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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96화 (96/180)

96화

결국 화력에 밀린 감염체 무리는 마치 썰물 빠져나가듯 저지선 밖으로 물러났다.

박격포는 즉각 사격을 중지했고 나머지 인원 또한 붉어진 총열을 위로 올렸다.

침묵이 흐른다.

다들 어둠을 조용히 노려봤다.

“뭐해! 정신 차려!”

내가 옥상으로 올라와 크게 외치자 넋 놓고 있던 이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찾아 건물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녔다.

“여기 치료제 빨리!”

아무래도 1층이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지라 일부 방위군 피해가 너무 컸다.

그나마 치료제 때문에 2명이 죽는 것으로 그쳤지 아마 없었으면 큰일 날뻔했다.

“후방으로 후송하겠습니다!”

의무병들은 급히 치료제를 투여하며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후송할 준비를 끝냈다.

다들 감염 말고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모두 무사히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함과 총성이 난무하던 전투 현장은 슬슬 정리되어가는 분위기처럼 보였다.

“- - - - - -.”

하지만 분명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위군들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급박했던 전투 상황과 사상자 탓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일이 건물을 돌아다니며 상기된 분위기를 가라앉혔고,

대원들 또한 방위군을 대신해 주변을 경계하고 마지막까지 불침번을 서주었다.

그렇게 뜬눈으로 지새운 새벽이 지나, 드디어 아침 해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조용하네요.”

“굳이 나올 이유가 없다 이거지.”

어젯밤까지만 해도 감염체로 가득했던 주변 공터와 운봉산 일대가 조용해졌다.

본인들이 밤에 유리하다는 걸 알고, 낮 동안은 둥지 속에 처박힐 속셈이다.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우리는 당황하기는커녕 더욱 전의를 끌어올렸다.

적당히 간을 봐야지 개새끼가, 아주 우리를 좆으로 보는지 대놓고 머리를 쓰고 있다.

그 머리를 터트려도 계속 생각이 가능할지는 곧 찾아가서 직접 확인해주마.

“모두 모여보세요.”

나는 대기 중인 대원들과 방위군 간부들에게 신호탄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건 각자 색깔이 다른 연막 신호탄입니다. 전파 방해가 끝날 때까지는 이걸 이용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도록 할 겁니다.”

간단하다.

붉은색은 지원요청, 노란색은 후퇴한다, 그 외 파란색은 작전 성공이다.

이중 몇 개를 섞어 쓰냐에 따라 제법 구체적인 상황 보고와 지시 하달이 가능하다.

특임대가 쓰던 패턴을 몇 개 가르쳐주자 다들 별다른 무리 없이 숙지를 끝냈다.

“시장님! 견인포 방열 끝났습니다!”

“저지선도 새로 깔았습니까?”

“예. 용접한 철근이랑 철조망으로 아주 도배를 해봤습니다. 크레모아랑 소이탄도 한가득 심어뒀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고 맡기겠습니다.”

이번에도 모루 역할을 맡을 방위군은 그 사이 기지를 아예 요새로 만들어두었다.

병사들과 간부들 모두 지난밤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출발!”

나는 운동장에 방열 된 곡사포들을 마지막으로 모든 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장비를 챙긴 연합팀이 건물을 우르르 빠져나와 서둘러 차량에 탑승했다.

“시간 약속 꼭 지키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방위군 간부들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점검한 나는 마지막으로 차량에 올라탔다.

부르르릉!

우렁찬 엔진음을 내뿜은 무장 트럭은 빠르게 학교를 빠져나와 뒷길로 달렸다.

이쪽을 바라보는 군락의 시선이 어느덧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척!

나는 중지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먹여줄 차례다.

* * *

꾸웅!

콰아아아앙- - -!!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군락 둥지가 있는 운봉산에 대단위 포격이 시작되었다.

155mm와 105mm가 연주하는 과격한 합주에 일대는 온통 쑥대밭이 되었고,

평화롭게 살던 야생 동물들과 새들은 인간들을 욕하며 서둘러 도망치기 바빴다.

‘신중하다. 의도를 아는 거야.’

하지만 포격이 1시간째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양동 작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했는지 쉽사리 감염체를 투입하지 않는 것이다.

깊은 토굴을 성벽 삼아 최대한 감염체 전력을 보존할 생각인 운봉산 군락.

녀석은 둥지 안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번 포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쾅! 콰아아앙!

쿠르르르릉 - - -!!

