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69화>
“막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시, 시발!”
약에 취해 늘어지게 처자다가 총성을 들은 민병대 놈들이 허겁지겁 뛰쳐나온다.
그래도 여태 살아남은 경력이 있다고 2층계단을 막는 솜씨가 썩 나쁘지 않았다.
철컥, 핑!
하지만 이미 전원사살 명령을 받은 특전대원들은 어려운 길을 가려 하지 않았다.
“수류탄······?!”
급하게 쌓은 바리케이드 사이로 파편 수류탄 하나를 가볍게 넣어주었다.
퍼어엉!
설마 수류탄을 집어넣을 줄 몰랐던 놈들은 짧은 단말마와 함께 폭사했다.
후두둑.
파괴된 바리케이드 잔해가 떨어지며 자욱한 먼지와 연기가 1층으로 흘러 내려온다.
[진입!]
길이 뚫렸다.
나를 선두로 1팀은 빠르게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따다닥! 따닥!
퍼엉!
머리는 몰라도 몸은 기억하는 법.
평소 발길질을 해가면서 가르쳤던 CQC훈련이 슬슬 반사적으로 나올 때가 됐다.
대원들은 내게 배운 대로 침착하게 놈들을 소탕하며 구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잠, 잠깐! 항복······!”
따닥!
물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투항자는 한치 망설임 없이 머리를 쏴 죽여버린다.
보고서에는 ‘적들 저항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투항자는 없었다.’라고 올라갈 것이다.
딱!
나는 2층 창문으로 뛰어가는 한 민병대놈의 허벅지를 쏴 바닥에 넘어트린다.
그리고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민 뒤 이 시청 건물 어딘가에 있을 동해시장을 찾았다.
“시장 집무실이 어디지?”
“3, 3층! 3층이요!”
의리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약탈자 출신답게 입들이 무척 가볍다.
따악!
나는 시간을 아껴준 보답을 해주고자 빠르게 방아쇠를 당겨 숨을 끊어준다.
탁! 탁! 탁!
1층을 정리한 2팀이 벌써 올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2층 뒷정리를 맡긴 뒤 건물 마지막 층인 3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덜컹덜컹!
하지만 아예 공간을 분리할 목적이었던 3층 입구는 두꺼운 철문으로 막혀있다.
보아하니 3중으로 된 보안 문 같은데 뚫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
[설치할까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층 창문을 열고 바로 위쪽을 살펴보았다.
‘참나.’
뭐 솔직히 기대한 건 아닌데 너무 바보 같아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 어떤 보강 장치도 설치되지 않은 3층 창문을 발견한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대기.’
소총을 등에 멨다.
그리고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창문을 빠져나온다.
탁!
3층 창틀을 잡고 고개를 슬쩍 내밀자 손전등 빛이 반짝이는 내부가 보였다.
“······.”
그나마 무장 상태가 좋은 민병대 놈들이 문 근처에서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같이 산탄총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한 차례 반격을 계획한 모양.
나는 총을 쏠까 하다가 그냥 이번에도 수류탄 핀을 뽑아 그 사이로 던져줬다.
핑! 턱.
콰아아앙!
이크! 수류탄과 거리가 꽤 가까웠던 만큼 파편을 동반한 후폭풍이 엄청나다.
졸지에 지상으로 떨어질 뻔한 나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3층으로 기어 올라갔다.
탁!
아수라장이다.
대부분은 수류탄 폭발에 휘말려 사망했고 나머지 놈들 또한 멀쩡하지 못하다.
따악, 따악!
나는 권총을 뽑아 바닥을 기어가는 놈들을 정리하고 곧 철제문 앞으로 다가갔다.
같은 민병대도 믿지 못한 불신을 대변하듯 3중으로 잠긴 철제문은 묵직하다.
흡!
나는 묵직한 손잡이를 힘겹게 돌려 반대편에서 대기 중인 대원들과 합류했다.
탁, 탁, 탁!
대원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안으로 진입해 마지막 3층을 확보한다.
치익!
[별 이상 없습니다.]
