다.
“뭐야, 어떤 새끼가······.”
그리고 호기롭게 일어선 지 1초도 되지 않아 붉었던 얼굴이 하얗게 물들인다.
“- - - - - - -.”
각 잡힌 베레모, 서울 요새 군인을 상징하는 국방 전투복과 엄청난 크기의 체구.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문 상사가 살벌한 얼굴로 말단 조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형님.”
“뭐 이 새끼야! 나 지금 바빠!”
“형님, 우, 우리 진짜 좆됐어요.”
“아니, 시발 진짜 오늘 한번······엥?”
뒤돌아본 다른 조직원을 필두로 술집에 모인 모든 놈들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무서운 것 없는 원주 조직원들에게 있어 서울 요새 군인 저승차사나 마찬가지다.
쾅!
탁, 탁, 탁, 탁!
무역 거점인 원주역으로 파견 나와 있던 군인들이 우르르 안으로 진입한다.
아무리 평소 꼬리를 흔들었던 개도, 주인 친구를 물었으면 맞아도 할 말이 없는 법.
일반 군인 신분이어도 난리가 날 텐데 하필 그 대상이 사령관이 아끼던 부하다?
군인들은 당장이라도 쳐죽일 것 같은 살벌한 얼굴로 놈들을 노려본다.
딸꾹.
앞으로 처할 운명을 예감한 조직원 하나가 딸꾹질한다.
“쳐.”
살얼음 같은 문 상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현장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 * *
“미안하다.”
다시 열차 위에 올라탄 나는 마주 보고 앉은 문 상사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해도, 애들은 책임져야 하는 건 나, 그리고 먼저 달려들어 일을 키운 것도 나다.
현재 처한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라도 조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 상사는 겨우 이런 일로 사과할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사과해야 할 건 저죠. 아무래도 사람 하나를 붙였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습니다.”
“상부에선 뭐라 안 해?”
“지금 중위님 오는 거 기다리는 사람만 몇 명인 줄 아세요? 원주에 파견 나왔던 인원들 전부 비상 터져서 난리 났습니다.”
“쯧, 또 폐 끼쳤네.”
“뭐, 이참에 기어오르는 놈들 정리도 겸하는 거죠. 그래도 잡아보니 통나무 장사랑 마약 유통하던 새끼들이더라고요.”
사고 안 치니까 내버려 두는 거지 서울 요새가 결코 힘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뒤처리부터 피해보상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준 문 상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래서, 거기까진 왜 가셨어요?”
“정보가 조금 필요해서. 대관령에 감염체 군락 하나 생겼었던 거 너도 알고 있지?”
“예, 소식 들었습니다. 다들 강릉이 이길 줄 몰랐다고 놀라워하던데요.”
“그게 사실 둥지 소멸이 아니야.”
“예?”
“군락이 스스로 도망쳤어. 그리고 도망친 곳이 치악산이라는 걸 오늘 알아냈고.”
군락이 스스로 둥지를 없애고 도망쳤다고? 경험이 많은 문 상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가 설명이 더해지자 표정이 조금씩 딱딱하게 굳는다.
“지능이 있다고요?”
“단순 감염체 수준이 아니야. 지휘도 할 수 있고 언어 체계도 있어. 아마 송 중위가 변이체 관련해서 DNA 표본도 넘겼을 거야.”
“그럼 이게 한반도 첫 사례입니까?”
“모르지, 남쪽은 또 어떨지.”
미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강릉이라고 뚜렷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문 상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턱을 한동안 매만지며 내게 말했다.
“이건 제가 정식으로 보고 올려보겠습니다. 가능하면 특임대랑 협업해보시죠.”
감염체 대응팀에서 출발한 특임대인만큼 이쪽으론 정보도, 능력도 빠삭하다.
나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셨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열차는 드문드문 인위적인 빛이 보이는 경기권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었다.
“아마 한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새벽까지 쉬시다가 바로 서울역으로 가시죠.”
“대원들 다 데려가도 되지?”
“권총 홀더만 숨겨주십시오. 요즘 이상한 단체들 때문에 사람들 신경이 날카롭네요.”
