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71화 (71/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71화>

감염체 대응 목적으로 창설된 특임대는 다른 특수부대와는 다른 성향을 띈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감염체를 상대하기 때문에 그 교리부터가 차이가 있었다.

무엇을 하든 극도로 신중하며 나아가야할 길을 수십 번씩 확인하는 느린 작전 속도.

그만큼 특임대가 임무에 실패하거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변수’

하지만 이번 작전은 제대로 된 보고가 올라오기도 전, 대원 전원이 연락이 끊겼다.

항상 도망칠 구멍을 2~3개씩 준비하는 특임대 특성상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변수가 생긴 게 분명하다.

속히 지원 병력을 보내야 했다.

“시장님?”

“태식 씨 좀 호출해주세요.”

나는 연락받은 즉시 급히 퇴원 절차를 밟고 원주로 향하는 열차를 수배했다.

그러자 마침 당직이던 태식 씨가 허겁지겁 달려와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군락, 원주, 위기, 구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태식 씨는 즉각 특전대를 호출했다.

“빨리, 빨리!”

“5분 내로 막사 앞에 모여!”

원주 군락 건에 대해서는 이미 서울 특임대와 협업하기로 약속했었던 강릉이다.

기꺼이 도움을 준 그들을 위해서라도 조직적인 차원에서 구조대를 보내는 게 맞았다.

“모두 모였습니다.”

집합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특전대는 어느새 강릉역에 도착해 있었다.

위험한 일인 만큼 자원자만 뽑아 오라고 했더니 그냥 전원 함께 와버린 모양.

나는 이에 일부를 돌려보낼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했다.

이쪽으로 보내는 눈빛을 보아하니 다들 동료만 두고 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네가 꼭 가야겠나?”

“이들만 보낼 수 없습니다.”

자다가 급히 뛰쳐나온 김춘식 회장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이해한다.

이제 강릉 시장 직함을 달고 있는데 이런 위험한 작전 지역까지 직접 달려가다니.

아마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가지 못하도록 직접 뜯어말리셨을 것이다.

“제가 없어도 회장님과 태식 씨가 있지 않습니까. 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몸 조심해서 다녀오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장님.”

그래도 언제나 강릉을 든든히 지켜주는 이 두 사람이 있기에 떠나도 걱정이 없다.

나는 여전히 정정한 김씨 일가와 손을 꽉맞잡은 뒤 출발 지시를 내렸다.

[전원 탑승!]

온갖 장비로 중무장한 특전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열차 칸에 탑승한다.

그들이 모두 탑승한 것을 확인한 나 또한 서둘러 열차 위로 올라타 손을 흔들었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배웅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이 역에 모여 있었다.

“시장! 시장, 잠깐만!”

그런데 그 순간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온 상식 아저씨가 다급히 나를 부른다.

아저씨는 이것만큼은 전해 줘야겠다는 듯 출발하는 열차를 황급히 따라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열차가 속력을 내기 전 아저씨가 가져온 작은 도시락통을 가까스로 받아냈다.

“······!!”

무어라 외치면서 양손을 힘껏 흔드는데 시끄러운 열차 소리에 다 묻힌다.

하지만 도시락통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만큼은 내게 여실히 전해졌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열차는 곧 강릉역을 빠져나와 저 멀리 뜨고 있는 샛노란 여명을 향해 달려갔다.

* * *

특임대가 주로 하는 일은 특수정찰, 어찌보면 휴민트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일단 감염체 발생 지역으로 들어가 타격지점과 경로를 예상하는 게 주 임무였다.

‘평소랑 달라.’

하지만 김태하 소장이 전해 준 그들의 송신 기록은 평소와는 달리 무척 저돌적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쫓듯 적진 깊숙이 들어가 표적을 직접 타격하려는 것 같달까.

결국 송신이 끊긴 곳은 특임대가 베이스 캠프로 삼았던 치악산 부근이었다.

나는 그나마 남아 있는 마지막 좌표를 소중히 챙기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삐이이이익!

