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한 가지 확실한 건 놈들은 꽤 오랜 시간이 인질극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일단 거래처 상선으로 위장한 것부터 시작해 이미 관사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걸 다 뒤로하고 오로지 인질부터 확보한 판단에서부터 냄새가 났었다.
‘아마추어가 아니다.’
적어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놈들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정문과 주차장 입구 총 3층으로 구성된 모든 창문을 막고 커튼으로 가린 건 물론,
특전대가 애용하는 진입로 중 하나인 건물 옥상을 전면으로 봉쇄해버렸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장비는 구했는지 중무장한 채 작전 지휘부를 노려보는 놈들.
광신도 새끼들은 내일 02시까지 모든 요구사항을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 메시지는 그 어떠한 협상도, 일말의 타협도 존재하지 않는 최후통첩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지금 저 광신도들이 원하는 건 요구 이행이 아닌 피를 피로 갚겠다는 경고였다.
아마 인질을 포함한 본인들이 모두 죽어도 에덴동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치익.
[시장님.]
“주차장 확인하셨습니까?”
[네, 다행히 아무도 없었어요.]
현재 강혜지가 숨어있는 장소는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는 협소한 보일러실이다.
놈들은 설마 여기로 도망쳤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지 주차장 입구만 막고 돌아갔다.
“혹시 입구는······.”
[철근으로 아예 용접해놨어요.]
지하 주차장은 왜 비워두나 했더니 아예 진입로를 원천 봉쇄해버렸구나.
용접해놨다면 산소 절단기나 폭탄이 아니면 뚫을 수 없을 터, 입구를 뚫기 전에 놈들이 인질을 죽여버리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이것으로 주차장 입구를 열겠다는 첫 번째 계획은 시도하기 도전 실패로 돌아갔다.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강혜지를 향해 다시 무전을 쳤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이번 일 위험해요.”
[알, 알고 있어요.]
모든 진입로가 막힌 이상 대원들이 강제로 뚫고 들어가는 방법 말고는 이제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놈들과 인질들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말 할 수 있겠어요?”
현재 강혜지와 함께 있는 직원들은 이제 갓 번영회에 취업한 햇병아리들이다.
그나마 기초 훈련받은 강혜지만이 밖에있는 우리를 도울 유일한 내부자였다.
[제가 안 하면 곤란해지잖아요?]
“저희가 해결할 수도 있어요.”
[저 묵호항 책임자예요, 시장님. 여기 직원들만 살릴 수 있으면 뭐든 할게요.]
맨날 따라다니며 부르던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강릉 시장님으로 변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단호한 결의를 읽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제가 말한 대로만 하시면 돼요.”
[심, 심장이 막 떨리네요.]
“떨리는 게 정상이에요. 인질들 위치만 확보하면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용기라는 건 어둠 속 빛과도 같아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을 더욱 밝게 밝힌다.
아무리 작은 촛불이라고 해도, 한 사람의 용기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나오면 저랑 또 야시장 가요.”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예. 꼭이요.”
나는 코를 훌쩍이는 혜지 씨와 재차 약속한 뒤 무전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순간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는 사이비놈들이 점거한 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인질을 붙잡은 놈들이 통보한 02시까지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번쩍!
관사를 포위한 방위군이 차량에 설치된 조명으로 건물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이에 악이 오를 대로 오른 사이비 놈들은 커튼 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인질을 교환합시다!”
현재 수용소에 구금된 기도원 원장과 신도 일부를 묵호항으로 직접 데려왔다.
목적은 다름 아닌 인질 교환, 확성기를 쥔 태식 씨는 간절한 얼굴로 연기했다.
“직원 중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 몇몇 있습니다! 그들만이라도 풀어주십시오!”
“꺼져! 약속과는 다르다!”
“시간이 너무 모자랍니다! 요구사항은 꼭 이행할 테니, 조금만 더 여지를 주십시오!”