하지만 놈은 우리 방위군이 생각보다 탄재고가 많다는 건 차마 계산하지 못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아주 나올 때까지 때리라는 지시에 포격이 멈추지 않는다.

저게 다 고폭탄인 걸 생각하면 운봉산 한쪽 면은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끼이이이이이익 - - - -!!

결국, 참다못한 놈은 분노를 터트리며 머금고 있던 감염체를 쏟아냈다.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감염체 무리가 기지를 향해 미친 듯이 몰려갔다.

“온다.”

물론 놈은 쉽사리 뒤통수를 맞아줄 생각이 없는지 이쪽으로도 감염체를 보냈다.

영악한 새끼.

모른 척하고 있었구나.

대원들이 타고 온 무장 트럭은 몰려온 놈들로 인해 순식간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끼이익?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인 더미였을 뿐, 우리는 이미 반대편 도랑에 숨어 있었다.

“터트려.”

콰아아아앙- - -!!

유선으로 연결된 고폭 장치를 누르자 트럭에 설치된 폭발물이 일시에 터진다.

트럭으로 몰려든 감염체 무리는 폭사했고 또 파편에 찢겨 다진 고기가 되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난 최 대위는 위장막을 벗기며 숨겨둔 트럭 위에 올라탔다.

마찬가지로 1팀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함께 올라타 잽싸게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놈이 높은 지능을 가진 군락이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방위군의 유인만으로는 힘들다.

이를 염려한 우리는 이중, 삼중으로 속이기 위한 연합팀을 여러 개로 나눴다.

어떤 게 진짜일까.

군락은 사방으로 찢어지는 대원들을 보며 깜짝 놀랐는지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

“우리도 가자.”

“네.”

하지만 진짜 참수 부대는 나를 포함, 정예대원들만을 모아둔 연합 1팀이다.

우리는 시선이 끌린 틈을 이용해 군락 둥지가 있는 운봉산을 향해 달려갔다.

끼이이이이이익 - - - -!!

포격을 가하는 방위군을 막고, 운봉산 일대를 돌아다니는 유인팀까지 쫓아가야 한다.

놈은 정신없이 감염체를 조종하며 우리가 파놓은 유인 작전에 휘말리고 있었다.

덕분에 비교적 소수인 1팀은 운봉산까지 아무런 방해 없이 접근할 수가 있었다.

사박, 사박, 사박!

그동안 대관령에서 훈련한 보람이 있는지 다들 산을 제집처럼 타고 오른다.

순식간에 운봉산 초입을 주파한 우리는 감염체 무리가 쏟아졌던 경로를 예측해, 둥지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로 나아갔다.

킁킁.

그리고 곧 특유의 역겨운 오물 냄새와 함께 감염체 흔적들을 하나둘 발견해냈다.

이 부근이다.

흔적을 쭉 따라가 보니 오물과 흙으로 만들어진 토굴 입구가 버젓이 놓여있었다.

‘찾았다.’

내가 수신호를 보내자 대원들은 서둘러 방독면을 착용하고 총을 장전했다.

그사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문 상사는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달칵!

그 안에는 미국이 직접 개발하고 제공한 신형 응축 폭탄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이번에는 포획이고 나발이고 둥지를 통째로 터트릴 예정이었다.

‘가자.’

나는 문 상사가 내려놓은 가방을 잽싸게 챙겨 멘 뒤 둥지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반짝!

총기에 부착된 손전등을 켠다.

내부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확인되자마자 좁고 어두운 둥지 내부로 발을 들였다.

마찬가지로 진입 조와 엄호 조를 나눈 대원들 또한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치직, 치치직.

유독 가스 수치가 증가한다.

한 걸음 디딜때마다 진창과 오물이 발목을 붙잡는다.

후욱, 후욱.

이마에 흐르는 땀.

거칠게 달아오르는 숨.

눈 한 번 감을 여유조차 없는 게 둥지다.

하지만 나는 검지를 방아쇠 위에 고정한채 끝이 보이지 않는 토굴을 계속 가로질렀다.

“- - - - - -.”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통로가 점차 넓어지더니 미끄럼틀 같은 통로 아래로 거대한 공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란장인가?

혹시 감염체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사방을 경계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철퍽!

그리고 곧 이곳이 산란장이 아닌 다른 용도의 공간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무인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던 무인기가 반쯤 부서진 채 오물 속에 처박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굴 주변에는 온갖 전자 장비가 반쯤 망가진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증거 수집해.’

