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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02화 (102/180)

102화

아무리 이솔하가 취임했다고 해도 그동안 만연했던 부정부패를 뿌리뽑기는 힘들다.

특히 10년간 군부정권이 유지되면서 사회 시스템 인식이 바닥을 친 게 너무나 컸다.

단순히 교통경찰을 만나도 돈 몇 푼 찔러주는 게 관행이 되어버린 서울 요새.

하지만 그 관행이란 것도 어지간히 해야지 이번 건은 선을 너무 크게 넘어버렸다.

‘당장 잡아와요!’

크게 충격을 받은 이솔하는 평소답지 않게 분노하며 즉각 내부 감사를 명령했다.

덕분에 이번 일에 가담했던 국장은 물론 연관된 모든 이들 모가지가 일시에 날아갔고,

그 정도가 심해 유착 관계에 있었던 공직자들은 진짜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다.

물론 이솔하는 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던 에덴동산을 향한 대응도 잊지 않았다.

'압수수색'

가장 먼저 법인으로 등록된 서울 지부와 그곳에 속해있던 직원들이 탈탈 털렸다.

그다음 날은 경기도 부천과 수원, 끝내는 본거지인 이천으로까지 들이닥쳤다.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 압수수색에 그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한 에덴동산.

교주는 이천 성지로 들이닥치기 전 일부 신도들과 함께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를 확인한 이솔하는 즉각 서울과 한반도 모든 요새를 향해 수배령을 내렸고,

지난 협상 덕분에 호의적으로 변한 요새 지도자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점점 커지는 기세만을 믿고 발톱을 보였던 에덴동산은 그렇게 몰락하는 듯했다.

‘주여! 이들을 용서하소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었을뿐 진정한 벌통은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쾅!

경기도와 서울을 순환하는 여객열차에서 한 무리가 자살폭탄을 터트렸다.

에덴동산 신도로 추정되는 그들로 인해 승객이 타고 있던 칸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 여파로 열차가 선로에서 탈선하면서 통째로 전복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사망자만 무려 180명.

끔찍한 자살테러에 서울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에덴동산, 광신도 사이비, 그들의 정체성은 생각보다 더 깊은 심연 속에 있었다.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가지고 있던 것을 뺏긴 놈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목표가 어디인지 뻔하기에 나는 곧바로 강릉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역 봉쇄.’

변이바이러스 사태 때도 난민을 받아주던 강릉이 처음으로 봉쇄를 결정했다.

이제 허가받지 않은 이들은 절대로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방위군 투입.’

또한 순찰대와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던 방위군이 이번 치안 임무에 투입되었다.

실탄과 방탄복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강릉을 포함한 영동지방 각지로 파견되었고,

강릉으로 들어오는 길목과 경계면을 감시하며 몰래 들어오는 이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물론 그것도 모자란 나머지 평소 평가가 좋은 주민 중 자원자를 뽑아 자신이 사는 동네를 순찰하는 지역 방범대까지 만들었다.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만큼 그 누구하나 안일하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저 새끼 잡아!’

쾅!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곧 테러가 있을 거라는 불길한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난민 속에 숨어있던 에덴동산 광신도가 검문소 앞에서 테러를 시도한 것이다.

다행히 방위군의 발 빠른 대처로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양양, 속초에서 발생한 테러 저지만 한 달 내 2건이나 발생했고,

신도로 추정되는 이들이 철창을 넘고 침투하려는 시도만 200건이 훌쩍 넘어갔다.

그만큼 놈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복수를 갈망하는지, 또 강릉이 얼마나 대비와 대처를 잘했는지 알려주는 수치이기도 했다.

강릉은 한동안 살얼음 같은 평화를 지켜가며 놈들이 빨리 진압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늦은 밤.

나는 마침 당직이었던 태식 씨를 불러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복지 말입니까?”

“예, 복지요.”

“혹시 이번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 거기서 본 게 조금 많습니다.”

