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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04화 (104/180)

104화

대처가 빨랐던 탓에 인질 전체가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연히 사상자가 있고 무려 강릉과 지척인 묵호항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 테러 위협에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고,

당시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고 해결했던 방위군과 대원들은 큰 분노를 느꼈다.

장난은 끝났다.

놈들에게 한 마지막 통보처럼 이번 일은 더 이상 신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현장이 정리되는 즉시, 서울 요새로 전화를 걸어 본격적인 협조를 구했다.

‘접니다, 소장님.’

가뜩이나 테러로 골치 아파하던 김태하 소장과 이솔하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규모 자체는 작아도 실전 경험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특전대와 방위군이었으니까.

그 소식에 눈치를 보던 한반도 요새 지도자들은 옳다구나 하나둘 협력을 약속했고,

엠마는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제공하며 놈들의 추적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에덴동산을 토벌하기 위한 대대적인 계획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전쟁.'

적의 무장 수준을 확인한 우리는 경이 아닌 군을 투입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삼단봉을 들고 수갑을 채우는 치안 활동 말고 진짜 화력으로 상대하는 전쟁 말이다.

속전속결.

신속정확.

표적이 정해지는 즉시, 강릉에선 특전대, 서울 요새에선 무려 정보사가 움직였다.

쾅!

“엎드려!”

“저항하면 사살한다!”

엠마가 넘긴 정보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은신처를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했다.

설마 이곳을 찾아낼 줄 몰랐던 걸까, 간부 신도들은 기겁한 얼굴로 우리를 마주했다.

“막아!”

에덴동산 수뇌부와 기도원을 잇는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게 바로 이 간부들이다.

여기서 잡혔다간 대가리나 꼬리가 아니라 허리 그 자체가 두 동강 나고 만다.

위기를 느낀 놈들은 숨겨두었던 총기까지 꺼내 가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했다.

탕! 타앙! 탕!

끄아아아악!

하지만 아무리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신도들이라고 해도 상대는 프로 중 프로다.

인질극이나 테러와 같은 특수상황에서나 밀렸지, 이런 전면전에는 상대가 안 된다.

그동안 이를 갈고 있었던 서울 정보사와 강릉 특전대는 놈들을 빠르게 제압해갔다.

“우어어어어어- - -!!”

두꺼운 방탄복으로 온몸을 떡칠한 거구의 신도 하나가 멧돼지처럼 달려온다.

쿵! 쿵! 쿵!

이미 총을 몇 방 맞았지만, 놈은 마약이라도 했는지 쉽게 멈춰 서지 않았다.

후웅!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은 박범석은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양팔을 가뿐하게 피한 뒤.

스릉!

콰직!

무릎 뒤쪽을 넘어트리고 뽑아 든 토마호크로 목덜미를 내려찍는다.

그러자 놈은 언제 날뛰었냐는 듯 피를 주르륵 흘리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쿵!

그동안 일본에서 밀수해온 총과 장비로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던 에덴동산이다.

특히 호위를 맡은 신도들은 퇴역군인이거나 사람을 수없이 죽인 약탈자들이었다.

“잡아.”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은신처는 삽시간에 밀리다 못해 그대로 붕괴했다.

“히익!”

마지막으로 남은 간부는 온몸을 피 칠갑한 박범석을 보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마치 양 떼 속에 난입한 늑대처럼 달려드는 신도들을 남김없이 학살한 괴물.

붉게 물든 핏물 사이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는 사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악, 악마······!”

정의는 언젠가는 이기리라, 교주가 말하던 진짜 새 세상이 꼭 오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악마를 마주한 순간 그러한 믿음은 유리잔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다른 은신처 어딨어.”

박범석은 위치를 말하라는 물음과 함께 피로 물든 토마호크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간부는 달콤하기는커녕 비리기 그지없는 그 속삭임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건 다 말해야 했다.

혹여나 침묵했다가는 저 뒤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테니까.

자신들이 사탄이라 울부짖던 박범석은 정말 악마가 되어 에덴동산을 찾아왔다.

