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찰칵!
잠시 주춤거리던 다나카가 순간 품속에서 발리송 나이프를 꺼내 허공에 휘두른다.
후웅!
검문을 피해 몰래 반입해온 모양인데 그래도 야쿠자 출신이라고 제법 쓸 줄 안다.
“오, 오지 마!”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자 놈은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내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턱!
오른 손목을 잡는다.
당황하는 다나카와 눈을 마주치며 그대로 팔목을 비튼다.
까드득!
“끄아아아악 - - -!!”
생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나이프를 놓는다.
퍽!
오금을 걷어찬다.
꼴사납게 넘어지는 놈의 관절을 밟고 그대로 힘을 준다.
콰직!
이젠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끔찍한 고통에 다나카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거세지는 빗줄기, 놈은 진흙탕 위를 버둥거리며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렸다.
더러워진 양복 사이로 보이는 이레즈미 문신은 오늘따라 유독 형편없어 보였다.
“너, 너 미쳤어? 이러고도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 여, 여기 우리 애들만 몇몇인줄 아냐고! 당장, 당장 여기서······!”
콰직!
여전히 말이 많다.
안면을 후려 닥치게 만들어준 뒤 얼굴을 진흙탕 위에 처박는다.
“끝났습니다.”
그사이 놈의 호위 병력을 전부 끝장낸 일행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나름 친다는 애들을 데리고 다녔을 텐데 싸움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나카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이를 바라보다 이내 악을 쓰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이봐! 거, 거기 아무도 없어?! 나 좀 살려줘! 제발 아무나 좋으니까 살려달라고!”
하지만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요청해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어둠과 거센 빗줄기 아래 점점 진흙탕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또옥, 또옥.
우비로 무거운 물방울이 흐른다.
나는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엠마를 호출했다.
치익.
“엠마.”
[자료랑 증거까지 전부 넘겨드렸어요. 두분 모두 심각한 얼굴로 읽고 계시네요.]
내가 놈을 생포하는 사이 엠마는 김태하 소장과 이솔하의 거처를 직접 찾아갔고,
타이후 해적과 부산이 협력 관계였다는 증거 자료를 만천하에 공개해버렸다.
하늘이 이를 아는지 대신 운다.
거세지는 빗줄기에 무전기 볼륨이 커졌다.
[바꿔드릴까요?]
“부탁합니다.”
무전기 너머로 말소리가 들리더니 곧 김태하 소장이 무전을 대신 받으며 물었다.
[지금 앞에 있나?]
“예.”
[다나카? 부산 요새의 그놈이 확실해?]
“확실합니다.”
타이후 해적을 바다에 푼 장본인이자, 서해를 무법지대로 만든 주범이자, 수많은 서울 시민을 아사하게 만든 악의 근원이다.
놈이 비명을 지르자 김태하 소장은 할 말을 잃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왜 우리에게 먼저 알렸지?]
“그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나카가 범인이라는 걸 안 이상 나는 놈을 압송해서 서울로 끌고 가야 해. 그리고 정해진 절차를 걸쳐 기소하고, 3심에 걸쳐 재판받고, 또 정당한 처벌을 내려야겠지.]
“그걸 원하십니까?”
[아니,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놈 같은 쓰레기한테 재판받을 권리를 주는 게,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변호 받을 권리를 주는 게······ 그게 과연 정말 옳은 일일까.]
인간이라는 동물은 항상 신념과 현실이라는 큰 괴리감 사이에서 싸우고 또 싸운다.
평생 신념이 옳다고 믿어온 김태하 소장은 오늘 지독한 현실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콰르르릉- - -!!
나는 비가 오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침 우리 위에선 천둥·번개가 번쩍였다.
“그럼 저한테 맡기십시오.”
[······범석아.]
“소장님, 저는 신념 그딴 거 잘 모릅니다. 물면 따라서 물고, 짖으면 따라서 짖는 개새끼처럼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혹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안도하고 있던 다나카를 앞으로 끌고 왔다.
“오늘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짐승끼리 치고받고 싸우다, 결국 한 놈이 죽은 거죠.”
