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속자-81화 (81/180)

<아포칼립스의 상속자 81화>

농담이 아니었다.

다음날 집무실에는 서울 요새가 공식 방문을 원한다는 진짜 서한이 도착했다.

그 뜬금없는 소식에 직원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고, 유일하게 내막을 아는 나만이 사태를 수습하며 씁쓸하게 웃어야 했다.

‘오라고 하세요.’

강릉으로선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절차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어차피 이동은 서울 소유 열차로 온다고 하니 문제는 아니고 나머지는 귀빈 대접뿐.

태식 씨 지휘 아래 회담 장소와 그들이 묵을 숙소가 어렵지 않게 마련되었다.

‘서울에서 대통령 후보가 온다는데?’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네.’

아무리 대한민국이 망했다고 해도 아직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남아있다.

거기다 그 지겨운 군부 정권을 몰아내고 시민의 편에서 정권을 되찾은 영웅들이라니.

소문을 들은 강릉 사람들은 기대 가득한 눈으로 이번 외교 방문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약속 당일.

드디어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강릉역에 도착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시골 특성상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구경하는 게 일상이다.

이를 환영식이라고 착각한 이솔하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사람들과 인사했다.

생각보다 젊고 이쁜데?

선물도 한가득 챙겨오고 강릉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벌써 호의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손을 흔들어주며 서울 손님들의 방문을 대충 환영했다.

그 뒤로는 조금 뻔했다.

형식적으로 항구 좀 둘러보고 양측 관 외교 관계에 대해 좋은 말이 오고 갔다.

손잡고, 사진, 또 모여서 손잡고 사진.

예나 지금이나 정치라는 게 참 그랬다.

하지만 그만큼 강릉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에 하늘과 바다에는 어느덧 주황빛 석양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삼엄한 호위 하에 서울에서 온 귀빈들을 미리 마련한 호텔로 안내했다.

이제 보여주기식 일정이 전부 끝이 났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었다.

강릉의 특산품으로 차려진 화려한 성찬으로 식사를 마무리한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달그락.

명목상 가벼운 티타임이다.

얼굴 자체가 빙긋 웃는 상인 이솔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강릉 발전의 주역들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 멀리 서울에서 여러분들의 활약상을 늘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구먼. 우리도 늘 서울 요새에 신세 지고 있지.”

강릉이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서울 요새와의 무역이 거의 7할을 넘게 차지했다.

물론 서울 또한 우리와 상생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분위기는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또 한 번 덕담을 주고받은 이솔하는 깊게 숨을 내쉬며 본론을 꺼냈다.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뵌 건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예요.”

“제안이라면······.”

“서울과 강릉 요새 연합 간 관계를 공식적으로 다시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형식적인 투표 절차는 거친다지만, 이솔하가 대통령이 되는 건 사실상 확정이다.

아마 정권이 새로 들어서기 전 주변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아무래도 이전에 맺은 협정들은 전 대통령 입김이 강하게 묻어있으니 말이다.

“동맹이라면 우리도 환영이네.”

“아뇨, 동맹보다 더 밀접한 관계요.”

동맹보다 더 밀접한 관계?

일행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미래 일기를 읽고 온 나는 이솔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저는 한반도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 땅 위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거요.”

설마 첫 만남에서 본인이 원하는 목적을 이렇게 대놓고 털어놓을 줄은 몰랐다.

이솔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와 일행들 반응을 살피며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충청도 지역과는 이미 협정이 끝났어요. 곧 저희 행정 구역으로 편입될 예정이고 선거도 올해 다시 치를 생각이에요. 저는 강릉이 이에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워낙 충격적인 제안인지라 자리에 모인 일행들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얼굴마담 역할을 대신해 준 김춘식 회장이 조용히 답했다.

“······우리 강릉은 이미 시장이 있네만.”

“모든 지도자는 정당한 선거 절차를 거쳐 뽑혀야 해요. 더 이상 가진 게 많은 자가, 힘이 강한 자가 요새를 지배해선 안 돼요.”

그 순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김태하 소장이 깜짝 놀라 제지하려 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이솔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박범석 씨가 그동안 강릉에 해온 공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다만, 무너진 시스템과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해요.”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가 나를 정치적으로 담그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라는 게 원래 명분이라는 칼을 뽑아 상대를 난도질하는 걸 최고라고 치니까.

“강릉도 이제 정상화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현재 내가 파악한 이솔하는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확신이 너무 짙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구분을 못 하는 맹목적인 정의 말이다.

‘당황스럽군.’

이솔하는 마치 박범석이라는 인간을 판별하겠다는 듯 진지한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여태 비열하고 쓰레기 같은 놈들만 상대해오던 나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보게.”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막말 따위는 용납하지 못하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다.

“서울은 다 그런 식인가?"

“네?”

“급하면 일단 가져가 쓰고, 나중에 가서는 정의이니 명분이니 하는 그런 이유로 사람을 헌신짝 던지듯 버리나 이 말일세."

“······잠시만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오해라고 하지 말게. 분명 박범석을 군부정권과 같은 비열한 독재자로 취급하지 않았나.”

다름 아닌 강릉항의 주인이자,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인 김춘식 회장이 노했다.

그의 힘이 실린 목소리는 자신만만하던 이솔하를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편한 자리에 앉아 책이나 들여다보는 인간들이 뭘 알겠어. 공로? 우린 그걸 헌신이라 부르네. 대가 없이. 내 이웃과 가족, 형제를 위해 대신 피를 흘려주는 걸 말이야.”

