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저 새끼 잡아!”
“엎드려! 엎드리라고, 새끼들아!”
치안 유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순찰대라고 해서 일반 경찰과 비교하면 곤란하다.
소싯적 약탈자와 감염체들을 상대하던 베테랑 대원들은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했고,
칼과 몽둥이를 꺼내 저항하는 극성 신도들을 떡으로 만들어 사이좋게 수갑을 채웠다.
그렇게 옥계면 기도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체포한 에덴동산 신도만 무려 50명.
온몸이 결박당한 그들을 모조리 후송차에 태워진 채 강릉으로 압송당했다.
“심각하네.”
버려진 교회로 위장하고 있던 기도원은 참 열약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사실상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듯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을 모아두었다.
그리고 옷은 단 한 벌, 담요도 하나만 지급한 채 이 추운 가을을 버티게 했다.
하지만 뒤이어 발견된 것들에 비하면 이정도 처우는 양반이나 다름이 없었다.
“보, 보통 이걸 먹습니다.”
“······겨우 이것만요?”
재료가 뭔지 알 수 없는 묽은 죽과 소금 반 숟가락이 수련생들의 하루 식사다.
매일 해야 하는 강제 노동을 생각하면 주나 마나인 음식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마저도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주지 않거나 가혹하게 체벌한다고 하는데,
가뜩이나 장애가 있는 수련생들이 이 과정을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아영아!!!”
그 순간 기도원 뒤쪽에 위치한 마당에서 박춘자 신도가 울음을 터트리며 절규했다.
서둘러 달려가 보니 순찰 대원들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포대를 옮기고 있었다.
“뭡니까?”
“시체 같습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뒷마당 한쪽에는 차갑게 식은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중 이미 숨이 끊긴 친딸을 발견한 박춘자 신도는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엄, 엄마가······엄마가 미안해.”
흙이 묻은 삽과 경운기가 있는 걸로 보아 산속 어딘가에 대충 묻으려고 한 모양이다.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끌고 와 놓고는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버려진 그들.
아무리 죽음과 비극이 일상이 된 세상이라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증거 수집하고, 현장 수습하세요.”
굳이 명목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쓰레기 짓을 해주고 있는 사이비 놈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사실에 나는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지시를 내렸다.
그날 대원들이 수집한 증거와 사진은 신문에 실려 강릉 전역으로 배포되었다.
또한 이번에 협정을 맺은 서울 요새와 한반도 모든 요새로 속속히 전달되었다.
그 파장은 한참 수면 위로 올라오던 에덴 동산의 행보에 제대로 제동을 걸었다.
신흥 종교 세력과 이젠 한반도 주축으로 자리 잡은 강릉 요새 연합의 기싸움.
잔뜩 화가 난 미래일기가 예언한 대로 가짜와 진짜의 싸움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 * *
쾅!
“이, 이이익······!”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교주는 오늘따라 그 화를 쉽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위해선 그녀가 걷어찬 책상 위에 신문들을 볼 필요가 있었다.
‘에덴동산은 자선 단체가 아니었다.’
‘충격적인 기도원의 실체! 사실상 교도소?’
음습한 교리와 사상과는 다르게 에덴동산은 그동안 이미지 관리를 잘해온 편이다.
일단 자선 단체라는 좋은 허물이 있기도했고 또 꾸준히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박범석이라는 인간은 이 행보에 그대로 똥물을 뿌려버렸다.
그 결과,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 요새 지도자들 또한 하나둘 불편함을 표했다.
“서울 쪽은?”
“일, 일단 급히 대처했습니다.”
교주는 여태 쌓아온 자금과 인맥을 총동원해 보도를 극구부인하고 로비를 벌였다.
그 결과 당장 서울과 경기에 압수 수색이 들어오는 대참사는 막을 수가 있었지만,
문제는 자선 단체라는 이미지가 한순간 사이비 종교로 탈바꿈이 됐다는 것이다.
그토록 경계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자 교주는 쉽사리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교주님. 지금은 한발 물러나시는 게······.”
“입닥쳐!!”
이 무능한 새끼들.
매번 안 된다고만 할 줄 알지 제대로 시도조차 안 해본다.
교주는 이를 까드득 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신도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박범석.
군락을 단독으로 처리한 전쟁 영웅.
한반도 최대 무역항의 소유자, 심지어 그 뒷배가 미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거물이다.
그냥 어중이떠중이라면 모를까 에덴동산이 쉽게 건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을 욕보였단 말이다!”
하지만 교주는 왜인지 모를 열등감을 느끼며 히스테릭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놈들에게 경고를, 또 압박하라는 교주의 무리한 지시.
억울할 법도 하건만 신도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교주님.”
그 순간 서울 지부에서 급히 올라온 한 신도가 의자 앞으로 기어 오며 말했다.
“말해.”
“현재 강릉에 구금된 기도원 원장은 엄연히 서울 요새에 속한 시민입니다. 이를 빌미로 놈에게 압박을 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강릉과 서울은 같은 한반도 내에 있을 뿐이지 아예 독립된 세력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 경계가 무척 모호해 외교관계, 즉 법적인 부분에선 아직 정리가 안 됐다.
따지고 보면 강릉이 서울 시민을 강제로 체포해 구금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점을 걸고넘어진다면 서울 요새도, 강릉도 쉽게 보고 넘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후원해온 정부 인사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몰래 청탁을 넣어보겠습니다.”
정부에 줄을 대기 위해 가져다 바친 돈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제법 구체적인 계획에 교주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참으로 신실한 자구나.”
“아아······!”
