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나는 방어선을 지휘 중인 김태하 소장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현재 방어선에 있는 포항 군과 대화를 나눴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저희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현재 방어선에 파견 나가 있는 포항 군사령관은 무척이나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있던 본거지가 공격당한 거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빠르게 정신이 되돌아온 군사령관은 당장 여기 포항으로 복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나는 일단 그를 황급히 말리며 설득에 들어갔다.
“일단 침착하세요.”
만약 1시 진영을 막고 있는 포항 군이 뒤로 빠지면 방어선은 그대로 쭉 밀린다.
여기서는 섣부른 후퇴가 아닌 포항 근처에 있는 나와 공조하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요새 전체가 감염된 건 아닙니다. 혹시 평소에 대피 훈련을 진행한 적 있습니까?”
[지난해 감염 사고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훈련을 하는 편입니다. 아! 혹시 대피소에!?]
“네. 아마 거기 있을 겁니다.”
감염 최대치를 100이라고 둔다면 현재 포항은 2~30%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근처 대피소로 대피해 밖에서 올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
블라디보스토크 때처럼 대피소 안에서 숨어있어도 생존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단, 단독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꼭 시민들 구출하고, 군락까지 깔끔하게 소거해보겠습니다.”
여기서 군락을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방어선 후방이 공격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일찍 합류하기보단 변수로 등장한 적을 처리하고 가는 게 최선의 판단이었다.
[……강릉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포항 군사령관은 결국 우리 강릉을 믿어주기로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김태하 소장과 연락을 취한 뒤 본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빨리 움직여!”
“놈들 몰려오면 끝이다!”
일단 방어하기 불리한 야영장에서 벗어나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병력을 옮겼다.
그리고 원형 진형을 꾸린 뒤 가지고 온 자재를 총동원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팍! 팍!
쉬지도 못하고 끌려다니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방위군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땅을 파고, 철조망을 겹겹이 쌓고, 마지막으로 저지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과정.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한 그들은 순식간에 방어선 구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말 긴 하루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경계 인원을 제외한 전원이 숨죽은 채 휴식에 들어갔다.
“들어오세요.”
식사를 끝낸 일행들이 작전 회의를 위해 지휘부 천막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며 그동안 모아온 정보를 모두 취합했다.
“원인은 이 크루즈 선으로 추정 중입니다.”
혈액 감염과는 달리 공기 중으로 퍼지는 2차 감염은 정도에 따라 잠복기가 있다.
아마 변이 바이러스 보균자가 크루즈 선 안에 타고 있다가 퍼트렸을 확률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 만큼 고립된 장소는 없었을 테니까.
“군락이 의도한 걸까요?”
일본에서 포항까지 도달하는 방법이야 자동 항법 장치가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상이 아닌 선박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태어난 저 군락이다.
모양새가 꼭 부산으로 감염을 퍼트리고 그 뒤쪽인 포항을 치는 양동작전 같지 않은가.
가뜩이나 군락들의 지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해볼 만한 의심이었다.
“실, 실례합니다!”
때마침 드론 기술자가 오늘 촬영한 사진들을 뽑아 지휘부 천막을 찾아왔다.
나는 그 사진들을 책상 한가운데 쫙 깔아놓은 뒤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감염체 무리는 전부 크루즈 선이 있는 항구 부두에 모여있습니다. 군락이 놈들을 통제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 요새는 비어있는 상황 아닙니까? 대피소가 멀쩡하다면 연락부터 돼야…….”
“군락 발견 직후, 드론을 겨냥한 전파 방해가 들어왔습니다. 아마 대피소 부근도 이와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운봉산 때만큼 강력한 전파 방해는 아니지만, 통신을 방해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
자칫하다 드론을 떨어트릴 뻔했던 우리 쪽 기술자가 직접 확인한 내용이니 확실하다.
“곤란하네.”
고립된 생존자,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하는 전파 방해, 딱 봐도 의도된 행동이었다.
운봉산 때 꽤 난항을 겪었던 일행들은 전파 방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군락을 직접 타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 순간 잠자코 포항 지도를 살피던 방위군 간부 중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내가 발언을 허락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사진 앞으로 다가와 항구를 가리켰다.
