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치료제를 강제로 주입 당한 군락은 곧바로 생명력을 잃고 가사 상태에 들어갔다.
당연히 변이종은 소멸했으며 감염체 또한 통제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겨우 화살 한 발이 만들어낸 것 치고는 너무나 효율적이면서 허무한 결말.
우리는 군락을 확보하고 교주를 체포함으로써 마지막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끼이이이익!’
하지만 일찍이 생각했던 것보다 에덴동산이 만든 벙커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그만큼 내부로 숨어든 감염체도 많다는 뜻이기에 또 다른 군락의 위험성이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의를 열어 이 무인도를 전부 소거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기꺼이 잔류를 자처하며 소거 작업에 앞장섰다.
‘이쪽에도 있습니다.’
의외로 벙커 임시 대피소 안에는 살아있는 생존자들이 제법 남아있었다.
사태가 터지자마자 안으로 숨어든 모양인데 그나마 일찍 구조가 되어 다행이지.
우리는 실험체로 쓰일 예정이었던 이들을 다수 확보하고 신도들도 여럿 체포했다.
그사이 서울 요새에선 김태하 소장의 통제하에 언론 기자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우웨에에엑!’
직업의식 하나는 투철한 그들은 에덴동산의 실체를 낱낱이 취재하기 시작했다.
물론 연구실을 보자마자 뛰쳐나가거나 구역질하는 이들이 반절이 넘었지만,
그래도 왜곡이나 축소 없이 잘 취재해, 다음날 모든 언론이 신속히 보도했다.
인간의 신체를 끔찍하게 훼손해 감염체와 연결을 시도하려 했던 사이비 놈들.
이 모든 것이 여과 없이 전해지며 한반도 전역은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추락하다 못해 땅으로 파고든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할까?
아마 당분간은 한반도에 에덴동산 같은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군락 사태를 안정시킨 영웅들!’
그리고 여담으로 나와 특전 대원들이 모습이 처음으로 서울 요새 뉴스에 실렸다.
물론 그동안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직접적인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숫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원들은 기자들 사탕발림에 너무나 쉽게 넘어갔고,
어울리지 않는 인터뷰와 단체 사진까지 찍으며 지겨웠던 토벌 작전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몇 달간 이어진 일정이 끝이 나고 드디어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이 되었다.
“읍! 으읍!”
손발이 묶인 채 버둥거리는 교주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재갈을 벗겨주자 핏발이 어린 눈동자를 부라리며 내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 이이! 이 악마야! 사지를 찢어 죽여도 모자란 마귀 놈들! 반드시, 반드시······?”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며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기 시작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임시 구치소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이곳으로 끌고 왔다?
교주는 슬슬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얌전해진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봐?”
체포될 당시만 해도 핍박받는 메시아처럼 행동하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가도 침전물처럼 가라앉은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
주변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교주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다급히 외쳤다.
“알, 알고 있는 건 전부 자백했다! 분명 재판받게 해주겠다고 위에서 약속했었어!”
왜 이런 새끼들은 끝까지 컨셉을 유지하지 못하고 막판에 이런 모습을 보일까.
어째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놈 중 최후가 구차하지 않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사태 파악을 좀 해봐.”
“뭐······?”
“그냥 당당하게 들어가서 너만 빼 온 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구치소 정문을 통과해서 서울로 압송 예정 중인 교주만 들고 정문으로 나왔다.
상식적으로 이게 독단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진짜 머리가 나쁜 것이다.
“다들 눈 감고 있는 거야.”
“아, 아아······.”
“내가 죽일 거라고 했으니까.”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이 지옥에서 구원할 거라는 허황한 약속은 감히 할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흘린 피를 같은 피로 갚아줄 거라는 약속은 항상 지켜왔다.
“안, 안돼.”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피가 담긴 주사기를 꺼내 조용히 교주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하려는지 이제야 눈치챈 교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버둥거렸다.
“너는 감염되지 않는다며.”
“아, 아아······.”
나는 버둥거리는 교주를 붙잡고 그대로 감염체 피를 혈관에 주입해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교주는 한쪽 눈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쓰러진다.
