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60화 (60/180)

60화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60화

악연.

실타래처럼 꼬이고 흉터처럼 문드러져 더 이상 돌려놓을 수 없는 악의 인연.

기무사령관 박우식 소장과의 관계는 그 악연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됐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생각해보니 그 악연이라는 것도 결국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실타래를 끊었어야 했는데.

진즉에 계산을 청산하고 그 악연이라는 관계 자체를 없앴어야 했는데 말이다.

너무 물렀다.

안일했다.

그래서 오늘 밤, 지난번에 하지 못한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탁!

수풀을 가로질러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경사진 절벽을 가뿐하게 내려와 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달한다.

무려 3층짜리로 지어진 목조 건물, 곳곳에 때늦은 크리스마스 조명 흔적이 남아있다.

아주 강릉을 개판 쳐놓는 동안 자기들끼리는 신나게 놀고 앉아 있었구나.

가볍게 코웃음 친 나는 품속에 넣어둔 소형 망원경을 꺼내 별장을 살펴봤다.

‘호위가 많다.’

정장을 입은 기무사 소속 군인들이 별장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다.

대략 보이는 숫자만 해도 20명. 하나 같이 자동 화기와 방탄복을 갖춰 입고 있다.

나는 일단 겉으로 보이는 경비 위치와 동선을 머리에 익힌 뒤 망원경을 챙겨 넣었다.

“- - - - - -.”

머리를 긁적인다.

입김으로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잠시 어떻게 안으로 진입할지 머리를 굴렸다.

깔끔하게 기무사령관 새끼만 딱 죽이고 나오는 시나리오가 최고일 텐데 말이야.

정공법으로 하기엔 시선이 너무 끌리고 몰래 들어가자니 저쪽 호위도 프로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예전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허벅지와 관절을 콩콩 두드렸다.

부우우우웅 - - - -!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옆 산길에서 화물 차량 한대가 올라오는 것이 포착됐다.

재빨리 자세를 숙여 느린 속도로 달려가는 화물 차량의 경로를 확인했다.

별장으로 가고 있다.

나는 수풀을 해치고 뛰쳐나와 뒤뚱뒤뚱 산길을 올라가는 차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 치 망설임 없이 짐칸 쪽으로 손을 뻗어 몰래 차량에 탑승했다.

숨을 죽인다.

시끄러운 디젤 엔진 소리에 운전사는 뭐가 올라탔는지도 모르는 눈치이다.

보아하니 별장에 필요한 물자를 주기적으로 가져다주는 모양인데 운이 좋았다.

나는 잽싸게 화물 짐칸 안으로 들어가 술 궤짝과 식자재 포대 사이에 숨었다.

부우우우우웅 - - -!

그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운전사는 복잡한 산길을 지나 별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굳게 닫힌 마당 입구에 도착해 다가오는 기무사 군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충성! 무슨 용건이십니까?”

“야야, 비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이미 여러 번 이곳을 오고 갔는지 운전사와 한 기무사 군인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주문한 물건 빠짐없이 챙겨왔죠?”

“예에. 제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거 추운 날 고생하시는데······.”

“크흠!”

운전사가 평소 기름칠 좀 해왔는지 그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히죽 웃는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히죽 웃은 기무사 군인들은 서둘러 바리케이드를 치워주었다.

이야, 아저씨 능력 좋네.

덕분에 검문 없이 안으로 들어오게 된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별장을 바라봤다.

부우웅, 끽!

마당을 가로지른 차량은 건물 뒤편, 지하 창고와 이어진 곳에 곧바로 주차했다.

의외로 이런 곳엔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지 운전사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탁!

나는 재빨리 짐칸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담배를 태우는 운전사를 피해 지하 창고 안으로 조용히 진입했다.

가득 쌓인 식자재, 제대로 된 와인 창고, 산처럼 쌓여있는 온갖 고급 양주까지.

사람들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군인이라는 새끼들이 아주 살판이 났구나.

나는 그 광경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품을 뒤졌다.

끼릭, 끼릭.

김태하 소장이 구해준 글록을 꺼내 장탄을 확인하고 소음기를 끼워 넣었다.

그다음 운전사가 짐을 옮기러 오기 전 조심스럽게 1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터벅, 터벅, 터벅.

공동 공간인 1층은 조용했다.