* * *

서울 요새로 진출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 내에 이만한 규모를 가진 단체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대로만 간다면 정말 '에덴' 동산을 세우겠다는 목표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박범석이 이번 일에 개입함에 따라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선전포고.'

은밀한 포교도, 영향력 행사도, 심지어 보복을 위한 테러 행위도 모두 소용없었다.

마시 잠자는 사자를 깨운 듯 강릉은 몸을 일으켜 에덴동산을 갈가리 물어뜯었다.

‘은, 은신처가 습격당했답니다.’

‘일대 기도원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핵심 지역이나 다름없는 전국의 모든 은신처가 동시다발적으로 습격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몰래 운영하던 기도원 또한 하나둘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온다.

꼬리가 꼬리를 물고 에덴 동산이라는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이에 겁에 질린 신도들은 몰래 탈출했고 그 믿음 또한 점차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에덴 동산은 어느덧 본거지만을 남기고 있었다.

“흐흐.”

머리가 산발이 된 교주가 흐릿한 웃음을 흘리며 지하실을 비틀비틀 걸어간다.

늘 쓰고 다니던 가면은 벗겨진 지 오래, 그 모습 또한 미친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강릉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정부 인사를 동원해 압박을 가하려 했을 때부터?

아니면 화를 못 참고 테러를 지시했을 때부터?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이룩해왔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교주는 결국 가면을 벗으며 흉터로 일그러진 얼굴과 탁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래, 이건 시련일 뿐이다.

곧 신이 이 땅으로 내려와 저 악한 사탄을 몰아내고 진정한 낙원을 세울 것이다.

결국, 현실과 멀어지기로 한 교주는 들고있던 전등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끼이이익, 끼기긱!

끼이이익! 끼이이이이익!

콘크리트와 두꺼운 철근으로 세운 지하벙커에는 수많은 감염체가 우글거렸다.

그곳은 바로 교주가 초창기부터 키워온 감염체 둥지이자 진정한 천국이었다.

그동안 산채로 집어 던진 먹이 덕분에 둥지 크기가 이만큼이나 늘어난 것일까?

아니, 감염체가 자연적으로 늘어났다는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하고 있었다.

“아, 아아······!”

감염체 사이에는 방금 태어난 군락이 잉태한 고치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두 눈을 밝게 빛낸 교주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바닥에 넙죽 엎드려 손을 들었다.

“천주시여!”

신도를 죽이고 믿음을 앗아가는 악마를 보다 못한 천주가 드디어 이 땅에 내려왔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 교주는 바닥에 입을 맞추며 옅게 신음을 흘렸다.

끼이이이익!

끼아아아아악 - - -!!!

갓 태어난 군락이 박동하자 감염체들이 미쳐 날뛰며 출구를 향해 몰려든다.

끼익, 덜컹!

교주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과 연결된 벙커 출구를 개방해주었다.

반짝!

어두운 낙원에 빛이 들어오며 잠들어 있던 군락 둥지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섬에 숨죽인 채 지내고 있던 마지막 신도들은 졸지에 그들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물론 교주는 안전한 벙커 밖에서 이 모습을 황홀한 얼굴로 감상하고 있었다.

* * *

놈들의 은신처와 기도원을 소탕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군이 투입된 이상 한낱 사이비단체가 버티기에는 무리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천에서 도망친 교주와 마지막 비밀 본거지의 정확한 위치다.

도대체 어디 숨어있길래 엠마의 정보망에 그 흔적조차 걸리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더 소비하며 탐문에 나서야 했다.

‘찾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산 쪽에서 중요한 단서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에덴동산의 마지막 본거지가 육지가 아닌 서해안에 위치한 섬이라는 것이다.

서울은 즉각 항공기를 띄어 정찰했고 그 결과 섬에서 오래된 지하 시설을 찾아냈다.

저기다.

우리는 강릉항에 있는 화물선을 불러 군산 앞바다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보입니다.”

놈들의 본거지는 배를 타고 30분을 나가면 볼 수 있는 흔한 무인도 중 하나였다.

저런 곳에 몰래 처박혀 있으니 엠마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겠지.

