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67화 (67/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67화>

처음에는 10명, 다음날 5명, 또 그다음 날은 고작 한두 명만이 철책을 어슬렁거린다.

단순히 인원이 적어진 것만 아닌 무장한 수준도, 구성원도 날이 갈수록 엉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확히 사흘째가 되던 날이 왔다.

“비었다는 보고입니다, 시장님.”

아침이면 늘 교대 인원을 보내던 동해 측 민병대는 복귀를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혹시나 해서 보내본 무전도 무응답.

철책에서 완전히 후퇴한 게 분명했다.

“병력 집결시키세요.”

나는 호들갑 떨 것 없이 미리 준비한 전투인력을 정동진 방어선으로 투입했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나서 다시 한번 선 크루즈 호텔로 모두를 불렀다.

보여줄 게 있었다.

위잉, 위잉.

한 기술자가 취미 삼아 조립한 드론이 공중으로 이륙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른다.

"오······!”

일행들은 그 모습에 작게 감탄하며 연결된 구형 태블릿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질이 생각보다 좋네요.”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겁니까?”

드론.

정확히는 멀티콥터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무인 비행체 중 하나다.

가격이 저렴하고, 파괴되어도 리스크가 적어 당시 국군도 많이 사용했었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우리는 굳이 사람을 보낼 것 없이 일단 드론으로 방어선 주변을 관찰하기로 했다.

“그, 그럼 한 번 가보겠습니다.”

위이이이잉!

졸지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드론 기술자는 긴장한 얼굴로 드론을 조종했다.

선 크루즈 호텔 꼭대기에서 출발은 드론은 천천히 동해 쪽 방어선을 훑어봤다.

“텅텅 비었네요.”

“밤사이 몰래 떠난 것 같습니다.”

초소뿐만이 아니다.

임시로 지어둔 후방기지에도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드론은 그 광경을 하나하나 화면으로 송출해주며 이내 옥계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옥계항도 갈 수 있습니까?”

“보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송신 거리를 가늠해본 기술자는 드론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최대한 시야를 확보했다.

태블릿 화면에는 정동진 다음 항구인 옥계항이 흐릿한 항공 뷰로 펼쳐졌다.

“여기까지가 끝이네요.”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려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화면을 뚫어지라 노려봤다.

‘여기도 비었다.’

차라리 감염체 득실거리면 막을 준비라도 하겠는데 옥계항까지 텅텅 비었다.

이러다 만약 감염체가 서쪽으로 이동해서 둥지라도 만들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어쩌죠, 시장님?”

“이러면 직접 확인해봐야겠네요.”

가뜩이나 군란 때문에 골치 아픈데 강릉 근처에 감염체 무리가 생기게 둘 수는 없다.

“차량 이동 중에도 조종할 수 있으시죠?”

“예? 가능할······걸요?"

“그럼 저희랑 일 하나만 합시다.”

거리 한정 합법 맵핵이 생겼는데 어떻게 한 번 유용하게 써봐야 하지 않겠나.

나는 특별 상여금으로 유혹한 드론 기술자와 함께 정동진 방어선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전원 중무장한 강릉 특전대가 트럭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 잠시만요! 저 내릴래요!”

“어허, 하나도 안 위험해요.”

“해병대 캠프 체험 같은 겁니다.”

* * *

끼리릭, 덜컹!

무장 트럭이 철책으로 접근하자 초병들은 기다렸다는 듯 바리케이드를 치워준다.

이번에도 총 5호 차로 구성된 강릉 특전대원들은 능숙하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위이이이이잉!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드론이 날아오른다.

졸지에 질긴 군복과 방탄복을 입게 된 드론 기술자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안전한 거 맞죠?”

“그럼요.”

감염체가 득실거리던 대관령 군락도 돌파한 경력이 있는 우리 특전대원들이다.

거기다 하늘에서 정찰할 수 있는 드론까지 있으니 그리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치익.

“드론이랑 속도 맞추세요.”

[알겠습니다.]

옥계항은 보인다.

차량은 서서히 속력을 줄이며 입구를 통과해 안으로 진입했다.

묘한 정적이 흐른다.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옥계항 입구에는 급히 피난을 떠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시내로 진입할까요?]

“아뇨, 외곽으로 돕니다.”