국가라는 테두리가 존재할 때는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멸망한 지금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으로 모든 게 돌아가고 있었다.

인간은 왜 약자를 도울까.

공동체는 왜 약자를 품어야 할까.

그 물음에 스스로 답을 내기도 전, 나는 이번 일로 인해 현실을 배울 수 있었다.

“이거 한 번만 봐주십시오.”

나는 잠을 줄여가면서 짬짬이 조사하고 공부한 개선안을 통째로 내밀었다.

태식 씨는 곧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서류를 한참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요?”

“좋네요. 아니, 훌륭합니다.”

강릉에는 현재 복지 시설이라 볼 수 있는 보육원과 직업훈련소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두 곳 모두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는 게 다였다.

이참에 시청이 직접 세우고 관리하는 복지 시설을 만들어 인프라 재건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마지막을 채워놓고 싶었다.

“범죄율 하락 면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될겁니다. 특히 순찰대와 시청 직원들 업무가 줄어든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드네요.”

“하하, 많이 힘드셨습니까?”

“슬슬 한계입니다. 따지고 보면 영동지방 전역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거니까요.”

끽해야 요새 몇 개가 모여 살던 과거에 비하면 강릉이 정말 커지기는 했다.

나는 산하기관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제 슬슬 그만 퇴근해보려 했다.

탁.

그런데 그 순간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던 태식 씨가 조용히 문을 잡으며 말했다.

“시장님.”

“예?”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양반은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을 낯부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좀 쉬십시오.”

나는 그냥 피식 웃어준 뒤 집무실 문을 닫고 시청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이제 겨울이 코앞인 모양이다.

* * *

그 시각 묵호항.

강원도 동해시에서 두 번째로 큰 묵호항은 보조항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이런 한밤중에 입항하는 선박들에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항구였다.

“배 들어온다.”

한참 당직 중인 항구 직원이 길게 하품하며 저 멀리 다가오는 선박을 가리킨다.

이에 함께 일하고 있던 동료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비실비실 겉옷을 챙겨 입었다.

“직접 나가게?”

"걸리면 죽을 일 있냐? 너도 강혜지 그 여자 성격 알잖아. 알아서 따라 나와.”

보통 이런 야밤에는 알아서 입항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가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보안이 중요해짐에 따라 관리자 강혜지는 당직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예전처럼 했다가 무슨 잔소리를 들으려고?

가뜩이나 추워지는 날씨에 그들은 투덜투덜 손전등을 챙겨 선착장으로 향했다.

치익!

[허가받은 선박 맞습니까?]

그러자 마침 묵호항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방위군 쪽에서 절차대로 무전이 왔다.

“네, 맞아요.”

일본에서 옷감 원재료를 구매해 강릉에 매각하는 포항 소속의 캐러밴 상선이다.

배를 기억하고 있던 항구 직원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초소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출렁!

항구 직원들의 인도를 받은 포항 소속 캐러밴 상선은 선착장에 조용히 정박했다.

“왜 저래?”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리기는커녕 그 흔한 상부 조명조차 켜지 않고 있다.

“이봐요!”

의아함을 느낀 항구 직원 중 하나가 선박으로 접근해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술을 먹기라도 했나 왜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철컥.

“어?”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권총이 삐죽 튀어나오더니 항구 직원을 향해 발사했다.

타앙!

총성과 함께 직원은 그대로 머리가 꿰뚫렸고 남은 동료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 미친!”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불며 초소를 향해 달려갔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익!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방위군은 재빨리 조명등을 켜고 그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그동안 질리게 훈련받은 그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타앙!

“끄아아아악!”

하지만 배에서 내린 습격자들은 겨우 총이나 쓸 줄 아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놈들은 순식간에 배에서 내리더니 곧 뛰어가는 항구 직원을 순식간에 저격했다.

“쏴!”

그리고는 총기 밑에 부착된 유탄 발사기를 조준해 초소를 향해 발사해 버린다.

퐁! 콰아앙 - - !!

