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사실 지금 상황에서 서산 터널 대피소로 도망치는 건 반쯤 도박성이 짙었다.
아무리 튼튼한 방호 문이 있다고 한들 저쪽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끝이니 말이다.
끼이익, 덜컹!
하지만 다행히도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대피소 사람들은 서둘러 문을 열었고,
사복 차림에 총을 든 이들이 뛰쳐나와 우리를 향해 빨리 오라는 듯 팔을 휘저었다.
“뛰어!”
“먼저 들어가십시오!”
대원들은 서로를 엄호하고 뛰고, 또 서로를 엄호하고 뛰는 과정을 반복했다.
평소에 이런 훈련 해온 덕분인지 한번 벌려놓은 거리는 쉽사리 따라잡히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빨리요!”
문을 열어준 사람들이 서둘러 달려 나와 부상자를 대신 업고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이에 힘을 얻어 하나둘 서산 터널 안으로 무사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 - -!!
이제 시간만 조금 벌면 된다.
한 마리당 3발! 나는 거의 정석에 가까운 사격을 보이며 저지를 이어갔다.
그러자 놈들도 점차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물론 저 멀리서는 군락의 명령을 듣고 온 감염체들이 빼곡하게 물려오고 있었다.
“형님! 빨리요!”
마지막 남은 탄약을 장전하고 있는데 뒤에서 경태가 다급히 달려오라 외친다.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점점 닫히기 시작하는 대피소 문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탁!
쿵!
아슬아슬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몸을 욱여넣어 나는 경태에게 반쯤 끌려오다시피 안으로 들어왔다.
허억, 허억.
주변은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대원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지 오래였다.
“이쪽이에요!”
제법 규모가 큰 서산 터널 내부에는 수많은 포항 시민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중 의료진이 포함되어 있는지 한 가운을 입은 이들이 이쪽으로 다급히 달려왔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피와 살점으로 얼룩진 방독면을 손으로 닦았다.
“어, 어디서 온 누구십니까?”
대피소 앞에서 우리를 도와주었던 앳된 여성 한 명이 물통과 수건을 가져왔다.
덕분에 얼굴과 머리를 깨끗하게 씻은 나는 일단 그녀와 반갑게 악수부터 했다.
“강릉에서 왔습니다.”
“아!”
강릉에서 왔다는 말에 여성은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강릉에서 왔다고? 그 말 한마디는 침울하던 대피소 분위기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잠, 잠시만요! 시장님 모셔 올게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뒤늦게 정신이 든 그녀는 대피소로 급히 뛰어갔다.
그러자 잠시 뒤 저 멀리서 양복 차림에 한 중년 남성이 허겁지겁 이쪽으로 뛰어왔다.
“강릉 시장님!”
서로 구면이다. 나는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인 포항 시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악수 대신 나와 포옹하며 기꺼이 포항을 돕기 위해 온 우리를 반겼다.
“사람들이 봅니다. 일단 진정하세요.”
“예, 예! 그래야죠.”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겨우 저번 회담 때보다 주름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감정이 격해진 그를 가까스로 진정시킨 나는 일단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은 대충 알고 왔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대피소랑 시민들은 이들이 답니까?”
“아니요. 요새 내부에 있는 대피소만 수십 개가 넘습니다! 물론 지금은 전파 방해 때문에 연락이 끊긴 상황이긴 하지만…….”
“대충 위치만 파악하면 됩니다.”
“잠시만요. 표기해둔 지도가 있을 겁니다.”
포항 시장이 눈짓하자 직원 중 하나가 재빨리 천막을 뒤져 지도 한 장을 꺼내왔다.
그 지도에는 요새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대피소의 위치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중 절반이 넘게 차지하고 있는 붉은색 X자 표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폐쇄한 대피소라는 뜻입니다. 규정에 따라 방호 문이 설치된 곳만 쓰고 있습니다.”
현재 시민들을 수용한 대피소는 이 서산 터널과 같은 튼튼한 구조물을 쓰고 있었다.
포항 시장의 혜안이라고 봐야 하나?
이 정도면 감염체 무리가 시내로 쏟아져도 별 무리 없이 숨어있을 수 있었다.
“선배!”
