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72화>
끼기기끼긱! 끼이익!
알비노 변이종이 저격당하자 맹렬한 기세로 몰려오던 감염체 무리는 응집력을 잃었다.
대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전장에 남은 감염체를 벌레 잡듯 쓸어 담았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고 30분 뒤.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총성을 끝으로 캠프 부근에는 감염체 놈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젠장, 끔찍하게도 생겼군.”
현장이 정리되는 대로 내가 사살한 알비노 변이종 시체를 수습해 캠프로 가져왔다.
변이체가 익숙한 강릉 대원들과는 다르게 서울 대원들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최 대위는 힘없이 축 늘어진 알비노 감염체를 면밀하게 살피며 내게 물었다.
“보고로만 듣고 실제로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총으로 잡으신 겁니까?”
“방호력이 뛰어난 개체가 아닙니다. 소총탄 두세 발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지휘 능력이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하지만······ 그게 꼭 장점만은 아니군요.”
정확하다.
알비노 변이체는 군락의 공격을 위협적으로 변모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놈은 그 자체만으로도 움직이는 급소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초기에 사살만 해준다면 군락도 함부로 공격을 가해오지 못할 것이다.
“지정 사수를 따로 둬야겠습니다.”
“사격 실력이 좋은 팀원을 추려주십시오. 저희 쪽에서도 한번 편성해 보겠습니다.”
파훼법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우리 쪽에서 둥지를 비집고 들어갈 차례였다.
나는 경태가 건네는 추가 탄약을 받아 챙긴 뒤 쌓인 물자 위로 올라가 외쳤다.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전체 인원을 3개조로 편성해 야간 수색을 시작하겠습니다. 탄약 넉넉하게 챙기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무전보다는 조명탄부터 갈기십시오.”
어둠이 찾아온 산은 움직이기 힘들뿐더러 지형을 가늠하기 힘든 특성이 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무전보다 두 눈으로 보이는 조명탄이 확실한 표식이 된다.
내 지시에 모든 대원은 긴장된 얼굴로 장비를 챙겨 편성된 조를 따라갔다.
“범석 씨. 잠시만.”
그런데 그 순간 최 대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뒤쪽으로 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나는 최 대위와 함께 건물 뒤편으로 걸어갔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
“실종된 특임 대원들 말입니다. 솔직히 이정도 공격에 무너질 이들 아닙니다.”
군락이 아무리 지능이 있다고 해도 날고 긴다는 인재들만 모인 게 바로 특임대다.
최 대위 말대로 후퇴를 했으면 했지, 겨우 이 정도 규모에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 말인즉슨.
“다른 변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예. 아마 내부적인 요인 같습니다.”
단순히 군락의 공격뿐만이 아니라 특임대 내부에서 무슨 변수가 발생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평소 이질적이었던 흔적들이 머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저희 둘만 알고 있읍시다.”
“물론입니다.”
언급하기 민감한 문제다.
일단 양측 지휘관만이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최 대위에게 무운을 빌어준 뒤 빠르게 현장으로 돌아가 1조와 합류했다.
* * *
팀 단위로 나누어져 있던 대원들은 목적에 따른 3개 수색조로 재편성됐다.
1조는 내가, 2조는 최 대위, 3조는 경험이 많은 기존 부팀장이 맡아주기로 했다.
그들은 각자 맡게 된 구역으로 흩어졌고 우리 1조는 계곡을 따라 상류로 향했다.
참방, 참방, 참방.
해가 빨리 지는 산답게 꽤 늦춰진 일몰 시각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벌써 어둑하다.
어둠이 내린 밤은 곧 감염체의 시간.
계곡을 따라 오르는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나는 수시로 전해지는 무전 보고와 주변 소음에 집중하며 대원들을 이끌었다.
경사가 가팔라진다.
흐르는 물 유속이 점차 빨라진다.
한 30분가량을 걸어간 나와 대원들은 어느새 계곡 상류로 접어들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 - -!
바람이 불어온다.
계곡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흔들리며 또 한 번 음산한 기운을 풀풀 뿜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산이 우리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하나의 경고 같았다.
달칵.
