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군락 사태가 터졌다는 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도시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하필 영상이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공포의 강도는 더욱 심했다.
도로에는 대피하는 시민들로 가득했고 수많은 차량이 외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 - -!!
하지만 우리를 태운 리무진은 도망치는 시민들을 그대로 가로질러 현장으로 향했다.
바이오 젠슨 연구소 부근은 이미 연방군이 도착해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끼익!
덜컹!
현장 통제실까지 프리패스로 도착한 나와 대원들은 즉각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러자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익숙한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캡틴!”
그들은 다름 아닌 한때 우리와 고성에서 작전을 함께했던 파견팀 대원들이었다.
이제 감염체 특수팀으로 변모한 그들은 나와 반갑게 인사하며 현장을 안내했다.
“상황은 대충 알고 왔습니다. 그쪽 팀에서 생포한 군락이라고 하던데 진짜입니까?”
“예. 너바나에서 포획한 새끼 군락입니다. 하위종이고요, 막 변이를 시작했었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막 변이가 시작됐다면 어떤 놈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혹여나 변이 바이러스를 품은 종양부터 생산한다면 워싱턴 D.C는 진짜 끝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벙커 버스터를 쓰는 게 맞다.
하지만 문제는 저 건물 지하에 있는 존재가 한낱 군락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원을 포함한 민간인 49명이 아직 지하 시설에 살아있습니다. 정확히는 임시 대피소에 숨어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군락이 터진 곳은 지하 2층, 이미 건물 5층까지는 놈이 둥지를 만든 지 오래다.
근데 하필 빠져나오지 못한 민간인들이 지하 5층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군락을 노리고 미사일을 쐈다가는 갇혀있는 민간인까지 모조리 죽고 말 것이다.
‘곤란하다.’
이미 군락 현장은 몰려온 언론사 기자들로 인해 실시간 방영이 되고 와중이다.
연방군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희생자가 나온다면 거센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인 특전 대원들은 민감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삐리리리 - - -!!
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는 생각에 나는 일단 뒤로 돌아 발신지 불명인 전화부터 받았다.
달칵.
[접니다.]
예상대로 미합중국 대통령께서 성질을 참지 못하시고 내게 직통으로 연락해왔다.
이를 이미 예상하였던 나는 점점 줄어드는 시간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제프리는 무언가를 고민하듯 한동안 망설이더니 결국 본론을 꺼냈다.
[특수팀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군락 안에 갇힌 민간인을 구해오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장으로 파견된 특수팀 실력이야 같이 일해본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군락을 소거하는 것과 그 안에 민간인을 구해오는 건 다르다.
현재 상황을 전해 들은 특전 대원들도 표정을 굳히는데 이들이라고 다를까.
그들을 구할 의무가 있었던 미합중국 대통령 제프리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발을 뺄 생각이었으면 그냥 공항으로 갔지, 현장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미 대기 중인 특전 대원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쳤다.
1팀은 마치 명령만 내려달라는 듯 이미 준비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문 상사와 송지영, 그리고 최 대위가 없는 게 아쉽지만,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다.
“제 몸값이 좀 비쌉니다.”
[빈 종이를 보내드릴 겁니다.]
엠마가 기꺼이 백지 수표로 내밀었던 것처럼 제프리 또한 우리에게 백지를 약속했다.
[원하는 건 다 쓰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미국 특수팀이 건네는 권총을 받아들었다.
고성 군락 작전의 속편,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개봉할 리메이크판도 찍게 되었다.
* * *
장비를 모두 강릉에 두고 온지라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이를 보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현지가 미국 한가운데, 거기다 특수팀들 옆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급이 필요하다는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거대한 트레일러가 바로 급파되었다.
“원하는 건 다 챙기십시오.”
그 안에는 모듈화된 최신형 화기와 장비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미국 특수팀은 이 모든 게 익숙한 풍경인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장비를 소개해줬다.
“특수 재질로 만든 보호대입니다. 웬만한 공격은 얘가 알아서 흡수해줄 겁니다.”
“감염체 전용 확산 폭탄이에요.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시고 던지시면 끝. 아시죠?”
“캡틴. 혹시 몰라서 열감지기랑 야간 투시 기능까지 넣어놨습니다. 한 번 써보세요.”
강릉도 나름 개인 장비에는 신경을 쓰는 편인데 이들 앞에선 새 발의 피였구나.
나와 대원들은 그동안 영화에서만 보던 최신 장비에 군침을 흘리며 무기를 챙겼다.
역시 미국은 미국인가. 그동안 특수팀이 맹활약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갑시다.”
그렇게 순식간에 무장을 끝낸 우리는 우르르 트럭에서 내려 헬기 착륙장으로 향했다.
현재 군락이 둥지를 조성한 장소는 지하 2층부터 시작해 상층 6층까지 통째로다.
입구에는 이미 감염체가 우글거리고 있으니 유일한 진입로는 저기 옥상뿐이다.
투두두두두두 - - - !!
우리는 하나둘 지상으로 내려오는 수송용 헬리콥터에 탑승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총 다섯 대 헬리콥터는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형님, 쟤들 따라오는데요?”
그 와중에도 특종을 놓치기 싫은 언론사 헬리콥터가 우리를 급히 따라왔다.
생중계로 보이는 카메라는 분명 특수팀과 함께 있는 우리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손이라도 흔들어줘야 하나?
나는 건물 내부 구조를 살피는 와중 일단 그들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그러자 잔뜩 흥분한 카메라맨과 기자가 무어라 외치며 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준비하십시오!”
곧 도착이다.
바이오 젠슨 연구소 옥상에는 소음을 듣고 달려온 감염체들이 우글거렸다.
