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59화
철컥!
나는 김태하 소장이 내민 상자 속에서 조그마한 권총을 꺼내 슬라이더를 당겼다.
글록 26. 일명 아기 글록이라 불리는 9mm 권총이며 서브 콤팩트 급이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모습과는 다르게 장탄 수는 무려 10발이 들어가는 작은 맹수.
나는 손에 착 감기는 그립에 만족하며 김태하 소장의 설명을 마저 경청했다.
“스프링이랑 나사 하나까지 따로 수입해서 현지 조립한 물건이다. 여차하면 현장에 버리고 와도 추격하지 못할 거야.”
“탄은요?”
“아음속 탄일세. 탄력 좋은 탄알집으로 두 개, 소음기를 끼면 총을 쏜 줄도 모르지.”
정말 작정하고 준비했다. 나는 홀더에 글록 26 권총과 탄알집을 챙겼다.
그러자 김태하 소장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자를 닫아 치워버린다.
“그래서, 할 수 있겠나?”
“판만 깔아주시면요.”
김태하 소장은 숨을 크게 들이켜며 자신이 짠 가짜 시나리오를 읊기 시작했다.
“내가 한발 물러나면 알아서 무혐의 처분이 뜰 거야. 기소 자체가 안된 거니 놈은 금방 복귀할 거고, 상황을 살피려 하겠지.”
“그럼 우리는······.”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내가 일방적으로 접견을 거부했고, 너는 어쩔 수 없이 강릉으로 돌아가게 된 거니까.”
“소장님이 포기했다고 생각하겠군요.”
“그래, 분명 승리에 자만하겠지. 그리고 동시에 여기서 끝을 보려고 할 거야.”
한 번 실패한 강릉은 아닐 거고 높은 확률로 돌아가는 열차를 노릴 것이다.
이는 김태하 소장도 이미 예상하였는지 치명적인 한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자네 동료들과 문 상사가 이끄는 특임대 전원을 바꿔치기할 걸세.”
상대로선 소름이 돋는 생각이다.
그냥 훈련받은 군인도 까다로울 판에 문 상사가 직접 이끄는 정예 특임대라니.
아마 열차 문을 연 순간 놈들은 저승차사를 마주한 심정으로 목숨을 내줘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바깥 문제는 해결이 됐고, 이제 약속한 침실 방문을 예약할 차례였다.
“그럼 저는 언제 움직입니까?”
품을 뒤진 김태하 소장은 알 수 없는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거랑은 달리 답답한 도심을 아주 싫어하는 놈이야. 특히 신경이 거슬릴 때면 꼭 가는 개인 소유의 별장이 있지.”
“호위가 있겠군요.”
“자네한테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나?”
이보다 더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 수십 번씩 작전을 성공시켰던 특임대다.
나는 겸양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태하 소장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현장 뒤처리는 정보사가 대신해줄 걸세. 그러니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와.”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나는구나. 일 끝나면 둘이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 김태하 소장과 나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덜컹, 탁!
차에서 내렸다.
문 상사가 다가와 묻는다.
“이야기 끝나셨습니까?”
“응.”
녀석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우리가 머물 숙소를 안내했다.
나는 한껏 들떠있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뒤따라가며 작전의 서막을 준비한다.
* * *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갔다고?”
“그렇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로 온 박범석 중위를 김태하 소장이 만나주지 않았다.
초조한 얼굴로 보고를 전해 받은 기무사령관은 볼을 씰룩거리다 이내 크게 웃었다.
“크하하, 머저리 같은 새끼들!”
아무리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힘의 논리 앞에선 하등 쓸모가 없는 법이다.
무려 각하께서 뒤를 지키고 있는데 한물간 퇴물끼리 모여서 뭘 하겠다는 건가.
아마 김태하 소장도 패배를 직감하고 박범석을 만나주지 않은 게 뻔했다.
멍청한 새끼. 그렇게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다 같은 놈에 불과하지.
기무사령관은 그제야 편히 자리에 앉으며 아껴둔 고급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나저나 어쩐다.
어차피 보여주기식 처벌도, 이대로 기소 자체가 안되는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일이 아닌 앞으로 자신을 성가시게 할 날파리들이다.
‘박범석.’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이고 잠을 설치게 하는 거슬리는 존재.
5년 전도, 지금도, 앞으로도 박범석이라는 놈은 자신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다.
승리를 자신했던 기무사령관은 이젠 완벽한 일 처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끊어내야겠어.”
“예?”
“귀먹었나? 처리해야겠다고.”
가만히 책상 앞에 서 있던 기무사 군인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허리를 굽혔다.
“사, 사령관님.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하께서도 분명······.”
“나도 아니까, 닥쳐!”
박범석은 강릉에 기반 시설이 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도시를 발전시키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놈이 가진 실력과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 하나는 진짜다.
나중에라도 목이 물리기 싫으면 맹수가 되기 전 아예 싹을 잘라놔야 했다.
입맛이 싹 사라진 기무사령관은 들고 있던 시가를 잠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놈들, 서울로 오는 동안 원주 약탈자 새끼들하고 충돌한 적이 있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쪽에서 매수해.”
실력은 형편없어도 그 머릿수 하나만큼은 바퀴벌레처럼 징그러운 새끼들이다.
묵인해준다는 약속과 물자만 넘겨준다면 원주를 지나치는 열차를 습격할 것이다.
“사령관님······!”
이 정신 나간 계획에 수년간 옆을 보좌했던 보좌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만류하려 했다.
“그래서, 항명인가?”
하지만 기무사령관은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부하들을 위협적으로 노려본다.
이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나가봐.”
싸늘한 축객령에 기무사 소속 군인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빠져나간다.
후우.