혹시 건물 안에 감염체가 틀어박혀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대로 우회전해 이미 선박이 다 떠나버리고 없는 버려진 옥계항을 살폈다.

예상대로였다.

[······]

무전이 조용하다.

아마 내 지시를 기다리는 거겠지.

“동해 초입까지 가봅시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차량 행렬은 다시 속도를 붙여 동해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도로는 잔해로 어지러워졌다.

감염체를 피해 도망치려 했던 생존자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탓이다.

“······.”

감염체에 물린 직후 사살당한 남성,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작은 살덩어리.

살면서 수없이 본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감정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끼기긱, 끼익!

간혹가다 하반신이 사라진 감염체 몇 마리가 달리는 차량을 향해 기어 온다.

[처리하겠습니다.]

따악! 딱!

하지만 어느새 표정이 무미건조하게 변한 대원 하나가 깔끔하게 총을 쏴 정리했다.

부우우우웅- !!

그렇게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바쁘게 주변을 정찰하던 드론 기술자가 말했다.

“어? 도로가 막혔습니다.”

“어디쯤입니까?"

“정확히 동해 초입이요.”

동해로 들어서는 고가 도로 아래 커다란 버스 두 대가 진로를 틀어막고 있다.

잘 달려가던 차량 행렬은 어쩔 수 없이 도로 한복판에 멈춰 사방을 경계했다.

덜컹!

나는 소총을 챙겨 보조석에서 내렸다.

그리고 옆으로 전복된 버스 앞으로 다가가 도로 안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사람은 충분히 들어가겠는데?

하지만 우리에게는 귀여운 드론이 있다.

“일단 드론부터.”

“······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드론 기술자가 버스 틈으로 드론을 넣어 하늘로 높이 올렸다.

“으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여기는 송신 신호가 너무 약해요. 조금만 더 높은 곳에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높은 곳, 높은 곳이라.

마침 버스 뒤 도로 옆에 적당한 3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하세요.”

“1팀만 가도 괜찮겠습니까?”

“바로 앞인데요, 뭘.”

도보로 동해까지 가는 것 보다, 차라리 바로 앞 건물로 가는 게 훨씬 안전하다.

나는 드론이 주변을 확보하는 대로 1팀과 함께 버스 틈을 지나 건물로 향했다.

철컥!

터벅, 터벅, 터벅.

기민한 걸음을 옮긴다.

대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사방으로 총구를 겨누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다.

“이상 없습니다.”

버려진 지 오래된 건물이다.

우리는 건물을 꼼꼼하게 살펴 확보하고 옥상에서 다시 드론을 작동시켰다.

위이이이이잉···!!

그 사이 배터리를 교체한 드론은 힘차게 날아올라 동해 상공으로 향한다.

높은 곳으로 올라온 보람이 있는지 태블릿 화면은 조금 전보다 훨씬 뚜렷했다.

어디 보자, 저기가 묵호항이고, 저기 보이는 건물이 종합 버스 터미널이다.

그럼 지도상 동해 시청이 바로 근처라는 소리인데, 드론을 더 접근시켜보자.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아!”

드디어 발견했다.

동해 시내에는 감염체 무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동해 시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건가.

시청 근처에는 산발적인 움직임이 감지됐다.

“엄청 많은데요?”

“그만큼 많이 죽은 거지.”

군락 급은 아니어도 과거 대규모 웨이브라고 불려도 될만한 감염체 규모다.

희생자들에게 작은 애도를 표한 나는 기다리고 있을 대원들을 향해 무전 했다.

“정찰 표적 확인했습니다. 곧 복귀합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끝이다.

아무런 피해 없이 정찰에 성공했으니 이제 본부로 복귀하는 일만 남았다.

“어, 어어!”

그런데 드론을 회수하려던 기술자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급히 일어났다.

“누가 쫓아와요!”

황급히 태블릿 화면을 살폈다.

건물 안에 숨어있다가 드론을 발견하고 나온 한 생존자 무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은 우리를 구조대라고 생각했는지 허겁지겁 드론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허술했던 탓에 시내를 활보하던 감염체 놈들 몇을 자극했다.

끼기기긱, 끽.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놈들의 울부짖음이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어, 어쩌죠?”

“······일단 여기로 인도해요.”

감염체 무리면 몰라도 두세 마리 정도야 우리가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저들을 구조해 구체적인 상황을 들으면 될 것 같다.