조종사와 미니건 사수는 그 즉시 주변을 선회하며 우리가 내려갈 공간부터 확보했다.
위이이이잉!
투두두두두두두 - - - !!!
다섯 대 미니건이 동시에 불을 뿜자 옥상으로 몰려온 감염체는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수송 헬기는 그 즉시 차례차례 옥상으로 접근해 패스트로프를 바닥으로 떨궜다.
“엄호해!”
나는 제일 먼저 로프에 매달려 바이오 젠슨 연구소 위로 빠르게 하강했다.
척!
드르륵! 드륵!
그리고 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산발적으로 달려오는 감염체를 쏴 죽였다.
대원들 또한 하나둘 로프를 타고 내려오며 진입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 - -!!
“몰려옵니다!”
아래층에는 이미 수많은 감염체가 헬리콥터 소음에 끌려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에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한 대원들은 모듈화된 확산 폭탄을 아래로 굴렸다.
퍼엉!
화약이 아닌 치료제 물질로 만들어진 확산 폭탄이 감염체 한가운데서 폭발한다.
놈들은 마치 염산을 맞기라도 한 듯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피부가 녹아내렸다.
“쏴!”
투두두두두두 - - -!!
우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무력화된 놈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비상구 계단이 순식간에 확보되자마자 나는 거침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입!”
최우선 목표는 지하 대피소에서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을 민간인들의 구조다.
군락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기 전 지하 5층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쪽입니다!”
거대 기업 바이오 젠슨답게 한 건물에만 엘리베이터가 8대 넘게 존재한다.
물론 건물 전력이 끊겨 모두 먹통이었지만,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통로는 멀쩡하다.
직선 경로.
여기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덜컹!
문을 강제로 개방해 지하 3층까지 내려가 있는 엘리베이터 하나를 확보한다.
대원들은 그 즉시 임시 등강기를 설치한 뒤 이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었다.
철컥!
한쪽 손으로는 등강기를 반대쪽 손으로는 권총을 뽑아 내려갈 준비를 끝냈다.
그대로 버튼을 당기자 시야는 한순간에 저 아래로 빨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 - -!!
지하와 가까워질수록 잔뜩 분노에 차 있는 군락의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찌르르 울려오는 왼쪽 눈 흉터를 찡그리며 최대한 존재감을 지우려고 했다.
9층, 8층, 7층. 그리고 6층.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감염체들이 우글거리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걸 모두 하이패스로 통과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3층에 도착했다.
철컥!
등강기를 위로 보낸 다음 지하 3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 위로 발을 디뎠다.
쾅!
천장을 발로 뚜껑을 따고 전력이 끊긴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강제로 문을 개방한 나는 지하 3층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터벅, 터벅, 터벅.
“- - - - - - - -.”
어둑한 지하 3층은 벌써 감염체의 오물들이 벽과 바닥에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이 정도 증식 속도면 아마 놈이 원하는 변이체를 생성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습격을 주의해야 한다.
내가 방독면을 착용하자 등강기를 탄 대원들이 하나들 지하 3층으로 내려왔다.
끼기기기기긱 - - -!!!
헬리콥터가 제대로 끌고 있는지 건물 내 감염체가 전부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나와 대원들은 그 틈을 노려 비상구 계단을 찾았고 곧 지하 5층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후욱, 후욱.
계단과 통로 이곳저곳에는 핏자국과 살점 피 묻은 옷들이 잔뜩 널려있다.
아니나 다를까, 비상구 바로 앞에는 감염체 몇 마리가 끼익끼익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끼기긱, 끽!
‘쉿.’
내가 수신호를 보내자 대원들은 총 대신 나이프를 꺼내 감염체를 향해 접근한다.
콰직!
푸욱!
그리고 곧바로 뒤통수와 턱 아래를 깊숙이 찔러 순식간에 놈들을 처리해낸다.
끼익 끼익.
울음소리가 그친다.
나와 대원들은 그대로 비상구 문을 열어 지하 5층 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터벅, 터벅, 터벅.
어둠만큼 칙칙한 어둠이 깔려있다.
녹색 형광으로 투시한 5층 연구실 내부는 그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덕분에 빠른 속도를 통로를 가로지른 우리는 임시 대피소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치익.
[이쪽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연히 핏자국을 발견한 대원 중 하나가 대피소를 발견해냈다.
바이오 젠슨이 튼튼하게 제작했는지 입구는 그 어떠한 침입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후우.
대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대피소를 향해 접근하려 했다.
‘너무 쉬운데.’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 멈춰 서며 연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군락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을 법도 한데 어째선지 반응이 없다.
아직 진화가 덜 된 걸까?
아니, 분명 증식 속도는 무척 빨랐다.
너무 안전하고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황에 나는 도리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치익.
[형님?]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우리가 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고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대원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었다.
스으으으.
심호흡한다. 작게 벌린 앞니 사이로 숨을 들이켜 뭉쳐있던 다리근육을 풀었다.
그러자 오는 동안 최대한 숨겨 놓고 있던 제3의 감각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군락, 놈은 어디 있을까.
감각의 파동은 벽과 바닥을 타고 전해져 사건이 터졌던 지하 2층을 훑었다.
‘없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감을 뿜어내던 군락이 갑자기……가까워졌다.
잠깐, 가까워졌다고?
깜짝 놀란 나는 두 눈을 번쩍 뜨며 눈앞으로 날아오는 책상을 재빨리 피했다.
쾅!
고성에서 목격했던 진화형 군락이 우리를 직접 잡기 위해 여기까지 내려왔다.
내게 존재를 들킨 놈은 천장을 빠른 속도로 기어 오며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끼이이이이익 - - -!!
그러면 그렇지, 시발!
역시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네.
거듭된 학습으로 위험을 알아챈 나는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재빨리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