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상속자 86화>
타앙!
가은이가 연달아 발사한 대구경 총알이 꾸물꾸물 기어 오던 종양 변이종을 꿰뚫는다.
이번에는 무려 3방을 버틴 놈은 곧 기괴한 소리와 함께 펑! 하고 터져버렸다.
철컥!
또 한 놈을 처리했다.
이제 다른 요격 팀도 슬슬 감을 잡았는지 변이종을 처치했다는 무전이 도착했다.
작전 시작 30분 만에 벌써 6마리라?
성과가 좋다고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 없다.
생각보다 종양 변이종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그 출현 빈도도 잦았기 때문이다.
[빨리! 빨리!]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래도 인솔팀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해준 덕분에 피난 행렬은 벌써 반이나 왔다.
이제 이 번화가만 지나면 선착장으로 연결되는 정문까지는 맘 놓고 달릴 수 있다.
“가자.”
“네!”
저격 포인트를 바꿀 차례다.
나는 가은이와 함께 위장막을 벗고 다시 가파른 지붕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건물이 빼곡하게 세워진 블라디보스토크의 번화가는 훌륭한 교두보가 되어준다.
우리는 도시를 활보하는 도둑고양이가 되어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너다녔다.
타악!
있는 힘껏 도움닫기로 뛰어올라 거리가 조금 있는 옥상에 낙법을 치며 떨어졌다.
가뿐하게 떨어지는 가은이와 달리 나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체면 다 구기네!
발목 고통을 호소할 틈도 없이 우리는 양각대를 설치하고 위장막을 둘렀다.
그리고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개미처럼 뽀로로 이동하는 피난 행렬 근처를 살폈다.
찌릿!
또 한 번 신경이 반응한다.
나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 골목 사이를 꾸역꾸역 기어 오는 종양 변이종을 찾아냈다.
“저기!”
“어떻게 그리 잘 찾아요?!”
여태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한 가은이는 감탄사와 함께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날 군락에서 죽다 살아온 이후로 내 머리에 센서 더듬이라도 달린 모양이다.
나는 펑 하고 터지는 종양 변이종을 확인하며 다른 요격팀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치이익, 치지직!
[감염체 출현!]
[젠장!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리더니 인솔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폭음이 유인하지 못한 일부 감염체 무리가 지하에서 갑자기 출현한 것이다.
[개새끼들! 뒤져!]
[반대편에서도 온다! 조심해!]
따다다다닥!
따닥! 딱!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인솔팀은 신속하게 반응하며 달려오는 감염체 무리를 침착하게 조준 사격했다.
하지만 산발적인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감염체가 난입하자 피해자가 속출했고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은아!”
“여긴 맡겨요!”
일부 시민이 달려드는 감염체를 피하느라 인솔팀이 없는 골목에 낙오되고 말았다.
이를 발견한 나는 재빨리 옥상에서 벗어나 현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타앙! 타앙!
“덤벼! 덤비라고!”
구형 산탄총을 든 나탈리가 달려드는 감염체를 상대로 홀로 저항 중이었다.
그 뒤에는 노약자와 아이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철컥!
연사로 돌린다.
잽싸게 총구를 돌려 개떼처럼 달려드는 감염체 정조준한다.
따다다다닥!
총구가 불을 뿜자 아가리를 흉측하게 벌려오던 놈들이 바닥에 하나둘 꼬꾸라진다.
이를 악문 채 총알을 장전하던 나탈리는 깜짝 놀라며 지붕 위 나와 눈을 마주쳤다.
“뭐합니까! 행렬로 돌아가요!”
인솔팀은 베테랑이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이를 수습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내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나탈리는 곧 시민들을 데리고 다시 번화가로 뛰어갔다.
후욱, 후욱.
젠장, 힘들어 죽겠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 나는 지붕 굴뚝에 잠시 기대고 앉아 숨을 골랐다.
마음 같아선 방독면을 벗고 수통에 남아있는 물을 전부 마셔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급박하게 흘러가는 현장 상황은 그런 찰나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치익!
