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73화>
“저희가 파악한 군락 위치에요.”
실종된 특임대는 악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군락 위치를 알아내는 성과를 남겼다.
무려 희생을 대가로 얻은 정보다.
우리는 실종 대원들이 남긴 정보를 그대로 이어받아 빠르게 타격 작전을 수립했다.
“입구 세 곳을 동시에 칩시다.”
군락은 대관령 때와는 달리 산속에 토굴과 비슷한 곳을 만들어 자리를 잡았다.
특임대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입구는 총세 곳, 거리 간격은 정확히 200m.
조금 전처럼 총 3개 조로 나눠 동시에 입구를 공격하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소이탄은 넉넉합니까?”
“밤새 타오를 정도는 됩니다.”
불에 잘 타는 나무와 유독성 감염체 오물, 기껏해야 마른 흙으로 만든 토굴이다.
입구와 그 근방에 소이탄 두세 개씩만 던져줘도 아주 밤새 활활 타오를 것이다.
나는 소이탄을 대원당 한 개씩은 꼭 지참하라고 지시한 뒤 지도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생각에 잠긴다.
손가락으로 조용히 책상을 두드린다.
탁. 탁. 탁.
아직 성장하지 못한 초기 군락을 파괴하는 것 정도야 충분히 자신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혹시 둥지 안에 살아있을지 모르는 대원들의 구출이다.
과연 감염체들이 득실거리는 군락 안으로 들어가 멀쩡히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는지 심각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그런데 그 순간 가만히 턱을 매만지고 있던 최 대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유인하는 건 어떻습니까?”
유인? 순간 시선이 몰린다.
최 대위는 내용물이 폐기된 유인제 용기를 들어 올렸다.
“이 유인제요. 군락 근처에서 퍼트리면 감염체가 밖에서 몰려오지 않겠습니다.”
“내용물은 전부 폐기했을 텐데······.”
“땅에 묻은 위치를 알고 있어요! 그대로 가서 회수만 해오면 다시 쓸 수 있어요!”
상황이 워낙 급했던 탓에 완전히 소각하지 못하고 땅을 파묻어버린 모양이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작은 실수가 이런 순간에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그동안 막혔던 무언가가 뚫리며 머리가 다시 팽팽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가능성이,
경로가,
움직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유인 지점은 이 공터로 합시다. 절벽을 등에 끼고 미리 방어선 구축해두세요.”
화력이 월등하게 앞서는 이상 군락이 공세에서 우위를 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계획대로 유인제가 잘 통해 준다면 놈들을 둥지 안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안으로 진입하는 건 어떤 팀이 합니까?”
“저희 팀이 하겠습니다.”
둥지 내부를 수색하고 살아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구출해와야 한다.
적어도 충분한 능력이 되고 손발이 잘 맞는 나와 1팀이 가는 게 맞았다.
“구출이 완료되는 대로 둥지 내부에 폭발물을 터트릴 겁니다. 만약 놈들이 뒤로 물러나면 그대로 소거 작전을 개시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썼다.
비장한 얼굴로 서 있던 대원들은 고개를 까닥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척!
그걸로 끝이었다.
늦은 밤, 우리는 캠프를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사삭.
온몸을 진흙과 낙엽으로 물들인 채 우거진 수풀 한가운데 조용히 엎드렸다.
마찬가지로 그 뒤를 뒤따라온 1팀은 빽빽한 위장을 유지한 채 가만히 숨을 죽인다.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
적막을 먹이 삼아 떠오른 불운한 공기가 마치 안개처럼 주변에 자욱하게 꼈다.
치익.
[공터 도착.]
[아직까진 움직임 없습니다.]
출발 전 교란 조를 따로 보내 둥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계속 소음을 유발했다.
그러자 신경이 잔뜩 예민해진 군락은 의심 반, 짜증 반 그곳으로 정찰병을 보냈다.
하지만 놈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상대는 노련하고 치밀한 베테랑 집단이다.
교란은 이미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며 공터에는 어느새 방어조가 모인지 오래였다.
[30초 전.]
시간이 초조하게 흐른다.
마른침을 꿀꺽삼킨 나는 5초 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전 개시.]
작전 시작이다.
공터 쪽에서 조명탄 여러개가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삐이이이이이- - 펑!
공터 방면 하늘이 한순간 환해진다.
동시에 인간이 구분할 수 없는 무색무취의 호르몬이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제발, 제발 반응해라.
나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군락을 노려보며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악 - -!!!
끼이이이이익!
그 순간 군락 안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감염체가 기괴하게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좁은 입구를 비집고 기어 나오며 조명탄이 터진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치익.
“놈들이 갑니다.”
유인제가 제대로 통했다.
군락을 빠져나오는 감염체 규모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방어조도 몰려오는 놈들을 포착했는지 본격적으로 군락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폭파!]
