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어쩐지 변이종 출현이 늦는다고 했더니 결국 본체가 진화하는 걸 선택한 것인가.
침입자를 잡기 위해 지하 5층까지 내려온 놈은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끼이이이이익 - - - -!!
그리고 커다란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기어와 거침없이 팔을 휘둘렀다.
힘, 속도와 같은 모든 면에서 고성 때 마주친 진화 군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후웅!
쾅!
시발!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다시 한번 바닥을 구른다.
군락과 술래잡기를 시작한 나는 급히 달려오는 대원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주입기 준비해!”
가은이가 서둘러 미국 특수팀이 사용하는 최신형 주입기를 꺼내 장전한다.
그사이 속속히 대열을 잡은 대원들이 진화형 군락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개시했다.
투두두두두두두 - - - !!!
지난번 고성에서 확보한 데이터로 놈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는 대원들이다.
총알은 피부가 질린 몸체나 다리가 아닌 머리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아무리 몸이 강철같다고 해도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총알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끼익! 지르며 순식간에 천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후웅! 쾅!
그리고 조금 전처럼 길쭉한 손을 이용해 우리 쪽으로 잡히는 모든 걸 집어던졌다.
“날아온다!”
“피해!”
깜짝 놀란 대원들은 사격을 멈추고 나처럼 바닥으로 하나둘 몸을 날렸다.
하지만 재수 없게 피하지 못한 대원 하나가 날아오는 책상에 부딪히고 말았다.
쾅!
오직 본능에만 의지하던 놈들이 점점 인간과 싸우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다.
쓰러진 대원을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간 나는 재빨리 모듈형 확산 폭탄을 꺼냈다.
핑!
그리고 놈이 기어 오는 타이밍을 맞춰 2초를 기다린 뒤 냅다 허공으로 던졌다.
퍼엉!
끼이이이이익 - - -!!
폭탄이 터지자 치료제 물질이 첨가된 흰색 거품이 허공으로 파악 피어오른다.
졸지에 그 물질을 뒤집어쓰게 된 군락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천장에서 떨어졌다.
됐다!
무력화는 아니어도 한순간 속도를 잃어버린 놈을 보며 나는 재빨리 뒤돌아봤다.
“가은아!”
그 틈을 노린 가은이가 온몸을 버둥거리는 진화형 군락을 향해 주입기를 발사했다.
퓽!
타악!
하지만 놈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날아오는 볼트를 그대로 쳐내버린다.
마치 이 공격이 날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무척이나 즉각적이고 반응이었다.
젠장, 이것마저 학습한 것인가. 나는 울부짖는 군락과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끼기기기기긱 - - - !!
놈은 날아오는 총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은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속도에 주변에 함께 있던 대원 그 누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다.
탁!
하지만 이미 반 발자국 먼저 움직인 나는 가은이를 끌어안고 주먹을 펼쳤다.
주먹 안에는 이미 버튼이 눌린 모듈형 확장 폭탄이 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퍼엉!
그 순간 소화기 분말을 연상케 하는 흰색 거품이 놈과 우리 사이를 집어삼킨다.
인간에게는 무해하나, 감염체 군락에는 독약이나 다름없는 치료제 물질!
끼기기기기긱 - - -!!
자폭 아닌 자폭에 제대로 카운터를 당한 놈은 안면을 감싸며 뒤로 자빠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대원들은 서둘러 군락 주변을 포위하며 화력을 집중했다.
투두두두두두 - - - -!!
기세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아무리 놈이라도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는 총알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질기고 튼튼하던 군락의 피부는 이미 일그러지고 짓뭉개져 검은색 피를 질질 흘렸다.
지금이다.
나는 가은이가 떨어트린 주입기를 낚아챈 뒤 버둥거리는 놈을 향해 달려갔다.
끼익?
군락이 아닌 인간이,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던 그 인간이 군락을 향해 달려든다.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린 놈은 엄청난 분노를 터트리며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웅!
감각이 폭발한다. 발끝부터 손끝까지 모든 근육이 제어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린 나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위험과 직면했다.
오른쪽? 아니.
왼쪽? 여기도 위험하다.
머리로 그려지는 수많은 경로 가운데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이곳이다.
피하지 마라.
정면으로 맞서는 거다.
치익!
나는 그대로 몸을 림보 하듯 기울여 놈의 다리 아래로 길게 슬라이딩했다.
휘두른 팔은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동시에 사각지대가 형성됐다.
철컥!
나는 놈의 길쭉한 다리 아래에서 재빨리 주입기를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퓨융!
그렇게 발사된 치료제는 피부가 제일 연약한 복부 바로 아래 푸욱 꽂혀버렸다.
푹!
정적이 흐른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끄드득!
치이익!
팔과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고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거의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치료제 앞에 막강하던 군락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끼이아아아아아아악 - - - -!!!!!!!!
울음소리가 강타한다. 그 엄청난 고주파를 버티지 못한 대원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일반인도 느껴질 정도로 퍼져나가는 기이한 사념은 정신을 뒤흔들어놓고 있었다.
끼기긱, 끽기, 끼이익……!!
대원들이 잠시 주춤거린 사이 놈은 필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아직 약 기운이 안 퍼진 걸까?
온몸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군락은 허겁지겁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치익
[놈들이 내려갑니다!]
옥상에서 시선을 끌어주고 있던 헬리콥터 조종사가 다급한 무전을 보냈다.
둥지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감염체 무리가 지하로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 막고, 인질부터 구출해!”
넋 놓고 있을 틈이 없다. 나는 그 즉시 주입기와 소총을 챙겨 대원들을 다그쳤다.
“형님!”