[변이종 출현! 3마리 접근 중입니다!]
[젠장, 여기도 나타났어요!]
마치 이 혼란을 기다렸다는 듯 요새 곳곳에서 종양 변이종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현재 요격팀만으로는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었다.
“최 대위!”
[금방 가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었던 최 대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이에 응답했고, 인솔팀을 지원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투쾅!
투쾅!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된다.
일일이 지시를 내리지 못할 만큼 온갖 보고와 비명이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몸이 점차 반동을 느끼지 못하고 산소가 부족한 머리가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시점.
[피, 피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전력의 양상이 우리 쪽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저 멀리 포자 구름이 터졌다.
첨탑에서 후퇴하지 않고 버티던 요격팀 하나가 저지하지 못한 포자 구름에 노출됐다.
우리는 그 광경을 보며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뚝 하고 끊기는 것을 느꼈다.
[무, 무사히 밖으로- - -치지직!]
피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변이가 시작된 대원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타앙!
저 멀리 첨탑에서 들려온 총성은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알려줬다.
“······정신 차려! 다들 뭐 하는 거야!”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첨탑에서 터진 포자 구름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나는 넋이 나간 대원들을 다그치며 사정권에 놓인 인솔팀을 후퇴하게 했다.
“아래로! 아래로 틀어!”
정문으로 가는 길이 끊겼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들어왔던 배수구 길을 통해 요새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인솔팀은 공황에 빠진 시민들을 이끌고 급히 후퇴했다.
후우우우우웅 -!!
여름치고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포자 구름으로 잠식되고 있는 요새를 내려다보며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 얕봤다.’
알비노 변이종과는 달리 종양 변이종은 오직 자폭을 위해 탄생한 개체다.
놈들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숫자를 불려가며 건물 곳곳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슬슬 승부수를 던질 때가 되었다.
치익!
나는 선착장에서 대기 중인 블라디보스토크 화물선을 향해 급히 무전을 날렸다.
“화력 지원 요청합니다!”
무차별 포격!
감염체를 유인할지 모르는 폭음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고 있던 화력 지원이다.
하지만 놈들이 총력전을 가한다면 우리측에서도 똑같은 화력으로 보답해줄 차례다.
나는 곧바로 응답해오는 그들에게 좌표를 불러준 뒤 송지영과 최 대위를 불렀다.
“선착장으로 후퇴하십시오!”
[알, 알겠습니다!]
[포격이다! 빨리 벗어나!]
요새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12시 방면을 아예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이다.
정문을 지키던 송 중위와 지원을 오던 최대위는 그대로 항구까지 후퇴했다.
“저쪽!”
“확인했어요!”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나와 가은이는 이젠 익숙한 지붕을 바쁘게 질주하며 저격 포인트를 계속 잡았다.
타앙!
퍼엉!
그리고 종양 변이종이 보일 때마다 터트려주며 착실하게 숫자를 줄여나갔다.
[인솔팀 도착했습니다!]
[애들부터! 애들부터 내보내!]
그사이 배수로까지 도착한 인솔팀과 피난 행렬이 요새 밖으로 탈출을 시작했다.
“가자!”
이제 곧 포격이 떨어진다.
나는 1시간 동안 맹활약을 펼쳐준 가은이를 데리고 작전 지역을 빠르게 이탈했다.
삐이이이이이이 - - - -!
콰아아앙!
그 순간 화물선 곡사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그대로 직격한다.
꾸물꾸물 기어 오던 종양 변이종은 압도적인 화력에 휘말려 그대로 폭발했다.
쿵! 쿠르르르릉!
블라디보스토크 화물선은 마치 응어리진 한을 풀 듯 대규모 화력을 계속 투사했다.
됐다.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피날레를 포격으로 장식한 우리는 마지막 탈출로인 배수구를 향해 뛰어가려고 했다.
[잠, 잠깐! 경태! 경태 얘 어디 갔어!]
