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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상속자-111화 (111/180)

111화

쿵쿵!

다급히 방호 문을 두드리자 소란을 듣고 다가온 한 남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구조대입니다! 밖으로 나오세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10분 내로 모두가 버스 탑승을 끝내고 이 폭발 반경 범위 밖으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대피소 안 남성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주저하고 있었다.

“정 선생! 나야, 나! 김 씨!”

“형님?”

“그래! 도우러 왔어! 후딱 안 열고 뭐 해?”

같이 뛰어온 포항 경비대 중 하나가 보다 못해 결국 답답한 남성을 다그친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남성이 닫혀 있던 방호 문을 서둘러 개방하기 시작했다.

“잠, 잠시만요!”

덜컹!

끼이이익!

찢어진 경첩 소리와 함께 뿔테 안경과 더벅머리를 한 정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초중교 학생과 교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겁니다! 버스에 타세요!”

나는 갑작스러운 총성에 넋이 나간 그들을 다그치며 저 멀리 버스를 가리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교사들은 학생들 손을 하나둘 부여잡고 대피소를 빠져나왔다.

“선생님 뒤만 따라오렴! 알겠니?” “2학년 4반 친구들! 이쪽이에요!”

앞사람 어깨 위로 손을 올린 학생들이 침착하게 버스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사이 대피소 안까지 확인을 끝낸 나는 한참 교전이 진행 중인 대원들과 합류했다.

투두두두두두두 - - - -!!

포옹! 퍼엉!

마트 앞에는 이미 수많은 감염체가 저지선을 뚫기 위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하지만 대원들은 오직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놈들을 모조리 갈아 마셨고,

이제는 흑색종까지 맞상대해가며 학생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으아아앙!”

“울지마, 뚝!”

아무리 어린 애들이라고 해도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교사들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저학년 애들을 끌어안으며 함께 버스에 탔다.

그렇게 억겁과도 같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포항 경비대 중 하나가 급히 외쳤다.

“시장님! 됐습니다!”

드디어 모두 탑승했다. 나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탄알집을 빼내고 장전했다.

그리고 이제 막 떠날 준비를 끝낸 버스들을 점검하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2대가 남아.’

애들이 생각보다 작아서 그런지 차고지에서 가지고 온 버스 중 2대가 남는다.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나는 한쪽에서 분투 중인 최 대위를 끌어당기며 외쳤다.

“유인이 필요합니다!”

“예!”

척하면 척이다. 내 의도를 빠르게 눈치 챈 최 대위는 자신의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마찬가지로 1팀을 한곳으로 모은 나는 학생들이 타지 않은 1호차에 올라탔다.

부르릉!

우렁찬 엔진음! 끝까지 운전을 맡아준 포항 경비대가 이를 악물며 핸들을 잡았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머지 버스를 맡아줄 문 상사를 향해 외쳤다.

“부탁한다!”

한참 총을 발사하고 있던 문 상사는 검지를 척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리는 그 즉시 버스를 출발시켜 몰려오는 감염체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끼이이익!

콰직, 쿵!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대형 버스가 달려오는 감염체 무리를 들이박는다.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양측, 후면 창문을 깨트리고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다.

어그로가 끌리기 시작한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적색 연막탄 두 개를 꺼내 망설임 없이 핀을 뽑았다.

피잉!

취이익!

문밖으로 연막탄을 내밀자 붉은색 연기가 마치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다.

가뜩이나 버스를 따라오고 있던 감염체와 흑색종들은 더욱 미쳐 날뛰었다.

마트로 몰려오던 감염체 무리는 어느새 버스 뒤를 바짝 따라오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 - - !!

우리는 왼쪽, 최 대위가 지휘하는 버스는 각각 오른쪽 길로 빠져 분산을 유도한다.

이에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나머지 버스 8대도 서둘러 마트 앞을 빠져나왔다.

좋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탄피들을 발로 차며 버스 정면에 거치된 기관총을 잡았다.

투두두두두두 - - - !!!