그리고 홀로 계단으로 달려가 치명상을 입고 도망친 군락을 끝까지 추격했다.
잡는다.
무조건 잡는다!
놈들이 인간을 상대로 보였던 광기와 집념이 내게도 새겨지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오직 군락을 잡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몸을 움직이게 했다.
탁, 탁, 탁, 탁!
끼긱, 끼이익……!
그걸 놈도 느끼고 있는지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여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도망치고 쫓기는 급박한 상황, 결국 지하 3층까지 따라온 나는 재빨리 총구를 들었다.
투두두두두두 - - -!!
또 한 번 총알이 날아오자 깜짝 놀란 놈이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가 진입할 때 사용했던 엘리베이터 통로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후욱, 후욱.
이제 놈도 한계다.
거친 숨을 몰아쉰 나는 소총과 주입기를 등에 메고 등강기를 손으로 잡았다.
치이이익!
등강기가 빠르게 상승한다. 권총을 뽑아 기어 올라가는 놈을 집요하게 쐈다.
타앙!
타앙!
타앙!
제발, 제발 그만 쫓아와! 군락은 미쳐버리겠다는 듯 힘겨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 뒤를 바짝 따라가며 끝까지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못 보낸다.
넌 여기서 죽는다.
수많은 군락이 현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나는 확실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덜컹!
끼기긱!
기어코 꼭대기 층까지 도망친 놈은 비틀비틀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 뒤를 바짝 따라온 나는 소총을 재장전하고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끼이이이익 - - -!!
어둡고 축축하던 둥지에서 빠져나와 인간이 세운 대도시를 처음으로 목격한다.
놈은 건물에서 뛰어내릴 속셈인지 옥상 난간으로 달려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군락 발견!]
하지만 주변은 이미 엄호를 위해 정지 비행 중인 수송 헬기들이 즐비해 있었다.
위이이이잉!
투두두두두두 - - -!!!
그들은 군락을 발견한 즉시 미니건을 발사해 놈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다.
한순간 집중된 화력을 버티지 못한 군락은 드디어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사격 중지.”
놈의 존재감이 꺼져간다. 나는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장전된 치료제 주입기를 꺼내 이번에는 정확히 눈동자를 향해 조준했다.
끼익.
놈의 눈동자 너머로 심연이 보인다. 그 어둠은 너무나 깊어 그 끝을 볼 수가 없다.
아마 저 깊은 심연이 놈들이 지닌 저력이자 수많은 군락의 공동 의식일 것이다.
퓽!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그 눈동자에 치료제를 주입했다.
그러자 놈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며 곧 형체조차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워싱턴 D.C를 공포로 몰고 갔던 군락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투다다다다다.
이 광경을 전부 생중계하고 있던 언론사 헬기들이 건물 주변을 돌며 다가온다.
나는 여기를 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는 듯 손을 파닥파닥 흔들어주었다.
와아아아 - - -!!
저 멀리 모여있던 시민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 * *
매일 밥 먹듯이 감염체와 싸워온 우리는 군락 소멸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수많은 작전을 겪어오며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전!’
‘군락을 소거하고 함께 나가는 연합팀.’
하지만 처음으로 군락이 등장하고, 또 소거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미국 동부는 흥분하다 못해 거의 난리가 났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우리가 묶고 있던 숙소로 사람이 몰려 경찰이 투입되었고,
또 당일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도 교통 사정으로 인해 하루 밀릴 정도였다.
미국 특유의 문화라고 봐야 할까.
할리우드와 히어로 그리고 국뽕이 절묘하게 섞인 이 분위기는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나는 인터뷰를 요청해오는 기자들을 피해 아예 호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집 좀 갑시다!’
미국 동부가 난리가 났거나 말거나 우리는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내가 귀찮아하는 티를 팍팍 내자 제프리와 엠마는 눈치껏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호텔 방에 갇힌 지 이틀 만에 드디어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기 한 번만 봐주십시오!”
“Mr. 박! 여깁니다! 인터뷰 한 번만!”
물론 공항에는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 그리고 제프리가 직접 찾아와 있었다.
훈장 수여식을 거부했다고 이러는 거야?
이게 바로 보여주기식 정치인가 싶었던 나는 꼼짝없이 끌려와 사진을 찍어야 했다.
물론 악수하며 웃고 있는 얼굴 아래로 본심이 섞인 말을 소곤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다시는 안 올 겁니다.”
“하하, 또 오고 싶으시다고요?”
“이제 부르지 마십시오.”
“예! 언제든지 부르겠습니다!”
카메라 몰래 본심을 말하고 있는데 제프리가 너무나 여유롭게 받아친다.
역시 8년 동안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와는 뻔뻔함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제프리는 양손을 꾹 잡아주며 이 말만큼은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Mr. 박. 다음에는 꼭 전쟁이 끝난 세상에서 술 한잔합시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나 또한 이를 약속하며 함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눈부시게 번쩍이며 수많은 이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식 행사는 끝이 나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활주로로 향했다.
“어, 군용기가 아니네요?”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군용기가 아닌 잘 빠진 전세기였다.
졸지에 일등석을 타고 귀국하게 된 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봤다.
“뭐해요? 안 타고.”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선글라스를 쓰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 안에는 이미 엠마가 잔뜩 폼을 잡은 채 나와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오셨어요?”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경태와 가은이는 온갖 호들갑을 떨며 뒤따라왔다.
“형, 형님 설마?”
“아니죠? 그냥 빌린 거죠?”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제프리가 건넸던 백지 수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우리 거 맞아.”
그러자 우오아아악! 괴성을 지른 대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옵션으로 세팅되어 있던 주류 대부분이 그들 입으로 들어간 것은 덤이었다.
화려한 휴가였다.