“보다시피 사방이 팍 트여있고 날아오는 포탄을 피할만한 장소가 없습니다. 이대로 크루즈 선만 맞추면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군락이 갈수록 깊은 토굴을 파는 이유는 인간의 대규모 포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격에 취약한 크루즈 선에 둥지를 만들었다.
“좋은데요?”
“사정거리 안입니다.”
마침 곡사포도 끌고 왔고 고폭탄 또한 충분하다 못해 트럭 뒤에 넘치는 상황이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린다는 생각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래,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을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 나 또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둔 채 모든 의견을 수용했다.
“좋습니다. 일단 대피소 안전부터 확보하고 군락을 직접 포격하는 쪽으로 가보죠.”
포격이 시작되면 항구에 모인 감염체들은 빠져나와 시내를 거쳐올 가능성이 높다.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대피소 위치부터 파악하고 안전을 미리 확보해둬야 했다.
“다들 쉬어야 하니 서두릅시다.”
늦은 밤 시작된 작전 회의는 새벽 3시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다음날, 겨울과 함께 늦어진 일출을 따라 우리는 본격적인 작전을 개시했다.
* * *
위이이이잉~!
군락의 전파방해를 피해 조심스럽게 날아오른 드론이 진입로를 정찰해주기 시작한다.
이에 맞춰 은폐 장소에서 빠져나온 나와 대원들은 천천히 요새 입구로 다가갔다.
사박, 사박, 사박.
서늘한 아침 공기, 쓰고 있는 방독면 필터로 연기 같은 입김이 솔솔 새어 나온다.
뿌옇게 변한 유리면을 스윽 닦아 내린 나는 잠시 자리에 멈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이밍이 좋아.’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군락은 아직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 틈을 이용해 더욱 기척을 숨긴 나는 전진 수신호를 보내며 요새를 통과했다.
후우우우우웅 - - - -!!
그러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텅텅 비어버린 포항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치익.
[대피 흔적이 있습니다.]
감염체가 발생한 것 치고는 대피가 이뤄졌던 흔적이 요새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평범한 중년 남성 이미지였던 포항 시장이 생각보다 유능한 지도자였던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미리 계획해 둔 진입로를 가리키며 먼저 움직였다.
‘대피소 숫자가 많다고 했지.’
소련 시절 핵 방공호가 있던 블라디보스토크와는 달리 포항 요새는 대피소가 이곳저곳에 나뉘어 있는 형태라고 들었다.
우리는 그중 규모가 가장 큰 서산 터널 대피소를 먼저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치익!
[신, 신호가 약해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을 정찰하던 드론 기술자가 무전을 보내왔다.
서산터널과 포항 신항구까지 거리는 불과 6.2km, 점차 전파방해 강도가 강해진다.
이에 거리가 멀어진 드론은 힘차게 날던 이전과는 달리 파리처럼 비실비실했다.
“복귀하세요.”
드론을 기지로 먼저 복귀시킨 나는 마지막으로 지도를 확인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거리상 800m만 더 걸어가면 서산터널, 이제 슬슬 시야에 들어올 때가 됐다.
철컥!
긴장감이 서린다. 수신호에 맞춰 대원들 전원이 탄약을 확인하고 노리쇠를 전진한다.
우리는 이동 진영에서 수색 진영으로 변경하며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갔다.
700m, 500m.
조용한 도로, 옆 사람 숨소리와 도로 위로 내딛는 군홧발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원들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내 뒤를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었다.
‘저기다.’
그리고 곧 저 멀리 200m 앞에서 두꺼운 방화벽으로 막힌 서산 터널이 나타났다.
근처에 감염체나 시체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부는 아직 무사해 보였다.
까닥까닥.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나는 뒤쪽으로 손을 까닥이며 다시 서산터널로 향했다.
어째 이번 일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려는 모양이다.
움찔!
“?”
그런데 안도하는 마음과는 달리 목덜미와 어깨 근육에 갑자기 경직이 왔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 - - - - - - -.”
대원들 모두 멀쩡하게 걸어오고 있다. 그 어떠한 환경 변화도 느껴지는 것이 없다.
