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대충 조사한 건 이정도여.”
한 달간 야근과 철야로 고생한 상식 아저씨가 정리한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이번에 체포한 사이비 신도들의 대략적인 신상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를 대신해 커피믹스를 타온 나는 자리에 앉아 서류를 살폈다.
“출신지 칸이 다 비어있네요?”
“난민들 신세가 그렇지, 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긴 했는데 역시 뚜렷한 거주지가 없는 이들이 대다수다.
거기다 모두 최근에 밀입국했는지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었다.
“참나, 15살짜리도 있고.”
의외로 성별과 연령대가 무척 다양했는데 가장 어린 사람은 15살부터, 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거의 예순이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몸이나 정신는 어디 한쪽이 불편한 환자들이라는 것이다.
“악질이지?”
“예. 의도가 다분하네요”
보통 이런 사람들은 자급 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약자들이다.
아마 그 점으로 노리고 이런 간절한 자들만을 데려와 신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또한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해야 했을 것이다.
혐오하기도, 그렇다고 동정하기도 애매한 현실 앞에 나는 작게 혀를 찰 뿐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냈어요?”
“하나 같이 무슨 기도원이라는 곳을 말하더라고. 다 같이 먹고 자면서 기도 하는 곳있잖아? 일종의 수련회 같은 곳이래.”
“의외로 쉽게 털어놨나 봐요?”
“근데 위치는 절대로 안 불더라고. 무슨 세뇌를 받기라도 했는지······대뜸 혀부터 깨물려고 하길래 일단 가만히 내버려 뒀어.”
“잘하셨어요.”
우리가 아무리 막 나가는 망나니들이라지만, 그래도 선이라는 건 지키는 편이다.
아직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들을 심문한다는 목적으로 해칠 수는 없었다.
“대충 가닥은 잡았으니······.”
그래도 조사를 통해 ‘기도원’이라는 곳이 한반도 곳곳에 있다는 걸 알아내었다.
영동지방으로 계속 흘러들어오는 걸 보아 아마 이 근방에도 있을 확률이 높을 터.
먼저 그곳을 찾아야 꼬리에 꼬리를 밟고 점차 숨겨진 몸체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근방 기도원 곳부터 찾아보죠.”
“순찰대만으로는 힘들 거 같은데.”
“에이, 굳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 없어요.”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겨?”
“그냥 평소처럼 유심히 지켜만 보세요.”
애들 읽는 동화책이 알려주지 않는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거센 바람이 아니라 더운 햇볕이었다고.
가끔은 우리답지 않은 부드러운 방식이 문제의 해답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근처에 초등학교 하나만 비워두세요.”
“응? 거긴 왜?”
“강릉식 기도원이나 하나 만들어주려고요.”
* * *
“헤헤.”
올해 15살로 순찰대에 의해 체포된 사이비 신도 오은지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다음 아닌 오늘은 수요일, 오후 시간에 맛있는 간식이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신도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두 은근슬쩍 탁상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간식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감독관들은 묵직한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맛있는 단팥빵과 살면서 처음보는 흰 우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사람당 하나씩!”
다른 건 몰라도 질서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큰 화를 내던 감독관이다.
처음에는 중구난방 몰려오던 신도들은 곧 얌전히 줄을 서 오늘 간식을 받았다.
“감, 감사합니다!”
늘 딱딱한 얼굴에 고함을 질러도 이 훈련소의 감독관만큼 착한 사람은 없다.
오은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두툼한 단팥빵과 흰 우유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맛있어.’
폭식한 빵을 뜯으면 아직 김이 모락모락나는 단팥 앙금이 입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조금 달다 싶으면 홀짝이는 흰 우유는 담백하다 못해 고소하기까지 했다.
세상에는 참 맛있는 음식이 많았구나.
늘 묽은 죽과 소금으로 연명해오던 오은지는 문득 동생 생각이 나 고개를 숙였다.
교실에는 한동안 단팥빵을 비적비적 씹는 작은 소음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맛있게 먹도록!”