수류탄으로 처리한 민병대가 마지막이었는지 더 이상 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집무실로 보이는 마지막 방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
민병대들 거처로 사용됐던 아래층과는 다르게 3층은 완전한 개인 공간이었다.
그만큼 멋지게 리모델링 된 건 물론 각종 사치품이 보란 듯이 장식되어있었다.
‘지랄 났네, 진짜.’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고 본인은 이런 호화스러운 저택에 박혀 살아남았다.
집무실로 가까워질수록 나와 대원들의 표정은 악귀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쾅!
집무실 문을 발로 차 연다.
당연히 동해시장은 보이지 않았고 웬 직원 두 명이 황급히 무릎을 꿇고 투항한다.
“항, 항복합니다!”
“살려주세요!”
얼굴이 하나 같이 반반하고 젊은데다 깨끗한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있다.
대원들은 가차 없이 개머리판을 휘둘러 동해시장의 젊은 애인들을 후려쳤다.
어디로 도망쳤을까.
나는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흔적을 눈으로 훑으며 사라진 동해시장을 찾았다.
치익!
[표적 확보. 1층입니다.]
그 순간 건물 봉쇄하고 있던 3팀에서 동해시장을 잡았다는 무전이 울렸다.
비밀통로로 어떻게 잘 빠져나간 모양인데 그 정도도 놓칠 대원들이 아니다.
나는 직접 가겠다는 무전을 끝으로 소란이 들려오는 1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형님.”
그런데 갑자기 야간투시경을 벗은 경태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앞을 가로막았다.
마찬가지로 이쪽을 바라보는 대원들 눈에는 하나같이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제가 대신······.”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무리 죄를 짓고 연을 끊었다고 해도 동해시장과 나는 피가 섞인 혈육이다.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정작 총을 쏘는 본인의 정신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괜찮아.”
하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로 일축하며 고개를 숙인 대원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면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은 추락하는 것 같았다.
“놔! 이거 안 놔!?”
1층에는 머리가 산발이 된 동해시장이 히스테릭 가득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동자 초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스스로 약을 투여한 지 오래인 모양이다.
탁.
내가 앞으로 다가가자 3팀 대원들이 동해시장을 끌고 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바닥에 질질 끌려온 동해시장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박범석?”
“예.”
“너, 너 제정신이야?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이 미친 새끼야! 경비! 여기 아무도 없어?! 당장 이 새끼들 끌어내서······!!”
“고모."
나는 홀더에서 콜트 파이슨을 꺼내 실린더 안으로 탄알을 하나 집어넣었다.
철컥!
“다 끝났어요.”
그러자 약 기운에 취해있던 동해시장이 갑자기 발악을 멈추며 덜덜 떤다.
이미 유령도시가 된 동해, 전부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는 동해 민병대들.
그동안 마약과 술로 외면하고 있던 차가운 현실이 이제 두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범석아! 설, 설마······아니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챈 동해시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항복! 그래, 지금 항복할게! 응? 범석아! 너도 들어서 알잖아. 고모가 요즘 정신이 이상해져서 그래. 앞으로 조용히 지낼게! 치료도 받고 할 테니까! 우, 우리 수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살려줘!”
포박을 뿌리친 동해시장이 황급히 다가와 내 다리를 부여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추해질수록 내가 비참해진다는 걸 아는 대원들은 동해시장을 다시 뒤로 끌고 와 발악하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이, 이이익!”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동해시장은 절규와 동시에 나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너, 너 이러고도 멀쩡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 네 고모야! 네 고모라고!”
철컥!
“예, 저도 알아요.”
하지만 나는 서슬 퍼런 저주에도 불구하고 장전을 끝낸 콜트 파이슨을 앞으로 겨눴다.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죗값, 혈육이 혈육을 살해하는 형벌로 대신한다.
“그래서 제가 대신 하는 거예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과 함께 비명이 멈춘다.
나는 그대로 총을 집어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총구와 함께 고개를 내렸다.
호흡이 흐트러진다.