한참을 달리던 열차는 어느새 목적지인 서원주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박범석 씨 되십니까?”

그러자 우리와 상반된 검은 군복을 입은 장교 하나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익숙한 부대 마크, 대위 계급장.

김태하 소장이 말했던 잔존 특임 대원들이었다.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단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이야기 나누시죠.”

내가 전역하고 나서 새로 부임한 특임대 장교인지 어째 처음 보는 얼굴이다.

하지만 흉터 가득한 얼굴과 노련한 분위기는 묘한 신뢰감을 주기 충분했다.

덜컹!

미리 준비된 군용 차량에 서울 특임, 강릉 특전 대원들이 속속히 탑승했다.

부우우우웅--!!

곧바로 차량이 출발한다. .

나는 팀장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일단 통성명부터 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최진영 대위입니다.”

뭐, 계급 가지고 트집을 잡거나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릴 양반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최 대위와 가볍게 악수하고 현재 상황이 어떤지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인원은 이게 답니까?”

“원주에 파견된 경비 부대가 일부 도움을 주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치악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저희 팀이 유일합니다.”

“그래도 한 팀이라도 남아서 다행입니다.”

“휴가 나갔던 인원으로 급조한 팀이라 손발이 아직 안 맞습니다. 강릉은 괜찮습니까?”

“제 역할은 충분히 해줄 겁니다.”

아직 전문적인 훈련을 다 끝내지 못해서 그렇지, 실전 경험만큼은 빠삭하다.

특히 군락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는 특임대보다 우위에 있었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나는 최 대위로부터 임시로 작전권을 양도받았다.

“일단 저희는 특임대가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베이스캠프까지 가 볼 예정입니다.”

“후방을 맡아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사라진 특임대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는 최 대위와 바삐 의견을 나누며 작전을 계획했다.

그사이 차량은 어느새 시내를 지나 군사통제 지역인 치악산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끼익.

덜컹!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내려 개인 화기와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그리고 전달된 작전개요를 빠르게 숙지한 뒤 산으로 진입할 준비를 끝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나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출발합니다.”

늘 그렇듯 1팀과 함께 선두를 자청한 내가 가장 먼저 작전 지역으로 진입했다.

이에 나머지 대원들도 정해진 순서대로 뒤를 따라오며 양측과 후방을 경계했다.

까악, 까악.

분명 해가 떠 있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치악산 진입로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것은 물론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어둑하다.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상상이 발걸음에 점차 무게를 더하는가.

분명 늘 같은 무게, 같은 감촉이어야 할 소총이 오늘따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정신 차리자.

나는 어깨와 허리에 천천히 힘을 주며 무뎌져 있던 감각을 일깨웠다.

그러자 터널처럼 좁던 시야가 확장되고 작은 소음조차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계속 걸음을 옮긴다.

목적지인 베이스 캠프까지는 1시간 내로 도착해야 한다.

나와 대원들은 사방을 경계함과 동시에 오르막길을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스스스스스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가 마치 사람처럼 양옆으로 바삐 흔들린다.

이제는 흔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진짜 군락 영역에 근접한 모양이다.

내가 마지막 언덕을 넘자 후방에서 기다렸다는 듯 최 대위가 무전을 보냈다.

[이 근방입니다.]

좌표를 다시 확인한다.

최 대위 말대로 이 근방 계곡이 특임대 베이스 캠프였다.

나는 잠시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속을 둘러보았다.

‘찾았다.’

그리고 곧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버려진 사찰 하나를 발견해내었다.

우리는 곧바로 등산로에서 벗어나 베이스 캠프로 추정되는 사찰로 걸어갔다.

철컥!

그 순간 썩은 피 냄새가 난다.

내가 총구를 앞으로 겨누고 수신호를 보내자 대원들은 즉각 포지션을 잡았다.

급조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사찰 입구에는 탄피와 핏자국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군락 때와 마찬가지로 그 어디에도 시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 대위, 이쪽으로 와보십시오.”

사찰은 조용했다.

나는 최 대위를 불러 대원들과 함께 사찰안으로 들어갔다.