하지만 늘 그렇듯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총기 파츠에 달린 손전등을 켜고 빠르게 계속 상류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형님!]
그러자 머지않아 밤눈이 유난히 좋은 경태와 가은이가 흔적을 발견해냈다.
그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보니 부서진 총기 하나가 바위틈 사이에 놓여 있었다.
특임대 장비가 분명하다.
총 손잡이를 잡은 채 잘려버린 고인의 손가락을 수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이동합니다.”
계곡을 따라 도망쳤다면 곧 마지막 흔적이나 별도의 표식이 남아있을 거다.
제발 전멸만은 아니기를 빌며 점차 끝이 보이는 상류로 계속 나아가려 했다.
따다닥! 따닥!
그런데 그 순간 멀지 않은 후방에서 갑작스러운 총성과 함께 무전이 울렸다.
[3시 방향 감염체.]
[사살했습니다. 산발적이에요.]
무리 공격이 아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놈들이 소음을 듣고 하나둘 나타났다.
대원들은 기습에 취약한 종렬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대응 사격했다.
끼이이익!
계곡 바위틈에 들어가 있던 감염체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와 내게 몸을 날린다.
콰직!
재빨리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린 뒤 복부를 걷어차 바닥에 넘어트린다.
따다닥!
순간 짜증이 몰려온다.
신경질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죽였다.
주변에 감염체가 있는 걸로 보아 이 부근이 분명한데 왜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혹시 다른 조는 소식이 없나 싶어 무전기를 꺼내 최 대위를 부르려고 했다.
치지직, 치이익, 칙!
“- - - - - -?”
그런데 그 순간 버릇처럼 설정해둔 익숙한 주파수에서 미약한 신호가 잡혔다.
깜짝 놀란 나는 일단 자리에 멈춰 섰고 이내 신호가 잡힌 쪽으로 걸어갔다.
치지직, 칙!
맞다, 분명 잡힌다.
규칙적인 잡음 사이로 뚝뚝 끊기는 노크 음이 들리고 있다.
나는 미약한 송신 신호를 찾기 위해 계곡 상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했다.
삐이이이이이이 - 펑!
그 순간 하늘로 조명탄이 터진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3조가 갔었던 9시 방면, 그들이 보낸 지원 요청이다.
벌써 총성이 들려오는 것을 보아 군락이 아예 다른 조를 노리고 공격한 모양이다.
‘하필 지금.’
무전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상대측 송신 신호가 무척 미약하다.
여기서 지원 갔다가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주파수를 잡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반짝이는 조명탄과 무전기를 번갈아 바라보다 결국 경태를 호출했다.
“대원들 데리고 먼저 가!”
“예? 형님은 어쩌시고요!”
“이 근처에서 신호가 잡혔어! 빨리 찾아서 합류할 테니까, 먼저 가서 지원부터 해!”
“하, 하지만······.”
혼자 수색을 이어나가겠다는 말에 경태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갈팡질팡했다.
“내가 옆에 있을게.”
마침 근처까지 달려온 가은이가 녀석의 걱정을 일축하며 함께 남기로 했다.
이에 안심한 경태는 대원들을 이끌고 조명탄이 터진 방향으로 바삐 달려갔다.
“서두르자.”
“뒤는 맡기세요!”
군락의 시선이 저쪽으로 집중되었을 때 빨리 실종자를 찾아 구조해야 한다.
나는 사방으로 라이트를 비추며 점차 미약해져 가는 신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끼이익?
그리고 머지않아 상류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감염체 다수를 발견해냈다.
이 근처구나.
우리는 즉각 총구를 앞으로 겨눠 감염체 수십 마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따다닥! 따닥!
딱! 따다닥!
가슴 한 발로 저지하고 뒤이어 머리, 가장 가까운 감염체부터 차근차근 처치한다.
특히 지난 훈련으로 실력이 향상된 가은이가 맹활약하며 감염체 놈들을 소거했다.
후우, 후우.
덕분에 숨 쉴 틈이 생긴 나는 바닥에 쓰러진 감염체를 지나쳐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저기다.’
그리고 바위와 바위틈을 이끼와 흙으로 위장해둔 임시 은신처를 발견했다.