아무리 튼튼한 버스라도 감염체와 계속 부딪히면 고장 나거나 전복될 위험성이 있다.

나와 대원들은 최대한 길을 뚫는 데 집중하며 빠른 속도로 도로를 가로질렀다.

후욱, 후욱.

불꽃, 총성, 핏물, 반동, 무뎌지는 정신과 반대로 감각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진다.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조차 전의로 바뀌어버린 지금, 세상이 단순해진다.

살아야 한다.

기계적으로 조준과 격발을 반복하는 내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캬가가가각! 캬아아악!

도로에서 벗어난 버스가 이제 포항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건물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흑색종들이 버스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쿵! 콰직!

놈들은 엄청난 균형감각과 완력으로 창틀에 매달려 버스 내부로 진입하려 했다.

한 마리라도 들어오면 큰일이나. 깜짝 놀란 대원들은 육박전을 불사하며 이를 막았다.

하지만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운전석 쪽은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쨍그랑!

끄아아아악 - - -!!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 틈을 타 흑색종 한 마리가 버스 운전석을 급습했다.

젠장, 방심했다! 나는 어떻게든 이를 구하고자 운전석 쪽으로 황급히 손을 뻗었다.

콰직!

그러나 이미 목뼈가 부러져버린 그는 허무하게 즉사한 채 버스 밖으로 버려졌다.

캭! 캭!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온 흑색종은 뒤이어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투쾅!

그대로 콜트 파이슨을 뽑아 잔뜩 의기양양해지고 있던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재빨리 운전석으로 몸을 비집어 넣고 옆으로 돌아가려는 핸들을 붙잡았다.

끼기기긱!

건물을 들이받을 뻔한 버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다시 시내 한복판을 달린다.

나는 한쪽 손으로는 운전을, 또 한쪽 손으로는 콜트 파이슨을 연신 난사했다.

투쾅! 투쾅!

버스 두 대면 충분히 분산되리라 생각한 감염체 숫자가 예상보다 훨씬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놈들을 유인은커녕 이 시내 한복판에 우리가 고립되어버리고 만다.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린 나는 재빨리 핸들을 돌려 포항 시내를 빠져나왔다.

“꽉 잡아!”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대원들이 한참 총을 쏘다 말고 급히 의자를 잡는다.

쾅!

시내를 빠져나온 버스는 길이 아닌 가드레일을 뚫고 공사 현장 한복판을 달렸다.

덜컹!

끼이이익!

버스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핸들은 계속 헛돌고 타이어는 끼이익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바삐 운전하는 와중에도 내 시선 저 멀리 학교 건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기다.’

부아아아앙 - - -!

속력을 올린 버스는 그대로 학교 정문을 지나쳐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대원들은 총을 놓고 서둘러 의자를 붙잡았다.

200m, 100m, 50m.

학교 건물로 돌진한 나는 건물과 충돌하기 전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돌렸다.

끼이이이익, 쾅!

절묘한 감속과 절묘한 각도, 버스는 건물 입구를 통째로 틀어막으며 멈췄다.

나는 곧장 소총과 가방을 챙겨 옆으로 찌그러진 자동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쾅!

“옥상으로!”

마찬가지로 서둘러 버스를 빠져나온 대원들은 학교 옥상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운동장과 그 일대는 이미 여기까지 쫓아온 감염체와 흑색종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쨍그랑!

끼이이이익 - - -!!

놈들은 입구가 막히자 외벽을 기어오르거나 창문을 깨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뛰어!”

이에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던 나와 경태는 재빨리 뒤로 돌아 총을 난사했다.

투다다다다 - - -!

쾅!

마지막 탄약이다. 우리는 수류탄까지 아낌없이 던지며 최후의 항전을 이어간다.

“빨리요!”

그사이 5층 옥상까지 올라간 대원들은 빨리 오라는 듯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나와 경태는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린 뒤 옥상을 향해 달려가 문을 닫았다.

쾅!

“막아!”

경태가 온몸으로 철문을 틀어막는다. 나머지 대원들도 고함을 지르며 힘을 더한다.

