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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79화 (79/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79화>

초대형 크루즈 선박이 잠시 옆으로 기울었을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었다.

일반적인 원인으로는 힘들고 아마 잔뜩 응축된 가스가 폭발했을 확률이 높았다.

근원지는 지하 1층.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폭발이라고 보기에는 그 위치도 타이밍도 너무나 절묘했다.

“가자!”

하지만 경우를 하나하나 따지기에는 현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흘러갔다.

철컥!

장전한 권총을 일단 홀더 속에 숨긴 나와 일행들은 서둘러 계단으로 내려갔다.

1층을 보자 이미 3층에서 내려온 송지영 팀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젠장! 선배 이제 어쩌죠?”

“일단 따라와!”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갑판에 모여 있던 해적들이 우르르 배 안으로 들어간 상태다.

우리는 그 틈을 이용해 다른 대원들이 지키고 있는 퇴로 지점으로 이동했다.

탁, 탁, 탁, 탁!

흔들리는 배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주변을 금세 혼란으로 물들였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숨어있는 대원들을 향해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이쪽입니다.”

그러자 온몸을 검은색으로 위장한 최 대위가 나타나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이미 이 부근에는 몸을 숨긴 대원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지하 1층에서 발생한 폭발입니다. 낌새를 보아하니 단순 사고가 아닌 것 같아요.”

“사고가 아니라면······.”

드르르륵! 드륵!

탕! 탕!

“형님! 밑이에요!”

그 순간 지하 1층에서 시끄러운 소란과 함께 산발적인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 단순 가스 사고가 아니다.

누가 밑에서 해적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설마.’

나는 서둘러 제임스를 돌아봤고, 제임스 또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엠마, 그 여자 짓 아니야?

미묘한 눈빛을 보아하니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거 같다.

“저희도 같이 가드립니까?”

“눈에 띄면 곤란합니다. 확인만 하고 올테니 퇴로를 확실하게 지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최 대위에게 퇴로와 구출한 여자를 맡긴 나는 일행들을 데리고 다시 뛰쳐나왔다.

그리고 소란으로 정신이 없는 갑판을 빠르게 가로질러 지하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곧장 지하로!’

술과 분노에 취한 해적 놈들은 우리가 지나가건 말건 괴상한 고함을 질러댔다.

자연스럽게 그사이에 합류한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총성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드르르륵! 드르륵!

워 차오! 아아아악!

곳곳에 시체가 쓰러져 있다.

일렁이는 불꽃 사이로 온갖 욕설과 총성이 난무한다.

‘뭐야, 이 새끼들.’

일부 해적 놈들이 이성을 잃고 적군과 아군 구분 없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중 발생한 오발 사고에 꼭지가 돌아 서로 총질하는 모양이다.

피잉!

“숙여!”

물론 그냥 지나가려던 우리도 표적이 됐는지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시발, 근본 없는 새끼들!

나는 어쩔 수 없이 포복했고 일행들도 그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그러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바닷물로 축축해진 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부근이다.’

놈들은 주차장을 물자와 인간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복잡한 공간과 바닷물을 헤치며 여자가 말한 장소를 일일이 찾아야 했다.

슬슬 촉박해져 가는 시간.

주변을 수색하는 일행들 발걸음이 점점 조급해져 갔다.

“이쪽이에요!”

통로를 찾은 가은이가 다급히 외쳤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우리는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통로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어, 어어!?”

그런데 그 순간 마침 반대편 통로에서 다급히 뛰어오던 누군가와 마주했다.

철컥!

상대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산탄총을 겨눴고 우리도 재빨리 권총을 뽑았다.

꿀꺽.

하지만 눈을 마주친 남자도 우리도 일단 섣불리 총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거의 반쯤 헐벗고 있는 상대는 해적이라긴 보단 그들이 잡아 온 민간인에 가까웠다.

“무슨 일이야 김 씨?”

“갑자기 가다 말고 왜······.”

산탄총을 든 남자 뒤에는 30명쯤 되는 민간인이 겁에 질린 채 모여 있었다.

나는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살며시 총구를 내리며 물었다.

“한국분들이십니까?”

마찬가지로 한국말로 답해주자 그들은 깜짝 놀라 자기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중국말도, 연변 사투리도 아닌 한국말에 우리가 같은 한국인인 걸 눈치챈 것이다.

“누, 누구십니까?”

“강릉에서 온 구조대입니다.”

강릉에서 왔다는 말에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내밀었다.

“박, 박범석이다!”

“박범석? 그 강릉 시장?”

그리고 그중 나를 알아보는 몇몇 이들로 인해 경계는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각 지역 평판이 이럴 때는 또 도움이 되었다.

“그럼 혹시······.”