점차 다가오는 핏물이 역겹다.
크게 숨을 들이켠 나는 자리를 뜨기 위해 서둘러 시청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삐이이이이이이 -
이명인지 아니면 무뎌진 정신이 피를 토하는지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내 몸은 결국 현관 계단에 주저앉아 식은 땀으로 얼룩진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오늘따라 심장을 강하게 옥죄어 왔다.
잠깐만 앉았다 가자.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형님.”
그 순간 경태가 다가와 손을 꾹 쥔다.
마찬가지로 복면을 벗은 가은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주변은 어느새 고개를 숙인 대원들이 아무것도 못 본 척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토토독,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새벽 늦게 봄비가 내렸다.
* * *
이번 일로 인해 동해-삼척은 인구 70%가 통째로 사라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나마 높은 건물과 지하 주차장에 숨어있던 생존자들을 다수 구출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앞으로 수십 년은 동해와 삼척에서 사람을 보는 일은 없었을 터.
우리는 피난민을 모두 수용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바쁜 3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강릉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을 잔뜩 얻게 되었다.
“땅이 갑자기 확 넓어졌는데요?”
“거의 두 배인데 이 정도면······.”
강릉 전체 면적을 가뿐히 넘는 동해-삼척지역을 우리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주지역과 농사지을 땅, 심지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동해항도 포함이 되었다.
“우리 강릉항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곳이지. 아마 제대로 운영만 하면 번영회가 그동안 해오던 건 애들 장난 수준이 될 거야.”
“굳이 거점을 옮길 필요도 없습니다. 강릉까지 철로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동해항 - 묵호항 - 강릉항으로 이어지는 시너지가 서울 요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춘식 회장 말대로 정말 제대로만 운영한다면 영동을 넘어 한반도 한 축을 담당하는 무역 허브로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좋은 입지를 가지고 동해는 왜 흔한 거래처 하나 확보하지 못했을까.
역시 아무리 좋은 땅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지도자의 역량이 가장 중요했다.
“시장님.”
한참 동해-삼척 복구 사업으로 바쁜데 직원 중 하나가 다가와 나를 호출했다.
“지금 떠나신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드디어 미국 측에서 타고 갈 배편을 보낸 모양이다.
“가보게. 중요한 손님 같던데.”
“저희가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알아서 가라고 하고 싶은데 또 앞으로 관계를 생각하면 그게 힘들다.
나는 선뜻 가보라고 하는 김씨 일가에게 고개를 숙인 뒤 항구 건물을 나왔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동해항.
선착장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선박이 엠마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불쌍한 제임스, 말단은 이코노미석이니?
나는 새삼 직급이 높고 낮음의 차이를 체감하며 엠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갑니까?”
“아쉬우세요? 더 있다 갈까요?”
“아뇨.”
제발 가라고 칼같이 대답하자 엠마는 울상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인다.
하지만 그게 다 연기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가뿐하게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안 통하네.
금세 표정을 되돌린 엠마는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라왔다.
“상부에서 곧 연락이 올 거예요. 일단 치료제가 개발되는 대로 좀 보내드릴게요.”
“공짜는 아닐 거고.”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겠죠?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감염체 치료제가 개발되면 초기 감염 증상은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던 감염을 억제할 수단이 하나 생긴 것이다.
이번 동해 사태로 느낀 바가 많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선박 앞에 멈춰 섰다.
“아, 맞다.”
선박에 탑승하려던 엠마가 대뜸 고개를 들이밀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요즘 서울 요새가 시끄러워요. 범석 씨도 슬슬 준비해두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빙긋 웃은 그녀는 선박 위에 올라타 이쪽으로 손 키스를 날렸다.
응, 빨리 가기나 해.
나는 날아오는 손 키스를 쳐낸 뒤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건물로 되돌아갔다.
‘준비라.’
이제 강릉도 평범한 도시를 넘어 한 지역을 지배하는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체급이 커진 만큼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적과 링에 올라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나는 한동안 넘실거리는 푸른색 바다를 바라보다 이내 조용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