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68화>
부우우우우웅···!!!
동해 초입을 빠져나온 차량 행렬은 곧 묵호항이 보이는 시내 방면으로 들어선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곧 옥계항, 그리고 바로 앞 정동진까지는 2분이면 도착한다.
[쫓아오는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 순간 후방 차량인 5호 차에서 이변을 눈치챈 다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숫자가 준다고?
쉴 틈 없이 조명탄과 총을 쏴대는데 감염체 무리가 왜 줄어.
나는 황급히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우리를 쫓아오는 감염체 무리를 살폈다.
‘젠장’
3분의 1 정도는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감염체들은 응집력이 서서히 약해져 점차 무리에서 벗어나는 게 보인다.
군락과 알비노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는 게 이럴 때는 또 단점이 되고 만 것이다.
모래알 같은 응집력.
놈들을 한 번에 유인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낭패였다.
“드론 날려보세요.”
“예? 아, 네!”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드론이 날아가며 태블릿에 불이 들어왔다.
“차량을 나눠 나머지 감염체를 유인하겠습니다. 2, 3호 차는 추월해서 달리세요.”
[알겠습니다!]
지시 수행은 즉각적이다.
2, 3호 차는 우리를 빠르게 추월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확인하며 속력을 늦춘 나는 나머지 4, 5호에도 명령을 하달했다.
“4호 차는 묵호동, 5호 차는 동호동으로 가세요. 각자 오른쪽, 왼쪽을 맡는 겁니다.”
[확인!]
4호 차는 오른쪽, 5초 차는 왼쪽 길로 빠진다.
마침 빠질 타이밍을 잘 계산한 경태가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다른 길로 빠진다.
“더 높게 올려요!”
“예!”
주변을 파리처럼 배회하고 있던 드론이 하늘 위로 힘껏 날아오른다.
그러자 감염체 무리의 움직임과 함께 흩어지는 차량 4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태블릿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나는 5호 차 움직임에 맞춰 빠르게 무전 했다.
“지금 기준 50m 앞에서 우회전하세요. 그럼 현대 아파트 뒤쪽에 모여있습니다.”
[보입니다!]
응집력을 잃은 감염체 무리가 마치 모래알처럼 아파트 쪽으로 스며들려고 한다.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5호 차가 마치 뜰채를 집어넣듯 감염체 놈들을 낚아챘다.
“4호 차! 항구 쪽으로 가면 위험합니다. 묵호역 사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로 빠져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 얼을 타긴 했지만, 4호 차 또한 내 지시에 즉각 반응해 황급히 경로를 튼다.
그리고 묵호항 왼쪽 도로를 달리며 항구로 흩어진 감염체 무리를 유인했다.
[됐습니다!]
거기서 만약 항구로 달려갔으면 감염체 사이에 갇혀서 그대로 고립됐을 것이다.
환호성이 섞인 4호 차 무전에는 전우를 향한 신뢰, 자신감과 흥분이 묻어 나왔다.
푸우, 이쯤 되면 한숨 돌렸다.
나는 분노의 질주를 찍고 있는 경태를 향해 여기서 멀지 않은 목적지를 가리켰다.
“우리는 저기 초등학교 앞까지만 보고 가자. 아까 거기로 빠지는 거 본 거 같아.”
“네!”
1호 차도 한 몫 보태야지.
우리는 나머지 감염체 싹 데리고 동해 대로로 달려갔다.
“와······.”
이 광경을 넋 놓고 따라오던 드론 기술자가 딱딱 맞춰지는 퍼즐에 감탄하며 묻는다.
“평소에도 이렇게 싸워오신 거예요?”
“이 정도면 휴가 수준이에요!”
한참 기관총 사수 자리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가은이가 대신 대답한다.
하긴,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쉬운 임무다.
나는 무언가에 푹 빠져버린 것 같은 드론 기술자를 향해 농담 삼아 물었다.
“어때요, 이 일도 할 만한 거 같죠? 다음 추가 모집 때 지원 한 번 해보세요.”
“······네.”
응? 농담이었는데.
몽롱한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합류하겠습니다!]
[진짜 개떼처럼 몰려옵니다!]
마침 비슷한 타이밍에 등장한 4, 5호 차가 동해 대로에서 우리와 합류한다.
일렬로 도로를 가로지른 차량 행렬은 그대로 우회해 2, 3호 차와도 합류한다.
