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65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피붙이에 관한 생각은 무심함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애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지라 실망도, 슬픔도 느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게 되고, 어릴 적 이후 처음 보는 고모와 싸우더니 이젠 사촌 동생과도 만나게 됐다.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까?
뭐, 눈물까진 아니어도 묘하게 누군가를 닮은 사촌 동생의 존재는 반갑기는 했다.
“시장님.”
이번에도 희망 요새에서 부랴부랴 투입된 차지철 씨가 큰 고생을 해줬다.
아무래도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실력 있는 외과 의사가 필요했던 탓이다.
“응급 처치가 워낙 잘되어서 목숨에는 지장 없으십니다. 의식도 돌아오셨고 하니 원하시면 지금 만나보셔도 될 거예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행히 출혈이 심하지 않아 수술 시간도 짧았고 의식도 금방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일정이 바쁜 차지철과 짧게 인사를 끝낸 뒤 병실 문을 조용히 노크했다.
똑똑.
끼이익, 탁.
병원 측 배려로 배정된 1인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싸한 소독약 냄새가 풍겨온다.
침실 위에는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촌 동생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끼익.
뭘 부끄러워하고 있어?
피식 웃은 나는 의자를 끌고 와 그녀 앞에 앉았다.
“이름이 뭐라고?”
“······박수아요.”
“그래, 박수아. 우리 초면이지?”
“저, 저는 사진으로 본 적 있어요.”
하긴 고모 쪽에서 먼저 알고 접근했으니 사진 정도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부끄러운 건지, 어색한 건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수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녀석은 우물쭈물하다가도 이내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어주었다.
“혹시 저랑 같이 오신 분들은······.”
“다들 치료받고 있어. 실력 있는 외과 의사 선생님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듣자 하니 영양실조는 기본에 장내 기생충 또한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아마 긴 시간 걸쳐 먹이고, 치료하고, 보살펴야 제대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같이 온 사람들이 무사하다는 말에 박수아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 것을 보아 치료받는 내내 그들이 걱정되었던 모양.
심성은 착하네.
그 난리를 피울 배짱도 있고.
비교적 대화가 통하겠다는 생각에 나는 가만히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둘이 할 이야기가 좀 있지?”
“······네.”
“그래, 일단 너희 어머니 욕해서 미안한데, 고모는 왜 미친년처럼 구는 거니?”
보통 상식이라는 게 있다.
인간이 지능이 있으면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기본적인 기대감 같은 거 말이다.
근데 내가 회담 장소에서 본 고모는 좀 나사 하나가 빠진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욕망에 지배된 침팬지라고 할까?
그래도 한 지역을 지배하는 지도자면 나름의 수완과 경험이 있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제안과 태도로 일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는 친딸인 박수아도 알고 있기에 까맣게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예전이라면?”
“3년 전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하셨어요.”
동해와 삼척은 원래 동맹이 아닌 서로를 미워하는 껄끄러운 이웃 관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모부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후, 그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고,
이에 주변 약탈자들을 끌어들인 고모가 삼척을 예고 없이 공격해 지배하에 두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삼척이 고모부 죽음과 관련됐다거나?”
“암이 재발하신 거예요. 당시 삼척 시장이 장례식장에 직접 찾아오기도 했고요.”
아니네.
그럼 고모부 죽음이 도화선이 된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버린 걸까.
박수아는 그 이유까지는 알지 못하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물을 훌쩍였다.
“점점 술에 의존하시더니 나중에는 약까지 손대기 시작하신 거 같아요. 제가 어떻게든 말려보려고는 했는데, 가면 갈수록······.”
유일한 자식인 친딸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 말은 퍽이나 듣겠다.
텄네, 텄어.
마지막 미련을 털어낸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했다.
“저, 저기!”
깜짝이야.
그 순간 가만히 울고만 있던 박수아가 황급히 내 옷깃을 붙잡는다.
“이, 이대로 두면 엄마가 전부 죽이려고할 거예요. 제발 오빠가 좀 말려주세요.”
대대적인 탈출이 이어진 것도 모자라 친딸이 철책을 넘어 강릉으로 넘어왔다.
가뜩이나 눈이 돌아가 있을 고모가 또 어떤 참상을 벌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을 글썽거리는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아야.”
“······아.”
머리가 나쁘지 않은 녀석이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왜 돕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빼며 조용히 얼굴을 감쌌다.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아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병실 밖으로 나갔다.
“으음.”
“태식 씨?”
문 앞에는 급하게 병원으로 찾아온 김태식이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거 참,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괜찮습니다. 별일 아니에요.”
김태식이 직접 왔다는 건 이번 사태가 이미 강릉항까지 전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어차피 같이 복귀해야 하는 길, 우리는 조용히 병실 복도를 함께 걸어갔다.
그러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태식 씨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시장님.”
“예?”
“왜 거절하셨습니까?”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라더니 그 와중에 제대로 엿듣고 계셨네.
나는 부끄러운 가정사가 밝혀진 거 같아 한숨을 훅 내쉬었다.
“거절하는 게 맞습니다.”
“단호하시네요.”
“사적인 일이니까요.”
그동안 강릉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이들은 내 고향, 내 가족을 지킨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왔다.
하지만 고작 내가 시장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내 혈육에 부탁을 위해 싸우라고 명령할 수는 없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내가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와 담배를 물자 태식 씨가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칙, 치익.