참 벌레처럼 끈질기다는 생각에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보트 위로 몸을 실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차하면 지원 때리세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져온 무장 화물선이 든든하게 바다를 지키고 있다.

여차하면 화력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에 나는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자세를 숙였다.

첨벙!

그러자 선박에 연결된 고무보트들이 일제히 떨어지며 바다 위에 하나둘 안착했다.

무려 20대가 넘는 고무보트에는 특전대와 정보사 대원들이 빼곡히 탑승해 있었다.

치익.

“출발합니다.”

총지휘자인 내가 무전을 날리자 보트들이 모터에 시동을 걸고 속력을 올렸다.

혹시 공격이 있을지 모르기에 모든 대원은 긴장을 유지한 채 자세를 숙인다.

철썩! 철썩!

무인도가 가까워진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먹구름이 낀 하늘과 음산한 기운은 이상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기분 탓일까?

나는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무전기를 꾹 쥔 채 가까워지는 무인도를 노려봤다.

치익.

[곧 도착합니다.]

그사이 빠른 속도로 나아간 보트는 어느덧 해변 바로 앞까지 도착해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나는 사방으로 수신호를 전달하며 빠르게 보트에서 내렸다.

첨벙! 첨벙!

순식간에 해변에서 빠져나온 대원들은 내가 지시한 집결지로 알아서 흩어졌다.

정보사는 남아서 퇴로를 지키고, 특전대는 내부로 진입해 섬 전체를 수색할 예정이다.

당연히 내부 수색을 맡은 나는 마지막으로 안전장치를 점검한 뒤 걸음을 옮겼다.

치익!

[긴장 풀지 마.]

[정신 똑바로 차려, 다들.]

벌써 몇 달째 이어지는 소탕 작전에 특전대원들은 슬슬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문 상사와 송지영은 끝까지 긴장하라고 다그치며 기운을 북돋웠다.

그래, 에덴동산의 본거지 소탕만 끝나면이 지긋지긋한 장기 작전도 끝이 난다.

나는 어느새 다가온 겨울 날씨를 체감하며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다.

[건물입니다.]

[여기가 본거지인가?]

우거진 숲으로 가려진 섬 내부에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여러 채 존재했다.

넝쿨이 없고 이곳저곳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아 분명 최근까지 사용했었다.

[보이는 건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섬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사이 도망이라도 친 걸까, 나는 잠시 자리에 멈춰 주변을 둘러봤다.

까악, 까악.

언제 왔는지 모를 까마귀가 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며 연신 까악까악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꼭 우리에게 무언가를 경고하는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치익!

[이쪽입니다!]

그 순간 한참 건물 안쪽을 수색하던 대원중 하나가 무언가를 찾았다는 무전을 날렸다.

급히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대원들이 신도로 보이는 한 남성을 붙잡고 있었다.

“죽, 죽을 거야. 천주님이 오셔······!”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쓴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해보니 꽤 높은 위치에 앉아있는 간부 중 하나였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지하실에 혼자 숨어있던데요.”

남자는 마치 귀신을 보기라도 한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 보니 손톱이 모두 빠져 있고 팔과 얼굴에는 스스로 자해한 흔적이 가득했다.

“이봐, 정신 차려.”

나는 대원들을 향해 총구를 치우라 말한뒤 이미 정신이 나간 남자를 흔들었다.

“천주님! 천주님이이이!”

“······뭐?”

그러자 그는 발악하며 내게 달려들더니 곧 천주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기절했다.

갑작스러운 발작에 깜짝 놀란 대원들은 곧 무슨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치익!

[시, 시장님! 시장님, 들리십니까!]

그 순간 섬 주변을 살피던 무장 화물선에서 다급한 무전이 전해져왔다.

파스스스스- - -!!

동시에 까마귀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고 새들 또한 하늘로 일시에 날아오른다.

찌릿!

왼쪽 눈 흉터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찾아온 감각이 위험을 경고했다.

나는 새들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서둘러 고개를 돌려 ‘놈’의 존재를 눈치챘다.

갓 태어난 군락이다.

놈은 내 냄새를 맡았는지 두려움에 질려 밖으로 감염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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