유탄이 초소에 명중한다.

일부 방위군은 초소와 함께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움직여!”

“놈들이 오면 끝이다!”

삼엄하기 짝이 없는 강릉 철책과는 다르게 비교적 경비가 허술한 묵호항이다.

습격자. 아니, 사이비 광신도들은 기다렸다는 듯 무기와 물자를 챙겨 들었고

묵호항 직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관사 건물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엥 - - - -!!

살아남은 방위군 병사들은 서둘러 사이렌을 울리고 본부로 지원을 요청했다.

5분 대기조는 순식간에 무장을 끝내 달려왔고 놈들을 섬멸하려고 했다.

쾅!

꺄아아아악!

하지만 놈들은 마치 이를 예상했다는 듯 관사를 습격해 직원들을 사로잡았다.

비무장 인원이 사이비 신도들한테 인질로 잡히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소식은 곧 강릉 전역을 강타했다.

* * *

사건 발생 30분 만에 동해 전역에는 진입로와 해로 통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혹여나 빠져나가거나 다른 곳에 합류할 수 없도록 동해를 봉쇄한 것이다.

“시장님!”

막 잠이 들었다가 급히 달려온 나는 대원들이 건네는 장비를 빠르게 챙겨입었다.

임시로 세운 작전실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총 몇 명입니까?”

“15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질은 강혜지 과장까지 포함해서 모두 25명이고요.”

“모두 항구로 들어온 겁니까?”

“저희와 거래하던 상선을 나포한 모양입니다. 선원들이 다 시체로 발견됐어요.”

항구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했고 방위군 또한 배운 대로 적에게 대응했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이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진정하자.

나는 이마에 빡 하고 오른 열을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발.’

차라리 돈을 원하는 새끼들이면 일단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나중에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이놈들은 세상에서 제일 악질인데다 생각이라는 게 없는 광신도 새끼들이다.

당장 인질들 목을 썰어도 이상하지 않은 정신병자들은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요구사항이 뭐랍니까.”

“일단 구금한 형제들을 전부 풀어주고,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랍니다.”

일단이 붙은 것으로 보아 하나를 들어주면 열, 백 개를 요구할 게 눈에 훤하다.

그렇다고 들어주면 놈들이 인질을 살려둘까?

아니, 내 예상대로라면 절대로 아니다.

인질극이라는 건 원래 인질을 붙잡은 범인 쪽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법이니까.

타앙!

쨍그랑!

그 순간 관사에서 총성이 울리더니 2층 유리창이 깨지며 비명이 들려왔다.

한 항구 직원이 무리하게 반항하다가 놈들의 총에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발!

그 광경을 지켜만 봐야 하는 나와 대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두면 다 죽습니다.”

“선배! 그냥 우리가 진입하죠!”

대원들 말이 옳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는 인질들 전원이 저 꼴이 될 것이다.

마음을 굳힌 나는 서둘러 건물 내부 구조와 인질들의 신상정보를 가져오라 외쳤다.

묵호항으로 발령받았다고 좋아하던 강혜지의 얼굴이 순간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익!

“······?”

그런데 그 순간 잠자코 있던 무전기가 울리며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는 다급히 주파수를 조정해 채널과 연결된 상대를 불러보았다.

“혜지 씨?”

[시, 시장님?]

“침착해요. 지금 위치는 안전해요?”

[지하실에 몰래 숨어있어요. 저 말고 3명도 같이 있거든요? 사장님 제발 구해주세요.]

“일단 무전기 볼륨부터 줄여요. 입구 막고, 소리 안 새어 나가게 조심하세요.”

천운이다.

강혜지가 직원 3명과 함께 관사 지하실에 숨어있는 상황이다.

적들은 직원이 총 몇명인지 모를 테니 어지간해서는 걸리지 않을 터.

보인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나는 대원들을 향해 손짓하며 빠르게 지도 위에 지하실 위치를 표기했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던 작전 지휘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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