“예. 저희만 따라오십시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이들을 여기 두고 갔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마무리가 좋았다.

함께 빠져나가자는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경계를 풀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

나는 지난번처럼 사진을 주섬주섬 꺼내 엠마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했다.

“다들 여기서 뭐 해요!”

그 순간 뒤쪽 통로에서 노획한 소총으로 무장한 엠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을 다그치며 연신 빠져나가야 한다고 외쳤다.

“시간 없다고 했잖아요! 빨리 가시라고요!”

아무리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요원이라도 무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갇혀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엠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이었다.

“엠마.”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이름을 부르자 엠마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 - - - - -?”

그리고 눈이 마주치며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범, 범석 씨? 제임스?”

“구하러 왔습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구조하러 왔다는 말에 엠마는 눈물을 참듯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당차고 여유롭고 씩씩하던 모습만 보다가 약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다행히 얼굴과 몸이 멍이 든 일부 타박상을 제외하면 건강은 별 이상 없다.

“고생했습니다.”

일행들이 그녀를 부축한다.

건네준 물을 허겁지겁 마신 엠마는 드디어 기운을 차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포옹 같은 거 안 해 줘요?”

“예. 안 해줍니다.”

“영화 같은 키스는요?”

“여기 더 있다가 가실래요?”

"놉!"

이제야 좀 엠마 같네.

나는 여유를 찾은 그녀의 모습에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표를 확보했다.

이제 다른 민간인까지 데리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이번 임무는 끝이다.

나는 경태에게 엠마를 업으라고 지시한뒤 산탄총을 들고 있던 남성에게 물었다.

“포로는 이게 끝입니까?”

“예. 원래 100명 정도 있었는데 어제 새벽쯤 놈들이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여튼 좆같은 새끼들.

인상을 찡그린 나는 무전기를 꺼내 최 대위를 호출했다.

“목표 확보했습니다. 지원군 요청하세요.”

[알겠습니다!]

근처에 요시다 호도 있고 동해항에서 출발한 지원군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민간인들만 무사히 밖으로 빼내면 놈들에게 마음껏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갑시다!”

이미 바닷물은 발목까지 차오른 지 오래, 서둘러 퇴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나는 엠마가 가지고 있던 소총을 대신 들고 경태와 함께 선두를 맡아 길을 뚫었다.

“워, 워 차오?! 타마더!”

주차장으로 내려오려던 해적 몇 놈이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총구를 겨눴다.

탕! 타앙!

허나, 이미 조준을 끝낸 나는 재빨리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려는 놈들을 저지했다.

탕! 탕탕탕! 탕!

물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이어 달려오던 놈들까지 처리하며 구역을 확보했다.

아직 실력 안 죽었다니까?

의기양양 총구 연기를 훅 분 나는 경태에게 시장님의 건재함을 보여주려 했다.

콰직!

끄아아아악!

하지만 맨손으로 해적을 때려죽이는 경태를 보자마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형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관절이 좀 쑤시네.”

“제 옆에 꼭 붙어있으세요.”

나는 든든하기 짝이 없는 경태를 엄폐 삼아 빠르게 지하 주차장을 주파했다.

“빨리! 빨리!”

그 사이 나머지 일행들은 따라오는 민간인을 인솔해 갑판으로 빠져나왔다.

갑판은 이미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는지 검은색 연기와 고함으로 혼란스러웠다.

“저쪽으로!”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30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눈에 띄고 만다.

우리는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 최 대위가 기다리는 퇴로 지점까지 이동하려 했다.

“- - - - - -!!”

하지만 어딘가로 급히 뛰어가다 우리를 발견한 해적 하나가 다급히 동료를 불렀다.

그들은 이제 사태 파악이 됐는지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투다다다다다!

“고개 숙여요!”

“꺄아아악!”

문 상사가 타이밍 좋게 사람들을 쓰러트려서 망정이지 다 쓸려 나갈뻔했다.

“계속 가!”

나와 경태는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그로를 끌었다.

철컥, 철컥.

“형님!”

탄이 비었다.

경태는 죽은 해적 시체에서 탄알집을 꺼내 내게 던져주었다.

철컥!

순식간에 장전을 끝낸 나는 다시 엄폐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한 놈,

한 놈,

그리고 또 한 놈!

분명 몸이 정상이 아닐 텐데, 이상하게 쏘는 족족 놈들이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나는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방아쇠 결까지 느껴지는 검지를 미친 듯이 놀렸다.

“피해요!”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총을 쏘고 있는데 경태가 갑자기 다급히 무어라 외쳤다.

시선을 돌려보니 한 해적 하나가 RPG-7을 들고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째껴!”

피유유우우우웅 - - - -!

우와아아악! 비명을 지른 우리는 서둘러 엄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콰아아앙!