“커억! 컥! 살, 살려줘!”
고통이 몰려온다.
두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대가는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낙원의 입장이었다.
“끄윽, 끅!”
면역이 있다고 자처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변이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교주의 눈동자에는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과 증오 그리고 후회로 점철되어 있었다.
툭.
나는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교주를 절벽 아래, 부서진 벙커로 밀어 넣었다.
편하게 죽일 생각은 없다.
본인이 낙원이라 설파한 지옥을 영원히 맴돌고 또 맴돌며 고통받아야 한다.
신도, 회개도 아닌, 절대로 용서해줄 수 없는 한낱 인간의 복수 앞에서 말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날, 외로운 무인도는 불길과 함께 폐쇄됐고 평생 인간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 * *
한반도를 혼란에 빠트렸던 에덴동산을 없애고 수장인 교주까지 무사히 처리했다.
특히 처음으로 한반도 모든 요새가 협력했다는 점에서 꽤 뜻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의 성과는 뭐니 뭐니 해도 운 좋게 포획한 새끼 군락이었다.
‘이번에도 첫 사례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획한 군락이 이미 변이종 진화까지 마친 종이었다면,
이번에 벙커에서 포획한 군락은 정말 갓 태어난 신생아 군락이나 다름없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미연방은 또 몸이 달아올랐고 서울 또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 군락을 상대하기 위해선 표본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안 것이다.
‘공동 연구.’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미국에 넘겨버리는것이 아닌 공동 연구를 제안했고,
양양에 세운 연구소에 모이는 조건으로 군락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물론 여기서 나오는 연구 결과는 참가한 모든 요새가 공유받을 수 있었다.
모두가 함께 협력한다는 분위기에 국제관계도 점차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용돈도 기분 좋을 때 준다잖아?
나는 주기적으로 시청을 찾아오는 엠마를 향해 대뜸 필요한 걸 요구해보았다.
“헬리콥터요?”
“네, 남는 거 없습니까?”
흔히 회전익이라고 부르는 헬리콥터는 전장에서 참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특히 우리가 밥 먹듯이 하는 특수전에서는 거의 빼놓으면 안 되는 장비이기도 했다.
원래 한 번 맛보면 평생 못 잊는다고 하지.
대원들 사이에선 벌써 헬기를 타보니 참좋더라는 아쉬운 말이 나오고 있었다.
“설마 공격형 헬기는······.”
“줘봤자 운용도 못 합니다. 그냥 적당하게 수송용 헬기 몇 대만 넘겨주십시오.”
아마 미연방은 아직도 치누크나 싸게 굴릴 수 있는 UH를 아직 쓰고 있을 것이다.
UH는 재고가 차고 넘칠 테니 강릉에 몇 개 던져줘도 사라진 티도 나지 않을 터.
이제 강릉 정도면 헬리콥터를 몇 대 운용해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을 것이다.
“뭐, 그 정도야. 제가 연락해볼게요.”
그리고 엠마 또한 무리한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역시 미국!
나는 벌써 착륙장부터 만들 생각에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요즘 본토 상황은 어때요?”
“최악은 면했어요. 이번에 방어선을 새로 구축했는데 생각보다 잘 버텨주거든요.”
들리는 바로는 웨이브가 수백만 단위로 발생하는 게 현재 본토 상황이라고 한다.
정말 미연방이니까 이 정도로 막고 있는 거지 다른 지역이었으면 진즉에 끝났다.
“그래도 나름대로 성과도 있어요.”
“성과요?”
“한 달에 한 번꼴로 군락을 소거하고 있거든요. 특히 특수팀 활약이 엄청나요.”
우리와 함께 합동 작전을 펼쳤던 파견팀이 고국에 돌아가서도 잘 지내는 모양이다.
하긴 기본 베이스가 워낙 뛰어나니 새로운 시스템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거 보실래요?”
“뭡니까?"
“한 군수품 회사가 개발한 신무기예요. 치료제를 이용한 건데 효과가 엄청나요.”
엠마가 건네준 태블릿에선 무언가를 실험하는 동영상 하나 재생되고 있었다.