오직 소수 사용인과 호위 인원만이 1층과 복도를 오갈 뿐, 조명조차 꺼져있다.

아마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기무사령관을 위해 집안 출입을 자제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계단을 빠져나와 방금 바로 앞을 지나간 사용인을 뒤따라갔다.

턱!

“끕!”

뒤에서 사용인을 덮쳐 입을 틀어막은 뒤 청소 도구가 쌓인 창고로 끌고 왔다.

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총구에 온몸을 버둥거리던 사용인은 금세 얌전해졌다.

“박우식 소장을 찾고 있어. 얌전히 말만 해주면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덜덜 떨던 사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목에 겨눈 총구를 치워주며 다시 물었다.

“3층인가?”

마른침을 꼴깍 삼킨 사용인이 덜덜 떨리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여준다.

반응으로 보아 진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용인은 가볍게 기절만 시켰다.

그리고 바닥에 편안하게 눕혀준 뒤 창고를 빠져나와 2층 계단으로 올라왔다.

“- - - - - - -.”

조용히 자세를 숙인다.

발코니 한 명, 복도에 또 한 명, 그래도 바로 아래층이라고 두 명이 경계 중이다.

밖과는 독립된 공간이고 혹여나 기무사령관을 처리하고 나올 때 방해가 될 수 있다.

‘처리하자.’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나는 마치 미끄러지듯 2층으로 올라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턱! 끄드득!

그리고 바로 앞을 지나가는 군인 하나를 입을 막고 반대쪽으로 목을 돌렸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힘없이 쓰러지는 시체를 조심스럽게 받쳐 바닥에 내려놓는다.

“음?”

그래도 군인이라고 발코니에 서 있던 다른 동료가 작은 소음을 포착했다.

놈은 무언가 수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품에서 권총을 뽑아 복도로 다가오려 했다.

스릉, 후웅!

콰직!

시간이 지체된다.

혹여나 총성이 울리면 안 되기에 망설임 없이 토마호크를 뽑아 던졌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도끼는 허공을 한 바퀴 날아 정확히 놈의 이마에 꽂힌다.

털썩!

경계병이 쓰러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머릿속 시계로 5분을 설정했다.

이마에 박힌 토마호크를 뽑아 회수하고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시발!”

쨍그랑!

익숙한 목소리가 고함이 들려오며 문 바로 옆으로 위스키 잔이 날아와 깨졌다.

보고를 올린 보좌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특, 특임대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김태하 소장 쪽에서 이미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둘이 만나지도 않았다며! 우리가 먼저 칠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제 실책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지금이라도 피신을······.”

쾅!

“여기 서울 요새야! 서울! 감히 어떤 새끼가 대한민국 기무사령관을 노려!? 닥치고 각하께 보고나 해! 이건 국가 반역이라고!”

계획이 실패했다는 말에 기무사령관은 지랄발광하며 주변 물건을 부쉈다.

이에 보좌관도 기가 질렸는지 다른 곳으로 피신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안하네.

벌써 왔는데 말이야.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총구를 앞으로 겨눴다.

철컥

“?”

퓽!

맥 빠지는 아음속 총성과 함께 뒤돌아보려던 보좌관의 머리통이 꿰뚫린다.

놈은 뭔가를 해볼 겨를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뇌수를 주르륵 흘린다.

“어, 어······.”

방금까지만 해도 본인과 대화하던 인간이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해버렸다.

술기운에, 또 약 기운에 취해있던 기무사령관은 넋이 나간 채 몸을 부들거린다.

“!”

눈이 마주쳤다.

그는 허둥지둥 손을 뻗어 본인이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이쪽으로 발사하려고 했다.

퓽! 퓨웅!

하지만 이미 총을 겨누고 있던 나는 오른팔과 어깨를 향해 총알을 박아 넣었다.

“끄, 끄아악 - - - 컥!”

접근하는 건 순식간이다. 비명을 지르려는 입을 틀어막고 천을 욱여넣는다.

그다음 머리채를 움켜잡아 유리 조각들이 깨져있는 책상 위에 얼굴을 박게 했다.

유리 조각에 짓눌린 피부가 찢어지고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쾅!

“끄으으븝! 끄윽!”

하아, 피곤한 한숨을 내쉰다. 놈이 지르는 비명이 통쾌하다기보단 허무했다.

