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판단이 섰다.
나는 황급히 무전기를 들어 기지에 있는 방위군을 향해 화력 지원 명령을 내렸다.
“6시 방면으로 포격 계속 때려요!”
[너무 가깝습니다! 위험해요!]
나도 안다.
고작 280m짜리 산이라 아무리 정확히 조준해도 오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화력 지원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냥 쏴요!”
[······알겠습니다!]
다행히 말귀를 알아먹은 방위군 간부는 서둘러 6시 방면으로 포구를 옮겼고,
곧 꾸웅! 하는 폭음과 함께 운봉산 일대에 다시 대단위 포격이 시작되었다.
콰앙!
그사이 머리가 땀에 푹 젖은 대원들을 데리고 산 정상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들 당장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일일이 말해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놈들과 포격을 피해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미 종아리 아래로는 모든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조차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는데 뒤따라오는 대원들 상태는 어떻겠는가.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우리는 이미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까드득!
이를 꽉 깨문다.
1분 1초를 사이에 두고 시시각각 확률이 0%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절대로 놓지 않고 있었다.
산 정상이 어느덧 코앞이다.
반복되는 풍경이 한순간 탁 트였다.
찌릿!
그 순간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감각이 갑자기 전신을 강타했다.
동시에 빛을 잃은 왼쪽 눈이 아려오며 한 존재감을 강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군락이 존재감으로 인간을 찾듯, 나 또한 존재감으로 군락의 위치를 찾아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운봉산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커다란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이쪽!”
떨리던 목소리에 확신이 담겼다.
그 어떠한 설명보다 믿음직한 목소리에 대원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뒤따라왔다.
콰아아아앙- - -!!
쿠르르릉, 콰직!
폭음이 울리고 나무가 쓰러진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기며 커다란 불길이 치솟는다.
자욱한 흙먼지와 검은 연기.
포화의 한가운데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 - !!
산 아래서부터 우리를 추격한 감염체 무리가 벌써 저 아래까지 따라왔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10분? 아니 올라오는 속도를 보아 10분도 간당간당한다.
나와 대원들은 아예 등에 메고 있던 장비 가방까지 내려놓으며 전속력으로 뛰었다.
군락의 존재감을 쫓아 수풀을 뛰쳐나오자 가파른 절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멈춰!”
급하게 제동을 건 나는 멋모르고 뛰어오던 대원들을 끌어당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수직으로 꺾이는 가파른 절벽이다.
떨어지면 즉사할 만큼 높다.
하지만 흉터를 자극하는 군락의 존재감은 분명히 이 아래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어디지?
나는 거칠게 달아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절벽 아래로 조심히 고개를 내밀었다.
‘찾았다.’
그리고 절벽 중간에서 오물과 흙이 뒤섞인 군락 둥지 입구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진, 진짜 찾았어······.”
반쯤 포기하고 있던 대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만큼 절벽 중간에 숨겨진 군락 둥지는 운이 아니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끼이이이이익 - - -!!
하지만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벌써 가까운 거리까지 온 감염체 무리가 저 아래 협곡에서 기어 올라오고 있다.
“중위님!”
이에 무언가를 결심한 문 상사가 내게 다가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들어갔다간 포위되서 죽습니다. 저희가 유인할 테니 안으로 진입하십시오.”
이런 걸로 의견을 나눌 시간이 없다.
문 상사는 대원들에게 즉각 수신호를 보내서 온 탄약을 서둘러 분배했다.
“가은아, 부탁한다!”
“너 죽으면 나한테 뒤질 줄 알아!”
나와 호흡이 잘 맞는 가은이는 동행, 나머지는 서둘러 유인조를 구성했다.
그렇게 미끼를 자처한 문 상사와 대원들은 서둘러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타앙! 타앙!
끼이이이이익 - - !!
한참 우리를 쫓아오던 감염체 무리는 총성을 따라 진행 방향을 반대로 바꿨다.
모래시계가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 잡히냐에 따른 시간 싸움이다.
“로프!”
나는 재빨리 로프를 꺼내 바위에 단단히 고정하고 절벽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소총을 등에 멘 뒤 둥지 입구가 있는 절벽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투두둑, 툭.