한참 교실을 둘러보던 감독관이 절도 있는 동작과 함께 문밖으로 나갔다.
신도들은 그제야 서로의 눈치를 보며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일이 없나 봐.”
“벌써 일주일째 아니야?”
처음에는 강제로 노동시키겠다고 그렇게 겁박을 주더니 정작 도착해보니 하는 일은 단순한 포장일이나 삯바느질이 다였다.
하지만 그 노동도 오전 시간에 잠깐 할 뿐, 오후에는 이렇게 맛있는 간식을 주거나 교사를 초청해 직업 훈련을 받게 해주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한낱 밀입국자들에게 하루 세끼 음식을 주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자게 한다는 게?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인간적인 대우에 사이비 신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저기. 내가 감독관한테 물어봤거든?”
“직접?”
“으응. 다른 난민들도 이렇게 적응 기간을 준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적격 심사만 통과하면 누구나 강릉에서 살 수 있대.”
물론 심사라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일단 기회를 준다는 것이 어디인가.
몸이 불편한 자신들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살기 위해 억지로 기도원에 들어갔었던 일부 신도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쾅!
“다들 정신 안 차려?!”
그런데 그 순간 우유를 쓰레기통에 처넣은 박춘자 신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무소에서 난동을 부릴 만큼 극성 신도였던 그녀는 여전히 악에 받쳐 있었다.
“사탄이야! 그놈은 사탄이라고! 이제는 하다 하다 악마한테 홀라당 넘어가?!”
“진, 진정해요.”
“교주님이 오시기만 해봐! 내가 너희 전부 저기 불지옥에 처박아 달라고 할 테니까!”
한때 기도원 동기였던 신도들을 모조리 저주한 박춘자는 이를 갈며 밖으로 나갔다.
쾅!
덕분에 한창 분위기가 좋았던 교실은 신도들이 내뱉는 한숨 소리로 가득 찼다.
한때 늘 웃고 다녔던 박춘자를 기억하는 동기 중 하나가 씁쓸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들 이해해줘. 지금 딸이 기도원에 남아 있어서 아마 제정신이 아닐 거야.”
여기 모인 모두가 사정이 있었듯 저 박춘자 신도에게도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아픈 딸이 기도원에 남아 있다는 말에 동료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시각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 박춘자는.
"조, 조금만 기다려 아영아.”
감독관이 잠시 자리를 틈을 이용해 몰래 숨겨둔 개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종교라는 광기로 자신을 보호하던 그녀는 결국 딸을 가진 한 명의 엄마일 뿐이었다.
치익.
“시장님, 한 명 움직였습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감독관이 박범석에게 현재 도주 상황을 보고했다.
[잘 지켜보세요.]
“알겠습니다.”
박춘자는 꼬리가 붙었다는 것도 모른 채 숨겨진 기도원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그녀의 품에는 딸을 주기 위해 챙긴 단팥빵과 우유가 소중히 안겨 있었다.
* * *
허억, 허억.
훈련원을 탈출한 박춘자 신도는 반나절을 꼬박 달려 옥계면 산계리에 도착했다.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시골에는 에덴 동산이 몰래 세운 기도원이 한 곳 존재했다.
쾅쾅!
“원, 원장님! 원장님 저 춘자예요!”
버려진 교회로 황급히 달려간 그녀는 허름한 문을 두드리며 원장을 찾았다.
그러자 잠시 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기도원 원장이 촛불을 들고나왔다.
“박춘자 신도?”
“예, 예에!”
“강릉에 있으셔야 할 분이 여긴 왜······.”
“붙잡혀서 도망쳤어요. 그, 그래도 원장님이 시키신 일은 전부 수행했습니다.”
원장은 온몸이 흙과 땀투성이에 신발조차 신지 않은 그녀를 조용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탐탁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기도원 문을 열어주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박춘자는 신발 한 짝이 사라진 줄도 모른 채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찾은 에덴동산의 기도원은 여전히 어둡고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동기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모, 모두 같은 수용소에 갇혀있어요. 신앙을 잃지 않고 열심히 기도 중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네?”