위이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이겨내랴, 생존자들을 여기까지 안내하랴 드론이 무척 바쁘다.

기술자는 여기까지 온 걸 진심으로 후회하며 컨트롤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어!”

그런데 하필 잘 따라오던 어린 생존자 하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에 가족 관계로 보이는 나머지 이들이 깜짝 놀라 황급히 뒤돌아봤다.

‘아직 괜찮아.’

거리는 충분하다.

여기서 그냥 일으켜서 데려만 가면······

번쩍!

타앙···!!

“아니, 이런 미친 새끼가!"

한 성급한 생존자 하나가 허둥지둥 권총을 꺼내 달려오는 감염체 놈을 쏴버렸다.

당연히 소음기를 꼈을 리 만무.

총성은 적막을 깨며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치익! 치이익!

[시장님! 방금 총성이······!]

“드론을 따라오던 생존자 하나가 발사했습니다! 일단 시동 걸고 방어 준비하세요!”

구조고 나발이고 우리가 큰일 났다.

나는 즉각 1팀 대원들을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와 무장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으아아아! 몰려와요!”

이 여파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드론 기술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미 총성을 들은 감염체 무리가 생존자들을 따라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준비됐습니다!]

전복된 버스를 바리케이드 삼아 진을 친 나머지 대원들이 일시에 총구를 겨눈다.

“빨리, 빨리!”

“손잡고 올라오세요!”

그리고 우리가 버스를 통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

드르륵! 드르륵!

무장 트럭 하나당 기관총 한 대다.

두 대를 거치하는 것만으로도 앞서 몰려오는 감염체를 상대하긴 충분했다.

물론 저 뒤에 이보다 수백 배는 많은 감염체 무리가 몰려오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위이이잉, 탁.

드론이 복귀했다.

이를 따라오던 생존자는 이제 겨우 둘밖에 남지 않았다.

성인 남성도 가뿐하게 따라오는 감염체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제가 갑니다. 엄호하세요.”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다시 버스 틈을 비집고 나와 그들에게 달려갔다.

대원들의 집중 사격 덕분에 여유 있게 뛰어가서 데려올 시간 정도는 되었다.

“허억, 헉.”

가까스로 도망친 여성은 이제 막 다섯 살은 됐을 법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희망과 동시에 허탈감이 감도는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있다.

“일어나세요. 가야 합니다.”

“저, 저기 아이를······.”

“예?”

“아이를 부탁, 합니다.”

스륵.

중년 여성은 나에게 아이를 넘겨주며 피로 물든 오른쪽 팔뚝을 보여주었다.

흉측한 이빨 자국이다.

감염체에 물린 중년 여성은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애 이름이 뭡니까?”

“희영이요. 우리 희영이······.”

희영이 이쁜 이름이다.

아이 엄마는 이상하게도 성을 알려주지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다.

아이를 대신 끌어안은 나는 권총을 뽑아 그녀의 이마를 겨눴다.

“······예.”

탕!

고통 없이 한 발로 보낸다.

안도하는 웃음을 확인한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대원들이 기다리는 버스 바리케이드 지나치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복귀합니다!”

거치된 기관총을 챙겨 버스에서 내려온 특전대원들은 일사불란 차량에 탑승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를 피해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급박한 현장을 피해 도로를 가로지르는 순간, 이상하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품에 안겨 곤히 잠이 든 희영이라는 아이가 깨기라도 할까, 그걸 염려한 모양이다.

끼이이이익! 끼기긱!

끼이이이이이이익!

하지만 그 정적도 잠시일 뿐,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가 동해에서 쏟아져나왔다.

계획은 어그러졌다.

그렇다면 작전을 바꿔 플랜 B다.

나는 즉각 차량 무전기를 꺼내 정동진에서 기다리고 있을 본대를 향해 외쳤다.

“코드 레드! 쥐를 몰고 간다!”

[코드 레드 확인.]

쥐를 몰고 덫으로 향한다.

우리는 맛있는 치즈가 되어 냄새를 풀풀 풍길 차례다.

철컥, 퓨우우웅!

하늘 높이 붉은 조명탄을 쏘고 추격해오는 놈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긴다.

동해 감염체 무리는 역류하는 하수구 물처럼 꾸역꾸역 도로를 비집고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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