[구역 확보.]

[아무도 없습니다.]

임시 천막이 쳐진 마당에는 산악 오토바이와 장비와 물자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건물 안에는 본부와 통신할 때 사용된 무전 장비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스윽.

나는 장갑을 벗고 건물 입구에 남아 있는 붉은 피를 손가락으로 스윽 쓸었다.

‘실종 시간과 일치한다.’

군락이 베이스캠프를 습격했다.

표정을 굳힌 나는 가만히 멈춰 생각했다.

일단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놈들에게 패배해 군락으로 끌려갔을 최악의 가능성, 둘은 일부 특임 대원이 베이스 캠프를 완전히 빠져나갔을 가능성.

물론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만약 전자라면 남은 대원들 안전을 위해 후퇴해야 한다.

젠장.

나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욕설을 연신 달싹이며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따다닥!

“······!!”

그런데 그 순간 후방을 지키고 있던 특임대 쪽에서 따따닥 소음기 총성이 들려왔다.

총을 쏜 대원들이 하나가 급하게 사찰안으로 들어오며 내게 무전 했다.

[감염체 사살! 하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시발, 놈이 벌써 눈치챘다.

하나가 아니라는 소리에 황급히 경태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경태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어깨를 내주었고 나는 사찰 지붕으로 올라갔다.

스스스스스스스!!

동시에 강풍이 분다.

주변 나무들은 양옆으로 흔들렸고 그 빽빽한 그 틈 사이로 잠시 시야를 내준다.

200m 반경 앞, 산 위에서 감염체 무리가 사찰로 우글우글 몰려오고 있었다.

“집결! 건물로 집결해!”

이미 포위되었다는 사실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대원들이 허둥지둥 집결했다.

그리고 재빨리 오토바이와 주변 물자를 이용해 사찰 입구를 모조리 틀어막는다.

끼이이이이익!

끼끼기긱, 끼익, 끽!

동시에 산에서 우르르 굴러떨어진 감염체 무리가 사찰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사수들 지붕으로 올라가!]

[2시 방향에서 옵니다!]

첫 교전이 시작됐다.

대원들은 베테랑답게 침착하게 위치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다---!!

드르르륵! 드르륵!

여기까지 경기관총을 들고 오느라 개고생한 사수들이 그 울분을 놈들한테 푼다.

나머지 대원들도 담을 넘어오는 놈들을 조준 사격하며 최대한 무리를 저지했다.

‘알비노 변이종.’

하지만 정작 나는 치열한 전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군락이 놈들을 보냈다면 분명 조종 개체인 알비노 변이종도 이 근처에 있을 터.

그놈만 초기에 진압하면 감염체 무리를 저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지붕 꼭대기에 올라간 채 사찰 주변 산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찾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산비탈을 어슬렁거리는 알비노 변이종 하나를 발견해냈다.

놈은 그 특유의 괴상한 몸짓으로 움직이며 감염체 무리를 조종하고 있었다.

“경태야!”

“형님, 여기요!”

내가 지붕 아래로 손을 내밀자 경태가 허겁지겁 뛰어와 등에 메고 있던 총을 내민다.

곧바로 지정 사수용 총을 견착한 나는 조준경 위로 손을 올려 거리를 가늠한다.

가깝다.

굳이 조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놈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라 급소를 한 방에 박아 넣어야 놓치지 않는다.

나는 앉아 쏴 자세로 매치 그레이드 탄이 장전된 지정 사수 총을 앞으로 겨눴다.

스으으으으.

앞니로 숨을 내뱉는다.

조준경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알비노 변이종을 빠르게 쫓아 순간 숨을 멈춘다.

타앙 - - -!!

묵직한 총성과 함께 뭣 모르고 달려가던 알비노 변이종의 가슴팍을 꿰뚫는다.

놈은 그대로 꼬꾸라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을 쏜 나를 바라봤다.

타앙!

이마 정중앙에 탄을 박아넣는다.

단 두 발로 알비노 변이종을 처리한 나는 군락의 영역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 산 어디선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을 군락이 두려움이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