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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08화 (108/180)

108화

허억, 허억!

항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남성이 이미 물려버린 딸을 안고 황급히 도망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뒤따라온 감염체가 남성의 뒤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콰직!

끄아아아악!

놈이 그대로 목을 물어뜯자 사방으로 피가 솟구치며 부녀는 곧 감염체로 변한다.

이러한 참상은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진 부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항구는 이미 감염체로 득실거렸고 시내 또한 도망치는 시민들로 혼란스럽다.

대피할 시간이 있을까? 난입한 감염체로 인해 길거리는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공기 중 감염이라는 치명적인 변이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엄청난 확산 속도!

초기 진압은 일찍이 물 건너갔고 이젠 밖으로 퍼지는 걸 걱정해야 할 정도다.

“막아! 막으라고!”

“젠, 젠장! 저건 사람이잖아!”

부산을 점령하다 졸지에 수많은 감염체를 상대하게 된 요새 연합군은 난리가 났다.

일단 급한 대로 모든 진입로를 막기 시작했지만, 몰려오는 사람들과 감염체가 섞이면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쏴야 하나?

쏘지 말아야 하나?

총은 방아쇠를 누르면 나간다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생각이라는 게 있는 인간이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민간인을 상대로 기꺼이 총을 쏠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후퇴해!”

결국 보다 못한 김태하 소장은 서울 요새를 포함한 모든 병력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부산 외곽에 황급히 저지선을 만들며 감염체 확산을 최대한 막았다.

“젠장!”

하지만 연합군은 이미 많은 탄약을 소모했고 전선 또한 너무나 넓게 퍼져있다.

김태하 소장은 평정심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거친 숨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일단 이솔하에게 상황을 설명해뒀으니 서울과 다른 요새 쪽에서도 움직임을 취할 터.

지원군이 올 때까지 최대한 저지선을 틀어막는 게 자신이 할 일이었다.

‘불길해.’

하지만 감염체가 득실거리고 있는 부산 시내를 보고 있자면 피부가 찌르르 울렸다.

아마 이게 박범석이 그리 말하던 군락이라는 놈들의 특별한 존재감이 아닐까.

감염체가 확산한 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군락이 태어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후우.

부쩍 흰머리가 많아진 김태하 소장은 주머니에서 위성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염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피곤한 한숨을 내쉰 김태하 소장은 강릉에 있을 박범석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 * *

‘꺄아아아악!’

‘젠장, 쏴! 쏘라고!’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한참 전쟁 중이던 부산으로 피난민이 유입되면 대규모 감염사태가 터진 것이다.

초기 진압은 보균자와 일반인이 섞여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당연히 실패했고,

부산은 순식간에 항구를 점거당하며 강서구를 제외한 일대를 모두 내줘야 했다.

가뜩이나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요새인데 일본에서 몰려온 피난민까지?

단순 수치상으로만 수십만 명이 감염되었다는 끔찍한 보고가 잇달아 올라왔다.

‘방어선 구축.’

감염체는 가히 10년 전 전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한 김태하 소장은 저지선을 구축해 확산을 막았다.

덕분에 감염체 확산은 그 일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부산을 점령하러 왔다가 졸지에 수십만 마리 감염체를 상대하게 된 연합군.

이미 군락이 생성되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마냥 시간만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솔하는 어쩔 수 없이 한반도 모든 요새에 부산 방어선을 향한 지원을 요청했다.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정상회담 때 나눈 협의에 따라 모든 한반도 요새는 지원군을 보내주어야 한다.

부산이 밀리면 다음은 대구, 포항, 충청과 호남지방까지는 결국 시간문제.

이미 방어선을 구축 중인 경상권 요새들은 아예 사력을 다해 병력을 파견했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호남과 충청 요새들 또한 속속히 이에 응답했다.

‘범석 씨, 도움이 필요해요.’

물론 우리 강릉 또한 지원요청을 받아 오랜 상의 끝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했다.