“시장님은 가끔 본인과 주변을 잘 살펴보지 못하는 면이 있으신 거 같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예. 범석 씨가요.”
연기를 내뿜다 말고 고개를 돌려보니 태식 씨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이번에 계획한 방위군 모집 말입니다. 인원이 너무 많이 모여서 선발 시험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무슨 상금이라도 걸었습니까?”
“그럴 리가요. 그냥 라디오로 박범석 강릉시장이 내놓은 안건이다. 라고 했습니다. 노인분들 돌려보내느라 고생 좀 했죠.”
무언가가 올라오다 목구멍에 꽉 막힌다.
입술을 달싹였을 뿐인데, 입에 물고 있는 담뱃불이 하염없이 줄어간다.
“다들 시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이에 태식 씨는 흐뭇하게 웃더니 마지막 말과 함께 조용히 자리를 정리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저희도 저희만의 방식이 있지 않습니까?”
고개를 꾸벅 숙인 김태식은 서류 가방을 잔뜩 끌어안은 채 차로 걸어간다.
늘 머리가 아플 때면 줄담배를 피우던 나도 깔끔하게 장초를 버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발걸음이 가볍다.
누군가 밀어주는 것처럼.
* * *
탈출 사건 이후, 강릉과 동해는 여전히 불편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정반대로 바뀐 강릉의 태도였다.
‘탈출하는 민간인 사격 시 응전할 것.’
경계면이 워낙 넓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번씩 민간인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동해는 당연히 사살하려 했고 강릉은 이에 강경한 대응을 보이며 막아섰다.
여차하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견인포를 끌고 정동진에 배치해주자 동해 측 반발은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동장님 손녀분이라고?”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박수아가 퇴원하자마자 희망 아파트 요새로 데려갔다.
당연히 그녀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할아버지와 사이가 각별했던 상식 아저씨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꼬.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아이고, 몸이 아주 빼빼 말랐네. 은서야! 큰 냄비에 물 좀 올려라!”
박동구 동장의 외손녀라는 명칭 하나만으로 엄청난 환영을 받을 수 있다.
졸지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소개받게 된 박수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정신이 없는 와중에 증축 공사가 끝난 희망 요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아이들이 웃으면서 돌아다니는 이곳은 동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자, 먹어.”
“뭐예요?”
“닭죽.”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상식 아저씨가 씨암탉을 잡아 맛있는 닭죽을 끓여줬다.
묘한 방부제 냄새가 나는 죽이 아니라 진짜 닭과 채소로 만든 수제 죽이다.
입맛이 없다던 박수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닭죽을 퍼먹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천천히 속도가 붙더니 박수아는 양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닭죽을 밀어 넣었다.
쿨럭쿨럭!
그러다 미련하게 사레가 걸려 닭죽을 꾸역꾸역 퍼먹다 말고 힘겹게 기침한다.
“닭죽이랑 싸우냐?”
“맛있어서요.”
등을 두드리고 물을 가져다줬다.
그 와중에도 푹푹 퍼먹는 게 어지간히 맛있나 보다.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는 박수아 옆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넘어오는 난민들은 우리가 계속 받아줄 예정이야. 놈들이 만약 사살하려고 들면 저번처럼 강경하게 대응할 거라고 경고했어.”
“······.”
“그리고 강릉항에서도 동해로 향하는 선박과 캐러밴 출입을 막아주신대. 고모가 그래도 생각이 있으면 송환 요구를 받겠지.”
이미 영동지방 경제권은 거대 무역항으로 발전한 강릉항이 꽉 잡고 있다.
굳이 무력으로 상대할 게 아니라 서서히 압박하는 식으로 원하는 걸 가져올 것이다.
“감, 감사,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아니라 회장님한테 해.”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한 건 도움 요청에 응해준 강릉항 김씨 일가다.
나는 우우 울면서도 닭죽을 포기하지 못하는 박수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시장! 시장도 한 그릇 할래?”
“예. 앞접시도 하나 새로 좀 가져다주세요. 얘가 콧물 다 흘려놨어, 씨이.”
사각, 사각, 사각.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방법에는 많은 길이 있다. 하지만 그중 완벽한 정답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항상 위험성과 이득을 동반하는 선택.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고, ‘그’를 따라는 이들도 이에 힘을 더해주었다.]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3년 동안 폭거를 취한 동해 시장은 그 대가를 받을 차례가 되었다. 이는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시작될 신의 천벌이다. 다만, 그 신의 천벌은 방향성을 잃고 날뛰려고 했다.]
펄럭!
[삼척에 있는 수용소에서 대규모 감염체 사태가 발발할 예정이다. <검열! 삭제 예정 >]
덜컹, 끼익.
“뭐야? 또 혼자 쓰고 있었냐?”
상식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수저가 부족하다길래 할아버지 집에 잠시 들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또 혼자 열심히 집필 중인 만년필과 미래일기를 발견했다.
진짜 얄밉다.
좀 예고하고 쓰면 덧나냐?
나는 투덜거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펄럭!
“어?”
그 순간 평소 일기와 글씨체가 달랐던 마지막 페이지가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깜짝 놀라 다시 펼쳐보니 그 문장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뭐, 뭐야.”
그 짧은 찰나 내가 기억하는 건 대규모 감염체 발발이라는 충격적인 내용뿐이었다.
촤르르르르!
미래일기는 마치 실수를 수습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접근을 불허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세상에서 제일 얄미운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다음 화 계속.]
퍽! 퍽!
나는 일단 미래일기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