돌가루가 굴러떨어지는 절벽 틈에 다리를 고정하고 한쪽 손으로 방독면을 썼다.
내가 로프를 두 번 당기자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은이도 서둘러 내려왔다.
철컥!
입구로 들어온 우리는 재빨리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꺼내 둥지 안으로 진입했다.
후욱, 후욱.
주변을 경계하거나 수색할 겨를이 없다.
무조건 군락 본체가 있는 곳으로 직진한다.
나는 여전히 찌르르 울리는 감각을 따라 놈의 존재감과 서서히 가까워졌다.
무거운 어깨, 떨리는 눈꺼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우리를 점차 집어삼켰다.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의지는 불타오르며 꺾여가는 신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통로를 지나 놈의 본체가 잠들어 있는 산란장까지 진입했다.
끼이이이이익 - -!!
방금 막 태어난 감염체 놈들이 적의 침입을 눈치했는지 사방에서 뛰쳐나온다.
투두두두두두두!!
나와 가은이는 재빨리 총구를 옮겨 방아쇠를 당겼고 등을 맞대 사각지대를 없앴다.
놈들은 달려오는 족족 총알에 꿰뚫려 쓰러지거나 머리가 터져 그대로 즉사한다.
끼이이익.
다행히 갓 태어난 놈들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일시에 소거돼버린다.
재장전.
탄알집을 빠르게 교체하고 어딘가에 있을 본체를 본격적으로 수색했다.
‘넓다.’
수많은 감염체를 거느리는 군락답게 여타 개체들과 산란장 규모가 차이가 난다.
우리는 감염체 시체와 진창을 밟으며 산란장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찾아 나섰고,
“저기 보여요!”
곧 두 번째 산란 방에서 무방비한 채로 놓인 놈의 본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와 가은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본체를 소거하기 위한 수류탄을 뽑아 들었다.
쭈삣!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위험을 감지한 본능이 내 움직임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오른쪽. 오른쪽에 뭐가 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는 강제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시커먼 감염체 하나가 천장에 매달린 채 빠르게 기어 오고 있었다.
“- - - - - -.”
눈이 마주친다.
익숙한 존재감이다.
시커먼 감염체는 다름 아닌 저 고치를 깨고 나온 군락의 진짜 본 모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서 있는 가은이를 붙잡고 함께 바닥을 굴렀다.
후웅!
그러자 머리 바로 위로 낫처럼 생긴 손톱이 스쳐 지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
군락이 아가리를 벌려 울부짖는다.
그 포효에는 침입자를 향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나는 즉각 총구를 돌려 네발로 기어 오는 군락을 향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
분명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놈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와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콰직!
황급히 총을 들어서 막았지만, 소총은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며 저 멀리 날아갔다.
기존 변이종을 능가하는 속력과 완력에 나는 그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했다.
“놔!”
투두두두두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가은이가 나를 덮친 군락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머리를 노려도 죽지 않던 군락 놈이 이러한 공격에 쓰러질 리가 없었다.
푸욱!
“끄윽!”
순식간에 휘둘러진 팔이 소총을 후려쳐 날려버리고 오른쪽 어깨를 물어뜯는다.
까드득, 까드득!
살이 강제로 뜯겨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가은이는 애절한 비명을 질렀다.
철컹! 투쾅!
나는 즉각 콜트 파이슨을 꺼내 놈의 대가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끼이이이이이익- - - -!!
관통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파이슨 덕분일까, 놈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진다.
투쾅! 투쾅! 투쾅!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며 군락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리볼버의 치명적인 단점인 적은 탄알과 느린 장전이 발목을 붙잡는다.
끼이이이이익!!
실린더가 비었다.
군락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나는 고함을 내지른다.
그리고 최후의 무기인 토마호크를 뽑아 놈을 향해 달려들며 얼굴을 내려찍었다.
콰직! 까드드득!
놈이 내 팔을 물어뜯는다.
나는 지지 않고 머리를 찍는다.
사방으로 붉은 피와 검은 피가 터져나갔고 방독면은 살점과 오물로 범벅이 된다.
집요함, 악독함,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증오와 분노가 온몸을 휘몰아친다.
붉어지는 시야, 점점 빠지는 힘,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던 정신이 불이 꺼져갔다.