휙!
흥분된 얼굴로 주저리 떠든 백인 남성이 수류탄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던졌다.
펑!
그 수류탄은 폭음은커녕 흰색 액체와 거품을 뿜으며 사방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에 닿은 감염체들은 하나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치료제입니까?”
“성분만 약간 혼합한 물질이에요. 깊게 주입해야 하는 군락과는 다르게 이렇게 닿기만 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하네요.”
인체는 무해하나 감염체에는 유해하다.
이건 마치 놈들이 우리를 감염시키기 위해 퍼트린 변이 바이러스와 같지 않은가.
군락이 빠르게 진화하는 것처럼 인간도 살아남기 위한 진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는 엠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오랜만에 환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희망이 보이죠?”
“그러게요.”
평화라는 걸 너무나 오래 잊고 지낸 터라 일상이 무엇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버티고, 또 함께해 나간다면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믿고 있었다.
* * *
보통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온다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눈, 썰매, 크리스마스 등등?
아마 작정하고 나열해보면 온종일 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강릉 시장이자, 아파트 동장인 내게는 딱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와! 배추 실한 거 봐.”
“야! 그만 먹어, 새끼야!”
바로 김장!
배추를 소금과 양념에 절여 김치라는 것으로 만드는 대규모 노동이다.
이번에 배추 농사가 대풍년을 맞이하면서 드디어 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된 것.
우리 희망 아파트도 배급된 배추를 받아와 오랜만에 주민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팍! 쩌억.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입은 나는 토마호크를 들어 김치를 반으로 쪼갰다.
그러면 상식 아저씨와 은서가 쪼르르 다가와 김치를 대야에 차곡차곡 담는다.
“캬! 시장님 타고났네.”
“배추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내가 장담하는데, 이제 딱 한 달만 지나잖아? 이 김치도 없어서 못 먹는다니까.”
하긴 근 몇 년 만에 구경하는 김치인데 주민들이 넋 놓고 구경만 하겠는가.
지금도 다들 김장하면서 김치를 주워 먹느라 김칫독 내용물을 못 채우고 있다.
“수육도 삶고 있죠?”
“응. 팔팔 끓고 있지.”
하지만 나는 그걸 말리기는커녕 수육을 투입하며 김치 먹방에 열을 더했다.
올 한해 정말 고생만 했을 주민들인데 고작 김치가 아깝다고 궁상떨기 싫었다.
나는 입에 욱여넣은 김치를 씹으며 찬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참 뜨거운 열기로 들끓었던 강릉도 점차 다가올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부디 올겨울은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잘지나가기를 바라며 다시 김치를 쪼갰다.
“박 동장님 김칫독은 가져왔지?”
“아, 맞다. 가져올게요.”
한참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쓰시던 김칫독이 있다고 해서 씻어놨었다.
가져오는 걸 깜빡한 나는 곧 고무 장갑을 벗어 104동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 너무 맛있어서 눈물 날 것 같아.”
“적당히 먹으라고 했지?”
주민들이 전부 모여든 아파트 단지 공원은 애어른 할 것 없이 전부 모여들었다.
떠들썩한 그 모습을 피식 웃으며 뒤돌아본 나는 곧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분명 먼지를 씻어내고 잘 닦아서 여기에 말려뒀는데.
아! 여기 뒀었구나.
미간을 팍 찡그린 채 물건을 찾던 나는 곧 김칫독을 들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우뚝!
“······?”
그런데 그 순간 아침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만년필이 책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김칫독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미래 일기와 만년필을 향해 다가갔다.
“진, 진정해.”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야, 이 시발!”
진정하라는 말을 가볍게 씹은 만년필은 미래 일기 위에서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든 나는 곧 또 한번 예언을 시작한 미래 일기와 마주했다.
사각, 사각, 사각.
[<주의!일본 후지산에 대형 군락 출현했다. 하위 군락을 연결하는 고위급 군락으로 추정되며 그 규모가 가늠되지 않는다. <주의! 일본에서 수천만 난민 발생 예정. <검열! <검열 거부 ‘그’는 속히 대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