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폭발의 여파가 완전히 가신 것은 확인한 우리는 꼬질꼬질한 몸을 이끌고 복귀했다.
다행히 서산 터널에는 학생들을 태웠던 버스들이 모두 무사히 도착해 있었고,
유인을 맡았던 최 대위와 대원들 또한 다친 사람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랄까.
군락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대피소 밖으로 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의 주역인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뒤늦은 환영식을 열었다.
와아아아아 - - - !!
군락에 공격당하고 항구가 통째로 날아간 것에 비하면 인명피해가 적은 편이다.
주변 요새들의 도움을 받고 모두가 힘쓴다면 금방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강인한 포항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짧았던 만남의 끝을 알렸다.
“벌써 가시려고요?!”
그들에게 있어 강릉은 사람들을 구해주고 요새를 지켜준 정말 고마운 은인이다.
포항 시장은 없는 살림에 돼지와 소까지 잡아가며 극진히 대접해주려고 했다.
“나중에 또 뵙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락이 약해졌다는 소식이 김태하 소장을 통해 전해졌다.
모든 방어선이 대대적인 반격을 취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빨리 이에 가세해야 한다.
만남이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터.
나는 정말 아쉬워하는 포항 시장과 악수하며 서둘러 식수와 물자 보급을 끝냈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부산 방어선을 향해 다시 한번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저, 시장님.”
그렇게 트럭을 타고 야영지를 떠나려는데 한 익숙한 얼굴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들은 다름 아닌 대피소에 있었던 정 선생과 우리가 구출해온 어린 학생들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트럭에서 내리자 우물쭈물 서 있던 한 어린 학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색종이로 접은 엉성한 꽃 꾸러미를 내밀며 흘러내린 콧물을 킁 훌쩍였다.
웬 꽃?
내가 색종이 꽃을 받자 정 선생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날 마지막 수업이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한테 꽃을 접어주는 날이었는데 꼭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원래라면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한테 갔어야 할 색종이 꽃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오늘 가장 고마운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대원들이었다.
혹시 아까운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정 선생은 살며시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바쁘실 텐데…….”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알록달록한 색종이 꽃을 견장 위에 고정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아이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하나만 주십시오.”
“보라색은 없어요?”
트럭으로 돌아가자 대원들이 앞다투어 색종이 꽃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졸지에 견장 위에 장식을 더하며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냈다.
치익.
“갑시다.”
드디어 떠날 준비가 끝났다. 나는 트럭을 출발시키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언덕까지 올라온 정 선생과 아이들이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서로 교류가 잦았던 경상권답게 포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해가 지기 전, 부산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이미 무장을 끝낸 방위군은 물론이고 대원들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 현장이 치열하다는 걸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발 큰일이 없어야 하는데, 쌓여가는 줄담배가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엥?”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부산 방어선은 치열하기는커녕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연합군 전체가 부산 시내로 진격하는지 오래였다.
“저거 k9 아닙니까?”
“이야, 전차까지 끌고 왔네요.”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막강한 기갑차량들이 줄지어 부산 시내로 향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 숨겨놨나 했더니 마지막 카드로 쓰기 위해 창고에 박아뒀던 모양이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자주포 수십 대가 동시에 포탄을 발사하자 부산 일대가 초토화되어버린다.
사람 손으로 조작하는 견인 곡사포와는 비교되지 않는 발사속도와 정확도였다.
쿠르르릉!
대단위 포격이 그 일대를 휩쓸자 이번에는 전차들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전차는 마치 중세 기사처럼 감염체를 터프하게 짓밟으며 그 위용을 뽐냈다.
강철과 열기로 가득한 기갑 웨이브!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잠시 잊은 채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그때만큼은 유지비 때문에 참고 있었던 기갑 차량들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다.
“오느라 고생했다.”
막사에서 빠져나온 김태하 소장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막사로 직접 찾아왔다.
이렇게 후방에서 움직일 정도면 전선 상황이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보고 있는 그대로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포항 군락이 소멸함에 따라 감염체 움직임이 둔해지고 변이종 생성 속도가 확연하게 떨어졌다.
김태하 소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동안 아껴두었던 모든 화력을 동원했고,
사기가 떨어져 있던 연합군을 다독이며 드디어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압도적인 기세에 놀란 걸까, 힘이 약해진 군락들은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연합군은 겨우 반나절 만에 부산 시내를 장악하며 군락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누가 뭐라 해도 감염체에 대해선 김태하 소장만 한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맥 빠지네요.”
돼지고기도 마다하고 힘들게 달려왔는데 상황은 이미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뭐랄까, 역전을 노리고 교체 투입된 경기에 다른 선수가 골을 넣고 이긴 기분?
팀이 승리했서 일단 기분은 좋은데 헛걸음했다고 생각하니 대원들에게 미안해졌다.
툭툭.
내 심정을 아는지 김태하 소장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포항을 지키지 못했으면 이런 기회도 없었겠지. 자네들이 거기 있던 게 천운이었어.”
“……뭐, 남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군락이 바다를 건너 후방인 포항을 노리고 올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마침 우리가 거길 지나가고 있었다는 건 천운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다들 피곤하겠군. 일단 막사로 가겠나?”
여기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방위군과 특전 대원들 모두 녹초가 되기 직전이다.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었지만, 김태하 소장은 우리를 특별히 배려해주기로 했다.