그리고 놈이 떨어트린 나이프를 주워 흥건하게 묻은 진흙과 물을 털어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영원히.”
뚝.
무전을 끊었다.
곧 다가올 운명을 직감한 다나카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로 덜덜 떨었다.
“야, 야······! 이, 이렇게까지 할 거 아니잖아. 내가 너를 죽,죽이려고 했어? 그냥! 그냥 물건 몇 개 훔치려 한 게 다잖아!”
“그랬지.”
“우, 우리끼리 싸울 필요 없어, 어? 이참에 손잡고 다 해 먹자고! 돈? 여자? 원하는게 뭐야! 나한테 뭐든지 말만 하면······!”
서걱!
쉴 새 없이 주절거리는 입을 막았다.
최대한 많은 피를 흘리도록 목을 그어버린다.
다나카는 끄르륵거리는 역겨운 단말마와 함께 진창 위에 쓰러져 붉은 피를 흘렸다.
아니, 바닥으로 스며든 그 붉은 피는 곧 감염체와 같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돌아가자.”
“예.”
시체와 차량을 전부 불태운 우리는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 주둔지로 복귀했다.
뒤늦게 찾아온 군인들이 발견한 것은 까맣게 타버린 시체 몇 구가 전부였다.
콰아아앙 - - -!!
늦은 새벽, 부산 군 주둔지 쪽에선 갑작스러운 총성을 시작으로 폭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요새 지도자들은 즉각 병력을 소집해 무슨 일인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충주호를 포위한 서울 군대로 인해 병력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가만히들 있으시게.’
새벽 늦게 자신들을 찾아와 이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한 김태하 소장.
그 기세에 눌린 요새 지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해가 중천에 밝고 나서야 이 충주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주, 주둔지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분명 부산 군이 모여있어야 할 주둔지에는 수많은 시체와 잿더미밖에 남지 않았다.
그 위를 서울 요새 소속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난 새벽, 충주호에 들려온 소란은 다름아닌 서울과 부산 간 발생한 전쟁이었다.
“저기 정보사 군인들 아닙니까?”
“시발, 전방 부대도 왔잖아.”
아니, 이건 전쟁이라긴 보단 서울 요새가 일방적으로 가한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정보사 요원, 최정예라 불리는 전방 부대를 부산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항의해야 한다.
이건 다른 요새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하지만 김태하 소장의 살벌한 눈빛을 본 그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러났다.
아무리 늙었어도 호랑이는 호랑이, 세상은 아직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현장이 정리되어갈 때쯤, 예정대로 정상 회담의 두 번째 일정이 시작됐다.
“- - - - - -.”
거의 반강제적으로 회담장으로 끌려온 요새 지도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 만찬으로 준비된 접시 위 음식에 손을 대는 사람은 이솔하 말고는 없었다.
“안 드시나요?”
어제만 해도 표정이 어둡다 못해 죽어있던 이솔하가 오늘은 웃음꽃이 피었다.
그 이유를 대충 알고 있는 지도자들은 아니꼬워하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 나는 배가 좀 아파서.”
“아침을 먹고 왔습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건데.
이솔하는 아쉽다는 얼굴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놨다.
“새벽에 많이들 놀라셨죠? 원래는 동의를 구했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찮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선전포고 없이······.”
“다나카가 타이후 해적의 배후였다는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저희 서울이 범죄자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조금씩 불만을 표하던 지도자들은 타이후 해적이라는 말에 몹시 놀랐다.
특히 서해와 인접한 요새들은 거의 입에 거품을 물며 증거를 요구했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증거! 증거를 보여주시오!”
이솔하는 기다렸다는 듯 미리 복사해온 서류철을 나눠주며 여유롭게 웃었다.
서울이 이토록 무리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서류 안에 있었다.
“이러면 부산도 곧 아닙니까?”
“젠장, 상황이 복잡하게 됐군.”
반대로 부산과 나쁘지 않은 관계였던 경상 지역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느라 바빴다.