태식 씨 얼굴만 보면 강릉이 사이비 놈들한테 끌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시선 끌기일 뿐, 인질 구출 작전은 벌써 시작된 지 오래였다.
‘할 수 있어.’
강혜지는 부하 여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보일러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태식 씨가 시선을 끄는 사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1층으로 향했다.
“위에 있는 애들 다 불러!”
1층 로비에는 잔뜩 흥분한 사이비 신도들이 우르르 정문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힉!
순간 들킬 뻔한 강혜지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깜짝 놀라 웅크린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끝까지 용기를 내며 계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내가 도와드려야 해.’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강릉과 강릉 주민들을 위해 적과 싸워온 사장님이다.
그를 위해서라도, 부하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강혜지는 떨리는 양손을 꽉 붙잡고 1층 뒤쪽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긴 없어.’
놈들이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인질들을 1층에 묶어둘 리가 없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으로 돌아온 강혜지는 곧 2층을 향해 걸어갔다.
꿀꺽.
여기서 만약 한 놈이라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대로 죽은 모습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강혜지는 박범석의 조언을 떠올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투두두두두두 - - - -!!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위 2층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깜짝 놀란 강혜지는 후다닥 계단 틈으로 숨었고 덜덜 떨며 고개를 내밀었다.
“두 번은 없어! 당장 꺼져!”
“1시까지다! 1시까지 공식 발표해!”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난 사이비 신도들이 기어코 김태식을 향해 위협 사격을 가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고 놈들은 흔들린 벌집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명이 2층에 있어.’
인질 위치 말고도 놈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강혜지는 다리가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이를 기억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2층에도 인질이 없다.
이제 남은 건 3층뿐이었다.
그녀는 놈들이 흥분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꼬물꼬물 3층으로 올라갔다.
터벅, 터벅, 터벅.
3층에는 총을 든 사이비 두 명이 복도를 오가며 인질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항구 직원들이 묶여 있던 장소는 다름 아닌 3층에 있는 다용도 회의실이었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마음을 다잡은 강혜지는 곧바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사장님께 알아낸 정보를 전달하기위해 지하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거기 누구야.”
그런데 그 순간 화장실에서 나오던 사이비 신도 하나가 그녀를 발견했다.
강혜지는 순간 뱀을 마주한 개구리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뭐야, 인질이 왜 여기 있어?”
정신을 차린 그녀는 곧바로 발걸음 돌려 계단 아래로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시발!”
그러자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린 놈 또한 피가 묻은 칼을 꺼내 그 뒤를 쫓았다.
가뜩이나 살벌한 분위기에 탈출이라니, 그 결과가 어쩔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사, 사장님! 찾았어요! 3층 회의실에 전부 묶여 있어요! 제가 지금 들켜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거기까지 말한 강혜지는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저 칼에 죽는 상상이 두려움으로 변해 숨을 막히게 한다.
후회와 공포, 뿌옇게 변하는 시야, 강혜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지하로 내려왔다.
‘보일러실로 가면 안 돼.’
만약 자신이 보일러실로 도망쳤다가는 나머지 직원들까지 붙잡혀 죽고 만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은 강혜지는 결국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허억.
감히 도망을 쳐? 잔뜩 화가 난 사이비 신도가 피 묻은 나이프를 들고 다가온다.
셔터를 등지고 주저앉은 강혜지를 향해 점차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워졌다.
‘사장님.’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던 세상에서 처음으로 어른처럼 보이는 남자를 존경했다.
그를 위해 용기를 냈다는 생각에 강혜지는 몸을 웅크린 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쿵쿵!
“?”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쿵쿵 소리에 그 둘의 시선이 뒤쪽 주차장 셔터로 향한다.
쿵쿵! 쿵!
상대는 처음에는 노크하던 것 같더니 마치 수박 두드리듯 빈공간을 찾았다.
통통!
그리고 곧 적당한 위치를 찾았는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그 어이없는 현상에 넋 놓고 있던 사이비 신도는 재빨리 총을 꺼내려고 했다.