이런 새끼가 사령관 자리에 앉아 저지른 실책이 몇 개고 참상이 몇 개인가.

결국 찌르면 비명 지르고 총알을 박아넣으면 죽는 똑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내가 찾아온다고 했지.”

“으으븝! 읍!”

“미리 경고까지 해줬잖아.”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놈이 마지막 남은 손을 필사적으로 떨었다.

나는 무슨 개소리를 더 할까 싶어 목구멍을 틀어막은 천을 잠시 빼내 주었다.

“다, 다 정치적인 이유였어······! 자네도 알잖나? 각하! 각하께서 시킨 일이야!”

“각하가.”

“그래!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러니 살려만 주게! 살려만 주면 돈이고 물자고 다 넘겨줄게! 강릉? 그래, 자치권이면 되나? 내가 지금 당장 각하께 말씀드려서!”

퓽! 퓽!

“끄으으읍!”

다시 입을 틀어막고 총알을 먹여줬다.

우리 같은 놈들이야 이미 찌든 대로 찌들어 앞날이라는 걸 당최 모르는 인간이라지만,

나 하나 지키겠다고 죽었던 그 강릉 사람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다.

오늘을 살 자격이 없는 새끼가,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인간들 발목을 붙잡는 꼴.

이런 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니 없어져야 한다.

과거의 망령처럼 살아있는 우리도, 그득한 욕심을 붙잡고 있는 이런 새끼들도

그냥 세상에서 모조리 사라져야 한다.

나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놈의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밀어 마지막으로 작별했다.

“지옥에서 보자.”

퓽!

오줌을 지리며 발광하던 기무사령관이 곧 총알 한 발에 움직임이 멈췄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권총을 회수한 나는 피가 가득한 방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어둠이 짙어지고 별장은 곧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 * *

“각하께서 기다리십니다.”

국민이 투표로 뽑아 세워야 할 신성한 공간에 오직 군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굴을 굳힌 김태하 소장은 뚜벅뚜벅 복도를 걸어 집무실 안으로 발을 들인다.

그곳에는 백발이 성한 한 남성이 의자를 비스듬히 돌려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하.”

각하. 그 명칭 하나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온다.

이에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남성은 아예 의자를 돌려 김태하 소장을 등져버린다.

“자네 짓인가?”

“무엇을 말입니까?”

“기무사령관 일, 자네 짓이냐고 물었네.”

짧은 근신 명령을 받은 기무사령관이 본인 소유 별장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목격자는커녕 그 어디에도 증거가 남지 않아 범인을 찾을 수가 없다.

서울 요새에서, 그것도 한 집단을 책임지는 사령관이 소리소문없이 죽었다고?

이건 내부에 공조자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김태하 소장 본인과 정보사가 직접 관여했을 확률이 높았다.

“글쎄요.”

“······그게 대답인가?”

“제가 안 했다고 하면 각하께서 믿으시겠습니다. 아니, 했다고 하길 원하시겠죠.”

이미 알고 있으면 왜 그러냐. 뼈 있는 말에 대통령은 불편한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는 최소한의 경고뿐이었다.

불편한 침묵이 오간다.

대통령이 결국 입을 다물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태하 소장이 물었다.

“각하, 기억나십니까.”

“으음.”

“10년 전 이날 말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라도 나서야 한다고 한 날 말입니다.”

그런 때가 있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의기와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자는 희망찬 과거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남은 건 고집뿐인 노인과 백발이 무성한 한 인간뿐.

흐릿한 기억을 더듬은 대통령은 순간 후회와 미련 그리고 허탈감을 느꼈다.

“기억······났었지.”

“그러시군요.”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김태하 소장은 짧게 경례한 뒤 집무실 밖을 나섰다.

터벅, 터벅, 터벅.

복도를 걷는다.

미간이 찡그려진다.

그 찡그림은 점차 얼굴로 번져나가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김태하 소장은 방금 다 하지 못한 말을 조용히 읊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사건의 원흉이었던 기무사령관이 죽고 복수를 빙자한 정의가 세워졌다.

하지만 서울 요새를 어지럽힌 혼란은 진정되기는커녕 불길처럼 더욱 번져만 갔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미래.

김태하 소장은 옛 부하였던 박범석이 빨리 강릉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또 한 번 녀석을 휘말리게 하기에는 정치라는 건 너무나 비열하고 더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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