군락을 포획하지는 못해도 이런 환경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일행들이 바쁘게 바디캠을 돌리는 사이 나는 가방을 벗고 폭탄을 설치했다.

돌돌돌.

폭탄과 연결한 도전선이 혹여나 떨어지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묶고 또 묵었다.

첨벙!

그리고 가파르게 떨어지는 통로 아래로 집어 던진 뒤 깊숙한 곳에 안착하게 했다.

‘빨리요! 놈들이 오고 있어요!’

때마침 둥지 입구를 지키고 있던 대원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 손짓했다.

수상함을 느낀 군락이 누군가 둥지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가자!’

우리는 서둘러 통로를 향해 달려가 길게 이어진 도전선과 함께 둥지를 빠져나왔다.

끼이이이이이익- - -!!

끼기기긱, 끼익!

대원이 경고한 대로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들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산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철컥!

나는 폭탄과 연결된 도전선을 바닥에 급히 내려놓고 격발 장치를 하나로 연결했다.

“엎드려요!”

그리고 대원들을 향해 엎드리라고 외친뒤 그대로 격발 장치를 작동했다.

꾸웅!

폭음이 울린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사방에서 흙먼지와 후폭풍이 강하게 불어왔다.

쿠르르르르릉- - - -!!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둥지는 물론 토굴 입구까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이를 악문 나는 입안으로 들어온 흙먼지를 퉤퉤 뱉으며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치익.

“됐다!”

둥지를 터트리자마자 무선기를 먹통으로 만들었던 전파 방해가 옅어지고 있었다.

짝!

이것으로 군락의 소거를 확신한 나는 환하게 웃는 대원들과 손뼉을 마주쳤다.

아니, 마주치려했다.

삐이이이이이이 - - -펑!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방위군과 유인팀에서 미친 듯이 신호탄을 쏘기 시작했다.

파란색.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작전 성공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저 패턴은 분명 거기서 벗어나라는 위험 신호였다.

작전이 실패했다고? 어째서?

그 신호에서 불길함을 느낀 나는 재빨리 산 아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끼아아아아아악- -!!

끼이익! 끼기기긱!

군락이 소거됐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체 놈들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군락이 사라졌다기에는 여전히 집단적이고 또 지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위로 뛰어!”

깜짝 놀란 나는 즉각 대원들을 이끌고 무너진 둥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파 방해에서 벗어난 유인팀이 다급한 보고를 동시다발적으로 전해왔다.

[시장님! 놈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젠장, 도대체 왜?! 선배 빨리 도망쳐요!]

방위군과 유인팀을 공격하던 모든 감염체 무리가 일시에 표적을 우리로 바꿨다.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 무리가 산 전체를 검게 물들이며 빠른 속도로 추격해왔다.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된 나와 대원들은 살기 위해 운봉산 정상으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분명 응축 폭탄으로 인해 둥지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 눈을 확인했다.

또, 전파 방해가 완전히 사라짐으로써 운봉산 군락이 소멸한 것 또한 확인했다.

그런데 왜 감염체가 흩어지지 않는 거지?

나는 미친 듯이 뛰어가는 와중에도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잠깐. 설마?

그 순간 번쩍 떠오른 최악의 경우 하나가 머리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군락이 하나가 아닙니다!”

[예!?]

전파 방해를 가하는 군락과 감염체를 조종하는 군락은 애초에 같은 군락이 아니었다.

둘은 다른 개체이며 애초에 쌍둥이처럼 같은 감염체를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쩐지 초기 군락치고는 감염체 숫자가 많더라니, 왜 이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나도, 일행들도 모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 형님. 이제 어쩌죠?”

헬기라도 오지 않는 이상 우리가 운봉산을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나는 어느덧 도주를 멈춰버린 대원들을 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는 처연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정해진 미래.’

생각해라, 박범석.

네 손에 지금 대원들 목숨이 달려있다.

촤르르르르륵!

책장이 넘어가는 환청이 들려온다.

복잡한 머릿속에서 황금 만년필이 춤을 춘다.

미래 일기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막연하기만 하던 머릿속 안개에 빛이 들었다.

“두 번째 군락······.”

“예?”

“두 번째 군락을 지금 잡는다.”

이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돌파할 때가 왔다.

나는 무전기를 꽉 쥐며 미래일기가 쓰지 못한 미래를 예언했다.

사각, 사각, 사각.

다음 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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