탄두가 엄폐물에 박혀 그대로 폭발한다.

사방으로 화염과 파편이 튀어 올랐다.

귀가 쨍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누워 쏴 자세를 취한 뒤 바삐 방아쇠를 당겼다.

저 멀리서 우르르 몰려오는 해적 무리는 턱 끝까지 차오른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시발!

그만 몰려와 짜장면들아!

투두두두두두두두- - - -!!

“엥?”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옆 바다 쪽에서 묵직한 총성이 들려오며 놈들이 쓸려나간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쏟아지는 수천 개 예광탄은 하늘에서 온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뿌우우우우우!!

급히 달려온 요시다 호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갑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놈들은 다급히 엄폐해보지만, 연신 불을 뿜는 중기관총 앞에선 한낱 먹이에 불과했다.

“시장님!”

“빨리 엄호해!”

이때를 노려 달려온 최 대위와 대원들이 황급히 달려와 나와 경태를 부축한다.

퇴로 지점에는 이미 추가로 증원된 대원들과 고무보트가 민간인을 태우고 있었다.

“지원은 언제 온답니까?”

“시간이 좀 더 걸린답니다!”

아무리 중형 상선인 요시다 호라도 초대형 크루즈 앞에선 새끼 고래에 불과하다.

지금은 어떻게 버틴다고 해도 RPG-7을 맞기라도 한다면 침몰할 위험이 있다.

양측에서 시선을 분담하며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유일한 활로였다.

철컥!

나는 즉각 방탄복을 챙겨 입고 대원들이 건네는 장비로 빠르게 재무장했다.

“유탄 발사기 주세요!”

“제 것 쓰시면 됩니다!”

민간인들은 모두 밑으로 내려보냈다.

진입로를 전부 틀어막은 우리는 재정비를 끝낸 해적들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투다다다다다다 -!

드르륵! 드르륵!

이제부턴 서로 밀어내기다.

대원들은 미친 듯이 총알을 갈기며 해적들이 더 이상 넘어오지 않게 막았다.

[2시 방향 RPG!]

[젠장, 각이 안나와요오오!]

퐁! 콰아앙!

나는 재빨리 유탄 발사기를 꺼내 집요하게 달려오는 RPG 사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다른 해적이 꾸역꾸역 그 자리를 채우며 달려들었다.

삐이이이이 - - -펑!

그사이 해상에서 우리를 엄호하던 요시다호가 기어코 RPG 탄두를 맞고 말았다.

[젠장! 제대로 한 방 맞았구먼!]

불길이 치솟는다.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선장 어르신은 필사적으로 후퇴했다.

하나둘 쓰러지는 대원들, 무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다급한 비명.

놈들은 요시다 호의 엄호가 끊기자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젠장.’

이젠 어쩔 수 없다.

나는 한참 화재를 진압 중인 요시다 호를 향해 무전을 날렸다.

“민간인 태워서 빠져나가!”

크기가 큰 요시다 호를 혼자 뒀다가는 해적 놈들의 밥이 되기 딱 좋다.

우리가 크루즈 선박 위에서 시선을 끄는동안 먼저 이곳을 이탈해야 했다.

퐁! 콰아앙!

나는 마지막 남은 유탄을 한 방 먹여주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원들도 얼마 남지 않은 탄알집을 장전한 뒤 적극적으로 요시다 호를 엄호했다.

탕! 탕! 탕!

뜨거운 탄피가 튀어 올라 떨어진다.

짤랑짤랑, 마치 마지막을 세는 카운터 같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넘긴 우리는 또 한번 죽음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철컥, 철컥!

총알을 얼마나 쏴댄 거지?

벌써 빈 방아쇠가 허무하게 달칵거린다.

나는 버릇처럼 탄띠로 손을 옮기다 이내 탄약이 전부 떨어졌다는 걸 인지했다.

“- - - - - -!!”

하필 대치하고 있던 해적 하나가 기괴한 고함을 내지르며 뭔가를 뽑았다.

핑!

수류탄이다.

소총을 놓은 나는 몸이 기억하는 대로 손을 움직여 재빨리 권총을 뽑았다.

철컥!

던지기 전에 죽여야 한다.

오직 그 생각으로 총구를 움직여 놈의 가슴팍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삐이이이이이이이- - -!!

쾅!

하지만 놈을 죽인 것은 내 권총이 아닌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온 포탄이었다.

“?”

한순간 총성이 멈춘다.

대원들과 해적들은 포탄이 날아온 궤적을 따라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거대한 화물선과 함께 수십 척의 상선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온다.

우우우우웅!

평생 바다를 업 삼아 살아온 강릉항 바다사나이들이 우리를 위해 뱃고동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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