다나카에게 받아먹은 게 많은 만큼 쉽사리 말을 들어주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양쪽 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다나카 상이랑 직접 만나게 해주십시오.”
“어, 그게······.”
이솔하는 난처하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오른쪽에 앉은 나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조용히 스테이크만 썰어 먹고 있던 내 쪽으로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뭐요?”
아마 지금쯤 지옥으로 끌려가 염라대왕과 진지한 상담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내가 딱 잘라 말하자 경상 지역 지도자 중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눈으로 노려봤다.
“아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길래!”
“잠, 잠깐.”
그 순간 지난 타이후 토벌 때 축전을 보내줬던 군산 요새 지도자가 벌떡 일어났다.
“박범석 시장님?”
이번 회담에 불참 한 줄 알았던 나를 발견하자 그는 무척 반갑게 다가왔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아! 이분이 그 강릉 시장님이십니까?”
그동안 개고생하면서 얻었던 강릉의 명성이 또 이럴 때는 또 도움이 되었다.
서해에 근접한 군산과 목포가 먼저 호의를 보였고 나머지 요새도 이에 동참했다.
타이후 해적을 토벌한 장본인이자, 다나카로 인해 여러 피해를 봤었던 강릉이다.
다름 아닌 그 장본인이 범인을 찾아 죽였다는데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서해 쪽 지도자들은 곧 감탄하며 내게 고마움을 표했고,
“크흠!”
경상 지역 요새 지도자들 또한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빠른 태세 전환을 보였다.
어제만 해도 다나카가 이끌던 회담 분위기가 정반대로 바뀐 걸 눈치챈 것이다.
‘고마워요.’
졸지에 혜택을 보게 된 이솔하는 내게 작게 윙크하며 서둘러 디저트를 내오게 했다.
“자, 이제 진짜 회담을 시작해볼까요?”
앞날이 캄캄했던 한반도 요새들이 드디어 미래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순간이었다.
* * *
5년 전 새로 설립된 뉴욕 롱아일랜드 연구 단지에는 각 분야에 저명한 권위자들이 모두 모여 오직 감염체만을 연구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과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그곳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성과를 내고 있고,
특히 감염체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로 그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야. 일어나서 이것 좀 봐봐.”
벌써 일주일째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연구원 하나가 동료를 황급히 불렀다.
한참 꾸벅꾸벅 졸고 있던 동료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다가 이내 기겁한다.
“야! 너, 너 미쳤어!?”
평소 괴짜로 유명한 연구원이 이번에 받은 군락 샘플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놨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양쪽으로 갈라진 군락 본체를 가리켰다.
“닥치고 보기나 해.”
“응?”
분명 생명 활동을 멈췄어야 할 군락 본체가 멀쩡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연구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반으로 갈라진 한쪽 군락 본체에 전기 신호를 줬다.
꿈틀!
그러자 1초 뒤 물리적으로 나눠진 반대쪽 한쪽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꿈틀거렸다.
“보여?”
“다, 다시 해봐.”
우연이 아니다.
계속된 전기 신호에 정확히 1초 간격으로 서로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거리를 100m까지 벌려도 1초, 1층에서 5층까지 직선 높이를 올려도 1초다.
심지어 물속에서 혹은 특수 용액 속에서 전기 반응을 줘봐도 똑같이 반응했다.
엄청난 발견이다.
그동안 밝혀내지 못했던 군락 동시 변이현상의 실마리를 드디어 잡아낸 것이다.
“됐어!”
“으아아아!”
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고 이내 방방 뛰어올랐다.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전쟁이 드디어 그 끝으로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다.
[속보입니다! 현재 유타, 아이다 호, 오리건주 전역에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모든 시민분은 정해진 위치로 대피하거나, 주 방위군의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반복합니다, 현재 유타, 아이다호 오리건······.]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충격적인 소식 하나가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했다.
네바다 방어선이 뚫림에 따라 펜타곤이 드디어 전술핵 투하를 결정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끔찍한 버섯 구름이 로스앤젤레스 한가운데 피어올랐다
<작가의 말
빌드업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