어차피 호위 병력이 따로 움직일 테니까 무장이 과할 필요는 없겠지.
이왕 서울 요새로 오게 된 거 주변 구경이라도 조금 시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쉬기 위해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문 상사가 복도에서 나를 부른다.
“아, 그리고 중위님.”
“응?”
“예전보다 더 멋있어지셨습니다.”
뭐라는 거야, 새끼가 소름 돋게. 나는 흐흐 웃는 녀석을 피해 자리로 도망쳤다.
* * *
“내리시면 됩니다.”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김태하 소장이 보낸 군인들이 역 주변을 호위했다.
자연스럽게 내린 나와 달리 일행들과 대원들은 어색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공기부터 강릉과는 차원인 다른 곳.
오직 열차 매연과 회색 구조물뿐인 서울역은 칙칙하다 못해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나는 역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삼엄하네.”
“일주일 전에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일단 막긴 했는데, 열차가 통째로 날아갈 뻔한 거라 위쪽에서 화가 많이 났어요.”
“자기들이 원인인 건 모르고?”
“목소리 낮추십시오, 중위님. 근처에 기무사 새끼들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곡을 그대로 찌르는 말에 문 상사는 겨우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병신 같은 군부 놈들. 나는 작게 혀를 차는 것으로 뱉고 싶은 욕을 대신했다.
“이쪽입니다.”
우리는 매연 가득한 승차장을 빠져나와 서울역 1층 대합실을 향해 올라왔다.
문 바깥에는 이미 나와 일행들을 태워 갈 군용 레토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은?”
“안 그래도 일정이 잡혔습니다. 일단 목적지까지 가시면서 이야기하시죠.”
함께 온 일행들은 하나둘 차량에 탑승했고 나 또한 문 상사를 따라 차 문을 열었다.
하지만 녀석은 차에 함께 타는 대신 작게 경례하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오랜만이야.”
두꺼운 암막으로 가려진 차 안에는 김태하 소장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 양반 참 여전하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게 뭡니까.”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차라리 이동하면서도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더군.”
하긴 온갖 도청이 즐비할 사령부 건물보다는 예상 못 할 장소가 좋으리라.
얼굴이 생각보다 편안해 보이는 김태하 소장은 묵은 숨을 훅 내쉬며 물었다.
“강릉 생활은 어떤가?”
“생각보다 살만합니다. 적어도 뒤통수에 칼 꽂힐 걱정을 안 해도 되니까요.”
“······그때 일은 정말 면목이 없어.”
“됐습니다. 사령관님 잘못도 아니고.”
같은 피해자였던 소장한테 따져봤자 오늘 하루 기분만 더러워진다.
나는 지나간 일은 더 이상 꺼내지 말자 말한 뒤 등받이에 피곤한 몸을 기대었다.
“재판은요?”
“날짜가 잡히긴 했네.”
“의외네요.”
“벼르고 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놈들이 그동안 쌓은 업보가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김태하 소장의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래, 그랬겠지. 머리 한 편으로 이를 예상하였던 나는 눈을 감으며 물었다.
“소용없었군요.”
“위쪽에서 끼어들었네. 군사 재판을 진행해도 아마 가벼운 처벌만 받고 끝날 거야.”
이보다 위쪽이라 하면 역시 그 작자, 현재 각하라고 불리는 그 인간뿐이다.
평소처럼 미련 없이 쳐낼 줄 알았는데 설마 끝까지 싸고돌 줄은 몰랐다.
“그걸 다들 보고만 있었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내전이라는 걸 아는 거지. 지금 상황이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네.”
부족한 물자, 점점 심각해져 가는 여론, 그 무엇 하나 적신호가 켜지지 않은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충돌한다면 서울 요새가 정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야 내가 알 바는 아니기에 김태하 소장을 향해 솔직히 물었다.
“그럼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내가 한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거기까지 말한 김태하 소장은 의자 밑에서 검은 상자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달칵.
그 안에는 강선을 긁어놓은 아음속 권총과 함께 먹칠한 소음기가 들어있었다.
“강릉을 건든다면 침실로 직접 찾아가 주겠다는 말, 아직도 유효하나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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