크게는 영동 지방이 있는 이 한반도를 위해, 작게는 터전이자 고향인 강릉을 위해.

차라리 여력이 있을 때 저지하자는 공통된 의견 아래 빠르게 하나로 뜻을 모았다.

날씨가 춥다.

이제 만연한 겨울이다.

하지만 강릉 전역은 바쁘게 전쟁을 준비하는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확히 이틀 뒤,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갈 준비를 모두 끝냈다.

[살면서 이런 증식 속도는 처음 봤어. 마치 포자를 뿌리듯 군락을 늘려나가고 있더군.]

“미국은 뭐랍니까?”

[그쪽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야. 본토에서도 보지 못한 비정상적인 속도니까.]

수십만 마리 감염체가 우글거리는 지역에 군락이 탄생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다만, 지금은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또 개체가 여러 개인 것 같은 양상을 보였다.

“상위 군락 때문이겠죠.”

[우리도 그렇게 추정 중이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움직임은 이해할 수가 없어.]

군락은 상위 개체 한 마리에 여러 하위 개체가 묶여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이번 현상은 저 후지산 군락에 의한 본격적인 감염체 확산이 분명했다.

심상치 않다.

오랜 시간 감염체와 싸워온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금방 가겠습니다.”

[최대한 막고 있겠네.]

나는 마지막 보루인 김태하 소장과 통화를 끝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원들이 준비해둔 장비를 하나하나 챙겨 빠르게 집무실을 나섰다.

“시장님.”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에는 모든 직원이 퇴근하지 않고 있었다.

복도 양측에 한 줄로 선 그들은 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 담긴 응원이 전해진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나누며 대기 중이던 태식 씨와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국도는 일단 전부 확보한 상황입니다. 선발대 안내를 따라 쭉 따라가시면 부산까지 금방 가실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와는 달리 이번에는 육로로 이동하는 대규모 원정이다.

대부분 병력과 장비들이 움직여야 하는 만큼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끝내둬야 했다.

“떨리십니까?”

함께 복도를 걷고 있는 태식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길래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곧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평소랑 다른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네. 떨립니다.”

“실패할까 봐요?”

“아뇨, 다들 돌아오지 못할까 봐요. 아마 여기 있는 직원들 다 같은 심정일 겁니다.”

실패.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실패라는 건 곧 영원한 죽음과 파멸을 의미한다.

이미 여러 차례 그 과정을 봐왔던 태식 씨는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찌르면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양반이 이럴 때는 참 감정적이다.

툭!

“어깨 피십시오.”

나는 잔뜩 움츠려있는 태식 씨의 어깨를 툭 쳐주며 힘을 대신 전달해주었다.

인간이 두려움, 공포, 그리고 막연함을 느끼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면,

신은 이를 극복하는 용기 또한 우리에게 내려 시련을 이겨내게 도와주었다.

어깨 펴라.

오직 나 하나만을 믿고 사지로 들어갈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당당히 어깨를 펴야 한다.

스읍.

길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복도를 가로질러 굳게 닫혀 있던 시청 문을 힘껏 열었다.

덜컹!

그러자 어느덧 출진 준비를 끝낸 모든 병력이 시청 앞에 전원 집결해 있었다.

“- - - - - - -.”

한낱 요새들의 집합체였던 강릉이 격변의 계절을 지나 또 한 번 겨울을 맞이했다.

우리는 바뀌었고 변화했으며 또 이 터전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무기를 높이 들었다.

살과 피로 이루어진 생물체, 절대 동물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낱 인간이.

육체를 초월해 가장 숭고해질 수 있는 순간은 신념을 관철하고 기꺼이 희생할 때다.

이 많은 집단이 같은 생각, 같은 각오를 했을 때 비로소 나는 확신할 수가 있다.

죽음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전장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갑시다.”