나는 그쪽으로 곧장 뛰어가 흙과 이끼를 치우고 안쪽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후웅!
탁!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대검 한 자루가 급소를 찌르려 했다.
물론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나는 상대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손을 가볍게 낚아챘다.
“히, 히익!”
“진정해.”
“선, 선배······?”
그곳에는 다름 아닌 송지영 중위가 대검을 꼭 움켜쥔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선배!”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대검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감염체 무리를 뚫고 도망쳐 장시간 좁은 틈 사이에서 숨어있었을 송지영 중위.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녀석을 한동안 달래주며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대원들은?”
“제, 제가 놓쳤어요. 끝까지 엄호해줬어야 했는데······ 시, 시발! 그 개새끼들이!”
분을 참지 못한 송지영 중위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일단 가자.”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듣고 일단 복귀해야 한다.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녀를 등에 업은 뒤 가은이와 함께 계곡 상류를 벗어났다.
* * *
지정 사수를 따로 둔다는 변이체 대응책이 꽤 효과적이었는지, 군락이 가한 두 번째 습격도 별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
송지영 중위를 구조한 우리는 곧장 베이스 캠프가 있는 버려진 사찰로 복귀했고,
파괴된 바리케이드를 다시 세워 혹시 또 올지 모르는 감염체 공격에 대비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치악산의 밤.
캠프 도착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던 송지영 중위가 드디어 의식을 되찾았다.
“이거에요.”
그녀는 잠에서 깨자마자 우리에게 내용물이 적출된 소형 캡슐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약?”
“선배님이 주셨던 변이체 샘플을 분석해서 만든 감염체 유인제에요. 특수작전용으로 개발했는데 워낙 위험해서 폐기했어요.”
샘플을 가져가고 한동안 소식이 없길래 의아했는데 이런 걸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위험성을 이유로 폐기된 유인제가 그녀의 손에 있었다는 것이다.
“작전 3일째에 처음으로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단장님 군복에, 두 번째는 팀장들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 부품 속에서요.”
“대원들이 챙긴 게 아니라면······.”
송지영 중위는 붉게 충혈된 눈을 파르르 떨며 이를 빠드득 빠드득 갈았다.
“출발 전에 누가 몰래 넣어둔 거예요. 시발,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변이종이 감염체를 조종할 때 풍기는 호르몬 성분을 작전 내내 몸에 지니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나 했더니 아예 처음부터 치명적 변수가 있었던 거다.
최 대위가 다급히 물었다.
“마지막으로 계획해둔 후퇴 지점이 있을거 아니야. 거기가 어딘지 기억하나?”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송지영 중위가 살아남는 것도 기적이다.
대원들이 무사히 이탈해 후퇴 지점까지 갔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특임대 상사 하나가 자포자기한 얼굴로 읊조렸다.
“살아있겠습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작전 종료를 암시하는 말에 송지영 중위는 기겁하며 전면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살, 살아있어요! 분명 저처럼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예요! 예? 선배! 특임대 알잖아요! 지옥에서도 살아 돌아온다! 선배가 그렇게 만드셨잖아요? 예? 제 말 맞죠?”
“진정해, 송 중위!”
아직 정신적 후유증이 남아있는 그녀다.
대원들은 그녀가 또 의식을 잃기라도 할까봐 온몸으로 제지하며 진정시키려고 했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불현듯 떠오른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성산면 전쟁 당시 알비노 변이종이 죽이지 않고 끌고 가려고 했던 김춘식 회장.
시체는 물론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던 치악산 근처 행구동 주민들.
만약 놈들의 목적이 ‘인간'의 확보라면 그들처럼 대원들도 끌고 가지 않았을까.
“······만약 살아있을 확률이 있다면.”
“예?”
“확률이 10%라도 있다면 어쩌실 겁니까?”
10%.
가정과 가정을 거듭한 끝에 내가 내놓은 확률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 10%라는 말에 반응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해봐야죠.”
최 대위가 망설임 없이 답한다.
나머지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그동안 내가 두 눈으로 보았던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며 10%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리고 30분이 넘는 회의 끝에 우리는 한가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군락을 소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