훈훈하던 분위기가 한순간 깨진다.

김춘식 회장은 핏대를 올리며 세상 물정 모르는 이솔하를 향해 질타를 날렸다.

“존중받기 마땅한 자니까, 따르는 거야. 그럴 자격이 있는 남자니까 여기 모두가 뒤를 따르는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을 해!”

기분 좋게 마시던 찻잔이 마치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처럼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입을 꾹 다문 이솔하는 쏟아진 찻잔을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회,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이러다간 건강이 우려스럽다.

태식 씨는 서둘러 얼굴이 붉어진 김춘식 회장을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방이 조용해져도 이솔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지는 건 바뀌지 않았다.

얼굴 주름이 더욱 짙어진 김태하 소장은 일단 이솔하 대신 나서 상황을 수습했다.

“우리 쪽에서 말실수했네. 회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다시 만날 수 있겠나?”

“피곤할 겁니다. 오늘은 일단 쉬십시오.”

“양해해줘서 고맙군.”

더 이상 여기 있을 분위기가 아니다.

김태하 소장은 서둘러 표정이 어두운 이솔하를 데리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얼핏 살펴본 그녀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마치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이솔하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최악으로 끝이 났다.

* * *

후욱, 후욱.

두꺼운 방호복으로 온몸을 보호한 연구원 두 명이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켰다.

그러자 그 끝을 짐작하기 힘든 엄청난 규모의 토굴과 함께 군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 군락은 미군이 발사한 벙커 버스터 한 방으로 움직임을 멈춘 지 오래였다.

“젠장 끔찍하군.”

“크기 좀 봐. 장난 아니야.”

애리조나에 둥지를 튼 지 불과 5개월 만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도시를 침공했다.

만약 발견하는 게 조금만 더 늦었어도 이 일대를 위협했을 요제프 시티 군락.

너무나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에 놀란 미연방은 서둘러 조사팀을 파견했다.

“이쪽 같은데.”

둥지 내부는 방호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될만큼 지독한 유독가스로 가득 차 있다.

겨우겨우 길을 찾은 연구원들은 천천히 군락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굴에 붙어있는 엄청난 규모의 산란장을 발견해낸다.

연구원은 이를 정신없이 촬영하며 오물과 진창 사이를 빠르게 헤쳐 나갔다.

“이러니 숫자가 줄지를 않지.”

“최소 수십만 마리는 되겠어.”

군락의 진짜 두려움은 단순히 감염체 숫자를 늘린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놈들은 끝없이 증식하고 학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보라.

어째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증식 능력은 단순히 플러스가 아닌 제곱에 가까웠다.

“빨리 끝내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재촉 좀 하지 마, 시발.”

둥지 내부 구조를 찍어가고 움직임을 멈춘 감염체들로부터 샘플을 채취해야 한다.

고작 둘이서 하긴 벅찬 일이지만, 연구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여 임무를 해나갔다.

이 짓만 벌써 1년째.

그 둘은 군락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달칵.

“후우, 됐다.”

드디어 마지막 샘플까지 병에 담았다.

방호복 속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연구원은 동료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올리버?”

분명 근처에 있어야 할 동료 연구원인 올리버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온 루카스는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아 들려고 했다.

“야, 이쪽이야!”

그 순간 한쪽 토굴에서 기어 나온 올리버가 루카스를 향해 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시발, 놀라 자빠질뻔했잖아!

인상을 와락 찡그린 루카스는 지역을 이탈한 동료를 걷어차기 위해 다가갔다.

“저거 봐봐. 보여?”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올리버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린 루카스는 딱딱하게 굳었다.

“시발, 저게 뭐야.”

그곳에는 마치 종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살덩어리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꿈틀.

분명 군락은 소멸했다고 보고 받았는데 왜 둥지 내부에 저런 게 남아있는가.

외부를 스캔한다.

다행히 공격성은 없어 보인다.

올리버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바디캠을 이용해 그 종양의 모습을 꼼꼼히 담았다.

“잘 찍었어?”

“됐어. 이제 가자.”

발견 사례가 없는 감염체를 찾아냈다.

엄청난 성과에 흥분한 올리버는 루카스와 함께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꿈틀!

그런데 가만히 있던 종양 덩어리가 갑자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토굴이 흔들린다.

외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주변 공기를 모두 집어삼킨 종양 덩어리는 이내 살덩이가 찢어지며 폭발했다.

펑!

“끄아아아악!”

황급히 도망치던 올리버와 루카스는 그자리에서 몸이 녹아내려 즉사한다.

하지만 참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팽창과 함께 발생한 정체불명의 포자는 곧 군락 밖으로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모두 후퇴해! 피하라고!”

입구를 지키고 있던 미연방 군인들은 아무런 보호 없이 포자에 노출되고 말았다.

쿨럭쿨럭!

끄르륵, 끅!

이에 노출된 모두가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

쓰러진 이들이 검은색 피를 토해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건 단 하나, 감염체 성분이 신체 내부로 들어갔을 때뿐이다.

끼기기긱, 끼긱!

파견된 보병 중대 전체가 감염되기까지는 채 1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죽었고, 걸어 다니는 시체가 되어 다시 일어났다.

[감, 감염체 발생!]

[상부! 상부 응답하라!]

여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공기 감염이 애리조나와 LA 전 지역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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