그런데 그 순간 마지막으로 인원을 점검하던 문 상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경태? 경태가 뒤에 낙오했다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우리는 뜀박질을 멈추고 멍하니 포격 지대를 바라봤다.
탁!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내려놓고 왔던 길을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시장님! 시장님, 안 됩니다!]
[선배! 돌아와요!]
희망 요새에서 멀쩡하게 잘 살던 녀석을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개고생만 시켰다.
절대 두고 못 간다.
나는 전장을 질주하며 어딘가에서 낙오했을 경태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저기!”
그 순간 12시 방향을 살펴보던 가은이가 다급한 얼굴로 손가락질했다.
그곳에는 아이 두 명을 끌어안은 경태가 다급히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참 한결같아서 고맙다, 이 새끼야!
진짜 미워 죽겠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미련한 동생을 나는 서둘러 부축했다.
“형, 형님?!”
“닥치고 뛰어!”
포자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다가는 사이좋게 다 죽을 판이다.
허벅지를 다친 경태를 대신해 각자 아이와 장비를 대신 받아준 우리는 퇴로를 향해 뛰었다.
허억 허억.
모두 탈출했나?
아마 지금쯤 포성을 들은 감염체들이 요새로 오고 있을 것이다.
제발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이 있기를 빌며 나는 뜀박질을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요새를 통째로 집어삼킨 재앙은 우리를 쉽게 놔줄 생각이 없었다.
찌릿!
감각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은이와 경태를 양팔로 끌어안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퍼어엉 - - -!!
사각지대인 골목 갈림길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종양 변이체가 폭발했다.
가까스로 폭발을 피한 우리는 비틀비틀 일어나 포자 구름을 피해 도망쳤다.
탁, 탁, 탁, 탁!
확산 속도가 우리보다 빠르다.
이대로 계속 도망치다간 분명 따라 잡힌다.
하아, 하아.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급박한 상황.
나는 오직 본능에 모든 걸 의존했다.
숨어야 한다.
피해야 한다.
그 순간 바삐 움직이던 눈동자가 길 한가운데 놓여있는 하수관 맨홀에 꽂혔다.
“저기!”
목숨이 달린 상황이다.
빠르게 내 의도를 눈치챈 일행들은 맨홀을 향해 달려갔다.
텅! 그르르륵!
맨홀 뚜껑을 연다.
아이들과 가은이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낸 다음 가방에서 위장막을 꺼냈다.
밖과 안을 완벽하게 분리해야 한다.
나는 구멍이 뚫린 맨홀을 위장막으로 감쌌다.
“너도 들어가!”
50m!
옆에서 돕던 경태를 하수관 내부로 걷어찬 뒤 맨홀을 입구로 질질 끌었다.
40m, 30m.
제발, 제발, 제발!
나는 하수관 사다리에 가까스로 다리를 걸치고 맨홀 뚜껑을 이용해 입구를 막았다.
덜컹!
세상이 어두워졌다.
미약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거의 0.5초 차이로 맨홀 뚜껑을 닫은 나는 손가락 힘이 탁하고 풀려버렸다.
반짝!
총구에 부착한 라이트를 켜 가은이와 경태, 마지막으로 아이들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문제없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좁은 틈에 걸터앉았다.
위쪽에선 아직도 포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맨홀 뚜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화통 몇 개 남았어?”
방독면 내부가 온통 땀으로 젖은 경태와 가은이가 주섬주섬 정화통을 꺼낸다.
각자 2개, 3개, 나도 2개.
좋아, 아껴서 사용하면 내일까지 문제없을 것이다.
하아.
깊은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손가락 한개 까닥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품에 안는 와중에도 서로의 손을 잡는 걸 잊지 않았다.
꾸욱.
뜨거운 체온이 느껴진다.
거친 숨, 맥박, 떨림, 이 모든 것이 피부로 전해졌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살아서 함께 왔다는 유대감이 심장을 뛰게 했다
우리는 여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