저번과는 달리 찰흙처럼 잘 뭉쳐진 감염체 무리가 열심히 그 뒤를 따라왔다.
부아아아아앙 -!!
차량 행렬이 옥계항을 지나친다.
저 멀리 산 위에 배를 올려둔 선 크루즈 호텔 위로 붉은 조명탄이 발사된다.
벌써 사정권인가?
나는 보조석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드론 기술자를 향해 말했다.
“귀 막으세요.”
“예?”
투쾅! 투쾅!
언덕 위에서 견인포 포구들이 반짝인다.
삐이이이이이이 - - - - -콰아아앙!
고폭탄은 허공을 찢고 날아와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 한가운데 제대로 직격한다.
“으아아!”
귀를 막을 틈이 없었던 드론 기술자는 작은 비명과 함께 몸과 머리를 웅크렸다.
무전이 시끄럽다.
견인포 엄호를 받은 나와 대원들은 곧 방어선 바리케이드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왔다.
[발사!]
투다다다다다-!!
드르르륵, 드르륵!
그러자 방어선에 배치된 모든 화기가 감염체를 향해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 웨이브 하나를 막지 못해 요새가 여럿 멸망하는 게 일이었던 강릉.
하지만 지금은 원하는 전장, 원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적을 가볍게 물리치고 있었다.
“······특전대는 바로 복귀합니다.”
굳이 우리까지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는 부쩍 커버린 강릉의 체급을 실감하며 그렇게 선 크루즈 호텔로 향했다.
* * *
동해에서부터 몰려온 감염체 무리는 대부분 철책을 넘기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군락과 알비노 변종의 조종이 없는 감염체는 그만큼 단순하다는 증거였다.
삐익, 삐익!
덜컹, 쿠르르릉!
지난번처럼 중장비와 인부들이 동원되어 시체를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책까지 다가오지 못하도록 파둔 깊은 구덩이에는 금세 감염체 시체로 가득했다.
“인부들 표정이 좋지 않네요.”
“······그럴만합니다.”
지난번 군락 때 와는 다르게 이번 감염체는 대부분이 동해, 삼척 시민들이다.
아직 옷조차 해지지 않은 그들을 태워야 한다니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구체적인 원인은 알아냈습니까?”
“사람들을 모아둔 대규모 수용소에서 감염 사태가 터졌답니다. 저녁인데다가 문까지 잠겨있으니, 그냥 지옥이 펼쳐진 거죠.”
“민병대는 뭐하고요.”
“시청으로 도망친 정황이 남아 있습니다. 수용소 입구라도 제대로 막았으면 모를까, 진압 시도조차 안 해 놓은 모양입니다.”
아주 감염체 공장을 하나 차렸구나.
이 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그냥 이런 상황을 유도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몰려오는 역겨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태식 씨를 향해 다시 부탁했다.
“추가적인 보고가 들려오면 바로 알려주세요. 지금은 생존자 구조가 우선입니다.”
혹시 살아있는 생존자들이 어디선가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해, 삼척으로 구조대를 파견한 나는 제발 희소식이 있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저, 시장님?”
“예?”
“동해 시청은 어쩌실 겁니까?”
“계속 무시하세요.”
우리가 관여 했다는 걸 눈치챈 동해 시청측에서 구조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응답하기는커녕 무시로 일관하며 진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밤 제가 갑니다.”
내가 직접 찾아간다는 말에 태식 씨는 안심했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언덕 위에 홀로 남은 나는 습관적으로 배를 꺼낼까 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저 뒤에는 2시간 전 찾아온 박수아가 쪼그려 앉은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이제 해진다.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파국이다.
가뜩이나 최악이었던 상황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비극으로 찾아왔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재앙이 아닌 한 인간이 만들어낸 끔찍한 인재로 말이다.
박수아는 시체 더미를 보며 하염없이 울다가 이내 차가운 현실을 맞이했다.
“······범석 오빠.”
“응.”
“저 이제 어떡해야 해요?”
동해 시장의 딸이라는 죄야 그간 해오던 행동으로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
박수아는 최선을 다했고, 마땅히 박수받아도 될 만큼 살신성인했으니까.
하지만 남이 해주는 용서와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용서는 그 성분부터가 다르다.
죄책감의 무게를 버틸 수 없었던 녀석은 점차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 착해 빠진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그냥 뻔뻔하게 몇 번 울고 털어내지, 세상속 죄악을 모두 지은 것처럼 굴고 있다.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아직도 아이 엄마를 쏜 감각이 생생한데 말이야.