그 순간 후송되는 부상자를 따라갔던 송지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두 사람 다 무사해요. 나머지 경상자들도 소독 끝내고 치료제 투여받았어요.”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두 사람이 각각 목과 복부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빠른 응급처치와 마침 준비되어 있던 의료진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건빵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철컥!
주머니 안에는 무전기를 대신해 신호를 보낼 권총형 조명탄이 들어있었다.
“바로 진행하실 거죠?”
“날려버려야지.”
하늘로 조명탄이 떠오르는 즉시, 군락을 향해 포를 쏘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다.
나는 일단 방위군에게 신호부터 보내기 위해 송지영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 잠시만요!”
그런데 그 순간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포항 시장이 깜짝 놀라 앞을 막는다.
“설마 포격을 요청하시는 겁니까?”
“네. 마침 좋은 위치에…….”
“안 됩니다!”
항구로 포격을 가한다는 대답에 포항 시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외쳤다.
그는 절대 쏴서는 안 된다는 듯 내가 들고 있는 조명탄을 양손을 붙잡았다.
“지, 지금 부두 창고에 질산암모늄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화재라도 나면 큰일 나요!”
질산암모늄? 설마 톈진과 베이루트 항구에서 터졌던 그 질산암모늄을 말하는 건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던 나는 그만 포항 시장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미쳤습니까? 그걸 왜 한곳에 모아둬요!”
질산암모늄은 다른 폭발물에 비해 위력계수는 낮지만, 생성되는 폭발 가스가 많아 무언가를 밀어내는 힘이 매우 강력하다.
그래서 보통 건물을 철거하거나 광산에서 바위를 파괴할 때 많이 사용한다.
항구 도시인 포항의 규모를 생각하면 창고에 꽤 많은 질산암모늄이 쌓여 있을 터.
자칫하다가는 부두 전체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그 일대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항구랑 제일 가까운 대피소가 어딥니까.”
현재 우리가 있는 서산 터널까지는 아마 그리 큰 여파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대피소 중 항구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이 있다면 정말로 큰일 난다.
“잠, 잠시만요!”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자 포항시장은 허겁지겁 지도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아아!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의자 위에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신의 농간인지 딱 대피소 한 곳이 항구와 인접해있다.
‘e마트 지하 1층?’
지하 깊숙이 주차장이 마련된 대형 마트는 사람들이 숨어있기 딱 좋은 대피소다.
하지만 문제는 폭발에 의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 입구 또한 매몰될 수 있었다.
“몇 명이나 있는지 아십니까?”
“근처에 초중교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 모두 여기로 대피했을 거예요!”
문득 기억을 떠올린 포항 시장은 까맣게 죽은 얼굴로 절규하듯 외쳤다.
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나와 송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무거운 고개를 숙였다.
목숨의 무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 애들이라는 말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시장님!”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자, 눈치를 보던 포항 시장이 대뜸 내게 매달린다.
그는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애원하며 제발 그들을 구해달라고 사정했다.
“정,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입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인간이라면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결정적 양심이라는 것이 하나 존재한다.
그중 하나에 제대로 걸린 나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포항 시장을 일으켜주었다.
“……어떻게든 해봅시다.”
내 팔자가 그렇지, 이번에도 어째 쉽게 가는 일 없이 고생길이 훤하게 보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옳은 방향, 모두가 살아남는 고생길로 기꺼이 발을 들였다.
* * *
부르릉!
대피소 내 유일한 운송 차량인 오래된 픽업트럭이 우렁찬 엔진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그 위에는 송지영을 포함한 베테랑 대원들 4명이 각 좌석에 모두 앉아 있었다.
“괜찮겠냐?”
“문제없어요!”
계획은 간단하다.
일단 송지영과 대원들이 전파가 터지는 지역으로 이동해 방위군과 연락을 취하면,
우리는 포항 경비대와 함께 차고지에서 버스를 확보하고 e 마트로 달려간다.
그리고 학생들을 모두 구출해 1.5km 반경에서 벗어난 다음 신호탄을 쏴버린 다음.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펑! 질산암모늄과 군락을 사이좋게 폭발시킬 것이다.
물론 포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을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리스크가 존재했지만,
포항 시장도, 시민도 사람을 살린다는 선택지에 굳이 저울질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 준비해!”