혼자 남은 기무사령관은 지친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야경이 아른거리는 유리창 뒤로 아직도 생생한 기억 하나가 재생되었다.
‘젠장.’
겨우 권총 한 자루만을 들고 찾아와 자신에게 피 묻은 총구를 겨눴던 박범석 중위.
당시 무서울 게 없었던 기무사령관에게 있어 그 기억은 엄청난 치욕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광적인 적의를 품은 이유는 그깟 치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포.’
잡아먹지 못하면 내가 먹힌다.
기무사령관은 손안에 고인 식은땀을 닦으며 하얀 가루를 섞은 위스키를 홀짝였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마치 자기 암시처럼 읊조리자 곧 몰려오는 약 기운이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 * *
에에에에에엥 - - - - -!!
투웅! 퉁! 투퉁!
시끄러운 사이렌을 기점으로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발사된다.
이에 사람들은 물을 적신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움직임일 뿐 시위대는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로 굶겨 죽일 셈이야!’
‘독재 정권 물러나라!’
서울 요새가 가뜩이나 식량난으로 허덕이는 와중, 군부가 제대로 헛발을 짚었다.
현재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강릉 요새와의 중개무역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모자라,
이번 사건에 깊게 관여했던 기무사령관이 처벌받기는커녕 무혐의를 받고 만 것이다.
증거도 있고, 분명 살아있는 증인도 있는 마당에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전쟁 영웅이었던 박범석 중위가 강릉으로 그냥 돌아갔다는 소식에 그동안 참고 참았던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시작해.’
하지만 정작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지난날 계획한 척살 임무를 위해 원주 카르텔 조직과 접촉한 지 오래였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난 강릉행 열차가 천천히 서원주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처리해.]
“예에, 알겠습니다.”
이빨이 누렇게 뜬 조직원 보스 하나가 기무사로부터 온 연락을 공손하게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건방지게 태도를 바꾸더니 바닥에 누런 침을 뱉으며 투덜거린다.
“시발 새끼들이 알아서 한다니까, 계속 명령 질이네. 우리가 진짜 좆으로 보이나.”
“형, 형님. 진짜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야 이 새끼야! 기무사라잖아, 기무사! 뒤처리도 놈들이 해준다는데 무슨 걱정이야. 우리는 그냥 뚜껑만 따서 먹으면 된다고!”
서울 요새 내 기무사의 위상이야 지나가는 개새끼도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 놈들이 열차 하나 처리해달라고 물자까지 줬는데 못 할 일이야 없지 않은가.
특히 지난번 일로 호되게 당했던 조직들이 복수를 위해 달려든 건 물론,
카르텔 중 냄새를 맡았거나 식량에 굶주린 머저리 약탈자들도 다수 참전했다.
진짜 바퀴벌레들처럼 모였다.
하지만 이렇게 좁은 역에서 벌어지는 개싸움은 일단 대가리가 많은 쪽이 장땡이다.
물자를 꿀꺽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조직 보스는 히죽 웃으며 무기를 챙겼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그러자 마침 저 멀리, 서울에서 출발한 디젤 기관차가 역으로 접근했다.
끼이익.
표적은 앞으로 벌어질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접근해라.
열차가 50m를 앞두고 멈춰 섰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조직 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선로 막아!”
끼리리릭, 쿵!
미리 설치해둔 구조물들이 쓰러지며 역을 빠져나갈 수 있는 선로를 틀어막는다.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지른 조직원들은 열차를 향해 개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오아아아아아!”
“시이이발! 캬하하, 내가 먼저다!”
이번 건만 제대로 처리하면 앞으로 2~3년은 놀아도 될 만큼 많은 물자를 받는다.
이미 눈이 돌아간 조직원들은 한 치 망설임 없이 열차 문틈으로 노루발을 끼워 넣는다.
치이익, 덜컹!
“응?”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굳게 닫혀야 있어야 할 열차 문은 너무나 쉽게 열렸다.
침을 질질 흘리던 조직원들은 동시에 조명이 반짝이는 열차 안을 들여다봤다.
투캉!
그 순간 복도 끝에서 화염이 번쩍이더니 이내 조직원 두 명이 픽 하고 쓰러진다.
넋 놓고 쓰러진 두 명을 바라보니 가슴팍 살점이 통째로 뜯겨 나가져 있었다.
취익, 취익.
열차 안에서 연막탄 연기가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방독면을 쓴 중무장 군인이 자동 산탄총을 겨누며 걸어 나왔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USAS-12.
대 감염체 전투로 재조명을 받음과 동시에 특임대 전용 장비가 된 걸출한 무기다.
그 녀석이 불을 뿜자 인간이 숫제 갈려 나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여, 여기다! 여기도 있다!”
문마다 온몸을 두꺼운 방검, 방탄복으로 떡칠한 중무장 대원이 쿵쿵 걸어 나온다.
열차 창문에는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특임대대원들이 소총을 발사했다.
박범석 중위가 공격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원 자원해서 찾아온 그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번뜩이는 눈동자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살, 살려줘! 살려주세요!”
“포로 잡습니까?”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문 상사는 싸늘한 목소리로 무전을 날렸다.
“모조리 죽여.”
그렇게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갈 무렵 서울에도 한 남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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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 근처를 ‘지나갈’ 예정인 헬리콥터에 탑승한 박범석이 지상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너무나 가볍게 패스트로프로 착지해 빠르게 벗어나는 헬기를 바라봤다.
탁!
어둠이 짙게 깔린 산중이다.
그보다 어두운 옷과 위장으로 몸을 숨긴 박범석은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빛이 반짝이는 한 호화스러운 별장이 산중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찾았다.’
침실로 직접 찾아가 주겠다는 약속.
꼭 지켜주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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