겨우 다행이라는 말이 끝이야?
애초에 구해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원장을 보며 박춘자는 당황했다.
“신이 내린 고행 하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놓고 무슨 생각으로 돌아오셨습니까?”
“그게 지금 무슨······.”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박춘자 신도. 기도원 위치가 발각될뻔하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소모품을 쓸 생각으로 데려왔다는 건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붙잡혔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릴 줄은 몰랐다.
“잠깐만요!”
“또 뭡니까?”
“그, 그럼 제 딸은요?”
딸이라는 말에 한참 떠날 준비를 하던 원장은 무심한 얼굴로 작게 혀를 찼다.
그 불길한 반응에 박춘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달려들어 그의 옷을 꽉 붙잡았다.
“아니죠?”
“놓으십시오.”
“분, 분명 치료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시킨일만 다 하면 꼭 치료해주신다면서요!”
아픈 딸을 치료해준다는 약속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힘들게 달려오는 그녀다.
하지만 원장은 짜증 난다는 얼굴로 손을 뿌리치면서 밖에 있는 신도들을 불렀다.
“밖으로 내보내!”
그러자 덩치가 건장한 신도들이 안으로 들어오며 박춘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아, 아아아······!!”
세상 그 어떠한 고통보다 아프다는 자식의 죽음 앞에 박춘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팔을 끊어놔도, 다리를 끊어놔도, 심장을 산채로 꺼내도 이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쿵!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그들은 마치 짐짝을 옮기듯 그녀를 문으로 끌고 갔다.
딸을 주기 위해 가지고 왔던 단팥빵과 우유는 바닥에 떨어져 하나둘 짓뭉개졌다.
덜컹.
신도들은 울고 있는 박춘자를 밖으로 내쫓기 위해 기도원 문을 열고 끌고 나왔다.
“???”
그런데 문 앞에 처음 보는 건장한 남성이 누군가와 사이좋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제 말이 맞죠?”
“에잉,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기에서 이긴 박범석은 좋다고 웃었고 김상식은 혀를 차며 담배를 넘겼다.
그 모습에 잠시 당황한 신도 중 하나가 곧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당신들 지금······.”
“야.”
그 순간 한참 웃고 있던 박범석이 표정을 싹 굳히며 그들을 조용히 노려봤다.
그 서슬 퍼런 눈동자에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은 신도들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놨다.
“원장이라는 놈 안에 있지?”
차악!
오늘만큼은 총 대신 삼단봉을 꺼낸 박범석이 신도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순찰 대원들이 건물로 접근하며 우두둑 몸을 풀었다.
“이, 이익······!”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신도 하나가 다급히 뒤돌아 건물로 도망치려고 했다.
콰직!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박범석이 삼단봉으로 허벅지를 후리며 바닥에 쓰러트렸다.
“진입해!”
그 행동을 기점으로 순찰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도원으로 우르르 진입했다.
쿵! 콰직!
저 새끼 잡아!
문이 경첩 채로 뜯겨나간다.
내부에 있던 신도들은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알아서 엎드리는 자는 내버려 두고 저항하는 놈들만을 골라 집요하게 패는 대원들.
박범석은 아비규환이 된 기도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 원장과 마주했다.
“당, 당신들 무슨 권리로 이러는 겁니까! 이곳은 엄연히 개인 사업장입니다! 예?!”
“나는 허가해 준 기억이 없는데.”
“······예?”
“허가한 기억이 없다고.
서울에서 그런 핑계가 통했을지는 몰라도 이곳 강릉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럼 불법 사업장이잖아?”
박범석은 말을 어버버 더듬는 원장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트렸다.
쿵!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으며 묵비권 행사하면 뒤지는 거야. 알겠지?”
“범석아! 체포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우두둑!
“끄아아아아악!”
씨익 웃은 박범석은 원장의 팔을 반대로 꺾으며 경쾌하게 수갑을 채워주었다.
어휴, 저 화상.
이에 급하게 달려오던 상식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