치익.
[엎드려요.]
사장님이다.
강혜지는 조건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리며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쾅!
셔터 한쪽이 폭발했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사이비 신도는 이에 휘말려 쓰러진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자욱한 연기, 그 안에서 한 남성이 귀신처럼 뛰어 들어왔다.
후웅!
자욱한 연기 사이에서 튀어나온 토마호크가 사이비 신도의 머리통을 깨트려버린다.
콰직!
이젠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 광경에 강혜지는 안심하며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박범석이 왔다.
* * *
퓨웅! 퓨웅!
그 시각 반대편 건물 옥상에 숨어있던 김가은이 건물 옥상에 있던 놈들을 저격한다.
퐁! 콰직!
그러자 송지영과 문 상사가 기다렸다는듯 관사 옥상으로 집라인 총을 발사했고,
특전 대원들은 순식간에 집라인 밧줄을 타고 관사 옥상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쨍그랑!
곧바로 난간 아래 3층 창문으로 진입해 인질들이 있는 회의실로 들어간 대원들.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 그 과정을 기점으로 지정 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딱! 따닥!
쨍그랑!
“커억!”
한참 관사 앞에 관심이 쏠려 있던 사이비 신도들이 일시에 저격당한다.
깜짝 놀란 그들은 황급히 엄폐해보지만, 특전대 사수들은 너무나 집요했다.
“시발 전부 죽여버려!”
당연히 흥분한 놈들은 바깥으로 총을 난사하며 인질들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인질들을 처리할 3층에선 그 어떠한 총성도 폭음도 들리지 않았다.
“옥상이 뚫렸다!”
“젠장! 주차장으로도 온다!”
이미 옥상으로 진입한 특전 대원들이 3층을 클리어하고 인질을 확보한 것이다.
건물 깊숙한 곳에 숨겨둔 인질 위치를 도대체 어떻게 파악한 거지?
졸지에 가장 중요한 방패를 잃어버린 사이비 놈들은 패닉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드르륵! 드르륵!탕!
타앙!
인질들이 확보된 이상 특전대가 상황을 봐가면서 싸울 이유는 사라졌다.
감히 이딴 짓을 벌인 광신도 새끼들을 향한 신의 철퇴가 납탄이 되어 쏟아졌다.
“끄아아아악!”
가지고 있는 장비로 아무리 저항해봐도 상대는 집요하게 자신들을 물어뜯었다.
하나둘 쓰러지는 부하들을 본 신도는 품에서 황급히 폭발물을 꺼내 들었다.
“죽어!”
그리고 한 치 망설임 없이 우르르 몰려오는 특전 대원들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따닥!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발사된 총알이 놈의 오른쪽 허벅지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따악!
따악!
반대쪽 허벅지, 팔꿈치, 손목, 방탄복이 없는 부위만을 집요하게 노린다.
졸지에 기폭장치를 누르지 못하게 된 신도는 넋이 나간 얼굴로 어둠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사탄, 마귀라고 울부짖던 박범석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 이이······!”
콰직!
이 사탄! 이라고 외치려 했던 놈은 그대로 턱이 부서지며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기폭장치를 회수한 박범석은 정말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이제 세 번째지?”
첫 번째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죽이지 않고 잡았다.
두 번째는 참 귀엽게 논다는 생각에 유치한 장난에 어울려주었다.
하지만 세 번째가 드디어 선을 넘었다.
내 땅에서, 그것도 내 식구를 건드리고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을 죽게 했다.
콰직! 콰직!
정말 악마 그 자체가 되어 놈을 곤죽으로 만든 박범석은 이제 경고가 아닌 통보했다.
“장난은 끝났어.”
그토록 나를 악마로 만들고 싶으면 그중 가장 좆같은 악마가 되어 찾아가 주겠다.
타앙!
탄두가 탄피를 떠나는 순간,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떠나 상대를 죽인다.
마지막 신도까지 참혹하게 살해한 박범석은 에덴동산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