나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위로를 해주려다 그냥 한숨을 푹 내쉬며 담배를 꺼냈다.
“받아.”
불을 붙여 몇 번 빨고 옆으로 건넸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박수아는 이내 속이 답답했는지 담배를 받고 쓰읍 삼켰다.
쿨럭쿨럭!
“으······.”
처음 피는 건데 입에 맞을 리가 있나, 녀석은 고통스럽게 기침하며 머리를 쥐었다.
하지만 매운 연기에 눈물을 훌쩍이면서도 수아는 계속 연기를 삼키고 뱉었다.
“머리 띵하지?”
“네······.”
“상식 아저씨한테 말하지 마.”
상식 아저씨가 알면 애한테 좋은 거 가르쳤다고 온종일 잔소리를 해올 거다.
내가 뭘 위로를 해줘 봤어야 알지.
지금은 그냥 옆에 조용히 있어 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콜록콜록!
하지만 박수아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 한동안 내 옆에 앉아 가만히 담배를 피웠다.
* * *
현장은 대충 정리됐다.
일단 해가 졌으니 방어 인력을 강릉으로 되돌려 보냈고 구조팀 또한 복귀시켰다.
도시 정리하는 데만 대략 두 달이 예상되는 만큼 페이스를 조절할 의도였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밤, 정동진 항구에선 선박 한 척이 빠져나왔다.
그 안에는 야간투시경을 쓴 특전 대원들이 중무장을 한 채 투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탁!
빛 한점 없는 어두운 바다를 가로질러 천곡항으로 들어와 몰래 들어온 선박.
순식간에 선착장에 내린 나와 대원들은 동해 시청 쪽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구역 확보.]
[감염체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돈이 최고라고 특임대 시절보다 좋은 특수 장비로 아주 떡칠을 했다.
나는 손에 딱 달라붙는 H&K사 소총을 쥐고 오랜만에 옛날 분위기를 내보았다.
[2시 방향입니다.]
하지만 그리운 감상도 잠시 한 대원이 저멀리 반짝이는 빛 하나를 발견했다.
동해 시청 3층 창문에 제대로 가리지 못한 빛 하나가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도망 못 쳤구나?
적들도 이제 얼마 안 남았겠다,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청소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척!
나는 2팀과 3팀을 향해 수신호를 보낸 뒤 직접 1팀을 이끌고 동해 시청으로 향했다.
탁, 탁, 탁, 탁!
거슬릴 게 없다.
완전히 유령 도시로 변한 동해의 어둠이 우리를 가려준다.
그 어떠한 방해 없이 시청 앞까지 도착한 1팀은 입구 바리케이드를 발견했다.
'폭발물'
어차피 섬멸이 목적이다.
몰래 들어갈 것도 없이 당당하게 노크하기 위해 폭발물 설치를 지시했다.
그러자 폭파를 담당하는 대원 둘이 챙겨온 폭발물을 꺼내 바리케이드 앞에 설치했다.
삑.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우리는 이내 신호를 받자마자 잠시 뒤로 물러났다.
하나, 둘, 셋.
콰아앙!
일부러 센 놈을 가져다 붙인 보람이 있는지 시청 입구가 통째로 날아간다.
“뭐, 뭐야!”
“시발!”
적막함이 예고 없이 깨졌다.
깜짝 놀란 민병대들은 큰 굉음이 들린 시청 입구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따다다닥! 따닥!
딱! 딱! 딱!
하지만 이미 건물 주변을 에워싼 대원들은 창문을 통해 일시 사격을 가한다.
놈들은 무언가를 해볼 겨를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격에 정신을 못 차렸다.
치지직, 펑!
기다렸다는 듯 전기가 나간다.
나와 1팀은 창문을 넘어 한순간 암막이 찾아온 시청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따다닥! 딱
적, 적이다! 끄아아악!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경이 있고 없고 차이는 크다.
대원들은 손쉽게 민병대 놈들을 소탕하며 1층 전체를 확보해나갔다.
[퇴로 확보했습니다.]
퇴로를 막고 건물 전체를 봉쇄했다.
나는 특수전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는 대원들 사이에서 길게 숨을 뱉었다.
[포로 잡습니까?]
"전원 사살."
이제 사건의 원흉을 만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