우리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 같은 피를 흘린 전우를 위해 또 한 번 무기를 들었다.

* * *

강릉에서 부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영덕, 울진, 포항을 자연스럽게 거친다.

물론 다른 빠른 길도 있겠지만, 현재는 이 루트가 제일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국도를 따라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갔고 최대한 전력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오는 보급보단 현지 도움이 조금 필요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울과 다른 요새에 양해를 구하고 보급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형님! 곧 포항입니다!”

다행히 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한반도 요새 연합 소속인 포항이 존재했다.

우리는 출발하기 전 포항 요새 지도자와 현지 보급에 대한 적당한 합의를 봤고,

지나가는 길에 차량 장비에 쓸 다량의 연료와 깨끗한 식수를 건네받기로 약속했다.

“저쪽이네요.”

포항 측 인원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는 우리 강릉 군대를 주둔할 수 있는 골프장 부근.

나는 일단 먼 길을 쉴 새 없이 달려온 병사들을 위해 임시 야영지를 건설하게 했다.

여기 포항에서 저지선까지는 이제 불과 100km 남짓, 정말 도착이 머지않았다.

빠르게 야영지를 건설한 강릉 군은 오랜만에 차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조용하네요?”

“외곽이라 그런가 보지.”

한참 감염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산과는 달리 포항 외곽은 무척 한적했다.

우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곧 골프장으로 찾아올 포항 쪽 인원을 기다렸다.

1시간.

2시간.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고 저 하늘 너머에는 어느덧 주황빛 석양이 걸치고 있었다.

뭐지?

약속 시간이 한참 넘긴 것을 확인한 나는 심각한 얼굴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치익.

“혹시 보이는 거 있습니까?”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해수욕장 포함해서 시내 부근까지 전부 조용하네요.]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지방이라고 해도 포항은 꽤 많은 인구가 사는 요새다.

그런 요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삐빅.

‘전화도 안 받는다.’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반갑게 통화를 했었는데, 위성 전화기까지 먹통이 되었다.

일이 무언가 틀어졌음을 직감한 나는 쉬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황급히 지시했다.

“주변 경계하세요!”

깜짝 놀란 병사들은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해진 자리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경계 태세로 변한 야영지를 보며 이번에는 함께 온 드론 기술자를 불렀다.

“드론 좀 띄어보십시오.”

“예, 예!”

소원대로 방위군에 들어오게 된 드론 기술자는 긴장한 얼굴로 전원을 켰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하늘 높이 하얀색 드론을 띄운다.

“시장님이 부품을 구해주신 덕분에 조종 거리가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칠포항까지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가볼까요?”

“네, 최대한 넓게 봐주십시오.”

병력을 보내준다는 소식에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같았던 포항 시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건 분명 포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느새 태블릿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나와 일행들은 긴장한 얼굴로 집중했다.

“사람이……없네요?”

포항 시내가 보이고 또 시내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장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짓말처럼 그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며 오직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진 나는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리며 위성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일단 김태하 소장한테 연락을 취해서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어!”

그런데 그 순간 조용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가은이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저기요!”

황급히 검지를 가져다 댄 그곳은 다름 아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포항 신항,

배들이 오고 갈 포구에는 거대한 크루즈 선이 한 척이 통째로 처박혀있었다.

“이, 이게…….”

침을 꿀꺽 삼킨 드론 기술자는 조심스럽게 항구로 다가가 크루즈 선 위로 날았다.

끼이이이익! 끼기긱!

끼아아아아아악 - - - -!!

그저 검은색 페인트인 줄 알았던 항구에는 엄청난 숫자의 감염체가 몰려있었고,

크루즈 선에는 군락으로 추정되는 덩어리가 고치와 함께 맹수처럼 웅크려있었다.

찌릿!

왼쪽 흉터가 반응한다. 나는 놈을 알아봤고, 놈 또한 나를 알아보고 있었다.

천적.

군락이 내게 적대감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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