그러자 신도는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기어와 발등 위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이에 황홀함을 느낀 걸까, 교주는 달뜬 숨을 내뱉으며 흡족하게 웃기 시작했다.
비틀어진 욕망, 망가진 인간성, 가짜 예언자는 그렇게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 * *
사이비 종교 단체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에덴동산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특히 그 대상이 될뻔한 강릉 주민들 사이에선 험악한 분위기까지 조성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달래고자 난민 분류 과정을 더욱 철저하고 꼼꼼하게 세분화했다.
또한, 이번에 잡아 온 기도원 원장을 강도높게 신문해 중요 정보를 얻어냈다.
‘변호사! 변호사를 불러주십시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장이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기도 했지만,
적당히 어루만져주고 몸으로 달래주니 금세 꼬리를 내리고 술술 불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별 무리 없이 에덴동산의 구체적인 정보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크다.’
경기도 이천 부근을 본거지 삼아, 이미 서울 이곳저곳에 다양한 지부를 세워놨다.
하지만 수도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충청을 넘어 호남지방에도 진출했다.
특히 현재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경남 지방에서 그 세를 급격히 불려가고 있었다.
‘사천과 연곡.’
물론 이러한 야욕은 영동 지방도 마찬가지였는지 옥계를 뺀 사천과 연곡면에서도 기도원이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즉각 순찰대를 파견해 나머지 기도원도 뿌리를 뽑아 버렸다.
명분과 정의라는 날카로운 칼.
거기에 여론의 지지까지 받은 우리는 거칠게 없이 영동지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슬슬 초겨울이 다가올 때쯤, 놈들 쪽에서 드디어 반응이 왔다.
다름 아닌 서울 요새에서 온 정부 인사와 손님들이 강릉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3명의 남녀 무리가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중 정부 인사로 추정되는 한 중년남성에게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외교정보관리부 김기백 국장이라고 합니다.”
“일단 여기 앉으시죠.”
크흠! 작게 기침한 김기백 국장은 함께 온 이들과 함께 하나둘 착석했다.
마찬가지로 그들과 마주 보고 자리에 앉은 나는 커피를 한 잔씩 타주며 물었다.
“대접이 영 시원치 않아 죄송합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이 두 분은 누구십니까?”
수행원인 줄 알았던 이들이 함께 앉자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국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또 한번 헛기침을 내뱉으며 최대한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보다 앞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듣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 강릉에 저희 서울 시민이 강제로 구금되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박 시장님?”
나는 순간 커피 마시던 것을 멈추고 불쾌한 기색을 표하는 김기백 국장을 주시했다.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대로 커피잔을 내려놓고 국장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상관인지.”
“무슨 상관이라뇨! 엄연히 법이 있고 절차라는 게 있는데 서울 시민을 강제로 구금하는 행동이 정말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여기는 강릉이지 서울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아직 제대로 된 외교공관조차 없는 강릉에서 설마 치외법권이라도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김기백 국장의 말이 끝나자 함께 온 두 명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그 서류에는 현재 구금된 기도원 원장과 극성 신도들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현재 이분들은 그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합니다. 속히 구금을 풀어주십시오.”
뜬금없이 국장 하나가 난리를 피우나 했더니 에덴동산이 애들하고 같이 왔었구나.
나는 뻔뻔하게 석방을 요구하는 그 둘을 보며 결국 하하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이없어하는 김기백 국장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받았어?”
“뭐, 뭐?!”
“얼마 받았냐고.”
얼마 받았냐는 말에 국장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그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내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당, 당신 미쳤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감히 외교 인사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이러고도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어?!”
이번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다고 하더니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가 국장으로 왔다.
나는 몰려오는 짜증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 위에 놓인 위성 전화기를 들었다.
“기다려, 너희 상관 바꿔줄게.”
“······뭐?”
그리고 저장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스피커 폰으로 소리를 키웠다.
뚜루루루루. 수신음이 들린다.
그게 한두번쯤 반복되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범석 씨?]
“예, 접니다.”
[우와! 오랜만에 연락해주셨네요! 무슨 일이세요? 김태하 소장님은 출장 가셨는데.]
서울 요새에 사는 사람 중 대통령 이솔하의 목소리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연설을 좋아하는 그녀답게 늘 TV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건 이들도 마찬가지인지 국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딸꾹질했다.
“혹시 당신이 보냈습니까?”
[예? 제가요?]
“외교 정보관리부가 사람을 한 명 보내서 말입니다. 제가 강릉 내에서 잡은 범죄자를 서울 요새로 인도하라고 요구하더군요.”
[그, 그게 무슨!]
“이걸 서울 요새의 뜻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만약 맞다면 여기서 전화 끊겠습니다.”
[절대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깜짝 놀란 이솔하는 황급히 송신을 끊었고 나는 서류 위에 전화기를 올려두었다.
10초, 20초, 30초.
그 순간 김기백 국장의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리리리리리!
이마가 식은땀으로 한가득한 그는 다급히 전화를 받으며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예, 예! 차관님!”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온갖 욕설과 고성이 터져 나오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요즘 서울과 강릉 간 훈훈한 기류가 오가고 있는데, 한낱 국장 새끼가 일을 망쳐?
마침 옆에 차관이 대통령 옆에 있었던 모양인데 그쪽 상황이 어떨지 눈에 훤하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예! 예. 당연하죠. 지금 빨리 가겠습니다! 그, 그냥 여기서 죽으라고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는 국장이 덜덜 떨며 기는 사이 서류를 내밀었던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게 인맥 자랑이라고 오늘 한번 유치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