재무장을 끝낸 특전 대원들과 일부 포항 경비대가 방호 문 앞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그리고 곧 천천히 나아가는 픽업트럭을 따라 대피소 밖으로 동시에 뛰쳐나갔다.
끼기기기기긱 - - -!!
터널 부근에는 이미 수많은 감염체가 우글우글 모여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놈들은 열리는 문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왔고 우리는 총알로 화답해주었다.
투두두두두두!
퐁! 퍼엉!
거치된 경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우리가 발사한 파편 유탄이 무리 한가운데 직격한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감염체 무리는 집중된 화력에 다진 고기처럼 찢겨나갔다.
한순간 빠져나갈 길을 확보해준 나는 픽업트럭을 통통 두드리며 크게 외쳤다.
“살아서 보자!”
“이따 봐요, 선배!”
이를 악문 송지영이 냅다 급가속을 밟으며 맹렬한 속도로 도로를 내달렸다.
우리는 그 뒤를 끝까지 엄호해주며 마지막으로 대피소 방호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갑시다!”
송지영 팀이 무사히 빠져나갔으니 우리도 이제 버스 차고지로 향할 차례다.
빠르게 재장전을 끝낸 나는 대원들과 포항 경비대를 이끌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투두두두두!
끼이이익!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버스 차고지까지는 사거리를 지나 대략 800m라고 들었다.
몰려오는 감염체 무리에 포위당하지 않으려면 정말 전속력을 다해 뛰어가야 했다.
“변이종이다!”
하지만 이미 냄새를 맡은 흑색종이 어느새 뒤를 따라와 우리를 덮치려고 했다.
나는 즉각 목표를 지시해주며 대원들과 함께 미친 듯이 총알을 난사했다.
캬갸갸갹! 캬아아악!
알비노 변이종이 지휘와 은신에 특화되어있다면 흑색종들은 전투를 위해 태어났다.
엄청난 완력, 속도, 머리를 날려도 움직이는 끔찍한 생명력은 괴물 그 자체였다.
“경태야!”
하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화력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큰 화력을 쓰라고.
놈들의 위험성을 몸으로 체감한 대원들은 이미 모든 대비를 마련해 둔 상태였다.
“뒤져, 시발 새끼들아!”
흑색종이 달려들자 문 상사와 경태가 기다렸다는 듯 자동 산탄총을 뽑아 난사했다.
그 안에는 일반 슬러그 탄이 아닌 지르코늄 가루를 섞은 소이탄이 들어 있었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드래곤 브레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5,000도에 육박하는 소이탄이 꽂힌다.
총알도 이겨내던 놈들은 그 맹렬한 발화 앞에 비명을 지르며 활활 타올랐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흑색종을 뿌리쳤고 버스 차고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이라던 한 포항 경비대가 사무실에서 차량 열쇠를 들고나온다.
우리는 곧바로 인원을 팀 단위로 나눠 버스에 탑승했고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끼이익!
버스는 총 10대! 많아 보이는 것 같아도 사람들을 전부 태우려면 빠듯하다.
잽싸게 1팀이 있는 버스로 들어간 나는 창밖으로 팔을 휘저으며 출발신호를 보냈다.
부우우우우우웅 - - - -!!
차고지를 빠져나온 버스 행렬이 빠르게 도로를 가로질러 항구 방면으로 향한다.
저 멀리 포항이 내려다보인다.
이미 이변을 눈치챈 군락은 이쪽으로 수많은 감염체와 흑색종을 보내고 있었다.
일렁이는 검은색 파도! 누가 먼저 표적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끼이이이익!
우리는 도망치고,
놈들은 쫓아온다.
지금은 그저 버스로 몰려드는 감염체를 저지하고 계속 앞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부아아아아앙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e 마트로 보이는 추정되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원들 대신 버스 운전을 맡아준 포항 경비대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곧 도착합니다!”
이제부턴 진짜 속도전이다. 재장전을 끝낸 나는 노리쇠를 전진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철컥!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노리쇠 반동이 또 한 번 죽음의 두려움을 몰아냈다.
끼익!
버스가 차례차례 멈추며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를 반원형 모양으로 틀어막는다.
동시에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하차해 몰려오는 감염체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갑시다!”
그사이 창문을 뛰쳐나온 나와 포항 경비대는 지하 주차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