타앙!
그 순간 뒤쪽에서 총성이 들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가은이가 9mm 권총을 뽑아 힘겹게 놈을 쏘고 있었다.
타앙! 타앙!
군락은 몸을 파고 들어가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고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기회다.’
이깟 토마호크로는 죽이지 못한다.
놈을 단번에 끝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나는 도끼를 내려놓고 출발 전 보급 받은 감염체 치료제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끼익?
“뒤져, 이 시발 새끼야.”
그리고 군락의 대가리를 강제로 붙잡아 오른쪽 눈알에 그대로 처박아버렸다.
푹!
끼이이이이이익 - - - -!!
오른쪽 눈알을 파고든 급속 주사기를 통해 치료제 약물이 삽시간에 투여된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하던 군락은 곧 몸부림치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피부가 급속도로 녹아내린다.
바닥을 기던 사지도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버린다.
놈이 아무리 저항해도 감염체 바이러스를 집어삼키는 치료제 앞에 무력했다.
후욱, 후욱.
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토마호크를 집어 들고 다가갔다.
그리고 쇠약해진 놈의 모가지를 향해 번쩍 들어 올린 도끼날을 힘껏 내려찍었다.
콰직!
목이 잘리고, 머리통이 바닥에 구른다.
그제야 움직임을 멈춘 군락을 보며 나는 가은이를 향해 비틀비틀 다가갔다.
“쿨럭!”
최후의 힘을 쥐어짜며 싸웠던 가은이는 이미 감염체 변이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을 붙잡은 뒤 뒷주머니에서 치료제를 꺼내주었다.
감염체 치료제를 본 가은이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든다.
치료제는 1인당 하나.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이제 수중에 남은 치료제가 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푹!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뚜껑을 개봉해 허벅지에 마지막 치료제를 투여했다.
약물이 몸 안으로 들어간다.
점점 검게 물들어가던 피부는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고 숨 또한 점차 안정되었다.
쿨럭!
반대로 놈에게 물어 뜯겼던 나는 검은 피를 토하며 방독면 유리를 더럽혔다.
“안, 안돼! 안돼!!!”
정신을 차린 가은이가 바닥에 쓰러진 나를 끌어당겨 황급히 등에 업는다.
그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둥지 바깥으로 필사적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요! 네?! 제발 죽지 마요······!”
물린 직후 몇 분이더라.
대원들이 올 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지 모르겠다.
그래도 평소 훈련받았으니 알겠지.
끝이 오면 가은이가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다.
치익! 치익!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가 울린다.
의식이 흐려진 탓에 소리를 알아듣기 힘들다.
나는 끝까지 붙잡고 있는 의식의 끈을 놓으며 무겁기만 한 두 눈을 감았다.
·
·
·
·
·
“아무나 응답해요! 제발!”
[가은아!?]
“시장님이 물렸어! 치, 치료제가 필요해! 아무나 좋으니까, 빨리 와줘, 제발······!”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김가은은 무전기를 붙잡고 애원하며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녀 앞에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박범석이 점점 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물린 정도에 따라 길게는 몇 시간에서 짧게는 몇 분까지 줄어드는 변이 과정.
하지만 물리다 못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박범석은 빠르게 변이가 진행 중이었다.
“흐윽!”
김가은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손에 쥐고 있던 9mm 권총을 힘겹게 장전했다.
동료가 감염당하면 꼭 내 손으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가르침.
애써 듣기 싫은 척 넘기고 무시했던 조언이었지만, 그녀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쏴야 한다.
인간인 채로 죽게 도와주어야 한다.
김가은은 자기 머리를 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겹게 권총을 겨누려고 했다.
“쿨럭!”
그런데 그 순간 점차 숨이 미약해져 가던 박범석이 갑자기 검은 피를 토해냈다.
“시, 시장님?!”
이에 깜짝 놀란 김가은은 황급히 다가가 그의 피부와 동공 상태를 빠르게 살편다.
분명 감염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박범석은 필사적으로 바이러스 변이에 저항하고 있었다.
“- - - - - -!!”
어디선가 다급한 고함이 들려온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지원을 온 대원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김가은은 양손을 미친 듯이 흔들며 동료들을 향해 다급히 구조 요청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