“아, 맞다. 식사는?”
“아직 안 했어요.”
“부산에 왔으면 돼지국밥을 먹어봐야지. 일단 식사부터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군침이 싹 도네. 나는 언제 맥이 빠졌냐는 듯 룰루랄라 김태하 소장을 따라갔다.
물론 시선은 저 멀리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부산에 고정되어 있었다.
부디 불로서 정화하소서.
나는 하나둘 사라지는 군락의 존재감을 느끼며 불타오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 * *
전쟁은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적을 모두 궤멸시켰으면 영토를 점령하고 그에 대한 사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감염체와의 전쟁은 보통 치열함으로 시작해서 더러움으로 남기 마련이다.
끼이이이이익 - - -!!
군락이 죽고 나면 알아서 죽는 변이종과는 달리 감염체는 죽지 않고 통제만 풀린다.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진 놈들은 대부분 건물이나 빛이 들지 않는 지하로 숨어드는데,
이게 일일이 찾아서 없애주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발생하고 만다.
연합군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전후 뒤처리를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쏴버려!’
‘지겨운 새끼들!’
물론 그 감염체 소거 작전을 선두 지휘한 건 다름 아닌 우리 강릉 특전대였다.
이제 한반도에서 최고로 꼽는 감염체 대응팀이 된 만큼 그 대우를 받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랄까.
우리가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에 연합군은 군소리 없이 서포팅을 이어 나갔고,
더러운 오물과 감염체로 득실거렸던 부산은 빠른 속도로 정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폐허와 먼지뿐. 아마 부산이 재건되려면 2년은 족히 걸릴 터.
현장으로 직접 찾아온 이솔하와 요새 지도자들은 재건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한때 일본 영향 아래 있었던 부산이 진정한 한반도 지역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첫눈.’
그렇게 근 보름간 이어졌던 전쟁과 전후 처리가 끝이 나며 하늘에선 첫눈이 내렸다.
이제 슬슬 모든 것을 얼려버릴 혹독한 겨울이 한반도 전체를 강타할 것이다.
혹시나 길이 얼어버리면 큰일이기에 연합군은 하나둘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만납시다.
지도자들은 예전부터 더욱 굳건해진 관계를 과시하며 각자의 요새로 떠나갔다.
“시장님! 이쪽입니다!
“제발 재개발 결재서류부터!”
하지만 강릉으로 돌아온 나를 반긴 것은 휴가도, 휴식도 아닌 엄청난 양의 행정 업무!
한참 그 규모를 키워가는 강릉인만큼 시장이 처리해줘야 할 사안이 너무나 많았다.
결국 특전대 중 유일하게 휴가에서 제외된 나는 일주일 동안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눈이 판다 같아요.”
“그만 웃어요.”
“웃긴 걸 어떡해……!”
오랜만에 만난 엠마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거울을 보니 진짜 판다 한 마리가 죽을상을 쓴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번 주에 몇 시간 잤더라?
벌써 보름째 야근 중이 태식 씨와 직원들을 생각하면 툴툴거릴 수도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강장제와 비타민을 입에 털어넣는 것으로 피곤을 이겨내야 했다.
“일본은 어때요?”
“생각보다 더 심각해요. 일본 수뇌부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저희도 몰랐어요.”
일단 핵 공격을 보류한 일본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병력을 한곳에 집결하려 했다.
하지만 ‘대피’ 시킨다는 전제부터가 무너져 내리며 정말 대참사가 일어났다.
열도 본토뿐만 아니라 시코쿠 섬에서도 대규모 감염 사태가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안전지대라고는 남쪽 규슈와 저 멀리 북쪽에 홋카이도뿐.
일본은 일단 임시 정부를 홋카이도로 옮겼지만, 이미 본토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골치 아프네요.”
“……상황이 나아지길 기도해봐야죠.”
담 넘어 불구경이라 생각하기에는 앞으로 넘어올 피난민들이 걱정이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한숨을 푹 내쉬며 하얀 눈이 쌓은 선착장을 조용히 걸었다.
위이이잉, 끼익!
덜컹!
때마침 동해항으로 들어온 컨테이너선에서 장비들이 하나둘 하역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미국에서 보낸 수송용 헬리콥터가 드디어 강릉에 도착한 것이다.
쓰고 남은 중고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모두 만들지 얼마 안 된 신품으로 보냈다.
“물건 괜찮죠?”
“그럼요.”
비록 3대가 전부지만, 앞으로 수송이나 특수 작전에 큰 도움이 될 수송 헬기다.
나는 이번에도 큰 도움을 준 엠마에게 감사 인사하며 흐뭇한 얼굴을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평소에는 웃고 넘길 엠마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내가 왜 그러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볼을 긁적이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우면 어디 좀 같이 가줘요.”
“어딜요?”
“……미국이요.”
뜬금없이 미국을 같이 가자고? 이 여자 가끔 사람을 당황하게 재주가 있네.
나는 농담인가 싶어 눈치를 보는데 어째 얼굴을 보아하니 진담으로 하는 말 같았다.
“VIP가 요청한 겁니까?”
“네.”
뭐 어디 기관이라면 모를까, 저쪽 VIP가 직접 요청했다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졸지에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가게 돼버린 나는 흐린 눈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저 여권 없는데요.”
“만들어드릴까요? 커스텀도 가능해요.”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