꿍! 콰르르릉!
설치해놓은 클레이모어가 작동하자 앞서 달려오던 감염체가 곤죽이 되어 폭발한다.
방어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수풀로 소이탄을 던져 제대로 어그로를 끌었다.
펑! 화르륵!
자기 영역으로 멋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목 아래로 칼을 겨누려고 든다.
그동안 신중한 움직임을 보였던 군락은 드디어 참고 참았던 분노를 터트렸다.
찌르르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음역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고주파가 군락에서 터져 나온다.
감염체 무리도 이에 동화되었는지 한 마리도 빠짐없이 공터를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총력전이다.
나는 1팀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군락 둥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사박, 사박, 사박!
“큭.”
불과 50m 앞까지 접근했을 뿐인데 감염체 오물에서 나오는 악취에 정신이 아찔하다.
나와 대원들은 미리 준비한 방독면을 쓰고 군락 둥지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척, 척!
빠르게 수신호를 보낸다.
입구 앞을 지킬 8명, 나머지 4명은 나와 함께 둥지 안으로 직접 진입한다.
철컥!
이번만큼은 소총이 아닌 자동 산탄총으로 무장한 나는 늘 그렇듯 선두에 섰다.
흙과 오물이 잔뜩 엉켜있는 둥지 입구를 개머리판으로 밀어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욱, 후욱.
공기가 급속도로 나빠진다.
최신형 방독면을 썼음에도 유독 가스가 느껴질 정도다.
당연히 내부는 어두웠고 통로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총구를 앞에 두고, 제일 약하게 튼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며 한 발자국씩 전진한다.
후욱, 후욱.
좁다. 어둡다.
인간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인간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나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 본능을 모조리 부정하며 일행들을 대신해 길을 뚫고 또 뚫었다.
오직 귓가에 울리는 먹먹한 숨소리만이 이곳이 현실 세상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탁!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끝없는 어둠을 밝히던 손전등이 벽을 만났다.
통로가 끊겼나?
아니, 발 바로 아래로 밑으로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했다.
높이는 50cm 정도.
나는 산탄총 대신 권총을 뽑아 든 채 아래로 내려갔다.
철퍽!
바닥은 질퍽했다.
하지만 통로와는 차원이 다른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손전등과 권총을 앞으로 겨누고 무슨 용도인지 모를 넓은 공간을 살펴봤다.
“- - - - - -.”
그리고 머지않아 공간 한쪽에서 오물과 함께 버려진 옷가지들을 발견해냈다.
찌걱, 찌걱.
그 속에 손을 넣어 뒤져보니 역시 특임대 군복과 다량의 군번줄이 엉켜있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군락은 대원들을 둥지로 납치해왔다.
군번줄을 꽉 움켜쥔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실종된 대원들을 찾아 나섰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눅눅한 열기와 끓어오르는 분노가 땀과 함께 스며 나왔다.
[형, 형님.]
그런데 그 순간 함께 둥지로 들어왔던 경태가 숨죽인 목소리로 호출을 해왔다.
나는 즉각 발걸음을 돌려 반대편에서 수색 중인 대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 놈들이 흙과 오물을 이용해 만든 다량의 더미들이 즐비해 있었다.
후욱, 후욱.
숨이 거칠어진다.
나는 넋을 놓아버린 대원들을 재촉하며 더미를 향해 다가가 손으로 오물을 파냈다.
‘찾았다.’
오물 안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사람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다행히 죽지 않았다.
군락은 인간을 가수면 상태로 만들어 이 오물 속에 처박아놨다.
“밖으로 옮겨.”
“예.”
바깥 인원과 통신한 경태는 남자를 가뿐하게 들어 올려 왔던 출구로 뛰어갔다.
대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사이 나는 계속 고치를 파괴하며 실종자들을 끌어냈다.
‘다들 살아있어.’
적어도 두 팀 이상이 끌려왔다.
20명이 넘는 인원을 둥지 밖으로 빼내려면 숨을 돌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미리 구조 장비까지 준비해온 우리는 빠른 속도로 구조 작업을 이어나갔다.
후욱, 후욱.
손이 조급해진다.
더미를 파고 또 파낸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져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오물더미를 대부분 휘저어놨을 무렵 드디어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문 상사!’
그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은 베테랑 문 상사답게 이번에도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나는 가수면 상태에 빠진 문 상사를 직접들어 올려 통로 쪽으로 옮겨주었다.
꾸웅!
점차 폭발 진동이 심해지는 것으로 보아 총력전도 슬슬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이쪽도 막바지인 건 마찬가지.
이제 남은 5명만 밖으로 꺼내면 구조 작전은 끝이다.
나는 끈적이는 오물더미를 힘차게 헤치고 나가며 대원들에게 후퇴를 명령하려 했다.
철퍽, 철퍽, 철퍽.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찐득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기울어졌다.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짧은 찰나 나는 수많은 그림자를 발견해냈다.