다만, 찰나의 시간만큼은 어둠 속 터널처럼 길어지며 내게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다.
움찔!
경직이 심해진다.
본능을 따라 고개를 돌려 도로와 그리 멀지 않은 버려진 창고로 시선을 고정했다.
‘사람?’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그 어둠보다 짙은 무언가가 창고 안에 숨어있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존재감.
마치 사람을 연상케 하는 그 눈동자는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찔.
그리고 순간 눈이 마주친다.
빠르게 제정신이 돌아온다.
나는 눈동자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며 또 하나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모두 터널로 뛰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다급히 외친 뒤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캬갸가각! 캬아아악!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새로운 변이종들이 마치 거미처럼 우르르 새어 나왔다.
알비노 변이종이 흰색이라면 이놈들은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변이 흑색종.
깜짝 놀란 대원들은 내 지시를 따라 급히 서산 터널을 향해 뛰어가려고 했다.
“미, 미친!”
“쏴! 엄호해!”
하지만 따라붙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 따라잡히고 말았다.
드르륵! 드륵!
타앙! 탕탕! 탕탕탕!
총구가 불을 뿜는다.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총알을 맞으며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서걱!
콰직! 쿵!
“끄아아아아악!”
“시발, 막아!”
갑작스러운 매복도 모자라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초근접전이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과 함께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콰직!
달려오는 흑색종 대가리를 개머리판으로 후리고 아가리에 총구를 쑤셔 박는다.
후두둑!
방독면에 묻은 뇌수를 아랑곳하지 않은 나는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드르르륵! 드르륵!
대원 하나를 물어뜯고 있는 흑색종을 향해 달려가 대가리에 총알을 먹인다.
캬갸가가각! 갸각!
하지만 대가리가 반쯤 날아간 놈은 여전히 공격성을 보이며 이빨을 드러냈다.
콰직!
죽어, 이 시발 새끼야! 나는 그대로 발로 차 너덜거리는 머리통을 군화로 짓밟았다.
“커억, 끄르륵!”
그리고 피를 울컥울컥 내뱉는 대원을 황급히 끌어안고 급히 치료제를 투여했다.
다만, 물어뜯긴 상처가 너무 심해 이대로 두면 과다 출혈로 죽을 것이 분명했다.
“문 상사! 최 대위!”
여기서 전면전을 벌이면 다 죽는다.
나는 급히 문 상사와 최 대위를 부르며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연신 외쳤다.
그러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 둘은 기계적으로 움직여 대원을 이끌었다.
“후퇴해!”
“여기서 벗어난다!”
일부 대원들은 놈들을 저지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서둘러 터널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흑색종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끝까지 대원들을 추격하려 했다.
드르르륵! 드르륵!
그냥 가게 두지 않는다.
그사이에 난입한 나는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고 망설임 없이 육박전을 벌였다.
스릉!
푸욱!
토마호크를 뽑아 머리를 내려찍고 반대쪽 손으로는 나이프를 뽑아 턱을 찌른다.
대원들을 따라가려던 흑색종의 발목을 붙잡고 놈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 - - - - - - - -!!”
소리 없는 고함, 이미 온몸은 피로 물들었고 이성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몸은 착실하게 움직이며 찌르고, 내려찍고, 장전하고, 쏘기를 반복했다.
후욱, 후욱.
무아지경이다. 잔뜩 과열된 몸은 계속 싸우고 죽이자며 본능을 다그치고 있었다.
흑색종들은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움직임이 둔해진다.
“형님!”
그 순간 문 상사와 함께 뛰어갔던 경태가 이쪽으로 황급히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우리가 분투하는 사이 부상자를 후방으로 옮기고 엄호 준비를 끝내놓은 것이다.
화력 집중!
신호를 받은 나와 대원들은 발걸음을 황급히 돌려 사정권 밖으로 몸을 날렸다.
포옹!
콰아아아앙 - - -!!
그러자 일시에 발사된 유탄 다섯 발이 흑색종 놈들을 향해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선배!”
그사이 풀숲으로 뛰어온 송지영이 쓰러져 있는 나를 부축해 터널을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