쿵! 쿵! 쿵! 벌써 옥상까지 따라온 감염체들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검은 바다가 일렁인다. 아니, 그건 반경 200m를 가득 채운 감염체 웨이브였다.

놈들은 반드시 우리를 죽이고 말겠다는 적의를 불태우며 옥상으로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내가 겨우 여기서 죽으려고 개고생하면서까지 학교로 달려온 게 아니다.

“가은아!” “여기요!”

다급히 손짓하자 한참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가은이가 신호탄 꾸러미를 던진다.

나는 그 즉시 ‘포격’을 상징하는 붉은 신호탄을 장전하고 하늘 높이 쏘아올렸다.

삐이이이이이이 - - - 펑!

제발, 제발 빨리! 신호탄이 펑 터지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카운터 다운을 시작했다.

끼기긱!

10초, 20초, 마치 1시간처럼 느껴지는 1분, 이제는 진짜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투쾅!

삐이이이이 - - -쾅!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 언덕에서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묵직한 포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신호에 응답한 방위군이 포항 신항구를 향한 무차별 포격을 시작했다.

콰앙!

꾸르르릉!

장약을 가득 채운 고폭탄이다. 꽂히는 족족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끼아아아아아악 - - - -!!!

군락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명을 질렀고 이는 흑색종과 감염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가 겨우 포격으로 끝낼 생각이었으면 이번 작전은 시작도 안 했다.

꾸르르릉!

포탄이 떨어진 부두 창고에 갑자기 폭음이 들리더니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작됐구나. 나와 대원들은 재빨리 문 앞에서 벗어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 - - -!!!!!!!!!

질산암모늄 2,750톤은 TNT 1.1 kt급. 즉, 히로시마 원폭 14분의 1에 해당한다.

그 위력을 몸으로 직접 체감하게 된 나는 이를 악물고 대원들을 끌어안았다.

콰르르르르릉!

후폭풍이 몰려온다. 엄청난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고 귀가 한순간 멀어버린다.

우리는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제발 이 건물이 멀쩡히 버텨주기를 빌었다.

후욱, 후욱.

한순간 끊어졌다가 돌아온 정신, 눈을 뜬 세상은 이명과 흐릿함으로 가득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황색 흙먼지로 뿌옇게 변한 하늘과 주변을 정신없이 돌아봤다.

끼기긱? 끼이익!

후폭풍에 휘말려 떨어졌던 감염체들은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흑색종 또한 실이 끊긴 목각인형처럼 동시에 움직임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죽었다.’

군락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질산암모늄이 있는 줄도 몰랐던 놈은 크루즈 선과 함께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쿨럭, 쿨럭!

나는 거칠게 기침하며 소멸한 군락의 빈자리를 채우는 버섯구름을 바라봤다.

그 광경이 어찌나 비현실적인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후폭풍이 완전히 가시자 대원들은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나 나처럼 주저앉는다.

“죽을 것 같아…….”

“엄살 좀 그만 부려.”

머리는 본부에 무전부터 하라고 외치는데 몸은 계속 담배나 피우라고 말하고 있다.

진짜 손가락 까닥할 힘 하나 남지 않은 나는 방독면을 벗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형님, 여기 불이요.”

“응.”

찰칵찰칵! 마찬가지로 옹기종기 모인 대원들은 담배를 입에 물며 대자로 뻗었다.

흩어지는 감염체와 저 멀리서 솟아오르는 폭발 구름은 구경하기 딱 좋은 장관이었다.

“아~ 맥주 먹고 싶다.”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털어올까요?”

그렇게 한동안 옥상에서 농땡이를 피운 우리는 무사히 본부에 합류할 수 있었다.

‘놈들이 약해졌다.’

동시에 부산에선 군락들 힘이 갑자기 약해졌다는 희소식이 속속히 전해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김태하 소장은 저지선을 넘어 처음으로 공세를 취했다.

한참 밀리기만 하던 전세가 우리 쪽으로 빠르게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판이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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