탁, 치익!
스틱형 조명탄을 재빨리 던져 빛이 닿지않는 사각지대를 재빨리 확보했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과 벽에서 알비노 변이종들이 거미처럼 기어 오고 있었다.
“빨리 내보내!”
끼이이이이이이익 - - - -!!
둥지를 침범당한 군락이 분노한다.
두 눈이 붉게 변한 알비노 변이종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투쾅! 투쾅! 투쾅!
나는 즉각 총구를 돌려 개떼처럼 달려오는 변이종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 산탄총이 불을 뿜자 놈들은 몸통과 머리가 통째로 꿰뚫리며 즉사했다.
“끄아아아악!”
하지만 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커버하기에는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우리와 함께 온 대원중 하나가 출구를 지키려다가 그만 복부가 꿰뚫리고 만다.
그는 이미 죽음을 직감했는지 방독면 속으로 피를 토해내며 변이체를 붙잡았다.
[가, 가십시오! 빨리! 끄르륵······!]
‘몰살이다.’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면 전원이 죽는다.
나는 출구를 막으려 드는 놈들을 필사적으로 저지한 뒤 경태를 붙잡고 밀었다.
“가은이 데리고 나가!”
[형, 형님!]
“빨리 가라고 이 새끼야!”
신파극 찍을 시간 없다.
한시라도 빨리 둥지를 벗어나 밖으로 도망쳐야 한다.
[가은아! 빨리!]
귀에 박히는 고함에 정신을 차린 경태는 가은이를 데리고 출구까지 끌고 왔다.
내가 놈들을 저지하는 사이 비틀비틀 뛰어온 가은이가 먼저 출구를 통해 빠져나간다.
그리고 경태는 출구 앞에서 나와 등을 맞댄 채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끼이이이이익!!!
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늘어간다.
그럴수록 남은 알비노 변이종은 미쳐 날뛰며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탄약이에요!]
“나한테 주고 올라가!”
총열이 붉게 물들었다.
아직 탄알집이 남아있는 나는 경태에게 어깨를 내주었다.
이를 악문 경태는 내 어깨를 밟고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출구로 기어 올라갔다.
투쾅! 투쾅! 투쾅!
두려움이 사라지고 반동이 찾아온다.
나는 오로지 표적을 겨누고 방아쇠만을 당긴다.
남은 탄약을 모조리 쏟아붓자 한 5초 정도 몸을 뺄 수 있는 짧은 여유가 생겼다.
[형님!]
마침 경태가 출구 안에서 손을 내민다.
그대로 자동 산탄총을 내팽개친 나는 그 손을 잡고 출구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안, 안돼!]
끼아아아아아아악 - - -!!!
하지만 그 순간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발휘한 변이종이 내 오른쪽 다리를 낚아챈다.
순간 몸은 뒤로 확 끌렸고 경악한 경태는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틴다.
하지만.
‘늦었다.’
5초가 지났다.
이러면 가은이는 물론이고 손을 붙잡고 있는 경태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나는 짧은 고민을 끝으로 경태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손을 놓아버렸다.
“미안하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을 마지막으로 몸이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한다.
알비노 감염체들은 나를 잡았다는 희열을 터트리며 벌레처럼 우르르 몰려온다.
치이이익!
몸이 반대 방향으로 끌려간다.
놈들이 나를 벽에 집어 던졌는지 고통과 함께 시야가 잠시 꺼졌다 켜졌다.
콰직!
나는 오물더미에 처박힌 채 깨진 방독면 유리 너머로 심연 속을 노려보았다.
시싯, 시시시싯. 시시싯.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내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린 군락이 변이종 몸을 빌려 모습을 나타냈다.
군락의 등장 앞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알비노 변이종들이 흉측한 이를 드러냈다.
이제 무기 없지?
놈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몸이 안 움직인다.’
경각에 달한 죽음을 비웃듯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책처럼 지나가는 나의 과거는 독하다 못해 온갖 악을 품었던 질척한 오기였다.
나라는 인간이 여태 무엇을 위해 살았나에 대한 회상록.
정작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일기에는 단 한 번도 내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눈을 깜빡인다.
머리를 억지로 움직이고 신경을 학대해 근육을 강제로 움직인다.
이에 완전히 꺼졌던 몸에 다시 한번 불이 들어오며 마지막 힘을 쥐어짠다.
권총? 너무 시시하다.
철컥!
나는 품속에 손을 넣어 미리 핀을 고정해두었던 수류탄 전부를 뽑아버렸다.
핑!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려오는 군락과 변이종을 향해 수류탄을 굴려 넣었다.
툭!
악에 받쳐 소리 지른다.
“좆! 까!”
끼익?
“시발 새끼들아!”
쾅 - - -!!!!!!!!
폭발이 주변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